시장논리가 삼킨 토착민의 전통 지식

2014-01-08     클라라 델파스, 피에르 윌리엄 존슨

생물다양성 보호의 주역인 토착민은 유전자원뿐 아니라 전통지식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토착민이 보유한 유전자원과 전통지식은 의약품·화장품·농업·건강보조식품 제조 등 이른바 ‘녹색 경제’ 산업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오늘날 토착민이 보유한 전통지식은 전통지식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주장하는 특허청의 가세로 시장 논리에 가차 없이 굴복하고 있다.

토착민은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강압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왔다. 그런 만큼 생물다양성 보호에 관한 논의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토착민이 “해당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전통 관습을 바탕으로 환경 관리 및 개발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리오 선언 원칙 22)고 국제연합(UN)이 공식 인정한 것은 1992년에 이르러서였다. 유엔뿐 아니라 과학계도 토착민이 보유한 전통지식에 대해 인정 비슷한 것을 해주고 있다.

가령 2005년 발표된 ‘밀레니엄을 위한 생태계 평가’ 보고서가 토착민 전통지식의 유용성을 인정했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도 2014년 3월 발행 예정인 제5차 보고서 뒷부분에서 토착민 전통지식의 필요성을 분명히 밝혔다. 태국의 모켄족과 라오스의 라웨족, 인도의 옹족, 인도네시아의 시메울루에족은 자신들이 보유한 전통지식 덕분에 2004년 12월 대규모 지진해일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스몽’(갑작스럽게 평소보다 높은 파도를 동반하는 여진)(지진해일을 의미하는 현지어-역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토착민들은 쓰나미가 일어날 것에 대비해 일찌감치 내륙 지역으로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편 가나(아프리카) 오핀 분지에서 살아가는 토착 농경민들도 원활한 물 수급을 위해 빗물이나 생활용수를 모아 사용하는 재활용 시설을 설치하거나, 적절하게 나무를 심어 토양 침식을 예방하고 있다.

전통지식 관련 국제법 전무

전통지식의 데이터베이스화는 얼핏 훌륭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지식의 소실을 막는 한편, 생물다양성 보존이나 사막화 및 지구 온난화 방지, 보건 문제 등 다양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에 설립한 세계전통지식연구소(ITKNET)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에 해당하는 세계전통지식온라인데이터베이스(TKWB) 구축 사업은 과학계에 토착민 전통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베이스 내용은 국제지적재산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오로지 접근권을 부여 받은 사람에게만 열람이 허용된다. 토착민의 전통지식은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섬유, 염료, 보존제, 오일, 향수, 동물성·식물성 독성물질, 의약품, 종자 등 온갖 종류의 물질과 상품 개발에도 이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기업들은 각종 지적재산권(IPR) 보호 제도나 특허 등을 동원해 토착민 전통지식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리오 선언(구속력이 없음)과 함께, 1993년 말 채택된 유엔생물다양성협약(CBD) 제8조 j항은 당사국들에게 “생물다양성 보존 및 지속가능한 이용에 적합한 토착민 공동체의 지식과 기술, 관습”을 존중·보전·유지하고, 보유자의 동의와 참여 아래 “이를 더욱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며, “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평하게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조항은 전통지식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뒤 세계무역기구(WTO)(1995년 출범)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도 당사국들에게 특허나 개별법 형태의 지적재산권보호 제도를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 조항과 관련해 비정부기구(NGO)나 저개발국, 신흥국, 토착민 공동체는 관련 규제법이 미비한 나라들의 유전자원과 전통지식을 다른 나라 국민들이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제4차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제8조 j항의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그룹이 구성됐다. 유엔 산하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도 세계무역기구(WTO)와 손잡고, 유전자원 및 전통지식 관련 지재권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해야 할 대상을 토착민을 비롯한 ‘신규 대상’으로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많은 토착민은 이런 식의 구상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협상장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도 빈번하다. 인도·중국·페루 등 일부 신흥국과 저개발국은 기업의 부당한 특허 등록(유엔에서 흔히 ‘생물해적행위’, ‘부정이용행위’ 등의 용어로 불린다)에 맞서기 위해 자국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나서고 있다.

처음 포문을 연 나라는 인도다. 인도는 대부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수천 년에 걸친 자국의 전통지식을 처음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당해온 생물해적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인도는 외국기업이 바쓰마티쌀, 강황, 인도멀구슬나무(님) 등에 대해 무단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바람에 정작 이를 상업화하는 과정에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결국 “2001년, 인도 정부는 특허청에 전통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로 결정했다”고 전통지식전자도서관(TKDL) 대표 비노드 쿠마르 굽타가 말했다. 이를테면 전통지식과 관련한 식물들의 제법을 체계화한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구축된 26만 7000건에 달하는 자료는 오로지 특허 심사관에게만 개방되고 있다.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특허 심사관들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특허 위반 사례를 적발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지식전자도서관(TKDL) 덕분에 제약업계의 부당한 특허 등록을 무효화하거나 철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사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은 특허 침해 소송보다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훨씬 더 경제적이다. “1996~2005년, 바쓰마티쌀 생물해적행위에 관한 소송의 경우 변호사 비용만 150만 달러가 소요됐지만 TKDL은 3백만 달러의 임금 비용만 들이고도 10년 만에 무려 1100건의 특허 침해 사건을 다룰 수 있었다!”고 굽타 TKDL 대표는 말했다. 한편 페루도 2002년 이후 구전되는 전통지식들을 여러 문서로 기록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국가 차원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은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가령 2001년 3월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회의도 “전통지식 보호의 모범 사례, TKDL 활용”을 주요 안건으로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해킹 위험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미 수차례 불법 침입 시도를 적발한 적이 있다”고 굽타 TKDL 대표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과거 비정부기구(NGO)나 학술단체 주도로 구축된 전통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만인에게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데이터베이스는 공유가 가능하다. 가령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이 구축한 열대아프리카 식물자원(PROTA)이 대표적인 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열대아프리카 식물자원 약 7000종에 관한 자료를 만인에게 자유롭게 개방하고 있다. 한편 인도의 허니비 네트워크도 1990년대 초부터 지역 농민이나 전통지식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약용식물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오고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만든 전통생태지식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T.E.K.*P.A.D.’ 역시 온라인상에 공유된 식물종 활용과 토착민 전통지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온라인상으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은 공식 기록보다 선행한다는 점에서 모든 부당이용행위를 막는 근거자료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토착민, 권리 박탈에 반발

2010년 유엔생물다양성협약(CBD)은 결국 나고야의정서라는 결실을 맺었다. 나고야의정서란 전통지식 관련 유전자원 활용에 따른 이익 공유 방식을 규정한 국제협약을 말한다. 이 의정서는 제2조 조항에 의거해서는 유전자원의 정의를 모든 파생물(식물 추출물 등)로 확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7조에 근거해서는 토착민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의 ‘사전통보승인(PIC)’ 개념을 축소하고 있다. 이처럼 나고야의정서는 자원 활용 허가권을 해당 토착민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국가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지식 접근을 규제할 수 있는 ‘개별법’을 갖춘 나라는 십여 국가에 불과하다. 관련 국제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결국 기업들은 자유자재로 토착민 공동체와 협상을 하며, 전통지식 수집 및 특허 출원이 가능한 제품 개발에 완전한 전권을 누리고 있다.

이를테면 윤리적생물무역연합(UEBT)에 가입한 익스펜사이언스 연구소는 2011년 이후 현지 민족식물학자나 대학교수들과 손잡고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며 자랑스레 밝히고 있다. 겉으로는 토착민 공동체의 권리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여전히 토착민의 전통지식을 바탕으로 출원한 특허의 유일한 권리자로 행세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2년에는 광저기 추출물을 이용한 피부 치료 관련 특허를 출원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사실상 아프리카 사람들이 상처 치료에 이 식물을 사용하는 민간요법에서 착안한 특허다. 적절한 규제책이 없다보니, 결국 2007년 UN의 토착민 권리에 관한 선언 제32조를 준수하고, 토착민의 지식·기술·민간전승물(유전자원, 종자, 치료법, 동식물에 관한 전통지식, 구전 전통 등을 포함)을 관리·개발·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던 당사국의 약속도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여러 UN 산하 기구들은 생물다양성이 훼손되고 있거나 혹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겁박하며 1970년대 이후 생물 수집 기관 설립(식물보존원, 생물박물관, 종자은행 등)을 독려해왔다. 또한 그에 따른 관리를 최종적으로 나고야의정서 체결국가에 맡겼다. 한편 2008년 세계종자은행인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가 노르웨이령 북극에 건설됐다. 여기에는 3백만개의 종자 표본이 저장되어 있는데, 전 세계 분산된 약 1500개 종자은행의 표본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규모다. 흡사 금고를 떠올리게 하는 이 저장고는 전 지구적 재앙에 대비한다는 취지에서 구상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료 접근은 종자를 기탁한 소유자, 즉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게이츠 및 록펠러 재단과 종자기업)에게만 허용될 뿐이다.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은 2013년 4월 말 열린 유전자원·전통지식·민속에 관한 지적재산권기구 정부 간 위원회(IGC)에서 모든 국가적 차원의 전통지식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여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구축하고 보안과 관리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맡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정부가 그들을 대신해 자신들의 전통지식과 관련한 사항에 결정권을 누리는 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잭 클로펜버그 위스콘신대학 환경사회학과 교수는 시중 종자를 관할하는 기존의 지적재산권(IPR) 체제에 맞서 새로운 종자관련 지식 및 유전자원의 보호·전파 모형을 구상해냈다. 바로 ‘식물유전자원을 위한 일반 공중 라이선스’다. 말하자면 프리 소프트웨어를 보호하기 위한 IT 라이선스를 모델로 한 모형이다. 그러나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공공영역에 귀속되는 것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 지난 번 세계지식재산권기구 정부 간 위원회(IGC) 회의에서 토착민 단체는 “공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우리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유전자원과 문화유산을 빼앗고 문화적 차이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데 기여하는 펌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동화의 원동력이 될 위험이 있다”고 선언했다.

“토착민의 전통지식 관리 방식과 관련한 문제를 세계 지재권 논쟁의 의제로 삼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UN 전 자문관이자 호주환경학연구소 교수 다니엘 로빈슨 교수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생물문화의정서(BCP)는 아주 흥미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미 케냐, 콜롬비아,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훌륭하게 시범 실시된 BCP는 유엔계발계획(UNDP)과 기타 몇몇 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실시되고 있는데, 토착민의 전통지식과 그 활용방식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실상 BCP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정한 협정과는 반대로 토착민들의 상호적 교류와 이익을 증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글·클라라 델파스 Clara Delpas
     피에르 윌리엄 존슨 Pierre-William Johnson
클라라 델파스는 과학전문 기자이며, <생물해적의 연대기>(Chronique de la biopiraterie·Omniscience·Montreuil·2012)를 저술했다.
피에르 윌리엄 존슨은 유럽의회에서 나고야의정서 관련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물해적행위. 천연자원과 전통지식 약탈에 대한 대안은?>(Biopiraterie. Quelles alternatives au pillage des ressources naturelles et des savoirs ancestraux?·Charles-Léopold Mayer·Paris·2012)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