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콩고 내전

2014-01-09     사빈 세수

고마 시의 4성 호텔 이위시 입구에는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인도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호텔 상점 근처 현금 자동인출기에서는 100달러 지폐를 인출할 수 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화폐다. 한 호텔 관리인은 “달러가 비공식적인 공용 화폐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달러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다. 심지어 콩고 민주 공화국(이하 DR콩고) 정부에 세금을 내거나 백신 접종 확인서를 신청할 때도 달러가 쓰인다. 그러나 거스름돈은 콩고프랑으로 받는다. 통화 가치의 급격한 등락으로 신뢰도가 떨어진 화폐다.

호텔 리셉션 직원들은 텔레비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쥘리앵 팔루쿠 북키부 주지사가 각료들과 함께 자리를 뜨는 것조차 보지 못한다. 45세의 팔루쿠는 과거 콩고해방민주동맹(AFDL)에서 활동했다. 로랑데지레 카빌라가 이끈 이 조직은 1997년 이웃나라 르완다의 도움으로 모부투 정권을 몰아냈다.(1) 팔루쿠는 르완다와 우간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M23의 원조 격인 콩고민주회의(RCD)(2)에서도 활동했다. 무장단체들과의 평화협정이 매번 이름을 바꿔가며 거듭 체결될 때마다 그는 요직을 차지했다.

2007년부터 그는 북키부 주지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코가 뾰족한 가죽 구두, 번쩍거리는 양복, 텍사스 카우보이 모자 차림의 팔루쿠는 오늘 네덜란드 녹색당 소속의 유럽의원 주디스 사르겐티니를 만나 부패와 전쟁의 원인인 ‘피의 광물자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기아퇴치와 발전을 위한 가톨릭 위원회(CCFD)의 권리옹호 임무를 위해 파견된 사르겐티니 의원은 안타깝게도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데다 복장까지 규정에 어긋나는 바람에 팔루쿠 지사를 만나지 못했다.

인구 620만(DR콩고 전체 인구 7,500만)의 북키부는 르완다(인구 1,100만)와 국경을 맞댄 초원 지대다. 다양한 가전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금속인 콜탄과 주석, 금,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 지역은 황폐화되었다. 지난 11월 초에는 고마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군(FARDC)과 M23반군 잔당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팔루쿠 지사가 귀가를 서두른 이유는 따로 있다. 레알마드리드-바르셀로나전 재방송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반군 연합 M23은 2012년 몇 달간 고마 외곽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2013년 2월 대호수지역 국제회의(CIRGL)(3) 합의에 따라 철수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영국과 미국의 압력으로 르완다가 지원을 중단하자 결국 FARDC에 굴복했다.

공식 화폐보다 우대받는 달러

낮 동안 고마의 일상은 DR콩고의 다른 도시들과 별 차이가 없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사거리 한복판의 초소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이 보인다. 구두수선공들은 길가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슬리퍼처럼 신고 다니는 ‘바부슈’를 고치고 있다. 곳곳에 허물어진 건물들이 보이지만 행인들은 별 관심 없이 지나친다.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두 발 운송수단 ‘추쿠두’는 이 도시의 자랑이다. 자전거나 킥보드와 조금 다르다. 인력으로 움직이며, 감자가 가득 담긴 부대나 카사바 잎 묶음 등 짐을 실어 나르는 데 사용된다.

오후 6시. 해가 떨어지자 거리는 자발적으로 통행금지 상태에 돌입한다. 행인들은 흩어지고 오토바이 택시들은 영업을 중단한다. 범행을 저지른 후 어둠을 틈타 도주하는 무장 강도들을 쉽게 식별하기 위한 조치다. 인터넷 카페나 동네 식당에서는 여성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전쟁의 수단으로 강간이 자행된 후 아예 외출을 자제하게 된 것이다. 상점들은 강도들이 두려워 늦어도 저녁 8시에는 모두 문을 닫는다.

‘신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단 정육점이 있는가 하면, ‘평화 문방구’, ‘좋은 소스 레스토랑’도 있다. 마치 이 도시를 덮친 악운을 내쫓으려는 부적들 같다. 수도 킨샤사에서 1200km 떨어진 고마는 인구 1백만 이상의 도시다. 지난 수년간 이주민들이 몰려들면서 몸집이 불어났다. 고마는 두 차례(1996~1997년, 1998~2003년) 발발한 콩고 내전의 중심 무대였다. 통계수치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지만, 이 내전으로 총 4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2002년 2월에는 화산 용암 분출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부 지역 우간다로 향하는 길에는 당시 형성된 검은 돌무더기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거리 메운 절망적 부적들

여전히 활동 중인 니라공고 화산 덕분에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한다.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 속 용암호수에서는 연기가 쉼 없이 피어오른다. 킨샤사에서 온 기자 마르트 보쉬앙돌은 “고마의 현재는 전쟁과 강간, 화산이다”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모든 콩고인들은 모부투 정권 당시 휴양지 구실을 했던 이 도시를 방문하고 싶어 한다. 호수와 고산기후, 높은 집들이 있는 고마는 여전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저녁이 되자 드넓은 키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위시 호텔 테라스에는 외국인들로 가득 찬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로 1만 9천 명의 인력을 자랑하는 유엔 콩고안정화임무단(MONUSCO)의 장교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 조종사들과 마주친다. 이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정보 수집 임무 중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한 남아공 공군 장교가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니요, 우리는 유엔 헬기 조종사가 아닙니다. 남아프리카 오릭스 헬기를 몹니다”라고 말한다. 설명은 거기까지다.

남아공 파견군은 탄자니아, 말라위와 함께 유엔 지원군에 소속되어 (MONUSCO와 더불어) 활동한다. 2013년 3월에 결정이 내려진 후 7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3개국, 2300여 명의 보병으로 이루어진 유엔군 부대들은 인도와 우루과이에서 온 동료들보다 구체적인 성과에 더 연연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평화유지군이 DR콩고에 파견되어 임무를 핑계로 ‘관광’을 즐기고 있다는 비난이 심심찮게 들리는 터다.(4) 광물자원 강국인 남아공은 전략적 가치가 높은 이 지역의 정세 파악에 적극적이다. 2012년 비룽가 국립공원 내 화산 기슭에서 유전이 발견되었고, 현재 이곳에서 영국회사 소코가 석유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른 테이블에는 킨샤사 주재 벨기에 대사관 정치고문 빔 스헤를레컨스가 앉아있다. 그는 정세 파악을 위해 자주 고마를 방문한다. “르완다는 더 이상 이곳 상황을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국제사회, 심지어 남아공, 앙골라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그런 행동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DR콩고 동쪽 지역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선 복잡하게 뒤얽힌 동맹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과거 자이르(DR콩고의 옛 이름)의 대통령 모부투의 동맹자였으며, 르완다애국전선(RPF)을 이끌던 폴 카가메가 1993~94년 종족차별적인 쥐베날 하브자리마나 정권을 공격할 때 지원을 제공했다.

르완다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카가메는 현 DR콩고 대통령 조제프 카빌라의 아버지 로랑데지레 카빌라와 동맹관계였다. 콩고 동부와 관련된 평화 협상이 매번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진행되는 이유다. 1986년부터 우간다 대통령직을 고수하고 있는 69세의 무세베니가 연장자로서 회의를 소집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면적과 자연자원을 자랑하는 나라의 대통령인 42세의 카빌라는 마치 명령에 따르듯이 무세베니의 호출에 응한다. 협상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콩고 동부의 지하자원을 이 성가신 두 대부(우간다와 르완다-역주)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문제다. “협상은 필요 없다! 무장단체들을 모두 처치하라! 국제사회는 대화 촉구를 중단하라!”

고마에서 27km 떨어진 키붐바의 농민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다. 10월 26일 M23반군의 지배에서 벗어난 곳이다. 그들은 끈질기게 평화 협상을 촉구해온 유엔 대호수 지역 특사 매리 로빈슨을 비판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국제사회’ 역시 지겹도록 계속되는 분쟁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모두들 DR콩고의 자원을 뺏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무장화를 신은 농민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양파와 양배추를 펼쳐놓고 팔고 있는 게 보인다. 내전 때문에 감자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M23에 속한 1500명의 반군들 중에는 고마 사람들처럼 스와힐리어로 말하거나 르완다에서처럼 키냐르완다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르완다와 우간다로부터 무기와 돈을 지원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그들은 모두 투치족 출신이 아니다. 그 지역에서 실직 상태에 있는 후투족까지 조직에 끌어들인다. 지역 주민들은 이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한다. “무조건 500콩고프랑(0.4유로센트)을 내야 한다. 아이가 있어도, 집이 있어도 세금을 내고, 학교나 시장에 가려고 해도 통행료를 낸다.” 키붐바에 거주하는 이노상(21세)의 말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광물이 어디에 묻혀있는지 물었다.” 2004년 유엔에 DR콩고 상황을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이 발족됐다. 무장단체들의 광물자원 개발과 관련된 보고서가 발표되자 서구 국가들은 우간다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독일, 영국, 네덜란드는 우간다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했다. 전체 지원 중 5천100만 유로가 줄었다. 광물 자원 밀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유엔의 전문가들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추정치조차 내놓는 것을 꺼린다.

DR콩고와 르완다의 복잡한 동맹관계

고마 서쪽 마시시의 루바야에 있는 광산 한 곳에서만 매달 35만 달러 어치의 콜탄이 생산된다. “올해 초부터 매달 50톤을 생산한다.” 지역 의원 로베르 세닝가의 설명이다. 그는 광산을 관리하는 협동조합 ‘코오페라마’를 이끌고 있다. 이 체격 좋은 의원은 은밀하게 M23과 손을 잡고 르완다로 광석들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국에는 언제라도 이 ‘피의 광물’을 사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업자들이 많다. 광산 치안을 위해 ‘니야투라’라는 무장단체가 결성되어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모병에 나서기도 했다. “치안이 불안하고 실업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북키부의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장단체에 들어가거나 광산에서 일하는 것뿐이다.” 고마 주재 로히터 기자 크리스팽 음바노의 설명이다. 고마의 한 대학생은 “M23을 물리친 우리 군대가 자랑스럽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학생들은 상황이 돌아가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교는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다. 고등상업연구소(ISC) 건물의 벽면 전체가 파란 색으로 뒤덮여 있다. 이동통신회사 보다콤 광고다.

한 사회학 교수는 학교 전체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부모들은 돈이 없다. 학생들은 오토바이 택시를 몰거나 야간 경비를 서면서 학비를 마련한다. 1년 학비는 300달러 정도이고, 작은 방 하나 빌리는 데 매달 15~25달러가 든다.” 교수들도 부업을 한다. “두세 달 동안 월급을 못 받을 때도 있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석탄, 양배추, 튀김 등을 팔기도 한다.” 대학도 내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들은 스스로 치안 조직을 꾸렸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금세 험악한 표정의 젊은 남학생들이 몰려든다. 그들 사이에서 곤봉을 흔들어대는 돌프 칼람베이(21세)가 보인다. 바코라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나무 지휘봉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자신을 ‘대학 보안 대장’이라고 소개한다. “무장괴한들이 학교에 침입해 약탈을 하거나 학위를 불태우는 것을 막는” 게 자신의 역할이란다. 그의 아버지는 RCD 반군 출신이다. 그 역시 콩고 정규군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말일까? “전쟁이 20년이나 이어져 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우리가 뒷걸음질 치는 동안 르완다는 우리 자원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 전쟁이 벌어져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르완다다!”

사람들은 카가메가 이 지역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카가메는 1994년 투치족을 학살한 후투족 민병대 인터아함웨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콩고를 침범했다. 그 후에도 학살 세력과의 싸움을 명분으로 M23과 같은 무장 세력들을 콩고 영토 내에 계속 주둔시켰다. 비교 법학을 공부하는 22세의 보뇌르는 이런 논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편을 택한다. “정치는 너무 위험하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말한다. “정치에 대해 떠들다가 화를 입을 수도 있다.” 그의 꿈은 우간다의 캄팔라로 유학을 떠나 좋은 조건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나중에 무엇을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유엔 조직에 들어가 콩고에 좋은 거버넌스를 정착시키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고마에서는 고기를 먹는 게 사치가 되었다.”

비룽가 시장. 여자들이 길바닥에 채소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리지키(25세)는 채소 장사를 위해 매일 8유로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낸다. 하루벌이가 10~30달러쯤 된다. ‘흠집이 난’ 토마토는 1kg에 100콩고프랑을 받고, 품질이 좋으면 500콩고프랑을 받는다. “이 지역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선이나 고기를 살 돈이 없다. 먼 곳에서 온 생선 한 마리 가격이 최소 3천 콩고프랑 정도 한다. 바로 근처에 호수가 있는데 왜 직접 물고기를 잡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녀는 염소 고기와 소고기를 한 달에 두 번 이상 먹지 못한다. 이웃 나라 르완다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콩이 주식 역할을 한다. 전투가 벌어지면 내다 팔 물건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전쟁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시장은 8시까지 문을 연다. 상인들은 촛불이나 등불에 의지하거나 광부들처럼 머리에 등을 부착한 채 장사를 한다. 상인 마망 레베카가 말한다. “VIP 지역에만 전기가 들어간다. MONUSCO 대원들, 주지사, 외국 주재원들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마에서는 그럭저럭 살 수 있다.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게 유일한 문제다.” 그곳에서 좀 떨어진 카시카의 서민 지역 상인들은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이 나라는 살인의 챔피언이다.” 카사바 가루를 파는 여자의 말이다. “밤마다 사람이 죽어나간다. 강도나 무장괴한들이 나타나 주민들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경찰은 보이지도 않는다.” 주민들은 MONUSCO 소속 군인들이 이 지역을 정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 집 누가 죽었다는 소식부터 듣는다.” 중등학교 역사 교사이자 구멍가게 주인인 비심와 시피지의 말이다. “어젯밤에만 두 명이 죽었다. 불법 무기들이 강도들의 손에 들어간다. 칼라시니코프 소총의 총신을 잘라 권총처럼 만들어 쓴다.” 하루 6시간 4㎡ 크기의 점포에 앉아, 저녁에는 촛불 세 개에 의지해 물건을 팔아봐야 그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고작 1.5유로 정도가 전부다. 지역전기공급위원회 회장인 그는 이웃들과 전기 문제에 대해 잡담을 나눈다. “우리는 자비까지 들여서 국영전기회사(SNEL)가 전선 설치하는 일을 도왔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SNEL 직원들은 장사꾼이다.

그들은 경쟁을 붙여 비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한다. 매우 부패한 조직이다. 그들은 이 지역에 가득한 영세공장, 제과점, 오토바이 수리점들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어들인다.” 물은 어떨까? “카시카에 수돗물은 존재한 적이 없다.” 한 주부가 성토한다. 인구 2천 명의 흙먼지 자욱한 이 지역에는 수도시설이 전무하다. 여성들이 적십자가 설치한 우물이 있는 이웃 마을 비소까지 가서 물을 길어온다. 20리터 물 한 통이 4유로센트에 팔린다. “일종의 무정부 상태다.” 시피지가 말을 잇는다. “당국은 비정부기구들의 활동을 일반이익을 위한 프로젝트가 되게끔 유도하지 않는다. 그저 급한 불을 끄고 생존하는 일에만 급급하다.” 밤이 오자 길가에 모인 젊은이들이 개고기 소시지를 구워 먹는다. 길 잃은 개를 직접 잡아 만든 것이다. 이따금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주민들 사이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대호수 지역 분쟁의 중심지 키부

1994년 : 르완다에서의 투치족 학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DR콩고) 고마 시에 난민 캠프 형성.
1997년 (5월) : 부룬디, 우간다, 르완다의 지원을 받은 키부 주의 투치계 바냐물렝게족 모부투 자이르 대통령 축출에 가담. 로랑데지레 카빌라 권력 장악. 자이르에서 콩고민주공화국(DRC)으로 국명 변경. ‘1차 콩고 내전’ 종식.
1998년 (8월) : 르완다의 지원 아래 고마의 바냐물렝게족, 민주콩고회의(RCD)라는 이름으로 정치-군사 연합 결성. ‘2차 콩고 내전’ 시작.
1999년 (7월) : 루사카에서 휴전협정 체결.
1999년 (11월 30일) : 유엔콩고임무단(MONUC) 창설.
2001년 : 로랑데지레 카빌라 암살. 아들 조제프 카빌라가 대통령직 승계.
2002년 (7월 30일) : DR콩고(르완다 후투족 반군 무장해제)와 르완다(DR콩고군 철수) 프레토리아 합의.
2002년 (12월 31일) : 그바돌리테 합의. ‘2차 콩고 내전’ 종식.
2004년 : 부카부(남 키부)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정규군(FARDC), 바냐물렝게족 무장단체 2곳과 교전. 카니바용가(북 키부)에서 RCD와 FARDC 교전.
2007년 (8월 30일) : 북 키부에서 FARDC와 RCD 출신의 로랑 은쿤다 장군이 이끄는 국민방위민족회의(CNDP) 사이에 충돌 발생.
2008년 : 고마 평화 회의.
2012년 (3월) : 북 키부에서 FARDC와 콩고자유주권수호애국동맹(APCLS) 소속 마이마이 반군 충돌.
2012년 (5월) : 3월 23일 운동(M23) 창설. 11월 고마 점령.
2013년 (3월 18일) : M23 지휘자 보스코 은타간다 항복.


글·사빈 세수 Sabine Cessou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Colette Braeckman, ‘La 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dépécée par ses voisins(이웃나라들에 분할 당한 콩고 민주 공화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10월호.
(2) Juan Branco, ‘Qui veut vraiment la paix au Congo?(누가 진정 콩고의 평화를 바라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
(3) 대호수지역 국제회의(CIRGL)에는 앙골라, 부룬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민주 공화국, 케냐, 르완다, 수단, 남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가 참여하고 있다.
(4) 2012년 12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2012년 11월 M23이 고마를 습격했을 때 대응에 나선 평화유지군 병력이 고작 1,500명뿐이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