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록, 한창 활동 중인 전설

2014-01-10     에블린 피에예

헤비메탈의 영웅 중 하나인 테드 뉴젠트는 담담하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앰프 앞에서 날아오른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비둘기가 문자 그대로 완전히 해체되는 모습을 바라봤다.” 전형적인…… 스토리다. 모터헤드가 지나가고 난 후 생긴 균열을 막기 위해 바타클랑 공연장이 문을 닫아야 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판에 박힌 이야기이다. 헤비든 하드록이든 메탈이든 세세한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각 장르 고유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사람들만 눈감아준다면, 이들 세 장르는 모두 ‘과격하다’는 수식어로 정리될 수 있다. 비틀즈는 문화의 범주 안에 속해 있고 롤링 스톤즈는 대중적으로 친숙하지만, 과격한 헤비메탈 하드록 진영의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며 중립적으로 표현하기는 더욱 까다롭다.

과거에는 ‘하드록’ 뮤지션, 요즘에는 ‘메탈’ 뮤지션이라고 칭하는 이들 뮤지션은 원칙적으로 이상적인 면모가 전혀 없다. 머리는 치렁치렁 긴 데다 몸 곳곳에 문신이 새겨져 있으며, 징이 잔뜩 박힌 가죽옷 차림에 X자 뼈다귀 위의 해골 이미지를 달고 다닌다. 맥주를 두르고 다니며, 장신구는 필수요, 피어싱은 선택이다. 이들의 차림새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흡사 ‘불량배’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이들은 어딜 봐도 과격하고 불량스러우며 심술궂어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런 겉모습을 자랑스레 과시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만적인 백인의 전형적인 얼굴인데, 좀더 꼬집어 말하면 대개는 남성들이 주를 이룬다. 무대에서든 대중 앞에서든 이 분야에서 숙녀분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드록과 헤비메탈 분야에서 분파까지 다양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기질 만큼은 꽤 다양하게 나타나며, 기이한 훈장으로 온몸을 휘감고 라이브 무대에서 박쥐를 물어뜯어 죽이는 블랙 사바스와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서정적인 화려함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쉽사리 연결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스칸디나비아의 메탈 역시 트러스트 밴드의 광적인 노여움과 확연히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고딕-파시즘의 탈선적 성향으로 단순한 불쾌함 이상을 불러일으킨다면 후자는 금방이라도 붉은색 정치 선동 및 선전을 벌일 기세다. 그럼에도 모두를 아우르는 공통된 기반과 공통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볼륨은 최대로 높이고 묵직한 중저음이 부각되며 드럼은 굉장히 웅대하다. 순도 높은 에너지가 쇄도하는 가운데 흡사 전격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 나타난다. 교양이나 고상함을 부추기기보다는 이를 아예 박살내버리면서 원시적이고 거친 방식으로 활력을 소비하는 기세를 찾아내려 애쓴다. 그 어떤 의미에서든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 같은 장르가 지속되어온 지 고작 4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을 것이다. 하드록이란 장르는 한창 활동 중인 전설이 되었으며,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 대표적인 표현 양상으로 말미암아 록 앤 롤의 상징이 되었다. 과도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자기 모방에 가까울 정도로 ‘통속성’에 기댄 가벼운 연애 감정을 표방하되, 도덕적 차원에서 비난받는 것을 굳이 부추기려는 욕구에 이끌리는 록 앤 롤을 대표하는 게 바로 하드록이 된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사례로는 모터헤드를 들 수 있다. 보컬 레미가 이끄는 모터헤드는 35년 전부터 맹위를 떨치며 굴지의 인기를 보이고 있다. 해적 수염을 하고 경마장 마권업자 같은 구레나룻을 한 레미 킬미스터가 쓰는 가사는 유튜브에서 온통 ‘삐-’ 소리와 함께 무음 처리되어 잘려나간다. 레미는 고르지 못한 거친 목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노래하고, 찢어지는 소리와 반복음, 폭발음으로 가득한 음악을 선보인다. 사람을 압도하는 과묵한 침착함도 곁들여진다. 모터헤드가 아둔한 부르주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모터헤드는 다만 전속력으로 날아든 운석 정도의 느낌에만 만족할 뿐이다. 이에 모터헤드의 음악에선 블루스와 펑크의 느낌이 발산되지만, 요란한 화장이나 굽 높은 깔창, 화려한 연막탄 따위는 필요치 않다. 상처 입은 군중,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세 넘치는 군중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로드 롤러 같은 음악, 살아있음에 대한 원초적이고 생생한 환희를 담아내는 음악, 모터헤드는 ‘의식’이요, 모터헤드는 순수 하드록의 고전이다.

보컬 레미의 나이가 정년퇴직 나이인 65세를 넘겼음에도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실 모터헤드의 음악이 반항하는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외려 모터헤드의 음악은 어른들의 정서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짙다. ‘삶은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는 늙어 죽게 마련’이니, 자기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잊고자 하는 어른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하드록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건 분명하다. 하드록의 모태가 된 모든 록 앤 롤과 마찬가지로 하드록도 선동적으로 혼란을 야기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거나 보다 ‘주류’의 록 음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 ‘배드 보이즈’의 음악이 그저 예민한 감성을 폭파시키고 고막을 터뜨리겠다는 의지 정도에 머무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부터 하드록은 대개 아웃사이드에 머물러 있으면서 줄곧 우리와 함께 해왔으며, 주류 미디어 진영에서는 이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눈에 띌 만큼의 엄청난 파급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면 이는 하드록이 이 시대의 가장 적절한 배경음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어느 젊은 청년에게 제시되는 이상향을 가장 곤경에 빠뜨리기 좋은 배경음의 하나로서, 이 같은 음악과 더불어 청년은 세상이 자신에게 제시했던 게 완벽한 기만이었음을 깨닫는다.

감히 하드록의 세세한 역사까지 다룰 생각은 없지만, 하드록의 창시자 레드 제플린과 모터헤드, 퀸의 나라인 영국에서만 하더라도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무역 적자가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이 같은 음악 장르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전 세계 산업 생산량에서 영국이 차지하던 비중이 1955년 20.5%였던 것에서 1977년 9%로 대폭 줄어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탈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고, ‘사회적 합의’의 시대도 끝이 났다. 북아일랜드는 화약고가 되었으며, 자메이카와 파키스탄 이민자 수가 늘어나고, 보수 우익 세력이 확장된다. 단 한 가지 유일한 옵션이 있다면 고만고만한 두 정당 사이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것뿐이다. 1970년대 초에 존 레논이 말했던 것처럼 “꿈은 이제 끝”났다. 히피족과 자유주의 진영에서 내뱉었던 무수한 약속들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고, 불협화음의 세계는, 짓눌리고 억압된 세계는 위선적으로 미개하다. 공개적으로 보란 듯이 미개한 음악을 탄생시키고, 이 음악은 이제 무너져 내린 모델들을 뒤집어 놓는다. 오늘날 불협화음은 더욱 커져가고 종말론이 어슬렁거리며 하드록은 모호함 속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지속된다. 어떤가? 당연한 귀결 아니겠는가?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