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무슬림 여성의 사랑과 연대
하라르의 꿀/커밀라 기브 지음
“아버지는 우리가 유목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린 철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난 우크라이나에서 젖을 먹었고 코르시카에서 젖을 떼었으며 시칠리아에서 기저귀를 떼고 포르투갈 알가르베에서 처음으로 걸음마를 했다. 그러다가 프랑스어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스페인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친구 한 명 사귈 때마다 다시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가게 되었다.”
유목민의 세상에 속하는 법
범상치 않은 운명의 젊은 여성 릴리가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런던에서 들려준다. 릴리에게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일이 바로 세상에 속하는 방법이 되었다. “고독하면서도 엉뚱한 면이 있는 반정부 시위자”였던 부모님이 모로코 탄지어의 골목에서 살해당하자 졸지에 고아가 된 릴리는 수니파 지도자의 손에 맡겨져 이슬람에 대한 사랑을 배우며 자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릴리는 에티오피아의 하라르로 망명하게 되었다. 하라르는 제4의 이슬람 도시다. 그곳에서 릴리는 1974년까지 있었다. 1974년은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쫓겨난 해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산 적이 있고 사회인류학을 전공한 캐다나 출신의 저자 커밀라 기브가 집필한 이 소설은 픽션과 역사 사이,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며 뛰어난 글솜씨로 이슬람 세계에 푹 빠지게 해준다. 소설의 주인공 릴리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어디를 가든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준다. 무슬림이지만 백인인 릴리는 하라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외국인이다. 릴리는 하라르에 진정으로 속하기 위해 신앙의 힘과 물질에 대한 담담함으로 기본 풍습을 따른다. 이렇게 해서 릴리는 에티오피아 사회, 에티오피아의 의식과 풍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가문 사이의 결합을 위해 결혼한다. 혈통, 재산,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성,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약한 여성들에게 냉담하다.
릴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도 해준다. 릴리는 이러한 경험 덕에 사람들과 섞이게 된다. 하지만 릴리가 이곳 사회에서 뿌리를 내려가려니까 이번에는 에티오피아의 정치 소요가 나날이 심각해진다. 결국 릴리는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난민 도우며 희망의 끈 놓지않아
런던으로 간 릴리는 간호사가 된다. 그 뒤에도 릴리는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그동안 에티오피아에서는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정권을 잡고 ‘특별 정부’가 세워졌으며 에리트레아와 유혈 분쟁이 벌어졌다. 릴리는 아미나타와 함께 난민을 돕는 기구를 세운다. 아미나타는 전에 도로에서 아이를 낳을 위기에 처해졌는데 다행히 릴리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여성이다.
이렇게 만난 릴리와 아미나타는 우정을 쌓아간다. 두 여성은 아름다운 우정을 쌓기도 하고 런던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울러 두 사람은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런던에서 추방당하지 않게 돕는다. “사는 게 제아무리 힘들다 해도 낯선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며 살고 싶어요. 아무리 한쪽 눈에 멍이 들어도 우린 계속 머리를 빗을 거고요.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가 우리 발밑에 총을 쏘았다고요?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믿음을 계속 갖고 갈 겁니다. 케냐 난민캠프에서 남자 두 명에게 반복해서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냐고요?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우린 따뜻함을 잃지 않을 거고요. 우리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겁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꿈이 있거든요.”
요약번역 및 정리•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엔돌핀 경영>(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