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대학 아닌 기업이라 불러야

2014-01-10     고부응

 

   
2013년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조금은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성균관대가 서울대를 앞질러서 종합대학 순위로 1위(포항공대와 카이스트를 포함한 전체대학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시작한 이래 성균관대는 꾸준한 순위상승을 해왔고 이제는 한국 최고의 대학임을 확인한 셈이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교수연구, 교육여건 및 재정, 국제화, 평판 및 사회진출도 등 네 분야를 각각 평가한 다음 이를 합하여 종합 순위를 산출한다. 각각의 분야는 세부 분야로 또 나누어지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교수연구 분야는 연구비와 논문 편수, 교육 여건 및 재정 분야는 예산규모, 국제화는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수, 평판도와 사회진출도는 저명인사들의 대학에 대한 평가와 취업률을 뜻한다. 이들 분야를 중앙일보 대학평가팀은 그들이 개발한 지표를 통하여 숫자로 변환하고 숫자의 합이 가장 큰 대학을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평가한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가 종합대학 순위로 1위인 것은 그들이 마련한 평가 지표에 근거한 점수의 합이 가장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균관대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인가? 중앙일보가 직접 평가하지 않는, 그렇지만 대학을 선택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다른 면을 살펴보자. 우선 성균관대의 등록금은 아주 비싸다. 2013년 성균관대 신입생의 연간 등록금 평균은 833만원으로 연세대(856만원), 이화여대(840만원), 한양대(838만원)에 이어 4번째다. 성균관대의 등록금은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인 238만원에 비해 약 3.5배 비싸다. 성균관대의 발전이 삼성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삼성의 지원이 성균관대의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낮추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균관대의 또 다른 면은 학내 언론에서 드러난다. ‘건설적인 여론과 비판의 창달’이라는 기치를 걸고 있는 성균관대의 학내 언론인 <성대신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결호 사태를 맞았다. 작년에는 해임된 시간 강사 문제를 다뤘다가 배포가 이뤄지지 않았고 올해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다루었다가 신문 발행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보면 성균관대는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또는 정상적인 학생활동을 보장받으면서 다닐 만한 대학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대학을 서열화시키고 다양해야 할 교수들의 학문 활동을 논문 작성에만 몰두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또한 중앙일보는 대학평가를 자신들의 상업적 목적에 이용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이런 비판은 정당하며 다른 여러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내용 없이 숫자로만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교수 연구 분야 평가는 교수들의 논문 편수와 논문이 실리는 학술지의 영향력 지수, 그리고 연구비 수주 액수 등을 합하여 숫자가 높은 대학을 교수의 연구가 뛰어난 대학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교수들이 논문업적과 외부 연구비에 매달린다는 것은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숫자가 높다는 것은 그 숫자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 여건 평가에서 장학금 액수가 많으면 평가에 적용되는 숫자가 높아지지만 그 장학금이 사실은 저임금 노동자인 근로 장학생과 대학원생 조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뜻할 수도 있다. 교직원이 담당해야 할 학사 업무를 학부생인 근로 장학생이나 대학원생인 조교들이 담당한다면 그 대학의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나타나는 숫자는 그 자체로는 사실상 의미가 없으며 그런 의미 없는 숫자로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중앙일보 대학평가이다. 그리고 그 숫자를 관리하는 것이 총장 등 대학의 운영 책임자들이다. 대학 운영진에게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내용이 아니라 평가 지표로 나타나는 숫자를 관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중앙일보 대학평가이다. 기업의 성과를 숫자로만 채워진 재무제표로 평가하듯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대학을 숫자로만 평가하고 있다. 대학평가를 하는 중앙일보는 대학을 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는 대학평가가 ‘20대가 만드는 20대 대표 언론’임을 내세우는 고함20(1)의 대학평가이다. 고함20은 숫자로 대학을 평가하지 않는다. 고함20의 대학평가에는 내용이 있다. 고함20은 대학의 총학생회 평가에서 교내 식당을 운영하는 신세계푸드의 밥값 인상에 반대하여 반값 밥차를 운영하는 숙명여대 총학생회를 최고의 총학생회로 꼽았다. 고함20은 또한 동아리방 평가에서 모든 동아리에게 동아리방을 제공하고 또 동아리방 시설을 지원해주는 경인교대를 최고의 대학으로 꼽고 있다. 계절학기 등록금 평가에서는 수강료가 저렴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해주는 충남대를 좋은 대학으로, 계절학기 등록금이 비쌀 뿐만 아니라 계절학기 수강을 강제하고 있는 우송대를 나쁜 대학으로 꼽는다.
 
기숙사 평가에서는 좋은 대학은 없으며 호텔 같은 호화시설이지만 호텔 숙박비 같이 비싼 기숙사비를 받는 건국대와 기숙사 공간을 교수 연구실로 전환하여 학생을 기숙사에서 몰아내는 국민대를 나쁜 대학으로 꼽는다. 대학언론 평가에서도 좋은 대학은 거명되지 않으며 교내 언론 발행 비용을 학생의 자율 납부로 전환시켜 결국 교지 폐간이라는 결과를 낳게 한 연세대를 나쁜 대학으로 꼽는다. 고함20은 이외에도 통학의 편의성이나 채플 운영 방식 등을 학생의 입장에서 사례를 들면서 평가하며 이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함20의 대학평가를 보면 관점을 달리 했을 때 대학평가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학 평가에 있어 중앙일보는 기업의 관점을 취한다.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기업의 관점에서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평가를 통해 대학을 기업이 원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교수 연구 분야는 논문 편수와 연구비에 의해 좌우된다. 이공계 교수들의 논문 편수와 연구비는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의 논문이나 연구비 수주액을 압도한다. 이공계의 연구는 직접적으로 기업의 제품 생산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공계의 업적을 중시하여 평가한다는 것은 곧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이공계를 지원하라고 대학에 요구하는 것과 같다. 영어 강의나 취업률을 평가하는 것도 대학을 기업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어 강의에서 중요한 것은 강의의 내용이나 학생의 지적 성찰이 아니라 기업에 취업하였을 때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취업률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교육을 받고 나서 회사원 생활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역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대학 졸업생은 의미 있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취업률을 중시하는 대학평가이기 때문이다. 고함20의 대학평가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을 평가한다. 고함20은 자신들이 하는 대학평가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을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 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http://www.goham20.com) ’

이와 같은 학생 친화적인 고함20의 대학평가는 현재까지 학생식당, 대학언론, 수강과목 개설현황, 기숙사, 학과 구조조정, 통학의 편의성, 동아리방, 계절학기 등록금, 총학생회, 영어 강의, 총장 선거, 채플 운영을 학생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공개한다. 고함20의 평가 대상이 되는 분야는 대학 구성원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관련이 되는 분야들이다. 고함20의 대학평가에서는 어느 대학이 1등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이 학생을 배려하고 있는지이다. 모든 대학이 학생을 배려한다면 모두 A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고함20의 대학평가 방식이다. 고함20의 대학평가에서 A 평가를 받는 대학은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최상위권에 있는 대학들과는 관계가 없다. 중앙일보 평가에서 순위에 들지 않는 대학도 고함20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교과 외의 학생 활동에서 중심이 되는 동아리 생활을 가장 잘 지원하는 대학으로 꼽히는 경인교대는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는 순위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예비 대학생에게든 대학 재학생에게든 고함20의 대학평가는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학 당국이 고함20의 평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대학이 학생들에게 어떤 일을 해 주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 된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와 고함20의 대학평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함20에서는 교육, 행정, 평가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평가팀도 없고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도 않고 객관성을 확보할 여러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학 당국은 고함20의 대학평가 결과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시할 것이다. 이는 대학 당국이 학생들을 무시하며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학생인 기자들이 각 대학에 가서 직접 살펴보고 인터뷰를 통해 대학 사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숫자만 나열하는 중앙일보 대학평가보다는 고함20의 대학평가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고함20의 대학평가가 의미 있는 것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대학 운영비를 충당하는 한국 대학을 학생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함20의 대학평가를 무시한다면 이는 곧 대학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리고 대학 운영비를 내는 학생을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학 평가가 필요하다면 중앙일보식 대학평가보다는 고함20식의 대학평가가 훨씬 더 필요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 한국에서 대학에 대한 평가보다는 대학의 역할을 성찰하면서 대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고등교육법은 대학의 목적으로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인격의 도야에도 관심이 없고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학문을 하는 데도 관심이 없다. 대학 운영진의 관심은 중앙일보식 대학평가에서 순위 올리기이며 학생의 관심은 좋은 스펙을 갖추어 취업하는 것이다. 대학의 본령인 인격을 위한 학문, 국가와 인류사회를 위한 학문은 망각된 지 오래 되었다. 대학은 이제 이름만 남아있다. 진정한 대학은 몰락 직전이다. 이제라도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 대학 운영진, 대학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정상적인 대학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대학이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글·고부응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의 길>(번역), <20세기 영국 소설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콘라드의 ‘로드 짐’에서 읽는 반식민 저항>으로 한국영어영문학회에서 제정한 제7회 재남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1) ‘20대가 만드는 20대 대표언론’을 모토로 편집장부터 기자까지 20대들이 모여 만든 독립언론이다. 2009년에 창립해 지금까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활동해오고 있다. www.goham2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