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협동조합 ‘대안대학’에서 희망을 찾다

2014-01-10     이명원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본질은 뭘까? 이 문제에 대해 오늘의 한국인들은 여러 형태의 의문을 품고 있지만, 응답의 적극성의 차원에서 보자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많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누가, 왜, 무엇을 배우고 실천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오늘의 교육현실은 절망적이다. 그 절망의 명백한 근거는 근대 이후 학습과 교육의 관성이 결국은 ‘입신출세주의’를 향한 강력한 동기에서 시작하여 악무한적인 ‘경쟁 예찬’으로 귀결되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교육 주체는 물론 사회의 연대와 협동원리가 구조적으로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대화의 과정임과 동시에 성숙의 과정이고,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밀한 상호의존 속에서 더 나은 세계를 모색하는 인류의 오래된 노력이자 기획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현실은 타자를 밟고 올라설 것을 강요하는 ‘승리주의’의 지배하에 있으며, 사회적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멸시하는 것을 노골화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주체의 의지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의 압력에 기인한 것이다.

몰락할 것이 분명해진 신자유주의의 교의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경쟁에서 패배한 자는 도태되고, 쓸모 있는 지식이란 ‘화폐’와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에 한정된다고 우리를 윽박질러 왔다. 분명 지식에 대한 탐구는 근대 이후 대중의 일상 저변으로부터의 ‘유용성’에 대한 기대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삶의 제반 형태를 이전보다 풍요로운 향유를 가능케 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만 우리는 그것에 종속됨으로써 인간과 문명을 내부로부터 파괴하고 있는 역설에 도달해 있다.

자본주의의 성장기에는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가능케 하는 어떤 공통의 자산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성장불가능의 시대로 들어서자, 그 관념은 결국 제한된 ‘파이’를 승자가 독식하는 룰을 정하는 데 있어, 교육을 상징적·실질적 지배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일이 전면화되었다. 학력귀족이나 학벌사회라는 말이 유독 한국에서만 남발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특히 고등교육 부문에서의 교육의 파행은 실로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엘리트 교육으로서도 대중교육으로서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이전에는 ‘입신출세’가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면, 현재는 ‘추락의 공포’를 방어하기 위한 안전장치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오늘날 교육과정의 길고 지루한 사다리를 오르는 행위는 가령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촉구했던 인간 성숙의 사명도 아니고, 부르주아들이 꿈꾸었던 입신출세의 경로도 아니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가열된 교육상황은 ‘공포’와 ‘체념’에 의존하고 있다.

‘계층추락’ 피하기 위한 진정제로서의 ‘학력자본’

오늘의 교육현장에는 계층적으로 추락하거나 주변화되지 않기 위한 공포의 진정제로서 ‘학력자본’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교육과정을 통해서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 세계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구분된다는 것, 학교공간에서 미세하게 분류되는 등급과 서열체제 속에서의 자신의 배치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의 문제라는 것, 따라서 이 성과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면 당연히 지배를 용인해야 한다는 것 등을 체념적으로 또는 구조화된 심성으로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바닥으로의 경쟁’이라고 할 법한 상황을 초래하는데, 교육과정을 통하여 대다수의 대중이 열등감과 패배감, 그리고 순응주의를 체화하게 됨으로써, 교육현장 외부의 비민주적이며 반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지배의 논리를 기꺼이 승인하는 마음의 상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인간과 사회의 동시적인 쇠퇴와 파괴의 구조적인 경향을 거슬러나가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교육이 당면한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오늘의 문명현실은 2001년의 9.11 사건에서 비롯된 미국 주도의 세계패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3.11 사태에서 확인된 문명사적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인간과 문명을 둘러싼 패러다임 전체가 구조적으로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그렇다면 대안적 교육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이하 대안대학)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했다. 대안대학은 이전까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틀 지웠던 상호적대와 경쟁, 수직적 위계화와 분리·전문화, 담론의 추상화와 생활세계의 식민화, 무엇보다 인간 자신의 사물화와 유령화 등을 둘러싼 현재적 위기를 ‘모두를 위한 교육’이자 ‘모두에 의한 교육’이라는 협력교육을 통해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설립되었다.

경쟁적 교육 아닌 협력적 주체성 필요

대안대학을 통해 우리는 지식의 생산, 유통, 수용의 전 과정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는 낡은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연결하여 순환시키는 새로운 지식순환 교육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물론, 그것의 형식과 내용 모두를 변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의 협력적 공진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협력교육은 모두를 균질화된 세계의 틀 안에 구겨넣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고유성이 더 넓어진 학습의 연결망 안에서 확장되고 심화되는 것과 동시에, 거꾸로 그렇게 구성된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개인의 자유는 확장되고 협력사회의 전망은 더욱 구체화되고 심화될 것이다. 교육을 통한 협력사회의 촉진은 현재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해왔거나 혹은 예견하게 될 전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관점에서의 시민대학, 지식의 분과성을 해체하는 통합적 지(知)의 탐구와 실천을 순환시킨다는 의미에서의 통섭대학, 중등 대안학교의 연계과정으로서의 대안대학이라는 세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복합적 성격을 띤 대안대학이기에, 교과과정의 편성에 있어서도 협력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시민적 양식으로서의 교과과정을 설계하는 한편, 각 교과를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 횡단하고 종합하고 박치기 시키는 통섭적 교과를 계발할 예정이다.

동시에 시장화되는 제도대학이 방기하고 있는 21세기의 지적 변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분과학문 간 통섭과 교과과정을 체계화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자연과학과 인지과학, 예술을 통섭하는 교과의 계발과 다양한 형태의 혁신적인 교수-학습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경쟁사회에서 협력사회로, 경쟁적 주체에서 협력적 주체로 교육의 목표를 이동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 대안대학은 현재 150여명에 이르는 생산자 조합원들이 각 교과의 설계와 실행을 위한 교과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적 교육모델과 커리큘럼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대안대학은 2011년 1월 14일부터 2주간 3월 개강을 준비하기 위한 ‘시범강좌’를 진행한다. 시범강좌의 주제는 <혼돈과 창조성>이며, 20여명의 교수진이 새로운 형태의 강의형식과 내용으로 대중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협동조합 형태의 대안대학은 한국에서는 초유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과거 녹색대학 등과 같은 대안대학 실험이 있었지만, 이러한 실험이 교육영역의 저변에서 창조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오히려 대안대학의 현실적 유효성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오늘날 고등교육의 위기는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교육이념의 설계에 실패하고 있는 가운데, 단기적인 자본의 요구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데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교수나 학생 모두가 교육의 본래 모습을 방기하고, 교수들은 업적경쟁으로 학생들은 스펙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저지하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나눔

반면, 대안대학은 말 그대로 대안적 주체와 사회를 설계하고 구성하는 데에 역점을 기울이면서,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조합원 모두가 지식의 소통과 나눔, 이를 통한 사회적 확산과 재구성에 대한 열망을 단지 이론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서 체화하고자 하는 의욕에서 출발하고 있다. 동시에 고등교육의 큰 장애와 부담으로 작용하는 등록금이나 수강료를 협동조합의 틀 안에서의 공유자본을 통해 과감하게 낮추고, 교수와 학생 모두가 넓은 범주의 학습공동체 또는 지성적 코뮌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붕괴되어가는 공동체를 재건하는 큰 의미를 띠고 있다.

이러한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대안대학의 강좌들은 단지 이론적 수준의 논의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영감을 제공할 다채로운 실천강좌와 워크샵 강좌를 설계하고 있다. 가령 진보정당 운동, 지역연구/지역운동, 기본소득, 글로벌 페미니즘, 민중생협, 도시농업과 같은 강좌를 통해서, 지식의 생산과 교환이 심원한 추상적 사고실험뿐만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서 탐구할 수 있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환기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대안대학을 가능케 할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다. 협동조합 기반의 대안대학의 모든 활동은 조합원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설계하고 운용되어야 한다. 대안대학의 설립, 운영, 발전을 가능케 할 유일한 사회적 자본은 조합원들의 열정과 참여이다.

지난 12월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서울시에서 설립승인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대안대학의 실험이 과연 교육 전반에 강력한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초라한 실패로 귀결될지는 결국 조합원으로 참여하게 될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오늘의 교육에 절망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다.  
  

글·이명원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1993)했으며 저서로는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말과 사람> 등이 있다. 현재 <실천문학사> 주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