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지방자치의 잘못된 만남

2014-01-14     파비엥 드사주, 다비드 게랑제


지난 12월 프랑스 하원을 통과한 광역도시에 관한 법률은 지방분권 개혁의 부산물로 등장한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조직의 가장 최신식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을 지배하는 합의정신은 각 정당 고유의 색깔을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적 토론을 뒷전으로 미루고 공공활동을 기술적으로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프랑스에서 코뮌으로 불리는 기초자치단체는 민주주의의 기본조직이다.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을 다들 한번쯤 들어보거나 주장해봤을 것이다. 이 개념은 숫자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기초자치단체 의원 수는 프랑스 전국 의원 수의 99%를 차지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를 합친 것보다 많은 36,380 곳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선출된 프랑스의 의원들은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치적 대표자로서 업무를 수행한다.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착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 별다른 정치적 토론도 없이 의회에서 통과된 지방분권에 관한 수많은 법령들이 이를 인정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 12월 프랑스 하원에서 2차 심의를 거친 ‘국토 공공활동의 현대화와 광역도시(1) 확립에 관한 법’이 있다. 이 법 역시 여론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공공활동의 ‘정비·합리화·현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 법은 1982년, 1985년 마련된 기본법을 토대로 착수하여 1992년 지방자치단체연합 탄생(하단 박스 기사 참조), 그리고 2010년 지자체 개혁으로 한층 심화된 지방분권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

중앙의 정권교체와 무관한 지방분권

이렇듯 프랑스에서 지방분권은 전반적으로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추진되어 왔다. ‘시민과 가까운 결정’을 내릴 필요성에 어느 정당이 반대하겠는가? 국가적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시민의 권리와 ‘민주적 관계’를 수호하는 것이 기초단체장을 위시한 지방의원들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누가 반박하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확고한 만장일치에도 이따금 예외는 있는 법이다. 바로 국민전선(FN)이 그 주인공이다. 국민전선은 지방분권이 경제적 낭비를 초래하고 지방의 귀족놀음과 봉건적 특권을 강화하며 국가기틀을 와해시킨다며 비난한 유일한 정당이다.(2)
사실 국민전선은 2008년 지방선거에서 불과 70개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지방행정조직에서 기반이 약화됐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3)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다 보면 왜 프랑스 공산당, 유럽생태녹색당, 사회당 등 주요 좌파 정당들은 비난을 극우파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들은 뒷전으로 물러났는지 궁금해진다. 대체로 탈정치화된 모습을 보이며 ‘지역’ 방어에 중점을 둔 지방자치 개념에 어쩌다가 이들 정당이 동조하게 됐을까? 여기에 답을 하려면 ‘이상한 패배’의 모습을 띤 그간의 이야기를 훑어보아야 한다.
시발점은 지방 선출공무원직이 다양한 기회를 바탕으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으며 전문화된 현상이다. 선출공무원의 세계에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국회의원은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지자체 공무원에 선출되면 국회 입성이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행여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그 충격이 완화된다. 200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마르틴 오브리나 알랭 쥐페가 그나마 각각 릴 시장과 보르도 시장에 당선됐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이들이 어떻게 됐을까? 또한 중앙정부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지자체 선출공무원으로 출발했다. 드골 대통령 시절 내무부 장관을 지낸 레몽 마르슬랭이나 좀더 최근 인물로는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장마르크 에로 현 총리, 마릴리즈 르브랑슈 국가·지방자치·공직개혁 장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랑스 제5공화국 정치엘리트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자코뱅파(좌파)라고 중앙집중적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도 옛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겸직 허용은 지방자치제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개혁의지가 보수적인 지방의원들의 저항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이들의 동업조합적 이해가 늘 입법절차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에 위협으로 여겨지는 법안은 무력화한다. 가령 기초자치단체를 자신들의 동의 없이 통합하거나, 또는 통합선거구의 설정을 승인하는 조치들이 그런 경우다.
이처럼 특정 법안의 무력화를 위한 활동이 비단 상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회 토론장 밖에서도 지방의원들이 조직한 각종 협회의 활발한 로비 형태로 이루어진다. 프랑스 기초단체장협회는 그 대표적 기구로서 정당을 초월하여 1세기 넘도록 자신들의 이익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오고 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 협회의 연례총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것만 봐도 그 확고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 개혁은 정당 간 역학관계가 아닌 정치 직군별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2011년부터 상원의장을 맡고 있는 사회당 소속 장피에르 벨 의원은 2012년 ‘지역민주주의 전국총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도출된 두 가지 핵심 사안은 다름 아닌 행정절차 간소화, 그리고 지방의원 지위 강화였다.

탈정치화된 지역정책의 표준화 가속

정당에 따른 정치색을 벗어버리는 추세는 지방행정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집권당이 어느 당인지와 무관하게 많은 도시에서 유사한 공공활동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트램과 회의장, 대형 축구장, 친환경구역을 설치하지 않은 도시권 연합이 과연 있던가? 광역도시 가운데 중산층과 창의적 계층을 유인하고 지식경제에 기반을 둔 발전을 추구하고 유럽의 문화중심지로 도약할 것을 약속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과거에는 다양한 공공활동영역이 각 정당의 이념적 기치를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치안과 기업활동 지원을 외쳤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환경보호, 문화혜택의 확대, 주민참여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모든 구호를 모든 정당에서 내걸고 있다. 가령 아비뇽, 니스, 오를레앙 등 우파가 집권한 도시들과 디종, 리옹, 스트라스부르 등 사회당이 집권한 도시에나 설치됐던 치안용 감시카메라가 이제는 생투앙처럼 공산당 시장을 둔 도시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역정책이 표준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는 사회당, 뒤이어 공산당이 지방을 장악하면서 보건, 주택, 문화, 실업자 지원, 파업기금 신설 등의 부문에서 과감한 정책이 탄생했다. 변두리 서민 거주지역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쉬렌, 샤트네 발라브리, 빌뢰르반 등지에 전원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북부 공업도시 루베에서는 학교, 위생‧보건시설, 요양원, 수영장, 공공 목욕시설 건설과 같이 노동자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둘러싸고 사회당 정치인들과 기업가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에는 신(新)사회당 전략에 힘입어 기초지방단체가 전국적 정치무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좌파 지방의원들이 어쩌다가 탈정치화된 지역행정을 지지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두서없이 열거하자면, 좌파 지방 엘리트들 가운데 서민층 출신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고(미셸 케벨의 글 참조), 지자체 공공활동이 전문화되고 이른바 기술화되었으며, 기관 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소위 바람직한 관행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됐고, 실용주의라는 이름 하의 재정적 압박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지방의원들을 감독하는 외부조직, 가령 정당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별로 연구된 바 없는 가설을 하나 추가하자면 폐쇄적 정치공간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전체회의, 다양성, 홍보, 토론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정책을 결정하는 풍토가 확산된 것이다.
지난 20년간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기구들이 늘어나고 강화된 것도 지방행정의 탈정치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러한 기구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해당 지방의회에서 지명하는데 이러한 선출방식은 많은 비난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구의 불투명성은 비단 선출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기초자치단체장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도가 근본적 원인이다. 어떤 기초단체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해당 기초단체장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기초단체장들은 영향력을 행사할 요량으로 지자체연합의 행정직을 차지해버렸다. 또한 이들 연합체는 단체장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위를 남발하다 보니 머리만 비대한 구조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에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당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지도부에 나란히 앉아 ‘도(道) 행정감독 관계’, ‘선점·무상양도’, ‘유기동물 포획 및 보관, 지역 동물보호구역 관리’ 등 명칭도 희한한 실무단을 인솔한다. 행여 지자체연합들의 부회장 자리 수가 부족해도 문제될 게 없다. 위원회, 기초자치단체장 회의, 사무국, 축소사무국 등 무수한 산하조직들을 활용해 외부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신이 이끄는 지자체의 이익을 얼마든지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조직들 내부에서는 타협점 도출과 합의적 운영이 당파적·이념적 차이를 표현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실용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치 이념 퇴색

오늘날 지자체연합의 확산은 지방자치제의 당연한 귀결로 볼 수도 있고 관점에 따라서는 동전의 양면으로 여길 수도 있다. 지방자치와 관련된 개혁이 있을 때마다 특정 형태의 조직들이 여지없이 확대되곤 한다.(4) 현재 에로 총리는 광역도시 구축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그 다음 순서는 지자체의 협력 도모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광역도시를 만들면서 왜 굳이 공공활동 지역총회를 창설하겠다는 것일까? 이는 각급 단체장·의원들을 아우르는 작은 회의체로서 관련법을 광역도 차원에서 적용하는 실무적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조직이란다. 게다가 지역연합 최고의회까지 조직한다는데 이게 과연 필요할까? 총리가 주재하고 지방단체장 및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이 기구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조율을 담당하는 게 임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은 존재한다. 바로 상원이다. 이러한 지자체연합들이 탄생하게 되면 민주적 절차에 동참하는, 그렇지 않아도 무수한 부속기관들이 그저 더 늘어날 뿐이다. 각종 공공법인, 지자체연합 노조, 민관합자회사, 지방공기업 등 이미 넘칠 만큼 많다. 이들 위성조직은 공공활동의 지평을 다양한 분야(교통, 쓰레기 처리, 도시 정비 등)로 넓혀주는 반면 민주적 감독의 대상에서 벗어난다는 맹점이 있다.
지자체연합들은 이제 특이하거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민주적 심의기구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공활동을 기획하는 기구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러한 기구들은 구성원에게 출석수당, 경비 환급, 기타 물질적 또는 상징적 혜택을 누릴 뿐만 아니라 주민이나 운동가들과 떨어져 자기들끼리 비공개로 의사결정을 하는 여유까지 누린다. 하지만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심의기구들(각급 지방의회)은 이러한 연합체들이 내린 대부분의 결정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형식적 토론만이 오가는 등기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자체연합의 회의 현장을 살펴보면 씁쓸한 실태를 확인하게 된다. 늦은 시간에 끝나는 기나긴 회의 동안 의미 없는 논의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지치고 만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리는 비어가고 지겨움의 표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참석자들의 집중력은 저하되고 어느새 끼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분위기는 갈수록 냉소적이고 산만해진다. 좌파 정당들이 특히 이러한 운영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당원들 스스로도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 대표자들에게 제대로 요구를 하지도 못하며,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별다른 전망이 없음을 알기에 굳이 투쟁에 뛰어들려는 이들은 줄어들고 정치엘리트의 쇄신은 더욱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부수적 피해는 지자체연합을 비롯한 지역공동조직들이 공공활동에 ‘기민성’, ‘유연성’,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상쇄된다고 말이다. 이들 조직을 통해 누리는 인적·세제적·재정적 추가 자원 덕분에 주민들의 요구, 특히 (허상에 불과한 단일체인) 지역의 필요에 한층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지자체연합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또는 제대로 못하는) 것도 여럿이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또는 잘 할 수 있다)는 기능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들과 그 위성조직들이 거둔 성과의 기나긴 목록이 이러한 논리의 타당성을 입증해준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에 따르면 2012년도 공공투자 중 70%가 지자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민주화 퇴보로 이어지는 정치야합

하지만 이들 지자체가 이룩한 것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자체연합들의 성적표는 희비가 엇갈린다. 지난 10년간 이들은 수적 팽창을 이루었고 공식적 특별권한도 확대되어 경제발전에서 문화·스포츠 시설 확충, 주거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들이 이미 교통·급수·정수·도로망과 도시계획 등의 분야에서 누리고 있던 전통적 권한에 새로운 역량이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가시적이고도 상징적인 성과물(릴 대형 스타디움, 마르세유 옛 항만구역 보행로 정비, 낭트 해양생물 회전목마, 몽펠리에 트램 건설) 뒤로는 역량 발휘가 미흡한 부분들이 감춰져 있다. 지역 정비개발의 우선순위 책정(기획서, 지방세제 등), 취약계층 대상 정책(임대주택, 유랑민 수용시설 등)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차원 재분배정책의 부재는 지자체 공동조직의 집단적 그리고 이른바 초당적 운영방식에 크게 기인한다. 지자체연합에서 기초단체장들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거부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진 권한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개별적 역할이 확대되고 해당 지자체의 이익 대변자로서 지위가 강화되면서 지자체연합의 정치화와 민주화는 오히려 퇴보했다.
일부 좌파 지방의원들이 지자체 간 연합을 지향하는 공동운영방식을 개혁하려 노력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1970년대부터 공산당 소속 의원들의 태도 변화를 살펴보면 어떻게 포기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이들도 초기에는 조직에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고, 각종 쟁점을 기술화하려 들며, 결정된 사항을 시민들에게 강요한다고 비난했으나 점차 순응해갔다. 지방의회에서 이들이 견지하는 입장도 점점 다른 당 의원들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2000년대 초 지자체연합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일부 공산당 의원들이 각종 민관제휴 프로젝트의 지지에 앞장서기도 했다. 일례로 대형 건설회사 에파주가 시공한 릴의 대형 스타디움 건설도 공산당 소속인 릴 광역도시 도시권연합 스포츠시설 담당 부회장의 지원으로 성사됐고, 노트르담데랑드 공항 건설 프로젝트도 공산당의 지지를 받았다. 두 경우 모두 지역주민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시민과 보다 가까운 결정을 내리고 인접성을 장려하는 절차가 그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방분권이라면 그것은 결코 민주적인 게 아니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 대표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해줄 최후의 보루라는 자격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방분권의 산물인 ‘지방의원 민주주의’는 지방의 정책을 사회적 중요성이 아닌 지역적 중요성에 종속되도록 하고, 쌍방향 토론이 아닌 합의를 통해, 심의가 아닌 협상을 거쳐 결정되게끔 했다. 다양한 민주적 공간과 장치(직접민주주의, 소환국민투표, 연임불가원칙 등)가 이미 마련,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민주적 제도를 창출해내어 반론과 토론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집 이름(5)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는 이를 ‘불안의 민주주의’라 명명했으면 한다.

 


 


프랑스 코뮌 공동체 기구의 대표성

공동체 연합은 제도적, 정치적 조직으로서 공공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코뮌이 연합한 것이다. 그것은 19세기 말부터 코뮌의 분할성(3만 6천 개의 코뮌이 있는 나라)이 갖는 역효과를 개선하려는 개혁자들이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 개혁자들은 모든 ‘통합’ 계획에 대한 시장들의 효율적인 저항에 부딪혀 왔었다.
소위 ‘고유과세권’ 코뮌공동체 기구는 196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발달되어 2000년대에야 도시공동체(대도시에서), 도시권 공동체(적어도 인구 5만의 도시 지역에서), 코뮌공동체(농촌 지역에서) 등의 형태로 보편화되었다. 세금을 직접 징수하는 것 이외에, 창설 당시에 의무적인 ‘권한 블록’을 갖고 있고, 각각의 코뮌이 인구 수와 부분적으로 비례하는 의원을 대표로 보내는 지방의원 의회에 의해 관리된다. 2013년 1월 1일에 프랑스 코뮌의 98.3%가 프랑스 인구의 92.1%를 대표하면서 고유과세권 코뮌상호협력공공기관(EPCI)에 편성되어 있다. 프랑스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코뮌상호협력은 이제 지방공공 정책의 규범이 되었다.

글·파비엥 드사주 Fabien Desage 
     다비드 게랑제 David Gu ranger
공저 <압수당한 정치. 개혁과 지방자치단체 연합기구의 사회학>(2011).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광역도시는 이미 존재하는 3개 공동체 형태(도시연합, 도시권연합, 코뮌연합)에 이어 4번째로 탄생하는 새로운 지방자치단체 연합조직이다. 원칙적으로 광역도시는 추가적 지역관할권을 도와 광역도로부터 인수하게 된다. 사회복지업무과 국도설비부문을 도에서, 관광진흥부문을 광역도로부터 넘겨받는다.
(2) 2012년 3월 4일자 국민전선 보도자료.
(3) 전국지방선거당선자현황에 따른 수치. 그러나 국민전선 스티브 브리우아 사무총장은 170명이 당선됐다고 주장한다.
(4) 1982~83년 지방분권 기본법 제정 당시는 예외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파생된 지방자치단체연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관들의 난립이 시작됐다.
(5) Fernando Pessoa, <Livro do Desassossego>,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