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의 시험대에 오른 <국제형사재판소>

2014-02-07     마리아 프란체스카 벤베누토 -변호사


2013년 10월 12일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들은 특별정상회담을 통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진행될 아프리카 국가 수반(케냐 대통령-역주)에 대한 재판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ICC 설립 이념 중 하나인 ‘국가 지도자의 비처벌에 맞선 투쟁’을 뒤흔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ICC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낸다.

‘비처벌에 맞선 10년간의 투쟁’.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이하 ICC)가 홈페이지를 통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모토다. 2002년 발효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을 근거로 설립된 ICC는 집단살해 범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 범죄, 또는 침략 범죄로 기소된 개인을 처벌한다. ICC 설립을 명시한 로마규정이 이 같은 범죄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효율성이 없다고 판단된 기존 국제형사법과 단절하는 방향으로 ICC를 만들었다. 개입 영토와 기간이 한정된 구 유고 국제형사재판소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와는 달리 ICC는 로마규정이 발효된 이후에 발생한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조건 중 한 가지에 해당하기만 하면 된다. 첫째, 용의자가 122개 로마규정 협약 당사국(193개 UN 회원국 가운데) 중 한 나라의 국민일 경우. 둘째, 기소대상인 범죄행위가 로마규정 협약 당사국 영토에서 일어난 경우. 두 번째 조건으로 인해 ICC의 관할권에 동의하지 않은 국가에까지 ICC의 관할권을 확장할 수 있다. 용의자는 더 이상 자신의 공직을 방패삼아 면책특권을 행사할 수 없다. 국가원수나 정부수반, 외교 수장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기소를 면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2013년 9월 9일 ICC는 윌리엄 루토 케냐 현직 부통령을 2007년 대통령 선거 직후 벌어진 일련의 종족 간 폭력사태를 부추긴 혐의로 기소했다. 이외에도 2009년 ICC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게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애매한 지위

ICC에는 한 국가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소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검찰관(2003~2013 재임)의 뒤를 이은 잠비아 출신 파투 벤수다 검찰관의 직권으로 제소할 수 있다(motu proprio action). 개별국가의 사법제도에 대한 보충적 관할권을 갖는 ICC는 해당 정부의 악의적인 의도 또는 비효율적인 사법제도로 인해 당사국 내에서 기소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개입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 주권 대행’ 개념으로 만들어진 ICC의 보충적 관할권 때문에 행정적으로 미숙한 나라들, 특히 최빈국에 대한 ‘차별’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ICC에서 행한 18건의 기소가 아프리카 분쟁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디오피아 출신의 하일레 마리암 아프리카 연합(AU) 의장이 2013년 5월 31일 AU 정상회담 폐막연설에서 ICC가 ‘인종사냥’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ICC는 로마규정에 명시된 혁신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ICC는 정치계와 법 체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국제 협약인 로마규정은 비준 국가에게만 구속력이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여전히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해외에 파견한 자국 평화유지군에 대한 기소를, 러시아와 중국은 체첸과 티벳을 탄압한 것에 대한 기소를 두려워한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한 기소를 이유로 ICC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일부 동맹국,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로마규정 승인 국가의 영토에서 일어난 범죄에 연루된 자국민을 ICC에 인도하지 않도록 하는 협정에 서명하게 했다.

이에 따라 ICC는 초국가적 형법기구라는 지위와 ICC 설립을 이끌어낸 정치적 합의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특히 ICC는 자체 경찰이나 군대를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관의 직무정지 명령 집행에 있어 여전히 국가들의 효율적인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르푸르 사태에 관한 유엔안보리의 1556/2004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수단 정부는 여전히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한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케냐와 차드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자국 영토에 받아들인 바 있다. 

각국 비위를 맞춰야 하는 재판소 검찰관

따라서 이 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검찰관은 각국 정부의 비위를 맞춰야만 한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석재판에 관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용의자가 재판에 참석해야만 재판이 이루어진다. 용의자를 기소하는 데 있어 ICC는 외교적으로 신중한 행보를 취한다. 각국 정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ICC가 때로는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특권인 자의적 조사를 착수할 가능성을 포기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전례가 없는 이 특권이 사용된 적은 거의 없다. 현재 ICC가 관심을 갖고 있는 네 가지 사안이 관련 국가 정부에 의해 ICC에 제소되었다.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사태가 그것이다. ICC 검찰관은 케냐와 코트디브아르 사안에만 자의적 조사권을 발동했다. 2012년 코트디브아르에서는 로랑 그바보와 알라싼 와타라 간에 치열한 정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 검찰관의 임무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반인도적 범죄자로 기소된 우후루 무이가이 케냐타가 2013년 4월 9일 케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는 점이다. 물론 ICC의 직무정지 명령이 내려졌고 11월 12일에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가 쥐고 있는 ICC에 대한 생사여탈권 때문에 ICC의 행동반경은 더욱 좁아진다. 유엔 헌장 제7장에 의거해 임무를 수행하는 ICC는 개입을 중단하거나 그 반대로 협약 당사국이 아닌 국가로 재판권을 확장할 수 있다(회부를 통해 - 역주:협약 당사국이 아닌 경우 유엔안보리가 ICC에 회부해야만 관할권이 확장된다). 2003년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2011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가 그 경우이다. 2002년 7월에 채택된 1422 결의안에 따라 로마규정 협약 당사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미군이 주도한 UN평화유지군의 활동에 대한 검찰관의 조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이로써 유엔안보리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드러났다. 케냐와 수단의 경우에 있어 아프리카 연합은 채택된 조치가 반건설적이며 관련국의 평화이행과정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케냐 국회는 9월 5일 케냐정부가 루토 부통령에 대한 ICC의 기소가 국가의 ‘안정과 안보’를 위협한다며 케냐 정부가 ICC를 탈퇴할 것을 요구했다. ICC의 기소 선택 기준 또한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검찰관은 자유재량을 발휘해 가장 중대하다고 여겨지는 범죄(희생자수, 기간, 지역을 고려)만 기소한다. 또한 잠재적인 책임자의 계급수준을 고려한다. 이같이 매우 모호한 기준으로 선택된 기소 사안들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이에 따라 ICC는 2003년부터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조사를  ‘관련 범죄가 특수한 경우이며 중대함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한 바 있다. 물론 영국과 같이 ICC를 승인한 국가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는 제소가 가능했을 것이다.

정의의 목표는 정의 그 자체여야

2009년 ICC 검찰관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기한 기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레노 오캄포 검찰관은 ‘팔레스타인이 로마규정에 가입할 수 있는 주권 국가인지 아닌지, 결과적으로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인지 아닌지 여부는 법적으로 UN의 관할 기구나 로마규정 협약 당사국 회의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팔레스타인이 ‘국제 사회’로부터 주권 국가로 인정받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신중하게 피해갔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는 코트디브아르 대선 사태 관련 기소에 있어 ICC가 보인 편파적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그바보 전직 대통령 부부는 기소되었지만 당시 사태의 또 다른 주역인 와타라 현직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오캄포 검찰관은 그바보 전직 대통령의 범죄가 특별히 ‘중대’하기 때문에 국제 정의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ICC에 대한 마지막 비난은 상징적이다. ‘비처벌에 맞선 투쟁’이란 모토는 ‘강자를 위한 맞춤형’ 정의를 가리는 허울일 수도 있다. 따라서 ICC의 기소 면제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에게 있어 ICC가 법적, 도덕적 정당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가치를 표방하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소 사안을 선택하면서 공정할 의무를 저버리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국제 정의로 추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ICC의 모범적인 면모는 ICC에 그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범죄 억제와 범죄자 처벌을 넘어 범죄 예방 도구, 전쟁의 치유제, 포괄적 안보 무기뿐만 아니라 희생자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수단 및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로마규정의 또 다른 혁신적인 면은, 특별재판소에서는 희생자가 대개 기소에 따른, 도구로 간주되는 단순한 증인인 반면 형사재판소에서는 희생자가 적극적으로 정의 구현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희생자의 활동이 증언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국제형사재판이 치유의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일부 법학자는 정의란 ‘희생자를 필요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고 재판은 ‘희생자들의 다양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적절한 최초의 대응’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내세운다. 이 같은 해석은 우리를 법적 합리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각종 국제 기구의 ‘페론주의적’ 사고방식을 집어삼키면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정의를 획득할’ 권리를 혼동하며 중대한 해석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희생자의 감정이 재판 논쟁의 엄숙함을 해치게 되어 때로는 희생자가 재판에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희생자는 그가 겪은 피해를 입증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민간 검사의 역할을 하면서 용의자의 유죄를 확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두 고소인을 상대로 소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ICC에 존재하는 상징주의는 희생자를 옹호하는 동시에 용의자가 누구인지 망각하면서 재판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이 크기 쉽다. ICC는 상징주의가 낳은 ‘풍차’에 맞서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상징적인 도전을 줄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츠베탕 토도로프가 말했듯이 ‘정의의 목표는 정의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글·마리아 프란체스카 벤베누토 Maris Francesca Benvenuto
이태리 나폴리 Seconde University 국제형사법 박사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