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나고를 ‘NO’ 했는가?

2014-02-07     안성용 -교육활동가

 

   
 

작년 대학입시에서 하나고 첫 졸업생 200명 중 서울대 45명을 포함, 연대·고대·카이스트·포스텍·서강대·이대 등 소위 명문대에 150여명이 합격했으며 해외대학에도 20명 합격했다. 한마디로 “하나고 돌풍”이었다. 언론은 앞다퉈 하나고의 대학입시 실적과 학사운영에 대해 칭찬일색의 보도를 내보냈다. 물론 귀족학교라는 세간의 비난을 의식하여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승리의 감동을 왜 알지 못하느냐는 기사도 빠지지 않았다.

“귀족학교가 아니라 ‘특목고’ 중에 최초로 전체 정원의 20%를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뽑는 학교입니다. 이른바 ‘개룡남(‘개천에서 용난 남자’라는 뜻)’을 키우는 곳이죠. 이번 서울대 합격자 중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 출신이 5명이나 됐습니다.”(김진성 교장 언론인터뷰 중)

좋은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에 많이 진학시키는 곳이고,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에 많이 취업시키는 곳이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계층상승 욕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계층상승의 구조화를 이룬 ‘도구’로서의 특목고 시대

1994학년도 입시에서 서울과학고는 서울대를 지원한 126명 전원이 합격을 하고, 대원외고는 서울대 188명, 연세대 127명, 고려대 118명의 합격자를 냈다. 당시 신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서울과학고 전원 서울대 합격’ ‘대원외고 옛 경기고의 영광 살려’ 등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그때부터 명문대 진학 통로로서의 특목고 시대가 시작되었다.

특목고 시대의 개막은 정권 차원의 정책적 의도에 기인했다. 양김씨의 분열을 뚫고 당선된 노태우의 지지기반은 상류층과 중산층이었다. 이들은 옛 입시 명문고에 대한 향수가 강했고, 평준화 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자녀를 위한 교육비 지출을 하기에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의 욕망을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이 자녀를 대거 특목고에 보냈고, 학교에서는 정식 등록금 외에 많은 재정후원을 받으면서 ‘대학입시’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대입으로 나타났다. 이를 본 중산층은 자녀를 소위 SKY대학에 보내려면 외고나 과고를 보내는 것을 당연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민층도 가세할 수밖에 없었다. 계층상승을 위한 유일한 사다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 특목고 입시를 위한 전문학원이 본격 형성된다. 서울의 강남권과 중계동, 목동을 시작으로 분당, 평촌, 일산 등 신도시에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위한 ‘특목고 전문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고교평준화 제도 시행 이후 중학생은 학교에서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이 없었고, 학원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소위 ‘선행학습’과 ‘경시대회’가 본격 시작된다. 특목고가 대입열풍을 가져 오기 전만 해도, 또 학력고사만 치르던 시대에는 고교생의 선행학습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기치로 ‘학력고사’가 ‘주입식 교육’, ‘암기식 교육’의 원흉이라고 하면서 ‘창의력 배양’을 명분으로 미국제도를 모방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한다. 문제의 내용과 형식이 낯설고, 과학탐구, 사회탐구라는 이름으로 통합교과가 출제되면서 학교에서는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부모들이 학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학교우선-학원보조 관계가 학원우선-학교보조로 뒤바뀌게 된다. 즉 노태우 정부의 특목고 육성정책을 김영삼 정부가 대학입시제도를 바꾸어 조응하여 중산층과 상류층의 구미에 맞는 입시산업을 실제로 육성하게 된 것이다.

영어의 선행학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보통사람은 평생 쓸 일 없는 ‘외국인과의 회화능력이 중요하다’면서 ‘듣기평가’가 도입되었다. 학생들은 당시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학원에서 나누어 준 영어 CD를 듣는다. 이는 후에 MP3로, 모바일로 바뀐다. 또 영어는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므로 미리 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타칭 전문가들이 떠들어댄다. ‘민족사관고’, ‘외고’에서 토플, 토익 성적을 요구한다. (민사고는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학인증서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나, 학생들은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자기소개서에 쓰고 있다. IBT 120점 만점 중 합격자들은 115점이 평균이라 한다. 중3 가을 원서를 내기 전 이 점수를 받으려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일 3~4시간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입시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서울대 대학원’을 지원할 때 영문과가 103점, 사회대, 법대는 94점, 자연대, 경영대가 90점이다. 사법고시에서는 71점이면 된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은 민사고나 외고 등이 스스로를 ‘명문고’로 자리 잡으려 진입장벽을 계속 강화했기 때문이고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한 정부와 관련 산업의 역할도 있다.)

자사고-‘교육 사유화’를 위한 대자본 시대의 개막

비슷한 시기에 대기업, 공사 등의 입사지원항목에 어학인증서 제출이 필수가 된다. 대학생, 중고생, 초등생의 어학연수 바람이 ‘특목고 열풍’과 맞물려 일어난다. 또 ‘영어의 바다에 빠져라’ 류의 학습법도 넘쳐난다. 영어 선행학습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어 중고생,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 프랜차이즈를 넘어 영어 유치원까지 만들어 낸다. 그리고 기러기아빠가 사회현상으로 본격 나타난다.

한편 수학의 선행학습 또한 시작된다. 당시 특목고 시험에서는 고교과정을 다루는 문제가 일정 비율 출제되었기 때문에 중학생들이 고교과정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과학고에서(오랫동안 민사고, 외고에서도 요구) ‘수학경시대회’ 입상자를 뽑는 제도를 만들면서 ‘경시대회’가 폭발한다. 이런 경시대회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 대형언론사가 주관을 해서 치렀고, 입상자들에게 고입과 대입에서 특혜를 주었다. 이것이 ‘장사가 되자’ 대학마다 앞다투어 ‘대회를 창설했다’. 특목고와 대학과 언론사의 합작 사업이었던 것이다.

부모들은 ‘다들 시키니 안 시키면 불안해서’, 어린 중학생, 초등학생들은 학교생활은 뒷전이고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 ‘교실이 붕괴’되었다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고, ‘왕따’나 ‘조직화된 학교 폭력’이 다 이즈음에 나타나는 일들이고 놀이터에 아이들이 사라진 것도 이때부터이다. 90년대 내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많은 어린 생명들이 사라져갔다. 고교생만이 아니고 중학생, 초등학생도 많았다. 이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목고 열풍은 90년대 초부터 2010년까지 약 17~18년간 지속되었다. 2011년 고교입학생부터 특목고 선발시험이 없어지고, 특히 외고에서 영어 인증시험으로 선발하지 못하게 하면서 2년간 다소 수그러졌는데, 불을 다시 붙인 것이 바로 이 ‘자사고’이다.

하나고는 2010년 3월 2일 개교식 및 제1회 입학식을 거행했다. 이사장은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 초대교장은 경제학박사인 김진성 전 고려대 교수. 은평뉴타운의 한복판 8천평 대지에, 나중에 교육부로부터 최우수시설상을 받게 되는 초현대식 학교로 개교하였다. 개교식에는 오세훈 시장과 비리로 구속된 공정택 교육감을 이은 김경회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이 귀빈으로 참석했다. 2006년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은 ‘뉴타운 사업’의 흥행을 위해 길음지역과 은평지역 두 곳에 ‘민사고’ 같은 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2006년 말, 2007년 초로 기억하는데, 필자가 대표로 있던 기업에 서울시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설립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서울시에서는 뉴타운 한복판의 학교부지 땅값을 초기 계약금만 일부 내고 나머지는 학교 설립 후 50년간 연리 0.25%(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할 것이다)의 조건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상환방법도 매우 파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건설비는 건설회사에서 당시 유행하던 PF방식을 도입하여 학교 내에 기숙사, 문화센터, 체육센터 등을 지어 임대나 위탁 등을 하면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제안 및 우리 내부의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거절했다. 회사의 담당임원은 오랫동안 제안자 측으로부터 시달렸다. 

지배질서 구축을 노린 자본과 권력의 의지

당시 이 제안은 필자의 회사 말고도 한국 사교육기업의 대표격인 대교를 비롯하여 알 만한 재벌기업들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 대교는 즉각 설립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교의 구상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민사고’ 같은 학교를 만들고 이곳에 가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원이나 온라인 사업을 운영하면 ‘돈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들었다. (당시는 메가스터디가 상장하여 주식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다.) 어찌 보면 출산률이 급격히 줄어드는 환경에서 매출과 수익 감소에 시달리던 학습지 기업인 대교로서는 자연스럽게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교육업체’가 ‘공익적인 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안된다는 여론에 부딪혀 결국 대교는 포기하였다. 검토를 했던 몇몇 재벌기업들도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해가 바뀌고 정권도 바뀌어 서울시는 길음은 포기를 하고 은평에만 학교설립을 하기로 한다. 2008년 금융자본인 하나금융그룹이 나선다. 이 해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약진하는 데 뉴타운이 큰 도움을 준다. 2010년 오세훈은 다시 서울시장이 된다. 이명박정부는 2010년 6월 22일 국무회의에서 고등학교 유형을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의 4개로 정리하여 통과를 시킨다. 하나고는 6월 30일 “자립형”에서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한다. 이로써 하나고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전국 단위 자사고가 되었다. 참 공교롭다. 전국 단위 자사고는 전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학교이고, 일반고 특목고와 달리 자체적인 학생선발권을 갖는다. 또 해운대고, 포항제철고, 민족사관고, 현대청운고 등 지방에 위치한 자사고들에 비해 서울 소재라는 경쟁력을 갖는다. 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즉 학교가 교과과정에 대한 통제를 정부로부터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권리들과 ‘하나금융그룹 브랜드’ 때문에 전국 중산층의 욕망을 빨아들이게 되니 지원자는 넘치고, 성적이 우수하면서도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을 골라 뽑을 수 있게 된다.

하나고 입시는 일반전형(120명), 사회적 배려대상자전형(40명), 하나임직원자녀전형(40명) 등 3가지 전형이 있다. 학비는 작년 학생 1인당 평균 연간 1295만원이다. 월 110만원 꼴이다. 사회적 배려대상자는 작년 영훈중학교 입시에서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아들 문제가 큰 논란이 된 점을 고려하면 과연 ‘제대로 운영’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임직원 자녀전형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학교설립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공기업도 나선다. 삼성(충남 아산 2014년), 포스코(인천 송도 2015년), 현대(충남 당진 2015년), 한수원(경북 경주 2015년) 등이다. 이런 학교설립은 공익사업이 아니다. ‘임직원자녀쿼터’가 포스코의 포항제철고는 정원의 60%, 광양제철고는 70%,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인천하늘고는 44%다.

대기업은 학교를 만들어 임직원에게 충성과 노동을 이끌어내고, 공기업은 국민세금으로 재벌을 흉내 내어 ‘자기들만의 리그’를 완성하고자 한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명문대학 간판을 독점코자 하며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거나 지배계급 주위에서 자녀들이 살아가기를 욕망한다. 대자본의 교육분야 진출은 사립대학 인수로부터 시작해 고교설립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자본들이 병원을 설립하여 의료 및 연관분야의 사업화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키운 것에 기초하여 이제 보다 ‘완벽한 시스템’으로 안착하려는 것이 최근 ‘의료민영화 논란’의 근본이다. 앞서 본대로 이제 ‘교육의 사유화’가 노골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 학교는 모든 시민의 당대 및 미래에서 매우 중요한 ‘공적인 영역’이다. 이를 파괴하고 여기서 이윤을 창출하고 지배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의지를 읽은 것, 그것이 내가 ‘하나고’ 설립을 거절한 이유이다.

글·안성용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사회구조를 바꾸는 내용을 담은 책을 번역, 기획, 집필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최근에는 농산어촌·도시의 소외된 청소년 교육, 다문화가정 교육,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 등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교육활동에 주력해왔으며 대표적 저서로는 <교육의 눈물>(201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