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전복을 포착한 포토 몽타주

2014-02-10     카롤리나 아마랄 데 아기아라 -연구원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 사진은 정치적 대사건들과 동행해 왔다. 정치적 대사건들이란 이 대륙이 절대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압제를 가져온 전제주의의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진작가들은 비단 1959년의 쿠바 혁명과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져 온 대륙 남쪽 국가들의 군사 독재로 대변되는 역사적 대사건을 기록한 것뿐만 아니라 이 대륙의 국가들이 지나온 대변혁의 과정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데 나름의 중대한 기여를 한 것이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체는 한 사회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갈등 혹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의 도시개발과 같은 문제들을 고민해 보는 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가 된다.

사건의 불씨가 되는 것을 포착하다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과 지속되는 사이, 사건과 그 결과 그리고 역사와 기억 사이에서 사진작가들은 정치와 예술의 영역에 개입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았다. 1959년 이래로 어떤 이들은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 애썼다. 이는 쿠바 혁명 당시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라울 코랄레스(1925~2006), 그리고 알베르토 코르다(1928~2001)라 불린 알베르토 디아즈가 시도한 경향이다. 또한 다른 이들은 자기 나라의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일생의 상당기간을 야노마미 부족들과 함께 보낸 헬베토-브라질리엔 클로디아 안두하르가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처럼 포토저널리즘과 예술 사진은 라틴 아메리카가 직면한 중요한 논점을 여는 출구를 제공했으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이 대륙이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의 원천 중의 하나로 언급되는 데 일조했다.

카르티에 재단이 시작한 전시회는 사진예술의 다양한 용도, 그 특수성과 역사와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전시회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변화를 파악하게 해주는 참고 자료로서의 위상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그 변화를 공고히 만드는가를 보여준다. 미국의 에세이스트인 수잔 손탁은 그의 저서 <사진>에서 “사진이란 단지 사건과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에 개입하고, 그것에 난입하고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젓이 하는 권리를 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진을 찍는 행위는 기억을 생성하고 그 기억이 궁극적으로 가져오게 될 하나의 변화를 만드는 데 개입하는 하나의 양태라 할 수 있다.

요동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불씨들은 전부 포착되고 말해져야 된다는 느낌이며 이와 같은 생각은 쿠바인들의 행위가 혁명의 불길을 전 세계로 퍼트린 196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에서 널리 인식되었다. 게릴라 집단이 형성되는 것과 더불어 포토저널리즘 역시 하나의 세계가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요동쳐가는 정확한 시점을 포착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사람들로서는 멕시코인 나초 로페즈(1923~1986), 브라질인 호세 메데이로스(1921~1990)가 있다. 둘 다 당시의 흑인 인구나 토착민 집단, 역사적으로 소외된 또 다른 집단 등과 같은 후일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정치이론과 사고에 중요한 이슈가 된 역사적 주제들을 명백히 밝히는 데 기여했다.

여타 예술 장르와의 교류

1960년대는 또한 예술가들로 하여금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실행 방법을 찾도록 한 풍속과 예술에 있어서의 혁명의 시대로도 특징지어진다. 혁명이라는 이념이 젊은이들 사이에 신봉자들을 양산해 내었다면 라틴 아메리카는 또한 미국의 의해서 조장된 소비사회, 즉 현대 자본주의 용역시장에서의 혁신에 의해서도 충격을 받았다. 이 시기부터 광고가 점차로 영역을 확장해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예술의 한 형태로까지 간주되게 되었다. 이탈리아계 베네수엘라인인 파올로 가스파리니(1934~)는 소비를 부추기는 내용으로 건물과 주민들을 덮어버려 도시의 풍경을 과도하게 점령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과잉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카르티에 재단은 이 작가의 <엘 하비타 델 로스 옴부레스(사람들의 주거>, <카라카스>, <벨로 몬테(아름다운 산, 1968)> 등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스파리니는 1961년부터 65년까지 쿠바에 거주했는데 알레오 카르펜티에(1904~1980)와 함께 작업할 때 당시에 갈등이 있었던 정치적 프로젝트를 조명하는 데 사진을 이용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사진이 다룬 수 백 개의 주제들 말고도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사진의 한계와 여타 다른 예술 표현 형태와 사진의 교류를 언급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1960~2013> 전시회는 이처럼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매우 특별한 작업을 제안하고 있다. 전시 사진의 선택도 단어를 이미지로, 이미지를 텍스트의 단편으로 변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선별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다른 실행방법에 근거한 작품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인 안나 베일라 가이거(1933~)의 <마파스 엘레멘타레스I>와 <마파스 엘레멘타레스III(1976)>가 그것들이다. 이 작가는 1970년대에 브라질에서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활동하면서 전통적인 예술과 새로운 매체 간의 경계에 도전했다.

현실의 전복을 꿈꾸다

마찬가지로 콜롬비아 예술가인 에베르 아스투디요(1948~)는 칼리시 교외지역의 참고자료를 제공하고 주민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최종적으로는 사진에 데생으로 손질하는 방식으로 사진작가의 경력을 시작했다. 카르티에 재단이 이렇게 그의 <라틴 파이어(1975~1978)>라는 이미지 시리즈를 소개한다. 이 사진에서는 한 호텔에서 개최하는 라틴 파이어라는 파티에 참석하려는 두 사람이 시내의 광고판 앞을 걸어가는 장면이 사진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광고판이 해체되어 목표물의 방향이 달라져 <라틴 파이어>는 해방을 상징하는 위치로 변해버린다. 조형 예술에 있어서 실험이 주도했던 이 시기에는 당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행했던 혁명 정권의 압제가 저지른 잔인함에 저항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진도 꾸준하게 사용되었다. 무장투쟁이라는 정치적 힘을 예술 활동의 내부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소위 전위예술이라 명명했던 ‘게릴라 예술’과 더불어 사진은 억압을 고발하는 것을 주요한 기능으로 삼아 자유를 향한 혁명적 투쟁의 매개체로 변모했다.

전시회 안내 팸플릿에 소개된 이미지는 칠레의 마르첼로 몬테치노(1946~)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 같은 문맥 속에서 포토저널리즘의 역할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질곡에 사로잡힌 한 나라의 일상을 포착하고 까발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일상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는 혁명적인 제스처는 어린 소녀의 눈빛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오히려 사진사를 목표물로 삼아 정면에 똑바로 고정시키고 그녀가 앞으로 지나가는 벽에 붙여진 팸플릿에 쓰인 “전쟁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조성하기 위해 대중을 조직화하고 대중의 정치적, 조직적 발전을 추진하라”는 혁명 정부의 동원명령에 정면으로 도전하라고 그 명령 자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호소하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카메라는 사건을 포착하는 수단 이상의 것이 되어 오히려 사건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확인시켜 준다. 독재 치하에서 일상의 삶을 말하기 어려웠기에 사진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73년 쿠데타 이후 망명한 칠레의 기예르모 데이시에(1940~1995) 역시 <라틴 아메리카 1960~2013> 전시회에 몇 개의 포토몽타주가 소개된다.

1970년대 말, 그는 이미 잘 알려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앉아 있는 유명한 사진을 다시 다루었다. 그는 한 독재자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게 해주는 미소를 통해 공식 담화를 상기시키는 여기에 몇 개의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다. 이는 “민주주의란 자신의 내부 속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씨를 잉태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진실로 민주적이 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피를 필요로 한다는 표현이 있다”라고 말한 한 칠레 장군의 말로 대변된다. 데이시에는 또한 다른 표현 형태인 시와 사진의 교류의 본보기도 시도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맥락 속에서 정치적 갈등은 사회적 갈등으로 대치되게 되었다. 사진은 점차로 사회집단, 특히 인민 계층의 일상을 대변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세르지오 라라인(1931~2012)에 이어서 두 번째로 메그넘 에이전시에 들어간 라틴 아메리카인인 브라질의 세비스티앙 살가도(1944~)가 한 작업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살가도는 브라질과 대륙의 가장 외진 곳까지 몸소 탐사하면서 인상적인 시리즈 작품들을 완성했는데, 세라 팔라다의 금 채굴꾼들이나 토지 없는 농민노동자들(MST)을 포착한 사진들이 대표적인 예다.

풍경의 변화 특히 도시지역의 풍경의 변화도 작가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칠레의 레오노라 비쿠나(1952~), 아르헨티나의 파쿤도 데 주비리아(1954~)가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관심, 소비 경보에 대한 각성들도 이른바 사진의 혁신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런 주제들은 사진의 긴 역사에 이어서 지난 10년간 사진의 분야에 광범위하게 다루어진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화로의 회귀 과정이나 독재가 남긴 잔재의 문제와 같이, 비록 예전에 비해서 사건발발 당시의 충격 자체는 긴 시간 속에 드러나는 결과보다 덜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국내정치나 대륙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들도 사진 속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졌다.  

새로운 기억을 향하여

베네수엘라에서 위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에 그 유명한 좌파로의 선회열풍이 밀려왔다. 브라질에서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실바가 권력을 잡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가, 에쿠아도르에서는 라파엘 코레아, 파라과이에서는 페르난도 루고가 각기 권좌에 올랐다. 이 현상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이전 군사 독재가 저지른 범죄를 다시 조사하고 책임자들의 문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사진은 지나온 압제의 경험과 현재의 사회와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주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작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망한 개념 예술가, 레온 페라리(1920~2013)의 여정은 라틴 아메리카 사진의 역사에서 정치와 예술과의 강한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대변해준다.  1970년대에 게릴라 예술의 추종자인 그는 카르티에 재단의 전시회에서 1995년의 <더 이상은 아니다>라는 작품으로 상기된다. 이 작품은 독재치하 시절의 이야기가 아르헨티나의 군함을 상징하는 클리세와 겹쳐지는 형상의 포토몽타주다. 군사적인 맥락을 내포하는 이 국가적 상징은 현재에도 여전히 중압감을 발휘하는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고 현재의 길을 가야만 하는 한 국가의 기억을 은밀하게 말해준다. 페라리라는 한 개인의 여정은, 특히 그의 망명시절의 여정 그리고 브라질의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력하던 시절의 여정은 정치 사진의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와 미학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쪽머리를 알아볼 수 있는 역사적 관계가 있음을 증명해준다.



전시회 뒷이야기
 

카르티에 현대 예술 재단은 2014년 4월 6일까지 멕시코의 암파로 데 푸에블라 미술관과 공동으로 <라틴 아메리카 1960~2013>을 소개한다. 전시회는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 사이의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라틴 아메리카의 사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1개 국가의 72명의 작가들을 모아서 사진작가 작업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작품들도 소개함으로써 사진에 있어서 다양한 실행방법을 밝히려 한다. 이 대륙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하여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발견하게 할 것이다.
쿠바혁명의 이듬해인 1960년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혁명과 억압적인 군사정부 체제, 게릴라의 형성과 민주주의로의 회귀 등과 같은 변화의 격랑이 이어졌다. 요동치던 혼돈의 시기를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서 조명해본다. 독재체제와 계속되는 격변에 맞서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긴급한 내면의 요청에 의해서 수많은 작가들이 1960년대부터 사진이라는 수단이 갖는 유일한 특수성에서 탈피해 자신들의 작품에 텍스트와 사진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폭력과 복잡성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며 때로는 검열을 교묘히 피해야만 했다. <영토>, <도시>, <알리기-고발하기>,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4개의 큰 주제로 분류하여 전시회는 포토 옵셋 인쇄, 실크스크린 인쇄, 콜라주, 행위 미술, 비디오와 설치미술까지 망라한, 이 대륙의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단을 탐구해서 라틴 아메리카라는 정체성 자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4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는 레옹 페라리,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 같은 명성이 공인된 작가들 외에도 에베르 아스투디요, 클라우디아 호스코비치 같은 독자들에겐 비교적 생소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계의 활력을 느끼게 한다. 이 예외적인 예술가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파라과이 사진작가 겸 감독인 프레디 카스코는 역사적 다큐의 가치가 있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해당 전 지역을 여행했다. 카르티에 재단의 후원으로 독점 제작된 30여 개가 넘는 대담들은 이 대륙 작가들에게 독특하고 다양한 시각예술을 반영하며 라틴 아메리카 예술가들 사이에 놓인 유사성을 강조한다.



글·카롤리나 아마랄 데 아기아라 Carolina Amaral de Aguiar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 연구원

번역·이진홍
파리 7대학 불문학 박사, <진보와 그의 적들><자살> 등 저·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