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이 밝히는 신춘문예 심사기준
문학청년들은 혼자 밀실에서 내적 체험과 몽환, 미친 영감을 한데 뒤섞어 말랑말랑한 반죽을 만들고, 그 반죽에 마법을 일으키는 상상력을 넣어 작품을 빚는다. 오로지 밀실에서 자신의 본능, 꿈, 예감을 재료로 하여 이루는 고독한 발명이다. 누군가 글을 쓴다는 것은 사적인 일에 속한다. 제도로서의 신춘문예는 밀실의 음지에서 수공업적 기예로 빚은 작품들을 광장으로 끌어내 햇빛에 탈색하는 일이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이 동시적으로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새로이 편입되는 과정이다. 신춘문예는 “식탁에 놓인 소금보다도 저렴”(스티븐 킹)한 알량한 재능의 검증이고, 사적 영역에 있는 열정과 꿈을 공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일일 뿐이지, 돈과 권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부수적 산물일 따름이다. 신춘문예 당선자에게는 특별한 행복과 명예가 주어진다. “국민의 영적 건강을 대변”하는 일이 그것인데, “성스러운 권력과 인간의 자유 사이의 중간 지점”(옥타비오 파스)에 놓이는 시인과 시라는 직책을 자발적으로 떠맡음으로써 이루어진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단 등용문
신춘문예는 한국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신인 등용문이다. 신춘문예에 당선한다는 것은 어제까지 무명이었던 신인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새로운 작가로서 소개되는 문학적 사건이다. 두둑한 상금과 하루아침에 유명해진다는 것, 아무런 차별 없이 오로지 작품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매혹 때문에 신춘문예는 문학청년들에게는 꿈의 무대이다. 오르한 파묵은 <새로운 인생>이라는 소설의 시작에서 “어느 날 나는 책 한 권을 읽었고, 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라고 썼다. 파묵은 스물 한 살이었고, 그때 읽은 소설은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라는 책이었다. 내게도 그럴 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책이 아니었다. 나는 스물네 살에 지구가 다른 행성의 지옥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바로 그 해에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서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었다. 불확정적이고 미래가 모호했던 인생 전체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시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에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날마다 책이나 꾸역꾸역 읽고 푸른 노트에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시나 끼적이던 무명의 문학청년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시인으로 대우를 받았다. 갑자기 출판사에 취직이 되고, 여기저기서 찾는 일들이 부쩍 잦아졌고, 모든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것을 실감했다.
1928년 <조선일보>에서는 신춘문예를 공모하며 현상금 대신 ‘박사 진정(薄謝進呈)’이라고 했다. 당선자에게 사례로 얼마의 돈이나 물품을 준다는 뜻이다. 이듬해부터는 소설의 경우 1등 60원, 2등 30원을 주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30원, 택시 요금이 거리에 상관없이 1원 균일이었으니, 상금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신춘문예가 시행된 지 90년이 훌쩍 넘었다. <조선일보>는 11월에 사고(社告)로 신춘문예 모집 요령을 발표하고, 12월 20일에 원고를 마감하고, 이듬해 1월 1일자 신문에 당선자를 발표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일간지에서 11월 초에 공모 요령을 사고(社告)로 내보내고, 12월 초순에 마감을 한다. 마감일과 장르들은 신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월 1일에 당선자 발표를 하는 전통은 공통으로 잇고 있다. 예전에는 응모작들을 보낼 때 겉봉에 붉은 글씨로 ‘신춘문예 원고’라고 쓰도록 했고, 예나 지금이나 응모했던 작품들을 되돌려주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이 신춘문예 제도를 통해 등단하고 작품 활동을 한 문인은 수백 명에 이른다. 김동리, 황순원, 서정주, 김유정, 김승옥, 최하림, 황석영, 조해일, 최인호, 한수산, 박범신, 정호승, 황인숙, 장석남, 안도현, 함정임, 심보선, 조경란, 하성란, 천운영, 김경주, 편혜영, 황정은 등등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이들로 인해 한국문학은 풍성해졌다. 신춘문예는 80여년의 전통과 권위를 부여받고, 유망한 신인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 한국문단을 키우는 젖줄이며, 젊은 피를 수혈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의미있는 문학등단 제도임을 꿋꿋하게 입증하였다.
90여 년 한국 문단을 키운 젖줄
두말할 것 없이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것은 신문사들이다. 신춘문예가 90여 년 동안이나 제도로서 시행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문학청년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이다. 해마다 신문사에 몰리는 수천 명의 투고작들이 그 열정의 가시적 실체다. 신문사마다 지향하는 이념과 정체성이 다른데, 그렇다면 특정 언론사의 이념적 프레임이 신춘문예 당선작에도 작용을 할까? 신문사가 신춘문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심사위원을 위촉하는가에 국한된다. 어떤 당선작을 선택하는가는 전적으로 심사위원의 몫이다. 신문사가 자신의 프레임에 딱 들어맞는 특정 이념이나 경향의 작품을 뽑도록 심사위원을 압박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그러니 당선작과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 사이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문학청년들 중에는 더러 신춘문예라는 제도의 투명성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일도 있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우편제도를 불신해서 직접 신문사 문화부에 응모작을 제출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심사자들의 도덕성과 안목을 불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복수의 심사자들이 담합해서 더 훌륭한 작품을 제껴놓고 덜 훌륭한 작품을 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많은 신춘문예 낙선자들이 자기가 떨어진 것은 보이지 않는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신춘문예와 관련된 아주 특이한 스캔들이 터졌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탈락한 사람이 신춘문예의 심사에 관여한 한 여성 소설가의 신작이 자신의 응모작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혀’라는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었는데, 문단에서 격렬한 논의가 오갔고, 소재의 유사성 때문에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의견과 유사성은 우연의 결과이고 표절 의혹은 응모자의 과대망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 사건은 응모자들이 제 창작의 고유한 아이디어나 참신한 표현들을 도둑맞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의 일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20대 때 신춘문예에 열광하던 청년에서 50대 중견시인이 되어 신춘문예 작품들을 심사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는 언어의 발레, 소설은 사유의 격투다. 좋은 시와 소설들은 뇌의 전두엽 전 영역에 작동한다. 모든 심사자들은 전두엽에 천둥 같은 울림과 번개 같은 번쩍임을 일으키는 놀라운 작품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의 경우, 열린 감각, 언어 감수성, 시를 찾아내는 촉(觸) 같은 시의 기본 재능을 두루 갖춘 시인들을 뽑는다. 물론 평범 이상의 재능들이다.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交響)이 있고, 문단에 없는 새로운 개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심사자들은 사유의 풋풋함과 상상력의 발랄함,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交響)의 웅장함, 평지돌출(平地突出)하는 비범함, 생의 기미들과 예감들, 그리고 비극의 전조(前兆)를 잡아채는 직관이 있는 작품들을 고른다.
뇌 전두엽을 자극시킬 작품 찾는 심사과정
새로운 존재를 세우려는 몸짓을 보여라. 한 철학자는 글쓰기를 “어떤 것의 존재를 지우면서도 그것을 읽기 쉽게 유지하는 몸짓의 이름”(자크 데리다)이라고 했다. 시를 쓰는 것도 낡은 존재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존재를 세우려는 몸짓일 테다. 나날의 현존과 시적 현존은 섞이고 스민다. 그렇게 상호삼투하는 나날의 현존과 시적 현존은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시적 현존을 세우는 데 상상력이라는 화학작용이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까닭이다. 심사자들은 응모작들에서 그 다름을 분별하는 감각의 얇음과 두꺼움의 차이를 눈여겨보았다.
단단한 시를 보여라. 새롭게 찾은 사물의 성질, 감각의 명징함, 모국어를 최적화할 수 있는 약동(躍動), “진탕만탕 생명력의 잔치”(보들레르)들이 잘 어우러져야 야무진 시다. 거꾸로 관성과 타성에 기대는 것, 중속(衆俗)의 수다와 너스레, 조악한 모국어 사용습관, 남의 것 흉내 내기 따위는 무른 시의 속성이다.
남다른 상상력을 보여라. 익숙함 속에서 익숙하지 않음을, 하찮은 것에서 하찮지 않음을 찾아내는 눈이 비범하고, 현존의 혼돈을 뚫고 그 눈길이 가 닿은 지점에 어김없이 생의 기미들과 예감들이 우글거렸다. 남다른 상상력과 때묻지 않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신춘문예라는 통과의례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신뢰를 크게 더하게 한다. 통념을 깨고 명징성을 보여라.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징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마치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 그렇듯이.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고,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 「석류들」)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현실의 중력을 뚫고 나가라. 응모자들의 상상력이 현실세계에 작동하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시적 상상력이 현실의 중력을 뚫지 못할 때 통념적 사유에 갇히고 만다. 좋은 시인은 제 상상력을 독창적이고 비범한 현실 통찰의 힘으로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의 실패는 현실 이해의 피상성, 깊이를 머금지 못한 독창성, 언어의 공허함, 야무지지 못한 은유의 남발에서 여지없이 전시된다.
글쓰기는 첫 사랑의 광기 같은 것
“첫사랑은 작은 광기와 커다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버나드 쇼) 그렇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작은 광기와 커다란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평생에 걸친 일이 되고 말았다. 내게 문학은 즐거운 지옥이거나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행복이다. 무엇이 나를 문학으로 이끌었을까. 삶이 그렇듯이 모든 예술은 불멸을 흉내 낸다. 그 불가능한 불멸에의 꿈이 나를 문학으로 이끌었고, 나는 이것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게 아무 희망도 없는 가망 없는 짓이란 건 벌써 눈치챘지만 이제 어쩔 수가 없다. 온 길이 먼 까닭에 되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그네와 같은 심정이다. 문학은 스스로 쓰기의 고통과 불행에 드는 일이다. 그 보상과 영예는 보잘 것 없으나, 그 과정은 지난하다. 이것의 유일한 위안은 강요되지 않은 노동이란 점이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 쓰고, 쓰고, 끊임없이 써라! 오직 하찮은 재능들만 조금 쓰고 큰 보상을 바란다. 위대한 재능이란 많이 쓰고 작은 보상에 만족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많이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작가란 그 누구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어려워하는 작자들”(토마스 만)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마라.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끊임없이 실패하는 인간들과, 실패에 주저앉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누구나 실패하지만 실패에 주저앉는 자들은 그것이 자신의 한계임을 드러내지만, 실패에 주눅 들지 않고 또 다시 실패를 향하여 나가는 자들은 자신의 내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실패의 경험에서 활력과 열정을 끌어내라. 결국 성공한 사람들은 더 많이 실패하고 그 실패에서 열정과 영감을 끌어낸 자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실패라는 토대 위에 세우는 하염없는 건축물이다.
글•장석주
시와 비평을 하고, 인문학 저술을 하는 전업작가로 오랫동안 일간신문의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됐다. 시집 <오랫동안>, <몽해항로>, <붉디붉은 호랑이> 등과 평론집 <시의 황금시대>, <상처입은 용들의 노래>, <풍경의 탄생> 등을 펴냈다. 그동안 출판과 방송, 대학 강의 등을 해왔고, 지금은 날마다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