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꿈꾸는 잔혹한 욕망을 읽다

2014-02-10     김혜영 -시인

일주일 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에 갔었다. 차가운 날씨였지만 대강당의 좌석이 가득 차 있었다. 간간이 꼬마 아이가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수상자들의 소감을 듣는 것은 새로운 묘미이다. 우선 소설 당선자의 당선 소감이 특이했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며 얼핏 혼자 산다는 멘트를 유머스럽게 날리기도 했다. 시 당선자가 소감을 발표할 때 아주 젊은 남자가 단상에 올라왔다. 윤석호 시인은 미국에 사는데 사정이 생겨 올 수 없어 삼촌을 대신해 그가 소감문을 낭독했다. 한편 서운하기도 했다. 아무리 미국에 있어도 시상식에 참석했으면 훨씬 더 신선한 감동을 전해 주었을 것이다. 

시상식이 끝난 뒤 뒤풀이 장소에서 이런 저런 인사가 오갔다. 부산일보 김영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올해 부산일보에는 유독 신춘문예 응모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사회적으로는 경기불황의 영향이 크기도 하고, 둘째로는 부산일보 마감일자가 제일 늦어 여러 곳에 투고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막판에 많이 몰린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문학인 가운데 신춘문예에 투고를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운과 실력이 좋아 처음 투고했는데 되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십년씩 투고해서 겨우 붙었다는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해마다 겨울이 오면 원고 뭉치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풍경은 없을 것이다. 한국 문단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투고자가 많다는 건 상처투성이의 사회를 반증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은 점점 열악해지는데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인구는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문학이 죽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었고, 문학의 기능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말도 많았다. 디지털과 영상이 주도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문학에의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선한 희망인지도 모른다. 경기 불황기에 투고작이 많아지는 현상은 그만큼 그들이 현실에서 설 공간이 협소해져 문학으로 선회하여 기대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가 지나친 경쟁과 갈등으로 치달아 내면적으로 감당해야 할 상처가 더 크다는 반증이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문학으로 귀환하든 내면의 상처가 커서 문학으로 회귀하든 현대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내고픈 욕망이 가득하다. 말을 해도 들어주는 타자가 없고 슬픔이 그렁그렁 넘쳐나도 우는 방법을 모르는 남자들, 집 바깥으로 탈출하고 싶어도 경제력이 없어 다시 집안으로 침잠해야 하는 여자들, 학교에 가기 싫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아이들, 모두가 흔들리는 나무처럼 불안하다. 어른들이 가득한 공간이지만 내면에는 성장이 정지되거나 금지당한 아이가 출구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의 행동에서 유아기의 자기중심적 행동 패턴으로 퇴행하는 측면을 더 쉽게 발견하기도 한다. 직장이건 가정이건 학교건 법과 제도가 작동하지만 그 그물을 뚫고 작동하는 권력의 억압이나 편견이나 차별이 가득한 사회이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그나마 손쉽게 가장 적은 비용으로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아마도 문학일 것이다. 미술, 음악, 영화 등 타 예술 장르는 문학보다 훨씬 많은 초기 투자비용이 든다면 문학은 종이와 볼펜 한 자루만 있어도 가능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예술양식인지도 모른다. 신춘문예의 미덕도 아마도 여기서 비롯할 것이다. 가장 적게 가진 자, 가장 덜 배운 자, 가장 늙은 자 등 결핍된 자들에게도 문이 열려있다는 점이 엄청난 매혹이다. 그래서 차가운 이불 밑에서 혹은 딱딱한 책상 위에서 피 같은 시를 쓰는 것이리라.

올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편들은 의미가 아주 선명하게 전달되는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 어느 신문사이건 난해해서 해독이 안되는 시는 거의 없다. 신춘문예가 새해 첫날에 신선한 시를 제공하는 기획이다 보니, 그 내용도 대부분 밝고 긍정적인 내용이 선호되고 일반 독자에게 무난하게 의미가 전달되는 작품이 뽑히기 쉽다. 그러한 미덕에 미학적 완성도까지 갖추고 있다면 어려운 관문을 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의 장점은 그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측면에서는 전문 문예지 출신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다. 신문지상에서의 홍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문학사를 결정짓는 것은 오히려 아주 독창적이거나 혁신적인 작가의 이단적인 작품인 경우가 더 많다. 기존의 문학 형식을 확 뒤엎을 수 있는 특출한 시적 기법이나 비범한 시적 안목을 전개해야 문학사에 기입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단정하고 아름다운 수사의 신춘문예 준비용 글쓰기를 연습한 시인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읽는 맛과 개성 발휘

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듯이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 가운데서 <발레리나>, <뱀을 아세요?>, <주방장은 쓴다>, <알>, <반가사유상> 등의 작품은 저마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독특한 자신만의 어법이 강화되어 읽는 맛이 새롭다. 수없이 반복되는 좌절과 추락,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뱀처럼 불안을 견디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환하게 솟구치는 희망과 빛에 주목하는 시선이 돋보인다. 이러한 측면은 여전히 신춘문예식의 방법론을 잘 따르고 있는 흔적이다. 우선 <발레리나>(조선일보, 최현우)에서는 삶의 가벼움과 반복을 아주 경쾌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애써 멋을 부리지 않은 담담한 묘사와 산뜻한 느낌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최근의 젊은 시인들이 전개한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며 난삽한 자기 독백에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시적 화자의 우중충한 고백과 무의식의 충동보다는 타자를 위로하고자 하는 덕목으로 다시 회귀한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법이다. 가벼워지는 것이다. 삶이 충분히 무겁기 때문에 시는 늘씬한 발레리나의 발목처럼, 나비처럼 훌쩍 뛰어 도약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을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 <발레리나>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최현우)

한편 <뱀을 아세요?>(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윤석호)에서는 묵직한 중년 남성의 저음이 바닥에 쫙 깔리고 있다. 이국에서의 이방인 같은 삶 속에서 독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화자의 내적 독백이 뱀의 언술을 통해 전개되는 흐름이 독특하다. 삶의 벼랑에 내몰려 본 자들만이 체득할 수 있는 쓰라림과 환멸, 그것을 비집고 올라오는 강렬한 본능에 주목한 점이 흥미롭다.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라는 구절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지독한 겨울바람 견딘 새순처럼 싱싱함 기대

청춘의 푸른 숲을 지나온 뱀이 이제는 조금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더 세찬 바람과 폭풍우에 시달릴 때 뱀이 겪는 불안은 어찌 보면 모든 생명체의 숙명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가 장밋빛일 거라는 희망에 배반당할 때 존재를 잠식하는 불안에 대한 사유가 돋보인다. 삶이 불안과 쾌락 사이에서 반복하는 패턴임을 지각하는 뱀은 잠시 먼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에 잠시 기대어본다. 이 시 역시 신춘문예식의 패턴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즉 극단적인 슬픔이나 극단적인 쾌락이나 극단적인 비판과 증오가 시를 장악하지는 않는다.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적당히 금이 가고 적당히 상처가 있지만 여전히 빛나는 것이 삶이요 시임을 잊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글쓰기 자체가 갖는 의미와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집요한 성찰을 담은 시가 눈길을 끈다. <주방장은 쓴다>(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영재)에서 시인은 글을 쓰는 행위와 주방장이 하는 요리를 겹치면서 아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 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 <주방장은 쓴다>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영재)

첫 연에서 그가 기존의 서정시에서 그려내는 자연 풍경과 어설픈 위로의 시선을 부정하는 태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적 발상을 찾아 방황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느끼는 시적 허기는 배고픔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기존의 시 체계를 뒤엎으면서 밥이 될 수 없는 시의 운명에 대한 냉철한 통찰이 읽힌다. 시가 자연의 재현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몽상적인 사유만으로 구성될 수 없는 것임을 천명한다. 그래서 시인은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라는 확고한 자신만의 인식을 드러낸다. 즉 시를 쓰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무수한 욕망들이 서로 얽히고 갈등하는 어떤 지점이지만, 결코 안주할 수 없는 잠재태의 형상임을 시인이 직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는 외적인 수사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임을 세련된 어법으로 구축한 작품이다. 지독한 겨울바람을 견딘 새순처럼 험난한 시의 바다를 헤엄쳐 나갈 수 있는 싱싱한 힘이 전해져 온다.

글•김혜영
부산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등을 출간했으며, 제8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와 사상> 편집위원이며, 부산대에서 영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