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고, 글쓰고… 당신의 영혼을 돌보라”

2014-02-10     임상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독일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아이를 낳고, 나무를 심고, 책을 쓴다’고 말합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고,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고, 사회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전문가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공부하고 사유하고 글을 쓸 수 있고, 또 좋은 삶을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살아 숨 쉬는’ 학문의 길을 가기 위해 1998년 제도권 대학의 철학교수직을 돌연 사직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철학아카데미 등 대안공간적 시민 인문학 강좌에서 철학과 삶의 접목을 시도했던 철학자 이정우 교수. 2년 전 경희사이버대학교의 교양학부장을 맡은 후 그동안의 대안공간 실험을 대학에도 접목시키고 있는 그가 ‘자유로운 사유와 주체적인 글쓰기’라는 화두를 꺼냈다.

최근 인문학 중심의 후마니타스 칼리지로 새로운 교양교육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경희학원의 실험을 이어서 창설한 ‘파이데이아 홍릉’이 그의 새로운 실험공간이다. 대안시민대학의 원조격이라 할 철학아카데미에서 보기 드문 ‘마감강사’로 각광받았지만, 오히려 해마다 두터운 책들을 펴낸 저술가로 더 유명했던 이 교수이기에, 그가 내세운 인문학적 사유와 글쓰기의 교집합적 접목이 궁금했다.

- 올 1월에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시민교육을 위한 ‘파이데이아 홍릉’을 오픈했는데, 교수님이 구상부터 개교까지 모든 면에서 산파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제도권 대학 안의 대안대학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시는지요? 
 “ ‘파이데이아 홍릉’은 국내 최초로 대학의 인프라와 대안 인문학 강좌의 실험이 만나서 이루어진 ‘대학 안의 대안 연구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이래, 제도권 대학들의 격자화된 교과 운영에 반대하면서 대거 등장한 인문학자들의 연구 및 생업공간으로서  이른바 ‘대안공간’들이 많이 생겨나, 척박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분투하며, 소멸과 분화, 진보를 거듭해왔습니다. ‘파이데이아 홍릉’은 제가 십 수 년 이상 대안공간에서 활동해온 체험적 학습을 대학이라는 공간으로 확대해 만든 새로운 개념의 대안공간입니다.”

- 좋은 이름들도 많을 텐데, 학습공간을 ‘파이데이아 홍릉’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하군요.  
“파이데이아(Paideia)는 원래 그리스어로 전인교육을 뜻했는데, 나중에 키케로가 이를 라틴어 후마니타스로 번역했죠. 둘 다 인문교육을 의미합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파이데이아의 명칭은 보다 더 근원적으로 인문학의 뿌리를 찾고, 보다 더 치열하게 사유한다는 각오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대안공간이 위치한 홍릉은 문화적으로 낙후된 동대문 지역이어서 문화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각종 형태의 대안공간들은 거의 마포구에 집결해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이런 흐름과 거리가 먼 지역들에도 대안공간이 생겨나야 할 것입니다. ‘파이데이아 홍릉’을 통해서 ‘후마니타스 정신’이 대학 내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수님이 2000년에 ‘철학아카데미’라는 대안공간에서 활동하실 때, 수강생이 너무 많아 강의실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뒤에 서서 들었다는 이야기가 이젠 전설이 된 듯합니다. 당시의 시민교육과 지금의 시민교육을 비교해 보신다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학부생, 대학원생, 시민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반적으로 학생은 줄어들고 시민들이 늘었습니다. 학생 계층이 당장의 스펙 쌓기에 도움이 안 되는 ‘공부’에는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 반영된 듯합니다. 또 하나, 당시에는 대형 강의가 제법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상이 부재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전반적으로 인문학 저변이 크게 확대되었고, 관심이 다양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파이데이아 홍릉’에서는 다른 대안공간과 비교했을 때 인문 교육 뿐 아니라, 글쓰기 교육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즉물적인 인터넷 시대에 우리에게 과연 어떤 형태의 글쓰기가 필요할까요?
“단순히 개인의 주관을 표출하는 글이 아니라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으로 ‘파이데이아 홍릉’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교육이 개설되어 있고, 특히 부설 시민대학원에서는 ‘저자-되기(becoming-author)’ 과정을 열어 일반 시민에게 저술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파이데이아 홍릉’의 시민대학원 과정은 시민들로 하여금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과정입니다.”
 
-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는 훌륭한 저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글쓰기에선 관점이 중요합니다. 테크닉만 내세우는 글쓰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세 한계를 드러냅니다.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선 세상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자신만의 관점과 주체의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시민대학원에 입학한 분들은 교수들과 심층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관심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저술(또는 논문, 작품)의 방향을 잡게 됩니다. 이 점에서 ‘파이데이아 홍릉’의 시민대학원은 흔히 말하는 “맞춤교육”의 성격을 띱니다. 다음으로 공부의 방향이 잡히면,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들어야 할 몇 가지의 과목을 듣습니다. 대학원에서는 학생의 공부 방향에 부응하는 과목들을 개설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저술을 조금씩 준비합니다. 대학원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좋은 책을 쓰게 하는 데 있기 때문에, 글쓰기 전담 교수를 따로 모셔서 학생으로 하여금 글쓰기 훈련을 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도교수(튜터)와 의논하면서 저술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는 공부 결과를 논문이나 작품으로 내도 됩니다.”

- 현실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받기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저자-되기 과정을 확대할 생각입니다. 나아가 글쓰기를 인문학 분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더 확대된 의미에서의 글쓰기 교육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예컨대 이공계를 전공한 분들도 자신의 과학사상을 좋은 책으로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글쓰기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대학원 과정도 사이버를 통해 마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그럴 경우 한국에 사는 분들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들에게까지 이 과정을 전파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인터뷰·임상훈 편집장

* 이정우 교수
1959년에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최초의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시민들을 위한 철학,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소운서원을 열어 연구와 후학 양성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초의 대학 내 대안공간인 파이데이아 홍릉을 창설해 대학의 시민교육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소운 이정우 저작집(전5권), 『천하나의 고원』,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세계철학사 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