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망자'로 초대받은 매니 파버
예술가적 자부심 강한 비평계의 문제아
전주영화제 ‘망자’로 초대받은 매니 파버
힘없는 흰코기리보다 분투하는 흰개미 선호
예술가적 비평 자부심 강한 평단의 문제아
전주영화제 ‘마스터클래스’ 부문은 영화 부문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그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다. 오는 4월 30일부터 열리는 열 번째 영화제에서는 바로 그 자리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몇몇 영화평론가들을 초대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타계한 미국의 영화평론가 매니 파버에 대한 추모와 논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행사에 눈길이 갔고 그것이 특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물을 것이다. 과연 매니 파버가 누구인가? 영화 비평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시선을 영화 담론을 다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상 영화의 세기가 저물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때에 황혼의 길로 들어간 이른바 여러 ‘영화의 인간들’을 습관적으로 잊어버리곤 했던 한국의 영화 저널리즘은 단적으로 말해 (장 르누아르식으로 표현해) 영화라는 국가의 시민이 되려는 욕구가 정녕 있긴 한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 관객의 머릿속에 어떤 미미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뒤늦게라도 한 번은 그 자취라도 소환할 가치가 있는 한 영화평론가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는 것은 영화평론가로서 어떤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경유해 영화 비평의 존재론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작은 기회나마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 꼭 덧붙여야 할 말은, 파버가 영화 비평의 ‘완벽한’ 모범을 구현했다기보다는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여러모로 ‘문제적인 존재’였다는 점이다.
목수 일 하다 미술평론가로 출발
파버는 1917년 애리조나의 한 광산 마을에서 삼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에 생계 문제로 목수 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그는 이 일이 고상한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어릴 때부터 저널리즘과 미술에 뜻을 두었다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그 길에 비교적 일찍부터 몸담았다. 글쓰기로 따지면, 1942년부터 <뉴리퍼블릭>에 미술 평론을 쓰면서 존재감을 알렸고 이후로 대략 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네이션> <뉴리더> <카발리에> <아트포럼> <필름 코멘트> 등의 저널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문장과 통찰력에서 그만의 독창성을 보여줬던 파버의 글들은 그를 미국 영화 비평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줬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활력 있고 명민하며 독창적인 영화평론가”라는 수전 손태그의 평가는 그에게로 향한 수많은 찬사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파버가 남긴 수많은 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도 이래저래 논의되고 적용되는 것은 1962년에 나온 <흰코끼리 예술 대(對) 흰개미 예술>(White Elephant Art vs. Termite Art)일 것이다. 사실 파버는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처럼 어떤 체계를 갖춘 이론을 전개해온 학자나 아카데믹한 비평가는 아님에도 사람들은 이 글에 그의 기본 ‘사상’이 담겨 있을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미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여기서 파버는 두 가지 대립되는 영화 양식을 적시해낸다. 흰코끼리 예술은 작품의 모든 동공(洞空)을 번쩍이는 스타일과 창조적인 활력으로 채우는 영화로, 파버는 토니 리처드슨, 프랑수아 트뤼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이 그 구체적인 실례가 된다고 썼다. 파버는 여기에 그 자신의 경계를 먹어치우며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 그 도중에 분투하는 행위의 자취만을 남기는 ‘흰개미·촌충·곰팡이·이끼 예술’을 대립시킨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아무래도 파버는 후자를 선호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전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이 저지른 ‘죄’, 그것에 가담한 예술가들이 갖는 ‘불안’ 같은 표현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파버에 따르면, 흰코끼리 예술은 스크린의 모든 곳을, 창조성을 발휘할 잠재적인 영역으로 다루는 ‘죄’를 짓고 있고 따라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영화가 무례하고 터무니없을 수 있는 잠재력을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가시적인 ‘예술’을 추구하느라 인위적인 포화 상태를 과시하는 영화와, 창조의 어떤 ‘공백’을 보여주면서도 내파를 시도하는 영화 가운데에서 파버는 후자 쪽의 손을 들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왜 영화 안 만드냐는 질문에 “퍽유”
파버의 영화 비평이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그의 신선한 논의가 어쩌면 그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초반부를 따라가면 어느 정도 ‘여정’이 보이는 글,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완전한’ 글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단어와 다른 단어, 하나의 논점과 다른 논점 등이 부딪히고 연관을 만들어가면서 ‘스스로의 경계선을 갉아먹는’ 다성(多聲)의 글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가끔 그 안에서 길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과연 글쓴이가 해당 영화를 칭찬하는지 비난하는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 이건 영화 비평에 대한 파버의 기본적인 견해와 관련된다. 그는 영화 비평이란 어떤 영화가 다른 영화보다 우월한지, 자신이 어떤 영화를 다른 영화보다 좋아하는지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 영화 비평은 어떤 영화에 대한 판결을 내리거나 그 영화가 이야기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평의 요점이 ‘미스터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이면 많은 수수께끼를 가진 영화를 찾아내려 하고 그 안에서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려 한다. 파버의 글은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비평인 것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모종의 고양감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평 대상에 일종의 경외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어떤 정박점이 없어서 오히려 매력적인 파버의 글은 한편으로는 그가 쏟은 대단한 수고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꼭 거론되어야 한다. 예컨대 그는 어떤 영화의 일부만을 다시 보기 위해 반나절이나 걸려 교외의 영화관으로 향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한 영화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글에 대해서도 극히 엄격했던 것은, 단지 한 문장을 놓고도 (60년대 후반부터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던) 부인 패트리샤 패터슨과 오랜 논의를 거쳤다는 일화로 증명이 된다. 그래서 파버의 그리 길지도 않은 어떤 글들은 완성되기까지 2, 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파버는 열정의 영화비평가였음이 틀림없다. 그런 만큼 그는 비평이라고 하는 영역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비평가이기도 했다(70년대 중반 이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 비평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그와 비슷한 연배의 출중한 영화평론가이면서 나중에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던 제임스 에이지 같은 이를 떠올리며 사람들은 왜 영화를 직접 만들려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파버에게 던지기도 했다. 파버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라고 했다. “엿 먹어라.”(Fuck you) 그런 질문은 자기가 하고 있는 영화 비평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비평은 예술가가 되는 데 실패한 존재가 어쩔 도리 없이 빠져들게 된 ‘기생’의 작업이 절대 아니었다. 비평은 다름 아닌 그가 하기를 원하고 또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인상주의 비평’ 폄훼는 정당한가
이처럼 독창적이고 열정적이며 자의식 강한 비평가에게 ‘자식’과도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예컨대 조너선 로젠봄, 짐 호버먼, 켄트 존스 같은 미국에서 현재 활동하는 출중한 비평가들은 파버의 감화력 아래 있다. 그렇다고 파버가 무조건 다른 비평가들로부터 호의를 얻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에게 가해진 가장 손쉬운 혐의는, 이른바 ‘과학적’인 방법론을 채택한다고 하는 이들에 의한 ‘인상주의 비평’이란 고발이다. 파버의 비평은 인상주의 비평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선고 앞에서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무너져야 하는가? 기억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 비평에 한정해볼 때, 비평으로 우리에게 이런저런 ‘감동’을 안겨준 이들은 대개 비평의 ‘인상주의자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최선의 경우 그들이 인문(과)학의 어떤 틀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대신에 비평적 창조력이라 불릴 만한 것을 발휘해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식으로 말하면 비평은 재료를 새롭고 즐거운 형식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파버는 그것을 구현해낸 예술가·비평가였다. 그는 스스로도 말했다. 비평보다 완벽한 예술 형식을 상상할 수 없다고.
홍성남
영화평론가·홍익대·호서대 영화학 강사. 엮은 책으로 <오슨 웰스> <로베르 브레송의 세계> <칼 드레이어>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있고, <씨네21 영화감독사전> <필름 셰익스피어> 등의 책에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