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너머로 한국 자본주의 민낯을 포착하다

2014-03-04     이상엽<사진작가>

 

 

사진을 찍는 방법 중에 ‘걸고 찍기’라는 것이 있다. 렌즈 가까운곳에 사람이나 사물을 걸치고 찍고자 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다. ‘숄더 샷’ 또는 ‘어깨걸이 샷’이라 한다. 즉 앞에 있는 것은 부제이고 뒤에 있는 것이 주제다. 그리고 더 먼 풍경은 이들의 배경이 되어준다. 소형 카메라를 가지고 재빨리 프레임을 만들어 다중으로 레이어를 쌓는 방법이라 그리 쉽지는 않다. 현대 사진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이지만 오래전, 그러니까 1960년대 이전의 사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방법이다.

전지적 시점을 버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을 대표하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나 미국의 유진 스미스의 사진에서 이러한 기법은 찾아볼 수 없다. 당시로서는 카메라로 대상을 찍는 사이에는 그 어떤 매개도 필요하지 않았다. 카르티에-브레송처럼 피사체로부터 유령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면 1차 목격자가 되기 때문이다. 스미스처럼 아예 전지적인 시점으로 관찰자가 된다면 역시나 렌즈 앞에 그 어떤 대상도 필요치 않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주관성보다는 객관성을 중요시 했기에 초점이 맞지 않았거나 누구의 등 뒤를 걸치고 찍는 일은 없었다.
 
 이 같은 관습적인 사진의 구도는 스위스 출신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의 1958년작 <디 아메리칸스>로 전복된다. 객관성은 주관성으로 치환되고 초점의 심도는 급격하게 좁아져 여기저기 뿌옇게 표현된다. 결정적으로 엿보는 듯한 ‘걸고 찍기’가 거기서부터 출현한다. 그는 카르티에-브레송처럼 사라지지도, 스미스처럼 전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실재하는 사실을 목격하는 다중의 하나가 되어 그들 사이에 들어가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실체를 파악하는 좀 더 진실한 시각이라 믿는다. 애국심, 자본주의, 인종차별 등 당시로서는 미국인들이 언급하지 않거나 은폐된 진실을 타인의 시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자주 내 관점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제라고 의심받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진가로서의 삶을 절대로 아무렇게나 살 리 없다 생각한다. 의견은 때때로 일종의 비평처럼 구성된다. 그러나 비평은 애정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아마도 희망 혹은 슬픔도 중요하다. 또한 그것은 항상 사진을 생산하는 자기 스스로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 사진은 의도되지 않고, 미리 구성되지도 않으며, 관객이 내 관점을 공유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약 사진이 관객의 마음에 인상을 남긴다면 어떤 것이든 성취되었다고 난 느낄 것이다.”(로버트 프랭크, 1958년)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지만 로버트 프랭크의 문체는 많은 사진가들에게서 영향을 주고 변주된다. 나 역시 그처럼 라이카 한 대에 밝은 렌즈 하나만 가지고 우리 사회 주변부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문뜩 우리가 유일한 체제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본주의의 민낯에서 야수의 그것을 발견한다. 문득문득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자본주의의 얼굴은 좀처럼 투명한 공간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등 뒤에서 관찰할 때, 내가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할 때 그 얼굴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사람들 어깨 사이로 드러나는 자본의 민낯
 
 사실 로버트 프랭크처럼 카메라를 자신의 눈과 사고의 연장으로 삼아 한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려 한 사진가들의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고 나 역시 매체의 어사인먼트에 상관없이 언제고 꼭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특정한 소재 대신 자본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사진으로 표현하기란 참으로 난망한 일이다. 어차피 사진은 사건의 표면만을 전달할 뿐, 그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보는 이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은 수없이 많이 찍은 사진들의 연결로만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마감없는 작업을 하다 보니 하릴없이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을 나와 한참을 걷는다. 마침 오른쪽으로 코너에 명동 한국은행 본점 건물이 보인다. 일본인 다쓰노의 설계로 일본 다이이치은행 서울지점 건물로 짓기 시작해 1912년 준공되어 조선은행 본점으로 쓰였다. 제국주의 지배의 본산이자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그 앞에는 돌로 만든 아름다운 벤치와 낙엽이 깔려있다. 그저 황망히 걸어가는 금융 사무직 노동자의 뒷모습만이 파인더에 들어온다. 일상의 풍경이다. 하지만 조금 후 전국노점상연합회의 거대한 시위행렬이 한국은행 본점 앞을 지난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균열을 낸 자스민 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것은 젊은 노점상이었다. 이 운동은 튀니지에 머무르지 않고 이집트, 리비아 등 다른 아랍 국가에도 확대되어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오큐파이’ 운동을 일으켰다. 노점상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선 것은 용산참사 이후 도시빈민의 삶이 더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은 그들의 주거공간을 박탈하고 안심하고 노점을 할 수 있는 노동의 공간도 빼앗았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참으로 적절하게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이혼하려는 것이 오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저 대리석으로 무장한 한국은행은 지나가는 행렬을 전지적 시점으로 무심히 내려다보는 듯하다. 지젝의 말처럼 “구원자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다. 그들은 더 이상 자본으로부터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으니 말이다.
 
자본주의를 찍는 카메라의 소임
 
 후기자본주의의 탈출구라 불리는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파생상품이 유동하고, 곳곳에서 주거와 유리된 주택을 찍어낸 지도 꽤 됐다. 용산의 철거민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다 5명이 불타 숨졌고, 그 사이 최소 생계도 어려웠던 한 여성장애인은 자신의 집에서 불에 타 죽었다. 보조인이 없어 움직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맹독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는 암에 걸려 죽어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적용되는 관계가 아니었다. 식당일을 하는 엄마는 다리가 부러져 일을 못하자 신용불량자 두 딸과 함께 자살했다. 죽음이 흔한 사회라 쉬 잊히고 사람들은 일상의 외면으로 돌아선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는커녕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능력을 잃어버린 탓일지 모른다. 죽은 이들의 행위는 이제 어떤 이유를 갖다대본들 자본주의 본능에 반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들을 옹호하는 순간 사회구성원의 다수는 무엇인가를 잃어야 한다는 공포감도 동반된다. 바로 그들의 죽음을 예술로 따진다면 ‘반미학’의 저편에 놓여있는 것이다. 어깨너머로 미국의 자본주의를 관찰했던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운명을 의식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쓴 앙드레 말로를 생각했다. 사람은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에 당황한다. 그러나 달리 어떻게 하면 당신은 그 노력과 실패를 정당화시킬 것인가?” 만일 사진의 사회적 책임이 오늘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 ‘반(反)미학’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이 시대 사진가들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늘 기존의 프레임과 미학에 대항하고 새로운 관점을 세우기 위해 아방가르드 역할을 자임한 것이 사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 자본주의의 ‘운명’을 필름과 인화지 위에 역사와 변화 ‘의식’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진의 소임이 끝난 먼 훗날 미학적 관점에서 다시 평가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다만 조바심이 나는 것이 있다. 어깨 너머 언뜻언뜻 보이는 저 자본주의의 민낯에 나는 초점은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
 

 

 

 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 노동당 정책위부의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로 있다. <레닌이 있는 풍경>(산책자) 등의 책을 쓰고 <변경>(류가헌)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의 풍경을 7년째 찍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