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서양주의의 함정
장담컨대 이 문제는 곧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불법이민자 추방 건수나 일각에서 말하는 초등학생 대상 ‘젠더 이론’ 교육보다도 덜 주목 받을 것이다. 그 문제는 바로 높은 구매력을 지닌 8천만 인구와 전 세계 부의 절반가량을 아우르게 될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말한다.(1) 자유무역협정을 두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8개 EU 회원국을 대표하여 미국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고, 오는 5월 구성될 차기 유럽의회가 이를 승인하게 된다.
아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난 2월 11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발걸음을 재촉할 것을 제안했다. “서두르는 게 모든 면에서 이롭다. 안 그러면 두려움과 위협, 긴장감만 쌓여갈 것이다.”
서두르는 게 모든 면에서 이롭다? 이 사안에서는 자유화의 톱니바퀴와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산업 로비에 제동을 거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EU 집행위원들이 위임 받은 협상권한의 내용은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반면, 자유방임주의의 교본을 읊는 것 말고 전략이란 게 존재한다면, 유럽연합의 무역전략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정보수집능력 앞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2) 상대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뭔가 감추려는 기색이 보일 때는 뜻밖의 기분 좋은 일이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실제로 자유무역과 범(汎)대서양주의가 확산되면서 유럽 각국은 성장호르몬을 주입한 고기, 유전자 조작 옥수수, 염소로 세척한 닭고기를 수입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은 실업 퇴치를 위해 공공지출을 쏟아 붓고 있는 와중에 자국 생산자들에 대한 우대 정책(미국산 우대법)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환태평양동반자협정이 구실로 내세운 것은 바로 고용이다. 로비업체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연구’ 결과를 앞세운 협정 지지자들은 수입 증가로 사라질 일자리는 모른 체하고 수출 증대로 창출될 일자리만 강조한다. 그러나 경제학자 장뤽 그레오는 지난 25년 동안 자유주의가 확대(단일 시장, 단일 화폐, 범대서양 공동시장)될 때마다 실업 감소를 구실로 이를 옹호해 왔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1988년 발표된 보고서 <도전 1992>는 “단일 시장 덕분에 5~6백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정작 단일 시장이 출범하자 경기침체의 여파로 유럽에서 3~4백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3)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다국적기업들을 위해 고안된 다자간투자협정(MAI)이 1998년 대중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 협정에서 가장 유해한 개념들을 일부 물려받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도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1) 로리 월러치, ‘범대서양 조약, 유럽을 위협하는 태풍’,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
(2) 유럽의회 유럽단일좌파(GUE)그룹 소속 파트릭 르야릭 의원의 저서 <국민들과 싸우는 드라큘라>(2013)에 협상 권한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3) 장뤽 그레오, ‘범대서양시장 프로젝트’, 레스퓌블리카 재단 콜로키움 발표집 76호, 파리, 2013년 9월.
(4) 크리스티앙 드브리, ‘다자간투자협정은 어떻게 와해됐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