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예술가들의 새로운 낙원?

2014-03-04     자크 드니<예술평론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은행이나 그 밖의 금융 기관에 호소할 필요 없이 누구나 프로젝트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문화 분야에서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기업과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낙원이 열린 것일까?

 과자와 슬라이드 영상이 함께 제공되는 아침식사 시간. 울룰은 매주 한 번 웹2.0 버전의 참여 펀딩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한다. 오늘의 메뉴에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대중에 의한 자금조달’을 의미)에 대한 발표도 들어 있다. 은행 대출이나 지인들의 후원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으로 부상 중인 크라우드펀딩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는 이들에게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 설명회에 온 사람은 모두 7명. 그 중 한 명은 파리 지역에 집시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른 이는 예술적인 놀이 형식의 이벤트를 기획 중이다. 그의 이웃은 뮤직 비디오 제작을 원한다. 이 설명회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수단을 논의한다.
 
 첫 번째 발표의 제목은 ‘행복한 프로젝트 기획자를 위한 6가지 기본 원칙’. 이어 사례들이 제시된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숫자와 키워드에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는 인터넷 상에서 자금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해 있는 ‘커뮤니티’가 광범위할수록 자신의 친구, 친구의 친구, 다시 그 친구의 친구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존 카사베츠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뉴욕시민들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여 영화 <그림자들>을 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인터넷은 훨씬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덕분에 ‘친구’ 집단은 더욱 확대되고 가까워졌으며,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 분야는 미국이 선구자다. 자유의 여신상 역시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완공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자와 창업자들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 분야가 가장 활발하다. 영화 제작을 필두로 현재는 음악 분야까지 확장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크라우드펀딩 초기 사례
 
 지난 3년 동안, 총 3천 개의 프로젝트를 위해 25만 명으로부터 1천만 유로를 모금한 ‘울룰’은 현재 경쟁이 치열해진 이 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사이트로 손꼽힌다.(1) 펀딩 프로젝트가 가장 많이 몰리는 분야는 ‘영화, 비디오’(예술영화 여부와 무관)와 ‘음악’이다. ‘연대’ 분야가 그 뒤를 잇는다. 2010년 3월 탄생한 또 다른 플랫폼, 키스키스뱅크뱅크는 2013년 11월 현재, ‘키스뱅커 18만5천903명의 지원으로’ 5천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위해 총 934만 1651유로를 모금했다고 발표했다.
 
 이 두 회사의 출범이 성공하자 비슷한 시도들이 줄을 이었다. 2012년 프랑스의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4천만 유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013년 8천만 유로로 두 배가 됐고, 2015 년에는 1억5천에서 2억 유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 제정된 법률들의 개정으로 이 분야의 성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30일,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부 장관은 이 분야의 주역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유연한 법체계와 육성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서로 다른 모금형태들을 구분하고 각각에 적합한 법적, 금융적 틀을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울룰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크라우드펀딩의 단일한 형태란 존재하지 않으며,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뉜다. 울룰처럼 현물로 보상하거나, 아낙사고와 위시드 같이 참여지분에 따라 보상하고, 프레 뒤니옹처럼 이자를 지급한다. 바빌론 같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대출도 있다.”
 
 문화 분야에서, 공동제작 형식을 취하는 일부 플랫폼에서는 지원자들을 투자자 대접한다. 이들은 작품이 성공할 경우 지원금 비율에 따라 이익을 돌려받게 된다. 창작지원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5유로를 지원하면 음반 뒷면에 이름을 실어주고, 50유로를 지원하면 음반과 함께 콘서트 티켓을 선물로 제공하는 식이다.
 
불분명한 투자금 회수가 과제
 
 현재 이런 공동제작 모델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례로, 이미 2007년 네티즌을 상대로 현금 제공 약속을 통해 음반 공동제작을 제안한 바 있는 ‘마이 메이저 컴퍼니’ 역시 이 모델을 채택하고 조건부로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 회사는 초창기에 몇몇 상업적 성공 덕분에 인기를 얻었다. 347명의 ‘팬-제작자들’의 지원금 7만 유로로 제작한 그레구아르라는 무명 가수의 앨범 <투아+무아(Toi+Moi)>는 1백만장이 넘게 팔렸다. 하지만 항상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가 기존 음반사들과 다르지 않게 경영이 불투명하다는 비난이 페이스북에 쇄도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지원금은 모두 어디로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투자금 회수’는 어떻게 보장받아야 할까?(2) 울룰과 키스키스뱅크뱅크의 경우 훨씬 선명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기한 내에 지원 목표액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지원금은 반환된다. 목표액이 달성된 경우는 플랫폼이 기금의 7~8%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음악 산업 구조가 완전히 탈바꿈하는 시대다. 프로덕션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대신 울룰이나 키스키스뱅크뱅크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펀딩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아티스트들이나 무명 밴드들, 혹은 좀 더 잘 알려진 가수들, 독립 레이블들, 심지어 이 분야 전문 잡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웹진으로 출발한 <곤자이(Gonzaï)>도 이렇게 종이 잡지가 되었다.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페스티벌이나 레이블 관계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더 큰 회사들은 아직 멀리서 관망하는 중이지만 곧 이런 추세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울룰을 이끄는 4명 중 한 명인 마티외 메르뒤포제는 아티스트들이 이미 “기회를 잡았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라디오 방송이나 대형 배급사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
 
종전보다 더 인간적인 협력관계가 장점
 
 그중 일부는 팬 커뮤니티에 지원을 호소하는 모델이 곧 일반화될 것을 예견했다. 2007년 라디오헤드는 앨범 <인 레인보우즈>를 음반 형태로 발매하기에 앞서 팬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음원을 내려 받을 수 있게 했다. 심지어 무료로도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이런 방식은 광고와 수익의 측면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버즈(buzz) 마케팅’의 효과가 증명된 셈이다.
 
 헤븐리 스위트니스의 프랭크 데콜롱주는 키스키스뱅크뱅크를 통해 이미 두 차례나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사회관계망 서비스 ‘마이 스페이스’에서 8년 전에 발굴한 앤서니 조셉의 새 앨범 녹음을 위한 이동 비용 7,500유로와, 래퍼 거츠의 새 앨범 홍보 비용 1만2,000유로를 충당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들은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팬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대중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만큼 상호신뢰가 중요해진다. 아티스트는 최선을 다하고,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고, 팬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순전히 금전관계로만 맺어진 대출이나 공동제작에 비해 더 인간적인 협력 관계가 가능해진다.”
 
 트럼펫 연주자 알방 다르슈와 그래픽 디자이너 실뱅 조블랭도 같은 방식으로 ‘음악과 삽화’ 프로젝트 오르피큐브(OrphiCube)를 진행했다. 메탈 그룹 클론은 유럽순회공연을 했고, 그룹 레 블레로 드 라벨은 파생상품을 출시했으며, 들라노 오케스트라는 세 번째 앨범을 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적인 록 그룹 어파트먼트는 2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2012년 9월 파리의 부프뒤노르에서 공연을 열었다. 원칙적으로 불가능이란 없다. 흘러간 옛 노래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국 최대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의 캠페인 덕분에 1960~7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의 집시 음악 음원이 복원되기도 했다. 메르뒤포제는 “이런 캠페인은 다른 프로젝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보조 수단인 셈”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예는 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만다 파머는 킥스타터를 통해 2만5,000명의 기부자로부터 119만2,793달러를 모금했다. 목표액 10만 달러의 12배에 달하는 액수다. 비교적 자유로운 저작물 이용을 보장하는 CC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의 지지자인 파머는 “부탁하는 예술(Art of Asking)”이라는 제목으로 테드(TED)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아티스트가 영업을 맡아야 하는 현실 과제
 
 한편, 코넷 연주자 메데리크 콜리뇽은 “예술가들은 도움을 간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만큼 비참한 상황에 있다”고 말한다. 예술가들은 플랫폼에 수수료(8%)를 지불해야 할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된다는 부담도 진다. 콜리뇽의 경우, 5년 전부터 힘겹게 진행해 온 자전적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예산 8,400유로를 확보해야 했다. 그는 목표액보다 13% 넘는 금액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는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음 앨범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할 생각이 없다. “이런 방식은 프로덕션사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의 경직된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일상적인 관리 업무가 너무 부담스럽다.”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관계망 유지가 필수적이다. 콜리뇽은 그나마 이 분야에 소질이 있는 편이다. 가령, 투아레그 록 그룹 테라카프트는 음반과 함께 제공할 책과 DVD 제작을 위한 비용 마련에 나섰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2주 동안 모금에 나섰지만 목표액 1만5,000유로의 10%만 확보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초반 며칠 사이에 인기몰이를 해야 눈덩이 효과로 지원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원한다면, 뮤지션은 경영자 역할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테면 프로젝트를 개시하고, 진행을 관리하고, 애프터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뮤지션 앨리나 시몬 역시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환멸 섞인 어투로 같은 관점을 제시한다. “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내 얼굴 사진이 찍힌 티셔츠 따위나 팔고 싶지는 않았다.”(3) 이에 덧붙여 그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입소문 마케팅)에 소질이 있는 이들이 음악성까지 갖추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과 영상에 대한 검색 빈도는 훨씬 높아진다.
 
 따라서 전통적인 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새롭게 부상하는 모델에서도 예술 이외의 전문 분야를 담당해줄 중개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유명 플랫폼들은 이미 해결책을 강구해 놓았다. 프로젝트와 관련한 노하우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가령, 한 네티즌은 패션 관련 아이템을 제공하고, 다른 네티즌은 경영 능력을 제공하고, 또 다른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재능을 발휘하는 식이다. 기존 산업과 달리 수공업적인 협업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름하여,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다.
 
글·자크 드니 Jacques Denis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1901년 법에 따라 참여 펀딩 조직들의 대표체로 출범한 프랑스 참여 펀딩(FPF)에는 총 27개 플랫폼이 소속되어 있다.
(2) Sébastien Tortu, ‘My Major Company, le revers peu reluisant de la médaille(마이 메이저 컴퍼니, 어두운 이면)’, <Le Point>, 파리, 2013년 1월 9일.
(3) Alina Simone, ‘The end of quiet music’, 2013년 9월 25일.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