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과 지진마저 보험담보로

2014-03-04     라즈미그 크쉐양 | 사회학자

 

  가뭄, 허리케인, 홍수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며 사람들에게 비극을 안겨주고 비참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극히 당연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누가 이 엄청난 피해를 보상해줄 것인가? 잃을 게 너무 많아진 보험사들은 정부에 모든 걸 떠넘긴다. 하지만 이미 부채로 허덕이는 정부는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이에 각국 정부는 금융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시장의 냉혹한 계산법과 투기성 상품에 손을 댄다. 

 2013년 11월,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제도를 강타했다. 태풍 하이옌은 6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고, 파손 혹은 붕괴된 건물만도 150만여 채에 달했으며 130억 달러의 물질적 피해를 야기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뮌헨 리’와 ‘윌리스 리’라고 하는 두 회사의 보험 중개인들이 유엔 재해경감 사무국 대표를 대동하고 필리핀 상원의원들 앞에서 신규 금융 상품을 소개했다. 자연 재해에 대한 위기관리로 국가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시켜줄 수 있다는 상품이었다. ‘필리핀 지자체 당국을 위한 재난 위기 보험 설계’라는 일종의 고금리 재해 차관으로, 이를 통해 지자체는 민간 투자자에게 채권을 판매한다.(1) 이에 따라 지자체의 채권을 매입한 민간 투자자는 정부가 지급하는 고금리의 이자를 받는 대신, 사전에 정의된 중대한 재해가 닥쳤을 경우 투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렇듯 기후 파생상품이나 대(對)재해 채권, 그 외 기후 관련 재해를 보장하는 여타의 보험 상품들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비단 아시아 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멕시코, 터키, 칠레, 나아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미국의 앨라배마 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관련 상품을 이용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재해 관련 상품을 홍보하는 이들은 자연재해 및 그와 관련한 위험에 대해 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험이 되는 부분을 산정하고 보험료를 지불하며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는 등 금융 시장 차원에서 재해 관련 보험을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금융계는 왜 하필 자연계의 적신호가 나날이 더욱 심해져가는 이때 자연에 손을 뻗친 것일까?

 수세기 동안 지구는 경제계에 원자재와 천연자원을 제공해주었으며,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내주었다. 심지어 생태계는 산업 생산에 따른 폐기물마저 고스란히 흡수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기능이 더 이상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자재와 폐기물 처리 비용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자연 재해의 빈도 및 강도가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보험 비용도 상승하는 결과가 초래됐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사는 산업 주체의 수익률을 낮추라는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렇듯 생태계에 닥친 지금의 위기 상황은 비단 자본주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야기하는 변수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 재해의 금융 자본화 정책은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준 듯하다. 보험회사와 재보험회사(4면 박스기사 참고)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냈고, 재해 위험에 대해 채권 예탁이라는 방법을 쓰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미국의 모기지론에서 성공적으로 테스트한 메커니즘을 기후 문제로 옮겨놓은 셈이었다.

 이 새로운 자본 무기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상품은 바로 ‘캣 본드’이다. ‘catastrophe bond’를 줄인 말로 ‘대(對)재해 채권’을 이르는 말이다. 채권은 하나의 저당 증서로,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채무 형태로 분할되기도 하며, 상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캣 본드’의 특징은 국가가 사회기반시설 교체를 위해 또는 기업이 혁신 설비 투자를 위해 계약이라는 형태로 부채를 지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 그 불확실성의 요인에 따라 생겨난 채권이라는 점이다. 이 채권은 언젠가 일어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과 관계되며, 상당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야기될 수 있는 사건과 관련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 재해에 따른 위험을 시공간 속에 분산시켜 놓는 셈인데, 재정적으로 지각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전 세계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한, 이러한 위험은 채권 예탁을 통해 최대한 ‘분할’될 수 있다.

 위험 분산을 내세운 캣 본드의 실상

 자연을 대상으로 한 이 기발한 금융상품은 1994년 맨 처음 탄생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손해비용이 발생한 두 재앙, 즉 1992년 플로리다에 상륙한 허리케인 앤드류와 1994년 캘리포니아의 노스리지 지진 이후, 보험엄계는 새로운 자금 출처를 찾아야 했다. 이후 200여 개의 캣 본드가 생겨났으며, 그 가운데 2007년 한 해에만 27개의 캣 본드가 만들어졌다. 140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였다.

 다른 일반 유가증권과 마찬가지로 대(對)재해 채권인 캣 본드 역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나 피치, 무디스 등과 같은 신용평가사의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평가사들은 대개 이들 채권에 BB 등급이라는 형편없는 점수를 주는데, 이는 곧 이들 채권에 위험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캣 본드의 가치는 위험 요인이 실현되리라는 다소 높은 확률과 관련 채권의 수급량에 따라 달라진다. 채권은 재해가 다가오고 있을 때에도 계속 거래되며, 유럽에서 폭염이 일어났을 때와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강타했을 때처럼 심지어 재해가 일어나는 도중에도 거래가 이뤄진다. 이를 두고 전문 트레이더들은 거래상의 특징을 살려 ‘live cat bond trad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실시간’으로 채권 거래가 이뤄진다는 뜻이다.(2)

 ‘재해 위험 거래소’라는 뜻으로 ‘카텍스(Catex)’라고도 불리는 채권 거래소는 1995년 설립된 뒤 뉴저지에 소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지진 위험에 크게 노출된 투자자라면 자신의 캣 본드를 캐리비안 해역의 허리케인에 대한 캣 본드나 인도양에서의 지진해일에 대한 캣 본드와 교환함으로써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다. 또한 카텍스 거래소는 고객들이 위험을 가늠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도 제공한다.

 이 같은 메커니즘에 있어 핵심적인 주체 중 하나가 바로 ‘리스크 모델링 에이전시’이다. 이들의 목표는 재해 위험을 모델화하여 자연적 요소를 수량화하고 불확실한 요인을 최대한 줄이는 데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델링 에이전시는 얼마 되지 않으나, ‘어플라이드 인슈어런스 리서치(AIR)’, ‘에케캣’, ‘리스크 매니지먼트 솔루(RMS)’ 등 대부분은 미국계 회사다. 이 재난 리스크 모델 업체들은 바람의 세기라든가 사이클론의 규모, 기온, 건축에 사용된 자재나 지형, 인구 등 관련 지역의 물리적 특성과 같은 변수들에 따라 특정 재해 비용을 계산하고, 아울러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피해보상액을 산정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캣 본드의 가격이 결정된다.

 지금까지 발행된 대부분의 캣 본드는 보험사나 재보험사가 발행한 것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각국 스스로 ‘정부’의 캣 본드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듯 캣 본드를 발행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경영대학인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의 보험 이론가들이 ‘론칭’한 이 같은 유행은 세계은행과 OECD 같은 국제기구들이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나서는 상황이다.

 

글·라즈미그 크쉐양

사회학자, 보르도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번역·배영란

 

 (1) Cf. www.swissre.com/sigma,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보려면 ‘2011 자연재해 및 기술재해 Catastrophes naturelles et techniques en 2011’, <시그마>, n° 2, Zurich, 2012 참고. 이후의 자료도 해당 호의 내용을 참고하였음.

(2) Koko Warner 외, ‘Adaptation to climate change. Linking disaster risk reduction and insurance’, 유엔 재해경감 국제전략 기구(United Nations International Strategy for Disaster Reduction Secretariat, UNISDR),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