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냉담한루마니아 생계형 농민들

2014-03-04     피에르 수숑

허울 좋은 농업합리화 강제조치에 분노

  수백만의 루마니아인은 생계형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경쟁력’이란 미명 아래 생계형 농업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결정했다. ‘유럽화를 부추기는 선동자들’은 루마니아의 전국을 돌아다니며 옛 시절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들의 상업성 광고와 달리, 자급자족을 위해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국제기구가 도입한 긴축재정에 시달리며 생계형 농업의 중단조치에 저항하고 있다.

  농림부의 자동차는 부쿠레슈티를 벗어나자마자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을 켜고 시골길을 내달렸다. 카르파티아 산맥 기슭에 이르자, 미국의 파이오니아사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유전자 변형 옥수수 밭임을 알리는 푯말을 박아놓은 게 보였다. 농업투자 기관인 아르고 인베스트가 일구는 수백 헥타르의 곡물 농장 중앙에 중공업의 골조들, 거대한 철골 구조들이 방치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루마니아의 거대 농업투자 기관인 아르고 인베스트가 가장 최근의 목표, 즉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 이른바 체르노지옴이라 불리는 땅을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 대형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농어촌 발전을 위한 기금지급 기관(APDRP)의 홍보 책임자인 가브리엘 가르반이 “보세요! 저게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외쳤다.

 국도변에 번쩍거리는 미쉐린 타이어 공장의 굴뚝이 보였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황조롱이 한 마리가 무성한 풀밭에 앉아 있는 70대 농부를 경계하며 알을 품고 있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땅바닥엔 낫을 놓은 채, 농부는 고개를 들어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젖소를 쳐다 보았다. 가르반이 농부를 보며 시를 짓듯 읊조렸다. “농부가 수양을 쌓고 있네.” 우리는 순간 “영원은 시골에서 탄생했다”라고 말한 루마니아의 철학자, 루시안 블라가의 유명한 문구를 떠올렸다.

 루마니아 중심부인 세르카이아읍에 접어 들자,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광활한 들판이 펼쳐졌다. 읍사무소 문에 “국가 농촌진흥청 프로그램(PNDR) 원정대가 여러분의 마을을 방문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유럽연합의 원정대 직원” 6명이 읍축구장에 설치된 텐트 속에서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젖소 농장에 대한 자금 지원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루마니아는 2007년부터 농촌 개발을 위한 유럽농업기금(EAFRD) 혜택을 받고 있다. 루마니아와 EAFRD가 1헥타르 미만의 농지를 소유한 루마니아의 생계형 농민 350만 명을 “잠재적 사업가”로 전환시키기 위해 공동투자에 나섰다.

 이곳의 농민 비율은 1989년 28%에서 현재 30%로 상승해 유럽 최고 수준이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산업부문의 위축이 ‘귀농’을 부추겼다. 프랑스의 농민들이 평균 55헥타르의 토지를 소유한 데 비해 이곳 농민들은 평균 2헥타르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가르반이 “우리가 방금 전 지나친 목동이 바로 경쟁력이 없는 루마니아 농업의 이미지”라며 통렬한 비난조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1인당 5리터의 우유로 유럽 시장에 진입한단 말입니까?”

 30여 명의 세르카이아 주민이 PNDR 시사회에 참석했다. 가르반의 동료 카타리나 무사캇이 “오피니언 리더들을 설득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이곳의 사제와 교사들이 왔다”며 기뻐했다. 화면에 농민이 5년간 2만 4000kg의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무상 자금 7,400유로를 포함해 총 2만 3,754유로를 각 농민에게 투자하겠다는 경제금융 운영의 목표를 알리는 홍보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무사캇이 “소작농들은 이 혜택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되도록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드르 스타람투가 바로 그런 류의 사람이다. 31세의 이 젊은 농업경제학자는 서둘러 우리를 최근에 마련한 자신의 유기농 블루베리 농장으로 데리고 갔다. 농장 투자금의 절반인 30만 유로를 유럽연합이 투자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부담했다. 스타람투는 “빚은 졌지만 사업은 잘된다. 내가 포르투갈 회사에 전량을 판매하면, 이 회사는 독일, 칠레 등에 수출한다. 난 간혹 이곳에서조차 내 과일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유기농 과일이 세상을 이렇게 빙빙 도는 게 과연 친환경적인가?”라고 묻자, 그는 “난 정말로 그걸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대답했다.

 서유럽 농산물이 슈퍼마켓을 점령한 모순

 이튿날 루마니아 남부 발라 지역 언저리에서, 하디 코우리가 우리 팔을 잡으며 “제 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 이걸 입으실래요?”라고 말했다. 하디톤 그룹의 회장으로 레바논 출신인 30대의 코우리는 옛 농업 협동조합(1)의 건물 4동에서 사육 중인 닭 12만 마리에서 나오는 오염문질을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흰 가운을 건넸다.

 그는 대부분 중동 출신인 12명의 양계업자들과 함께 루마니아에서 소비되는 달걀의 4분의1을 생산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유럽연합(EU)이 제공하는 EAFRD 마크가 없다면, 은행들은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만약 당신이 EAFRD 마크가 있으면, 은행들은 자진해서 당신을 찾아온다!” 이런 맥락에서 EAFRD는 코우리가 자신의 농장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100만 유로를 대출해 주었다. 젊은 투자가인 코우리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루마니아는 정말 좋은 나라다. 옛 공산당 건물(농업 협동조합 건물)을 얻는 데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25명의 노동자들에겐 거의 푼돈이나 다름없는 임금을 지급하는 데다, 유럽 보조금까지 많이 받고 있다. 문제는 폴란드인들이다.”

“그들이 당신의 경쟁자입니까?”

“저들은 비열한 방법으로 경쟁을 한다. 저들은 우리와 다른 위생기준을 적용하는 데다 우리보다 보조금도 더 받는다. 유럽화한다는 것은 세계화와 금전 측면에선 완벽하지만 우리 모두 경쟁관계가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전직 법무부 장관인 테오도르 니콜레스쿠는 “하디의 성공은 우리 모두의 모델이다”면서 “유럽연합의 도움으로 우리는 경쟁력도 갖추고, 자유시장이 작동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이 시장이 사람들의 행동 가이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밤, 우리는 대리석 욕실이 갖춰진 60m² 크기의 방에서 묵었다. EAFRD의 지원으로 오픈한 이 관광 펜션은 한적했다. 가르반과 무사캇이 한잔하며 각각 물리학자와 패션 스타일리스트였던 자신의 부모들을 떠올렸다. 부모님들이 도시생활을 하느라 가족의 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마니아에는 사회조직의 기본 단위인 이른바 고스포다리(gospodarie)가 아직 남아 있다. 시골의 집, 뜰, 별채, 작은 정원 등이 고스포다리에 속한다. 한편, 농림부에서 운전사로 일하는 이온 네아구는 3헥타르의 부모님 땅을 한 농부에 세를 주었고, 농부는 이 땅을 조합과 함께(2) 일궈 네아구에게 세를 낸다고 했다. 펜션의 요리사가 끼어들며 “단언컨대, 파리에서 구걸하는 게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 난 내 고스포다리를 경작하며, 돼지, 닭, 소도 키운다. 이것들이 없다면, 나 같은 계절노동자가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하소연했다. 만약 젊은 펜션의 여종업원이 부모님의 고스포다리 혜택을 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삽을 잡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반대로 네아구는 조상들이 짓던 농장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면서 “난 내 뿌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농업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농사일에 대한 가족의 평가절하가 자급자족 경작의 포기 프로세스에 박차를 더하고 있다.(3)

 PNDR 원정대가 있는 발라 지역에서 300km 떨어진 곳에서, 테오도르 빈가르잔은 50헥타르 땅에 생계형 농사를 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의 아들 루시안이 “저랑 가보실래요?”라며 우리를 뜰로 안내했다. 34세의 이 엔지니어는 “시내에서 운만 좋으면 300유로까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이를 마다하고 이곳 빈투데조스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외양간에 있는 암소 3마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늙은 젖소의 젖을 짜서 우리에게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건넸다. 그가 “이것이 바로 세계화다!”라며 농을 걸었다. 이어 그는 “벽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우유 잔을 씻으며, 수도가 들어온 것도 최근 일이다!”고 덧붙였다. 빈가르잔 가족은 가축의 배설물을 송아지 사료로 쓸 곡물 재배에 필요한 비료로 쓰고 있다고 했다. “1년 내내 농사를 짓지만 연말에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달랑 크리스마스 때 먹을 돼지 한 마리와 우리가 평소 먹는 우유와 달걀이 전부다.”

 이 생계형 자급자족의 어려움, 즉 ‘노예’ 노동의 책임자는 누구일까? 빈가르잔은 “이것은 유럽연합의 더러운 짓 때문이다. 내 막내아들은 일자리가 없어 미국으로 이주했다. 우리의 현지 상품들은 모두 아주 질 좋은 유기농 상품들이다”고 분개했다. 그는 “서유럽의 상품들이 우리 상품들을 짓밟고 있다! 저들은 우리보다 보조금도 더 받고 더 기계화되어 있다. 그래서 저들의 상품은 우리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난 이곳에서 모든 것을 생산한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팔 수가 없다. 슈퍼마켓에 가보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감자가 점령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빈가르잔은 한때 유럽연합을 믿었다. 차우세스쿠가 몰락한 몇 주 후, 그는 서유럽을 여행했다. 그는 벨기에,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현대화된 농업을 보며 확신했다. 그는 마침내 가족에 재분배된 땅을 확장할 요량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농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난 배신당했다”며 분노했다.

 우리가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 들러 인터뷰한 농림부의 아힘 이리메스쿠 장관은 뜻밖에도 이 같은 생계형 농업의 커다란 장점을 언급하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는 “생계형 농업은 아주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 신세를 면하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은 생계형 농업 덕이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수당 지도자는 “생계형 농민들을 유럽시장에 통합시켜 소작농을 위한 유럽연합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밟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농민이 후계자가 없는 노인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유럽시장에 통합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결책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도입한 일련의 법안에 대해 상세히 말해줄 때쯤, 이런 과정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보였다. 도입된 법안은 단지 토지 누적세를 바탕으로 투자를 한다. 덩치가 큰 땅에만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대출 문턱도 높다. 이미 직접 투자를 한 30만 농민들은 피해를 입었다.

 마치 1960년대(4) 프랑스에서 농업 경제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루마니아에서는 한목소리로 “경쟁력”을 외치고 있다. 한편, 클루 농과대학에서 농촌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크리스티나 포콜은 조각난 땅, 낮은 생산성,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는 농업기계화 등 ‘루마니아가 지닌 핸디캡’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본 사과농장을 예로 들며 “거대한 농장, 모두 자동화된 농장, 그래야 상품이 경쟁력이 있다. 우리 갈 길도 바로 이 길이다”고 말했다.

 생계형 농민과 농산업체 간 불평등 악화

 중국과 독일을 여행한 뒤 확신을 얻은 티베리우 비리스는 농장을 확장하고 자동화했다. 그는 블래즈 지방에 양봉 생산 조합을 설립했다. 주변에 있는 200명의 양봉업자들을 규합해 최신 기술로 한 해에 400톤의 꿀을 생산하여 대부분 수출하고 있다. 벌통 200개를 소유하고 있는 테오도르 파로는 “루마니아인들은 루마니아 꿀을 소비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구매력이 받쳐주지 못할 정도로 비싼 꿀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 꿀을 매입하는 이들은 서유럽의 주요 수입업자들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비리스는 중개업자들이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조만간 양봉 생산 조합을 닫게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이 지역의 꿀이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지역의 꿀 가격은 서구 유럽의 꿀 가격에 비해 대략 두 배 이상 저렴하다.

 농업자유주의의 역설은 두 가지 문제를 지녔다. 하나는 루마니아 농업의 해외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농업이 루마니아를 먹여 살리지 못해 70%의 농산물이 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심하게 왜곡된 농업자유주의의 경쟁이 토지 임대료를 많이 상승시켰다. 10여 년 동안 대략 100만 헥타르, 즉 농업 가능한 토지의 6.5%가 해외 투자자들 손에 넘어갔다.(5) 유럽연합 보조금, 낮은 토지 가격, 값싼 노동비용 등에 힘입어 집약농업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말, 루마니아 정부는 토지 구매를 완전히 자유화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1년 전, 농림부 장관 다니엘 콘스탄틴은 루마니아 주요 기업형 농장주(6) 중 한 명에게 수십만 유로를 뇌물로 받은 게 아니라 빌렸다고 궁색하게 해명했다. 발레리 타바라와 스텔리안 푸이아 전임 농림부 장관 두 명 모두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의 전 직원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해관계로 인한 마찰도 분명히 있고, 정책 노선도 그러하다. 2009년 국제 통화기금(IMF)에 서명한 대가로, 부쿠레슈티는 20만 개의 공공 일자리를 감축했다. 공무원 월급의 4분의1을 삭감하고, 부가가치세를 5% 올려 24%로 상승시켰다.(7) 노동시장은 주로 사회보장이 열약한 저임금 노동계약서로 인해 루마니아인들의 해외이주를 부추기고 있다. 2007년에는 12%의 루마니아인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전문자격이 거의 필요 없는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었다.(8)

 요컨대 유럽연합의 공동 농업정책(CAP)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루마니아에도 1960년대 서구유럽이 채택했던 것과 똑같은 개혁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자급자족 문제는 해결된 상태였다. 노동시장은 도시의 사회적 신분상승의 궤도를 알고 있던 시골 출신의 저학력 인력을 흡수했다.

 PNDR 원정대가 21세기 루마니아에 임시방편적인 동력(CAP이 도입한 법안)을 도입했다. 농민들은 개별적인 사업안을 들고 스스로 알아서 농민 경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을 찾아가야 했다. 이것이 지역의 부농과 소작농, 그리고 생계형 농민과 유럽자금까지 받는 농산업체 간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9)

 물론 루마니아의 선각자들도 이미 농업의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1948년부터, 루마니아 공산당의 선동팀은 “영화 원정대”를 꾸려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이 팀은 전국을 다니며 소련과 루마니아 영화를 상영하고 집단 농업의 미덕을 전파했다.(10)

 음악가와 교사조차 농사를 짓는 현실

 알바 이울리아 고등학교의 음악 교사인 체자라 피트가 정원에 있는 갓 도살된 30여 마리의 닭들을 보며 “닭을 잡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작곡가 연합 회원인 그녀의 남편은 토마토, 오이, 적포도주, 투이카(자두술) 등 직접 가꾼 농산물들을 탁자 위에 진열했다. 피트 부인은 “할머니들이 시장에서 우수한 지역 채소를 아주 비싸게 판매한다. 대형 마켓은 가격이 괜찮지만, 너무 먼 곳에서 물건이 오다보니 화학물질로 범벅이 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부부는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엄마처럼 교사로 일하고 있는 딸은 부모님이 짓는 농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녀가 받는 180유로의 월급으로는 지출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기구가 강제한 긴축정책이 결국 자급자족을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는 국제 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이후, 수만 명의 도시인들이 귀농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11) 피트는 작곡가와 교사들이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면서 “차우세스쿠 조차도 이런 일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씁쓸해 했다.

 피트는 “썩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면서 “조국이 이런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맬서스적인 충격 요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요컨대 그는 영국 정치경제학자 맬서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세계적인 대재앙이 20~30억 명을 몰살시킨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다 도덕적인 원칙을 다시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빈가르잔은 피트와 동일한 이유로 자신의 뿌리인 시골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루마니아의 유일한 소작농 옹호단체인 에코루랄리스(Ecoruralis)의 시민운동가인 라모나 도미니치우이우와 아틸라 스조크는 토마토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부패한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트라이안 바세스쿠도 모든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퇴진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패는 국가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을 공공관리 안에서 찾을 수 없게 만든다. 더군다나 부패가 자행되고 있는 정책이 은폐되고 있다. 정책은 정치인들의 부를 불리는 목적에만 쓰이고 있다. 물론 이를 모를 리 없는 유럽​​위원회가 이따금 루마니아가 유럽기금을 유용한다고 꾸짖곤 한다. 하지만 최근 유럽위원회 회장 호세 마누엘 바로소는 “유럽연합 가입은 대대적인 개혁을 불렀고, 이 개혁들이 루마니아 현대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인들은 현대화의 덕을 봤다”고 딴소리를 했다.(12) 한편, IMF는 루마니아가 구제 금융에 서명한 것을 두고 “성공의 월계관을 쓴 것”이라고 자평했다.(13)

 이러한 화려한 정치적 성과는 루마니아의 전 농림부 장관이자 2009년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산하의 농업 및 농업 발전 집행총국의 위원장에 임명된 다치안 치올로슈의 산물이다. 바로 이런 감투를 쓴 그가 CAP 개혁을 재협상하기 위해 조국을 찾았다. 그러나 야릇하게도, 그의 조국 농민들은 그런 그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글․피에르 수숑 Pierre Souchon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국가 조직인 농업협동조합은 1991년 토지법 도입으로 해체되었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는 농업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자산을 처분했다.

(2) 탈(脫)집단노동으로 인하여 1991년 토지 분할을 제지하기 위해 제정된 농촌 기업법은 다양한 형태의 조합을 가능케 했다. 무역회사 간, 가족 단체 간, ‘농업 기업 간’ 조합들이 결성돼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3) Patrick Champagne, <거부한 유산, 프랑스 농민의 재생산의 위기>, 1950-2000, Seuil, 파리, 2002년.

(4) François Colson, <프랑스 농업의 다양성에 직면한 농업 개발>, Economie rurale, n° 172, 파리, 1986년.

(5) Judith Bouniol, <시골지역을 위협하는 루마니아의 토지 사재기>, Ecoruralis-Transnational Institute-Hands off the land Alliance, 2013년 1월.

(6) Attila Szocs, <Scandal hits Romania’s newly appointed minister for agriculture>, www.arc2020.eu, 2013년 2월 6일.

(7) Mirel Bran, <두 루마니아 간 전투>, <Le Monde géo et politique>, 2012년 11월 30일.

(8) Despina Vasilcu et Raymonde Séchet, <포스트 공산주의 이후, 20년간의 루마니아 방랑기>, <Espace Populations Sociétés>, n° 2, 릴, 2011년. 

(9) Béatrice von Hirschhausen, <개발프로그램의 출현에 직면한 루마니아 농촌사회>, <Revue d’études comparatives Est-Ouest>, n° 4, vol. 39, 파리, 2008년. 

(10) 전게서.

(11) Tania Giorgopoulou, <그리스판 귀농>, I Kathimerini, 2011년 4월 8일.

(12) 루마니아 외무부에서 발간한 성명서, Bucarest, 2012년 12월 2일.

(13) <IMF의 치료를 다시 요청한 루마니아>, 르몽드(avec AFP), 2013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