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에 감춰진 것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일 년. 그동안 민영화는 가장 큰 이슈들 중 하나였다. 특히 의료민영화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핵심적 사회의제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민영화가 사회갈등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다수의 국민들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곤란한 듯하다. 따라서 의료민영화의 이해는 민영화를 명확히 규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 의미로서의 ‘형식적 민영화’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영화의 의미는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의 이전’이다. 이 규정은 소위 ‘관(官)/민(民)’ 또는 ‘국가/시민사회’라는 이분법에 기초하며 행위주체가 국가기관에서 민간인 또는 민간기관으로 바뀐다는 점이 핵심이다. 단순히 행위의 주체만 대체된다는 점에서 ‘형식적 민영화’라 칭할 수 있다.
‘형식적 민영화’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재산권의 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바뀌는 재산권 민영화가 있으며, 민간 매각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 민간매각은 인천공항의 주인이 국가에서 민간기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역할이나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조직 민영화가 있으며, 민간위탁이 대표적이다. 보육 서비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역할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 정부는 예산부족으로 민간 어린이집에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라고 위탁하고 있다. 셋째, 기존에는 국가가 특정 역할과 기능을 책임져야 한다고 여겼지만 더 이상 그것들은 국가의 소관이 아니라 민간이 알아서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는 기능 민영화가 있다. 물 민영화의 예를 보면, 국민의 식수를 보장하고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 민간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책임 자체를 민간에 넘기는 것이다.
숨겨져 있는 ‘실질적 민영화’의 모습
하지만 행위주체에 기반한 민영화의 규정은 매우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다. 행위주체로서의 국가나 민간은 모두가 긍정적인 일도 하고 부정적인 일도 한다. 복지를 제공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국민을 탄압하는 국가도 있다. 독점의 폐해를 보여주는 기업이 있는 반면 국영기업이 민간기업으로 바뀌어 생산성을 향상시킨 예도 적지 않다. 이러한 양면성은 행위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바뀐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사실 ‘좋음 또는 나쁨’, ‘긍정 또는 부정’ 등의 판단은 행위가 지향하는 목표, 행위가 이뤄지는 방식, 그리고 목표달성을 위해 선택된 수단과 도구 등에 의거하여 이뤄진다. 민영화론자들은 겉으로는 단순히 민간이 주체가 되는 것을 주장하지만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으로는 민간행위자들이 추구할 목표, 즉 사적 이익의 최대화가 행위의 중심이 되길 고대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방식은 시장메커니즘이며 이들이 선택한 수단은 경쟁이다. 이론상으로는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동등한 자격을 가지며 생산량, 소비량 그리고 가격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하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권력자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가격은 권력자원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결정되며 생산량과 소비량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생산-소비 과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윤은 생산에 참여한 사람들에만 배타적으로 배분된다.
오늘날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위의 목표, 방식, 수단과 도구 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이 ‘민영화’라는 용어로 지칭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따라서 현재 의료 민영화와 관련하여 정부와 민영화론자들이 말하는 민영화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민영화 사이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민영화를 행위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바뀌는 것, 즉 ‘형식적 민영화’를 지칭한다. 후자는 민간으로 주체가 바뀌었을 때 숨겨져 있는 것, 즉 민간인이나 민간 기업이 선택할 목표, 방식, 수단과 도구 등과 이러한 것들이 가져올 폐해를 민영화로 보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의 실질적인 기준이 된다는 면에서 이러한 민영화를 ‘실질적 민영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보건의료에서의 ‘실질적 민영화’
사실 국민들에게 현실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민영화’이다. 왜냐하면 의료재의 소비를 위한 비용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의료 민영화가 어떠한 형태로든 이윤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결국에는 국민의 주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보건의료에서 나타나는 ‘실질적 민영화’의 내용을 보면, 첫째, 의료재(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이나 이에 투자할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료재의 생산‧판매를 통해 사적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둘째, 이들은 시장메커니즘이라는 허울을 방패삼아 공권력의 간섭과 개입을 피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자원을 통해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소비를 과다하게 만들어 낸다. 셋째, 그리고 이러한 방식과 수단들을 통해 얻은 이윤을 환자나 국민들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것으로 귀속시켜 버린다. 이러한 ‘실질적 민영화’는 결과적으로 잠정적 환자인 국민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온다.
박근혜 정부의 ‘실질적 민영화’와 관련된 정책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보건의료관련 정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13년 10월 29일에 입법예고한 원격진료의 허용이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가는 수고를 대신하여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화상진료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본적인 의료검사를 할 수 있는 기기들과 의료검사의 자료들을 전산화하고 이를 의사에게 보낼 수 있는 장비 등을 구비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2013년 12월 13일에 발표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20가지 세부프로그램들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위 ‘실질적 민영화’를 보여주고 있는가? 대답은 명확히 ‘그렇다’이다. 특히 원격진료와 20개의 세부프로그램 중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 법인약국 설립 허용 등은 ‘실질적 민영화’의 모습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실질적 민영화’를 감추려는 원격진료
우리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의원‧병원의 거리 접근성이 높은 나라이므로 거리 접근성 때문에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원격진료는 아직까지 안전성과 효율성이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격진료를 전격적으로 실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는 것은 현 정부가 보건의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목적이 국민의 건강보장이 아님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목적일까? 원격진료는 컴퓨터, 스마트폰, 혈압측정기, 혈당측정기, 생체계측기 등 여러 가지 기기들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생체계측기는 4조원 이상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즉 원격의료의 목적은 국민의 건강을 유지‧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면진료를 화상진료로 대체하기 때문에 외래진료가 더 용이해진다는 정부의 주장은 국민 1명이 1년간 외래진료를 보는 건수가 13.2회로 OECD 평균 6.7회의 거의 두 배에 이른 외래진료 과잉의 상황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원격진료는 필요 없는 외래진료를 새로운 제도를 통해서 강요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나 과잉진료의 초래 등은 결과적으로 관련기기들을 공급하는 소수의 생산자들(기업)이나 의료생산자들의 ‘사적 이익의 최대화’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사적 이익은 환자들의 의료비용으로부터 나올 것이며 생산자의 몫이 될 뿐이다. 이는 곧 ‘실질적 민영화’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영리자법인 도입은 ‘실질적 민영화’ 통로를 뚫는 것
현재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약 94%가 민간병원이다. ‘형식적 민영화’로 보면, 의료생산체계는 이미 민영화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민영화’가 표면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민간병원에 대한 두 가지의 공적 규제 덕분이다. 하나는 비영리법인에 한하여 병원설립을 허가해 주는 것으로 대자본이 병원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병원운영의 결과로 나오는 이윤을 병원에만 재투자하도록 강제하여 이윤의 외적 배당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규제는 병원의 소유주나 대자본이 병원운영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유인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영리자법인은 이 공적 규제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 민영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안은 기존에는 금지되었던 부대사업을 대폭 완화했기 때문에, 영리자법인은 의료기기, 의약품, 화장품, 건강식품 등을 개발‧판매할 수 있고, 의료기관을 임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대사업의 확대는 영리 자회사라는 ‘실질적 민영화’의 구체적 통로 역할을 한다.
그럼 어떤 과정을 통해 병원 소유주나 대자본가들은 사적 이익의 최대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우선 병원의 소유주(대자본)는 영리자법인을 설립한다. 그 다음 영리자법인은 확대된 부대사업, 즉 건물임대료, 인력 파견에 따른 인건비, 의약품 (독점) 납품에 따른 약품대금, 의료장비 (독점) 공급에 따른 리스비, 의료소모품 (독점) 공급에 따른 재료비 등을 통해 모병원으로부터 수입을 이끌어낸다. 이 수입은 영리자법인의 이윤이 되며 이를 병원의 소유주(대자본)는 배당받을 수 있다. 결국 기존에 통제되었던 이윤의 외부유출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통로의 구축은 병원의 소유주(대자본)로 하여금 병원을 통한 이윤추구의 동기를 보다 크게 한다. 이는 곧 비영리 법인인 병원이 영리자법인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적 이익의 최대화’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가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정부는 모법인인 의료법인은 여전히 비영리기관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자회사가 영리추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의료법인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법인을 통해 영리추구를 하고 그것을 통해 경영난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라고 솔직히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오른손은 영리추구를 하면서 왼손은 깨끗하기 때문에 자신은 깨끗하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영리법인약국은 ‘실질적 민영화’의 표본
정부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하나의 법인이 여러 개의 약국을 설립할 수 있는 ‘1법인 다약국’과 유한책임회사 형태의 영리법인약국 도입을 제시했다(유럽에서 법인약국을 허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1법인 1약국’이다). 이 경우, 정부 스스로가 영리법인약국을 표명했기 때문에 ‘실질적 민영화’가 분명하다. 특히, 정부의 영리법인약국의 도입은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의 모순을 낳는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병원 자체가 영리법인이 되는 경우에 한정하면서, 병원의 자회사가 영리법인인 것은 민영화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약국은 병원과 같은 요양기관으로 분류된다는 점에 있다. 즉 약국이 영리법인이 된다면, 이야말로 정부가 말하는 의료민영화의 전형이 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영화가 가져올 결과는 해외의 사례가 자명하게 보여준다. 노르웨이는 2001년 현 정부가 제시하는 것과 같은 유한책임회사 형태의 영리법인약국을 도입한 후 1년 사이에 369개 개인약국이 78개로 줄었고 10년이 지난 후에는 전체 약국의 85% 이상이 3개의 법인약국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들 3개 법인은 점차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자유경쟁을 통한 의약품 가격하락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 영리법인약국을 도입한 헝가리의 경우,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결국 2010년 7월 약사만이 약국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을 재개정해 법인약국의 실패를 명확히 했다.
의료의 ‘실질적 민영화’를 위한 정책프로그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기획재정부에서 만들어지고 재정권을 등에 업고 각 부처에 강제되고 있다고 한다. 보건의료분야도 억압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 정도면 기획재정부가 정말로 국민을 위한 부처인지 묻고 싶다. 그들은 사고의 기준들이 ‘실질적 민영화’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그들의 육신이 이미 실질적으로 민영화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글·이권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