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교육'에 나선 프랑스 센생드니 학부모

2014-04-01     알랑 포플라르

 최근 프랑스 언론에는 ‘젠더 이론’ 과목 도입에 반대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계속 비쳤다. 한편 언론에는 비교적 많이 노출되지 않았지만, 공립학교 원칙들에 반발한 학부모와 교사들도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파리 인근 센생드니 지역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방에서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문자메시지, 신문기사, 트위터, 블로그 글들은 프랑스 전국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난 1월 말부터 프랑스 내 수십여 개 학교에 영향을 주고 있는 조직인 ‘학교 거부의 날(JRE)’이 활동을 펼치는 덕분이다. 대표 파리다 벨굴과 다소 급진적인 우파 단체들이 지휘하고 있는 이 조직은 투쟁 효과는 미미하지만 학교 교육에 도입될 예정인 ‘젠더 이론(성역할 이론)’에 계속해서 반대해왔다.

급기야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자녀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언론 매체들이 크게 들썩였고, 결국 교육부 장관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각료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카메라 세례를 받은 뱅상 페이용 교육부 장관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들을 소환해 프랑스에는 교육의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켜 달라고 교원들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르 피가로, 2014년 1월 29일자 참고)

‘교육의 의무’란 무엇인가? 쥘 페리 전 총리의 주도 하에 교육제도 개혁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쥘 페리’ 법이 1881~1882년 통과된 이후로 교육의 의무는 현재까지도 프랑스 교육의 주요 토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가정으로 하여금 자녀가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협조를 요구할 수 있고, 반대로 가정은 국가에게 프랑스 국내 어디서든 동일한 교육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파리 외곽에 위치한 센생드니 도(都)의 학부모들이 당국에 입을 모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권리이다. ‘학교 거부의 날’과는 달리 학부모로만 구성된 이 조직은 농성이나 시위와도 거리가 먼 덕분에 안타깝지만 정계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센생드니 도 생투앙 시에 위치한 폴 랑주뱅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교의 밤’이 열렸다. 경비원은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은 부모들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채근을 해댔다. 학부모들은 자리를 뜨기 전에 다음 주 센생드니 학교위원회에 그들이 제출할 안건에 대해 동의했다.

40대 학부모 로이크는 “이번 모임에 모든 학부모들이 모이지는 못했다. 어제 이 지역에서 한차례 소동이 있었고 그 때문에 경찰들이 오늘 저녁에도 되도록 밖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다닌 탓이다”고 말했다. 그는 목발에 몸을 기댄 채 “오늘 몇 명 정도 모였지? 60명 정도 됐나?”라고 독백하듯이 말했다.(1)

이번 모임은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센생드니 지역 학부모회 주도 하에 열렸고, 학부모와 교사, 지역의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생투앙시에서 내년부터의 시행을 앞두고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수업제도 개편에 대해 토론했다. 개편이 되면 수업시간이 기존 주 4일제 체제에서 주 5일제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 조정안 자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재정 긴축시기에 이러한 개편이 진행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모아 비판했다.

  레토릭에 그친 ‘자율적 선택’

  프랑스 국회는 2014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 중 약 15억 유로가량을 삭감한다는 안건에 의결했다. 이는 결국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실제로 방과 전후 프로그램과 같은 교과외 활동은 전적으로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활동 수업의 수준이 지원금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상교육 역시 더 이상 의무 사항이 아닌 것이다. 실업률이 12%를 넘어선 빈곤 지역과 전체 인구의 21%가 3~17세 연령층에 해당하는 ‘어린’ 지역은 지역 간 불균형으로 인해 낙관적인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사실 센생드니 학부모들은 이미 지난해에 교사 미충원에 반대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한차례 조직한 바 있다. 센생드니 도 팡탱 시에서 온 학부모 도미니크는 “2012년 10월 17일, 60여 명의 학부모들이 모였던 적이 있다. 생투앙, 생드니, 팡탱, 에피네, 오베르빌리에, 보비니 등 센생드니 내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학부모들이 뜻을 함께 했고, 단체를 결성해 10개 조항으로 된 헌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헌장은 ‘모두를 위한 우수 공립학교’라는 원칙을 내세워 잘 양성된 교사와 양호교사 채용, 학습부진 아동을 위한 전문적인 보조시스템(RASED)의 재정립, 만 2.5세 이상의 아동을 위한 교육과정 확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2)

이 단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마튜는 센생드니 도 에피네 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일종의 차별로 인해 고통을 겪어왔다고 토로했다. 2011년 ‘지역차별’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차별철폐청(HALDE)에 제소를 했지만 결국 기각되었다. 하지만 수치로만 보아도 현 상황은 충분히 문제가 있다. 그는 “교사 미충원으로 인해 센생드니 지역 아동이 전체 취학기간 중 평균 1년분의 수업을 손해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것이 결국 학업 성취도와도 연결되어, 타 지역 아동에 비해 센생드니 아동의 성적이 10% 정도 뒤처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리 외곽 지역에서 결성된 센생드니 학부모 단체의 결집력이 이토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지역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파리 시내 집값이 상승하면서, 외곽 지역 소도시로 옮겨오는 중산층의 비율이 높아졌다. 기존에 이 지역에 거주해온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새로 이사 온 중산층 부모들이 그들의 문화적,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행동력을 보이며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있어온 열악한 상황들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거주 지역 수준의 하락이 자녀의 학습 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것은 그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 ‘교육 시장’의 지역적인 특성을 꼽을 수 있다. 한 지역의 공립학교 수준은 상대적으로 지역 수준에 비례하고, 사립학교는 그 숫자가 매우 제한적이다. 센생드니 지역 내 학부모 간 협력이 가능했던 것도 그 덕분이다. 학교 간 경쟁으로 인한 부정 입학이 이 지역 학부모들에게는 문제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통학거리를 이유로 대더라도 자녀를 다른 학교로 옮겨 등록시키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교사 미충원을 관리해야 할 교육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불화만 키울 뿐, 학부모 단체의 결속력을 와해시키지는 못했다. 학부모 도미니크는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학부모들이 모여 교사 미충원에 대해 항의하면, 교육청으로서는 이 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200여 명의 아이들을 교사가 없다고 교실 밖에 나앉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이 충원이란 게 다른 학교에 있던 기존 교사를 데리고 오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이 얕은 수에 놀아나지 않고, 지역 전체 범위로 연합을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사회 다른 분야에서 보기엔 무모해 보였던 이 학부모 단체가 사실은 자신들도 모르고 있었지만 분명히 제 기능을 다 하고 있었다. 도미니크는 “센생드니 학부모회 결성 한 달 후, 우리도 이젠 학교에 직접 부딪히기 시작했다. 한 날로 날짜를 정해 센생드니 40개 소도시 중 20개에서 일제히 결집했고, 모든 계획들이 연속적으로 진행됐다. 지역들 간에 그런 놀라운 결속력을 나타낸 건 나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러한 대응들이 나오고 있지만, 중학교의 상황은 또 다르다. 중학생 학부모 단체는 아직은 보기 드물다. 학부모 로이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등학교는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줬다가 방과 후에 다시 데리러 오고, 직접 학예회 조직도 맡아야 한다. 덕분에 따로 만날 일이 없는 학부모들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가 연락처를 주고받고, 학교 수업이나 문제가 되는 상황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빠른 동원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지리학자인 장-크리스토프 프랑수아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 “센생드니 도는 학군 규정을 위반하는 부정 전학 사례가 적은 편이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그 숫자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한 명만 전학을 해도 학교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결국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부모 단체를 조직할 만한 행동력 있는 부모들이 아예 이 지역을 떠나버리는 것이다”며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수치로만 보아도 상황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당시 중학교 입학 예정인 전체 학생 중 배정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신청한 학생의 수가 5%에 그친 반면(그중 56%만 신청 수리), 2009년에는 그 숫자가 12%(그중 44%만 신청 수리)로 크게 늘어났다. 당국의 지휘로 규제가 완화되고 자율학교가 잇따라 생겨나면서,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의 경쟁 구도가 더욱 심화된 것이다.(3) 뿐만 아니라 긴축재정의 결과가 사립학교의 강세와 공립학교의 약세로 나타나고 있다. 보충학습 등의 영향으로 사립학교 학생 수가 늘어났다. 이 지역 전체 학생 중 사립학교 학생의 비율은 현재 13%로, 파리의 34%보다는 적은 수치지만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기존 교육을 피해가는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공교육에 대한 관심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사립학교에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의 사바리 법이 1984년 제정되었다가 최근 철회되면서 점점 더 많은 학부모들이 ‘자율적 선택’이라는 미사여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부는 학군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학교 재정 지원금을 불균등하게 분배하는 등의 관행을 정당화했다. 자녀들에게 나중에 고용 시장에서 쓸모 있는 졸업장을 안겨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학교 최적화’에 아무런 손을 쓰지 않은 채, 사회적 하향 계층화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4)

  무책임한 부모? 허상일 뿐

  이러한 ‘전략가적인 부모’ 상(像)이 점점 퍼져나가는 반면, 정반대로 ‘무책임한 부모’ 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끝없는 교육 시스템의 변화와 역기능 속에서 정계와 언론만이 매달리고 있는 이 ‘무책임 부모’ 이미지는 아이가 있는 가정, 특히 서민층 가정에 죄의식을 짊어 지워주고 있다. 아이들의 학습 실패, 결석 문제 등의 원인을 학교 시스템이나 사회 불평등 구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무책임’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법학자이자 사회적 사업 전문가인 크리스토프 다두슈는 “지금의 모든 상황은 지난 2002년 12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내놓은 치안법에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이 법은 자녀 교육에 태만할 경우 그 가정에 징역 2년 또는 벌금 3만 유로의 형사 처분을 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시행 공문 또한 결석률이 높은 학생의 학부모에게 이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장-루이 보를루 노동사회부 장관이 ‘학부모 책임 계약법(CRP)’을 추진해 해당 법안을 더욱 강화했다. 이에 더해 국회의원이자 알프마리팀 도의회 의장을 맡은 에릭 시오티는 2010년 9월 무단결석에 대한 처벌 내용을 담은 이른바 ‘시오티 법’을 제정해 기존의 법에 강제성을 더하기에 이르렀다. 다두슈는 이 법이 “교육자들의 강한 반발과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오티 의장이 강화하고 싶어 했던 또 하나의 기관인 ‘가정의 의무 및 권리 위원회(CDDF)’의 결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07년 창설한 이 재판위원회에서 학부모는 시장을 비롯한 지역 대표들 앞에서 자녀의 비행 또는 결석에 대해 변호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좌우를 막론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이에 대해 다두슈는 “시오티 의장이 인구 5만 명 이상의 지역에 해당 위원회를 의무화하기에 앞서, 이미 에브리 지역에는 마뉴엘 발 내무장관이 위원회를 설립한 바 있다”라고 분석했다.(5)

치안법(2002)에서 학부모 책임 계약법(2006), 가정의 의무 및 권리 위원회(2007), 시오티 법(2010)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보수 정권은 여론을 통해 부모들, 특히 외곽지역의 부모들이 그들의 의무를 되새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중 시오티 법이 2013년에 폐지되어 결국 이런 주장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겠지만, 큰 기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두슈는 “무단 결석 학생 가정에 대한 처벌방안으로 시행되어 왔던 가족수당 유예가 완화되었지만, 가정의 의무 및 권리 위원회와 형사 처분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법령에 남아있다. 법 개정은 뒷전에 미뤄져 있다”고 비판하며 “이 문제에 대해 대중운동연합당(UMP)과 사회당이 이념적 공조를 보여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한편 자녀를 방임한 채 집을 비우기 일쑤일 것 같은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센생드니 지역 학부모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 계층 가정과 학교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사회학자 트리스탕 풀라우엑은 “‘무책임한 부모’란 것은 허상일 뿐이다. 수많은 조사 결과들이 그 어떤 계층보다도 서민층 가정의 결집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교육은 이제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6)

서민층 가정의 변화는 오랜 기간의 연구에 걸쳐 증명되고 있다. 1960년대까지 노동자 계층 인구 중 자녀에게 졸업 후에도 학업을 지속하도록 하겠다고 답한 부모의 비율은 아주 낮았다. 전체 학생 중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학생의 수도 1962년 당시 15%에 그쳤는데, 오늘날에는 90%까지 늘어났다. 풀라우엑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의 배경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첫째는, 계층에 따라 학교에 진학하던 이전과 달리 중학교가 단일학제로 바뀌면서 서민층 가정의 시야가 넓어졌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대규모 실업 사태다. 1975년에서 1985년까지의 10년 사이에 청년 실업이 약 다섯 배 늘어나는 등, 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져감에 따라 오늘날의 임금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교육계가 패권주의적 사회로 변화하면서 서민층 가정의 교육에 대한 투자도 커져갔다.(7) 풀라우엑은 “예를 들어, 가정에서 자녀의 숙제를 도와주는 시간을 지표로 삼아보자면, 1992~2003년 사이 그 수치가 사회적 계층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얻게 된다. 결과에 따르면 모든 계층이 평균적으로 한 자녀에게 매일 약 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와주는 수준이 동일할지는 확실히 나타나지 않지만, 어쨌든 수치만으로도 분명한 근거자료가 된다”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교육환경에 대한 서민층의 참여가 점점 커지고는 있지만, 서민층 학부모들은 교사와 학부모의 ‘교육적 분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풀라우엑은 “그들에게 학교는 여전히 ‘패배와 낙심을 가져다주는 극한 환경’이다. 서민층 학부모들은 ‘협력교육’에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중산층과 달리, 서민층은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의 연계라는 명목하에 학부모와 교사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하단기사 참조). 하지만 학교위원회와 운영이사회에 참여해 실질적인 행동력을 쥐고 있는 중산층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자신들의 사회적 기대에 따른 조치를 요구해 왔다.

학부모와 교사의 협력이 점점 긴밀해짐에 따라 그들은 양면적인 관계를 이루게 됐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초등학교 교원 노조인 전국교원통합노조(Snudi-FO)의 세자르 랑드롱 도(道)대표는 “십여 년 전부터 교조의 모든 투쟁은 학부모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주 5일제 개편에 대한 반대 투쟁의 경우처럼, 교원과 학부모가 연합할 경우 그 효과는 매우 분명하며, 정계와 언론이 기뻐해 마지않는 학부모-교사 간 대립에도 쐐기를 박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연합이 늘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학부모의 교육수준이 교사보다 높을 경우, 학교 공동체가 결속력을 가지고 연맹하기보다는 1인자가 2인자를 감시하는 듯한 상황으로 변모한다. 학부모 연합이 가까운 학교를 점찍어 관심이라도 가지게 되면 이는 곧 교사의 업무 환경까지 바꿔놓게 된다.

  이슬람 학부모, 예외없이 히잡 착용 금지

  

이러한 상황은 교사의 지위가 변화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교사의 위치가 학교생활 개선에 대해 학부모의 참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도록 변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제는 학부모가 다른 교육 주체들과 함께 중학교 교사들에게 부여할 의무 사항을 규정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를테면 학부모들이 수업 단위, 교사 업무의 형식과 내용 등을 지정할 수 있다. 랑드롱 대표는 “프랑스 전국학부모연합(FCPE)의 몇몇 임원들은 자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우리 교사들이 같은 선상에 있어도, 즉 어느 근무지로 가든 동일한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규탄했다.

학부모 참여의 확대는 학부모 스스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학부모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권리에 대해서는 전국학부모연합이 선정한 대표단에게 학부모 회장을 통해 일종의 교육과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자는 주장을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학부모의 의무와 관련해서는 종교 중립성에 대한 문제가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다.

센생드니 블랑메스닐에 위치한 틸를 지역센터, 히잡을 쓴 다섯 명의 여인이 모여 앉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뤽 샤텔 전 교육부 장관이 2012년 3월 27일 내린 공문에 대해 ‘학교 소풍, 우리도 함께!’라는 단체를 만들어 투쟁을 지속해왔다. 이 공문은 학교의 야외활동 시 ‘학부모 또는 모든 관련 인물’에게도 교사와 동일한 규정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 경우 이슬람 학부모들도 히잡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행정재판소가 2013년 12월 23일 합헌 판결을 내린 이 법안은 학교 내 종교 중립주의에 대한 논쟁을 다시 한 번 일으켰다.

다섯 학부모 중 한 명인 라시다는 “학교 내 법이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모든 교직원들에게 중립성을 적용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 내 법이 적용하지 않는 학부모이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학부모는 학교로부터 배척당한 것이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또 카디야 씨는 “우리 아들 반 담임의 대리 교사를 찾기 위해 내가 그 많은 청원서에 일일이 서명을 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다들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 때는 내 히잡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개종할 생각도 없고, 아이들을 이슬람학교에 보낼 계획도 전혀 없었다. 페루즈 씨는 “언젠가는 우리도 아이들을 이슬람교 사립학교에 보내는 데 동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문제가 해결된 후의 일일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집단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교사와 학교장들도 자칫하면 차별적 대우로 여겨질 수 있는 종교적 중립 정책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은 정부에서 선정한 대리인에게 학부모 역할을 맡겨 다시 ‘교육적 분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닐까? 이 대안에 다섯 학부모는 모두 찬성 의사를 표하며 “우리 아이들의 야외 활동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데서 낙심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떠나 최소한 학부모들 사이의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과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종교중립 학부모 대(對) 개종 학부모, 전략가 부모 대 무책임 부모, 교사 대 학부모…. 사회의 중심인 학교가 오늘날 온갖 논쟁이 담긴 도구화 대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사회와 기업에서의 민주주의가 주춤하는 순간에도 발휘되던 ‘학부모’의 기능이 이제는 일종의 배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는 패만 오픈하면 뭐든지 가능한 참여의 장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국가가 침몰하고, 걱정거리는 늘어만 가며, 불평등이 끝없이 심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정말 학교가 부응할 수 없는 기대감을 불어넣으면서 담벼락 너머 학교라는 주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일까? 센생드니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일반화하면서 깨달은 것, 그것은 결국 그들이 학부모이기 이전에 시민이라는 사실이지 않은가?

(1) 일부 학부모들은 성명 전체를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으므로, 본 기사에서는 모든 학부모들을 성 없이 이름만으로 일괄 표기한다.

(2) <센생드니 학부모단체 헌장>, http://collectifparentseleves93.blogspot.fr

(3) ‘야망·혁신·성공을 위한 초중고 네트워크(ECLAIR)’가 대표적이다. 관련 지도는 다음을 참고. 특집기사 ‘Feu sur l'école’, <마니에르 드부아>, 2013년 9~10월호

(4) cf. Jean-Christophe François, Franck Poupeau, ‘Tout commence par le code postal’, op. cit.

(5) 마뉴엘 발 내무장관은 2001~2012년 에브리 시 시장직을 수행했다.

(6) Tristan Poullaouec, ‘Le Diplô̂me, arme des faibles. Les familles ouvrières et l'école’, <L'enjeu scolaire>, La Dispute, 파리, 2010년.

(7) Jean-Pierre Terrail 편, ‘L'Ecole en France. Crise, pratique, perspective’, <Etat des lieux>, La Dispute, 2005년.

    (상자 기사)

협력교육의 한계

  교육계의 새로운 파트너십에 대해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부모단체, 교원조합들이 의견을 좀처럼 모으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장관 홈페이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새로운 파트너십이란 “친절하고 상냥한 학교”를 만들어 “학교에 학부모들을 위한 참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필립 공베르는 이것이 하나의 격변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가정은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 당시, 국가는 가정이 앞으로 진행해나갈 교육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고까지 여겼다”고 덧붙였다. 1792년, 생파르조 지역의 후작이었던 루이-미쉘 르펠르티에가 국민공회에서 교육에 대한 법령안을 내놓았다. 그는 이 법령안을 이렇게 요약해 표현했다. “아동이 5살이 되면 국가가 자연으로부터 아동을 데려온다. 12살이 되면 국가는 아동을 사회로 되돌려준다.”(1) 그 후 교육에 대한 독점권을 강화해온 국가는 이 위력을 유산으로 남기고 학교 내 종교 중립성을 확립하는 데에 온 관심을 쏟았으며, 공적·사적 분야를 구분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공베르는 “카톨릭 부르주아 계층에게 무상교육 개혁은 일종의 위협이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었던 신자들의 논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체를 결성하려고 애를 썼던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초의 단체는 1910년 결성된 공교육 부모연합(PEEP)이고, 뒤이어 1933년에는 전국자율학교 학부모연합(UNAPEL)이 결성됐다. 이 단체들의 결성 목적은 종교 중립적인 교육을 펼치려는 국가에 학부모 감독이라는 구실로 반기를 들기 위함이었다.

전국공립 초등교원조합(SNI)의 주도로 1947년 결성된 학부모 자문연합(FCPE)의 경우 처음에는 국가의 주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학교 시스템 내에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힐 것을 주장하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연합들은 결국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1968년 포르 법, 1975년 아비 법이 제정되면서 학교위원회와 운영이사회 내의 학부모들의 영향력이 확고해진 것이다. 1989년 리오넬 조스팽 당시 교육장관이 제출한 교육 기본법은 교직원, 학생, 지자체, 학부모를 아우르는 ‘교육 공동체’라는 개념을 내놓으며 이러한 흐름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교육 공동체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며, 체질상 기존의 질서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효력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반대의 목소리도 점차 작아졌고 공동경영 및 공동결정권들은 대부분 행정적인 부분으로만 한정되었다. 교육계는 학교의 출발점인 사회와 스스로를 분리하고, 폐쇄적인 권력과 지역사회의 특성을 가진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전념했다. 그러나 학교의 지역분권화가 정당화되면서 학교 시스템은 뿌리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학부모들의 적극성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결합시키면서 그 틈에 파고들 트로이의 목마를 찾아냈다. 1980년대, 교육 시스템의 국제적 비교가 가능해지면서 가정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보수적인 교육 시스템과 시대착오적인 발상에도 마침내 종지부가 찍혔다. 지역분권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부모의 교육 시스템 참여는 자율학교, 지역별 교육 프로젝트 등을 둘러싼 교육 시장의 형성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되기 시작했다. 이내 자유주의의 발현을 위한 만능열쇠로 ‘자율성’, ‘네트워크’, ‘프로젝트’, ‘파트너십’, ‘협의체’, ‘수평적 구조’ 등의 단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부모-교사 관계가 학교를 도구화하려는 시도를 막고 공동의 이익을 잘 이해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관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샹피니-쉬르-마른에 위치한 플라토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프랑스새교육협회(GFEN)의 일드프랑스 지역 책임자로 있는 잔느 디옹은 1980년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서 몇 가지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 “목적은 교사가 교사의 역할을, 학부모는 학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전문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되, 동시에 교육이 교사들만의 전유물 또는 불가침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했다. 그녀는 “학부모회의 자리에서 부모들에게 두 개의 질문을 던져봤다. 첫째는 ‘여러분은 자녀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가르쳐왔습니까?’, 둘째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자녀의 성공적인 학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였다. 그 뒤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관례를 규정하고 학교와 가정이 모두 뜻을 함께하기 위해 교육학적 논의를 이어갔다.”

두 번째는 토요일 아침 학부모가 진행하는 활동 수업이다. “아마 목제품 만들기 수업이었을 것이다. 이 분야를 가장 잘 알고 계신 학부모 한 분께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교사들이 그분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분의 테크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탓이다.” 이러한 경험은 학부모-교사 관계를 바꾸어놓았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고, 학부모들은 조금씩 교육학적 내용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도 학교가 져야 할 의무 중 하나일까? 이에 대해 그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좋은 성과다. 우리는 서민층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 사이에 격차를 둬야 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또한 자신들의 출신 계층에 대해 울분과 반감을 품어 그 감정들을 내면화하지 않도록 돕길 원한다”고 답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작가 아니 에르노, 철학자 디디에 에리봉 등 많은 지식인들이 분석하고 표현한 것처럼 학교 문화를 체화한다는 것은 그 대가로 상징적인 분노를 낳기 일쑤며, 이 분노는 ‘내재적 유배’로서의 양상을 띠게 된다. 디옹 여사는 이렇게 되묻는다. “이러한 고통을 정말 피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 시도들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지만, 사실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의 정책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회유책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국가적인 규제 완화로 지역분권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긴축재정정책으로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학부모에게 대신해달라고 기대는 것은 위험이 있다. 게다가, 임무를 맡게 된 학부모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종교 중립의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것이 아닌가.

  (1) Cf. Louis-Michel Lepeletier, ‘Eduquer le peuple, armer la Révolution’, <마니에르 드부아>, 2013년 9~10월호

  글·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지리학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