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이후 아테네의 고단한 삶

2014-04-01     파나티요스 그리고리우

 그리스 국민들의 희생이 더 나은 미래의 문을 열었다고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평가했다. 

그 '미래'라는 것이 아직 요원한 듯하다.

 파나요티스 그리고리우 |인류학자

  옛날 이야기

  2007년 그리스, 대학을 졸업하고도 월 700유로 남짓한 임금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을 규탄하기 위해 몇몇 청년들이 모여 ‘G700(Generation 700)’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5년 반이 지난 어느 날, G700은 다음의 글과 함께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G700의 결성 이래로, 핵심 멤버들의 삶이 너무 많이 변화했다. (중략) 우리 스스로가 ‘700유로 세대’라고 이름 붙이고 사회적 기준으로 삼아왔던 것이 상황들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중략) 아직 본 단체에 남아있는 멤버들에게는 월 700유로가 이제 꿈의 금액이 되었다.” 그들이 주장해온 ‘존엄성’도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개인의 생존 문제라고 요약할 수 있다.”(1)

  겨울날

  2013년 말, 그리스의 실업률은 30%에 달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더 이상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미취직 학생 및 미신고건 등 포함)는 56.4%까지 증가했다.(2) 한편 2008년 이후 그리스 공무원 월급은 25% 감소했다.

  연말의 밤

  마놀리스 씨는 이십여 년 전부터 작은 건설 회사를 운영해왔다. 그의 회사는 카펫, 바닥재 등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내장공사 전문업체로, 주로 각종 상·공업 시설 내장공사를 도맡아 하곤 했다. 그는 “한창 때는 월 6천유로씩도 벌었다. 주말까지 바쳐가며 밤낮없이 매달려야 할 만큼 일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일이 너무 많아 여러 건을 거절한 적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2012년 말을 회상하는 데는 한참 뜸을 들였다. 2010년, 마놀리스 씨는 직원 세 명을 해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제 위기는 한때일 뿐, 2년 정도 지나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듬해, 여느 그리스 국민이 그랬듯이 마놀리스 씨도 집을 옮겨야 했다. 아내와 두 아이에 노모까지 모시기에는 턱없이 좁은 집이었지만, 맞벌이로 일하던 아내 리나 씨가 일자리를 잃은 후부터는 1000유로의 월세를 감당하려면 노모의 연금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 폐업신고를 한 그는 가지고 있던 소형 트럭을 ‘3분의 1도 안 되는 값’에 처분하고 그 돈으로 왜건 한 대를 마련했다. “보상금 한 푼 없이 실업자가 됐다. 개인사업자 파산에 대한 보조금은 없다. 그래서 몰래 암시장에서라도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왜건도 보관해둔 자재며 장비들을 실을 요량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그는 그 기대마저 버려야 했다. 한 달에 간신히 닷새 남짓 일을 하면서도 상황이 호전되길 기대했지만 결국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딱 한 번 오스트리아의 호텔 공사 현장에 한 달간 나갈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임금은 같은 건에 대해 오스트리아 현지인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의 고작 60%에 그쳤다.

“이 상황이 얼마나 지나야 끝이 날지 모르겠다. 아테네 북쪽에 고급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있을 예정이라 그 현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결국 다 연기됐다.” 2013년의 연말이 다가올 무렵, 그는 500유로의 봉급 중 200유로를 가불 신청했지만 결국 받을 수 없었다.

한편 빚은 점점 불어만 가고 있다. 밀린 사회보장비, 세금, 은행대출금이 각각 만 유로씩이다. 2013년 12월 어느 날, 그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매일 아침마다 혼자 집에서 콧노래를 부르다가 당황하곤 한다. 연말연시는 다가오는데 차디찬 아파트에서 새해를 맞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다.” 다행히 친구 한 명에게 이동식 난로와 가스 한 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한 이웃에게 200유로를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2014년의 시작도 어둡기만 하다. 또 한 번의 긴축정책으로 모친의 연금이 대폭 깎여나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마놀리스 씨는 잔잔히 미소 지으며 외쳤다. “좋은 한 해가 되길! 그리고 부디 건강하길!” 그리스 국민 중 3분의 1이 그러하듯, 그 역시도 건강보험 혜택마저 끊어진 것이다. 2010년 5월, 파판드레우 정부 당시 안드레아스 로베르도스 보건부 장관은 “사람들이 죽지를 않는 데다 은퇴 후에도 몇 년씩이나 더 사는 것”에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문화예술

  그리스 연극배우총연맹은 2013년 12월을 기준으로 끝을 맞았다. 업계 단체는 앞으로 연극배우의 임금 수준을 시간당 3.25~5.54유로로 책정할 예정이다.(3) 지금까지는 연습시간도 시급 적용 대상이었으나 앞으로는 ‘연기하는 기쁨’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돌연사 폐업’

  2013년 12월 16일 자정을 지나던 무렵, 그리스의 이동통신·인터넷업체인 ‘헬라스 온라인(HOL)’은 자사 콜센터를 폐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2시 30분, 집기며 가구며 할 것 없이 모든 물건들이 사라지고 사무실은 비워져 있었다.(4) 점점 더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 현상은 이른바 ‘돌연사 폐업’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HOL사 직원 360명은 회사로부터 한 제안을 받았다. 보상금을 전부 포기하고 퇴사한 뒤, 초과근무수당 미지급과 지금보다 20% 낮은 월급을 조건으로 해외 자회사로 재고용될 것인지를 정하라는 것이었다. 결정에 주어진 시간은 48시간. 이를 선택해 해외 자회사로 떠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근무 시작 시간은 회사 출근 기준이 아닌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는 기준으로 계산하며, 모든 사내 연수 시간은 무급으로 처리되고 있다.(5)

  중국식(式)

  미래를 내다보려면 그리스 피레우스 항으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 해운사 코스코(Cosco)는 2010년 그리스 피레우스 항만의 운영권을 확보했다.(6) 코스코는 곧바로 피레우스항 제2부두 근로자들에게 ‘중국식’ 계약을 강요했다. 그리스 일간지 엘레프테로티피아는 이 상황을 두고 “중세시대가 돌아왔다”고 평했다. 시대를 많이 앞서간 이 계약은 근로자들이 ‘일당 40유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전인 2009년 총연맹이 근로자와 기술자들이 개인의 전문성과 경력 등에 따라 58~94유로 선의 봉급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보다 더 낮은 금액이다. 뿐만 아니라 코스코가 제안한 40유로는 각종 특별수당과 보조금, 야근수당, 유급휴가비, 추가근로수당, 통근비 등이 전부 포함되어 있는 금액이다.(7)

  그리고 미래

  아테네 한 신문에는 이런 구인광고가 실렸다. “크레타 지역, 호텔 룸메이드 구함, 숙식 제공, 월급 없음”(8)

  노동조합

  사회 전체가 ‘생존’ 모드로 들어선 가운데, 노동조합들의 목소리는 바람 앞의 촛불 격이다. 처음에는 조금씩 수그러들더니 분야 및 기업별로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는 꼭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을 일컫는 이른바 ‘트로이카’의 주장만큼이나 요구사항의 범위가 넓다 못해 때로는 모호하기까지 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수천 번에 걸친 그리스 노조 시위는 사회를 들썩이게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무너졌다. 노조들도 정치 정당만큼이나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노조는 경제위기 이전 시대에 연결된 것이었다.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시위들로도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또다시 거리로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는 판국이다.

  협동조합

  야니스 씨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기자 일을 시작했다. 2010년 말, 다니던 신문사에서 해고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월급은 약 2천 유로였다. 해고 후에도 일 년 동안은 월 450유로의 실업급여가 나왔고, 전 직장에서 주는 실업수당도 있어 버틸 만했다. 적어도 2012년 1월까지는 그랬다. 그리고는 재정이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

“한동안은 금방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바닥이 좁은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가진 연락처들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연락은 단 한 건뿐이었다. 예전 직장 동료들이 ‘기자들의 신문’이라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새 일간지를 창간하게 되었는데, 창간 준비와 투자 참여를 권하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조건은 최소 1000에서 2000유로의 투자금과 3개월 무급 근무였다. 그들은 신문 산업은 이미 붕괴 상태이며, 이렇게 주도적인 계획에 앞으로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야니스 씨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2012년 말, 그는 또 다른 구인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는 투자자를 모집 중인 대형 신문사였다. 야니스 씨는 월급 1000유로를 조건으로 이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뒤의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계약 후 4개월이 지났고, 월급이 제때 지급이 되지 않았다. 2009년에 체결된 단체협약 내용대로 내 계약이 무효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협약도 더 이상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경제위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8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4분의 1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나도 3주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해야 했던 것이다.”

2013년 말, 야니스 씨와 동료들이 받아야 할 밀린 월급이 이제 각각 5개월분에 달했다. 경영진은 한 가지 ‘구제안’을 내놨다. 모든 직원들의 계약서에 총 봉급의 30% 인하 합의에 대한 내용과, 2014년 8월까지 회사에 반하는 모든 개인적·집단적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야니스 씨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경영진들은 다시 공격 패를 들었다. 일부 직원들이 이 제안을 거부한 것을 트집 잡아 2013년 11월분의 월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근로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들, 이른바 ‘갑’들은 제안에 합의하지 않은 우리들이 신문 제작을 않는다고 비난했다. 덕분에 전 직원들이 단 하나의 사실만큼은 완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찾아왔다. 경영진은 회사를 자가 운영 형태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야니스 씨는 “결국 ‘경영권을 직원들에게 이양한다’는 명분하에 빚을 우리에게 떠넘기겠다는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해도 더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1) http://g700.blogspot.gr, 2013년 12월 14일(그리스어).

(2) <엘레프로티피아>, 2013년 12월 12일.

(3) <엘레프로티피아>, 2013년 12월 17일.

(4) ‘정보통신분야 노조 성명(SETIP)’, 2013년 12월 19일, www.setipthe.gr

(5) <아브기>, 2013년 12월 19일.

(6) 피에르 랭베르, ‘그리스 항구의 중국식 노사 모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2월호.

(7) <엘레프로티피아>, 2010년 12월 21일.

(8) ‘Grèce : "Cherche femmes de chambre sans salaire, contre nourriture et ĝ̂ite"’, 2013년 11월 29일, www.okeanews.fr

글·파나요티스 그리고리우 Panagiotis Grigoriou

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 저서로는 <유령이 된 그리스, 위기의 끝을 향한 여정 2010-2013>(Fayard, 2013) 가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