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회원국에 치명적인 계약 협약

2014-04-01     프레데릭 파니에

 EU 내의 경제 협력을 십분 활용해 국가적 연대를 해체시키려는 EU의 꿈이 실현될 것인가.

 프레데릭 파니에 |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
 
 유럽연합과 미국 간 새로운 자유무역협정(1)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사이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지난 12월 19일과 20일 이틀에 걸쳐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간 ‘계약 성격을 띤 협약’이라는 새로운 장치 마련에 대한 유럽 정상들의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장치가 일단 실행된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을 와해시키는 EU 기관들의 여러 장치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무기가 될 것이었다.
 
 대책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회당 당수(PSE)인 세리게이 스타니셰프는 “이 대책으로 인해 모든 유럽 회원국의 사회주의 조항들이 차례대로 하나씩 사라질 것”(2)이라고 확신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 의회 자유당 그룹 대표는 구조개혁 단행을 위해 유럽연합이 부여 받은 권한이 회원국들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둘러싸고 유럽회의론이 기세를 떨칠 것이라고 우려하며 “이 협약은 유럽의 죽음을 예고한다”(3)고 경고했다.
 
 융합·경쟁기구(ICC)라고도 알려진 계약 협약의 원칙은 단순하다. 유럽 국가들은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는 대신 EU 집행위원회와 거시경제적인 개혁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계약은 EU 기관들의 권한과는 개별적으로 사회·경제·조세 영역에 걸쳐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유럽 집행 위원회의 현 당면과제로 미루어 보아 ‘금융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보호제도 폐지나 사회보장비용 축소, 기업의 세제혜택 등의 조건이 요구될 수 있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는 사회·경제·조세의 권한이 EU 28개 회원국의 규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각국은 어느 정도 운신의 폭을 보장받았다. EU 기관들의 개입은 주로 구속력이 없는 단순한 권고에 그치고 있어서 실행으로 옮겨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12월 회담을 앞두고 요르그 아스무센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은 “집행 위원회가 내린 권고 중에 회원국들은 단 10%만 이행했다”(4)며 유감을 표했다. 주창국인 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보기에 구조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호전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협약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융자조건을 바탕으로 한 구제 금융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덕분에 IMF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에 경제 개방을 강요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일명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IMF, EU 집행위원회)가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들에게 이미 사용한 바 있다.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을 강요받았던 그리스나 키프로스, 포르투갈이 대표적인 예다. 재정위기를 겪지 않는 국가까지 포함한 모든 유럽 국가에 이러한 전략의 ‘혜택’을 퍼뜨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U 위원회는 유로존의 모든 국가에 새로운 장치를 강요하게 될 순간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보상으로 주어질 ‘금융 혜택’에 대한 논의만 남아 있는 상태다. 12월 정상회담에서 유럽 정상들은 이 주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처음에 EU 위원회는 회원국들의 새로운 분담금이나 곧 시행될 금융 거래세-경제 자유화를 위해 금융 거래에 세금을 부과-를 바탕으로 한 기금 설립을 제안했다.
 
일부 회원국들의 회의적인 반응
 
하지만 정상회담 직전에 드러났던 EU 위원회의 내부 문건(5)에 따르면 유럽 정상들은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우대금리로 유로채권 발행 즉, 위기 초반부터 부채 위기 국가들이 요구했던 국채에 대한 상호부조 체제의 첫 적용을 원하고 있다. 유로공동채권을 발행하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EU의 건실한 경제 대국들 덕분에 금리 인하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EU 위원회가 얻게 될 강력한 지렛대 효과가 예상된다. 관련국들의 선택은 EU 위원회가 요구한 개혁을 실행하거나 소중한 금융자본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독일에 비해 거의 2% 높은 금리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지도자들에게 유로 채권 발행은 실질적인 비용절감으로 느껴질 것이고 덕분에 EU 위원회는 개혁을 강요할 수 있는 위치로 부상할 것이다. 국채의 상호부조가 재정난에 빠진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는 하지만 계약 협약에 의한 유로 채권은 정부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지배로 변환될 위험이 있다.
 
 막대한 재력과 결합된 이 새로운 무기는 결국 유럽 재정통합협약 그 자체보다 국가적인 연대에 훨씬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재정통합협정이 구속성을 띠기는 하지만 회원국들이 따라야 하는 예산 과정을 준수하는 데 사용된 세입 재원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반면 계약협약은 유럽 위원회가 반항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토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12월 회담은 원칙적인 합의 수준에만 머무른 채 막을 내렸다. 나머지 사안에 대한 결정은 다음 회담으로 연기되어 2014년 10월에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 위원장의 지지를 받아 이 프로젝트를 “밀리미터(mm)씩”(6) 계속 진행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계약 협약을 둘러싸고 독일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가 강하게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EU 위원회 내에서도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유럽 시민사회도 프로젝트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적어도 가장 문제가 되는 사항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내부적인 개입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2007년 경제위기 이후 항상 한 발 늦게 대응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유럽 좌파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드문 활동기회를 얻은 셈이다.
 
글·프레데릭 파니에 Frédéric Panier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세르주 알리미, ‘범대서양주의의 함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3월호.
(2) 유럽회의 브리핑, 2013년 12월 13~14일.
(3) 이안 위샤트, ‘EU economic contracts would stoke protests, lawmakers say’, <블룸버그>, 2013년 12월 11일.
(4) 피터 뮐러, 크리스토프 폴리,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미하엘 자우가, 크리스토프 슐트 ‘European reform: Merkel’s surprising new ally in Brussels’, 슈피겔 온라인, 2013년 10월 28일.
(5) 루크 베이커, ‘Euro zone mulls cheap loans as incentive for economic reforms’, <로이터>, 2013년 11월 22일.
(6) 이안 위샤트, ‘EU leaders delay deal on incentives for economic reforms’, <블룸버그>, 2013년 12월 19일.
 
 
전망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을 위한 1992년 국민투표 캠페인과 유럽 헌법과 관련한 2005년 국민투표 캠페인 당시의 발언들)
 
“나는 지난 50년간의 인류 역사상 유럽연합이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를렘 데지르, 당시 유럽 사회당 그룹 부대표
<르몽드>(2004년 10월 21일자)
 
“유럽연합은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사회보장을 실현할 것이며 사회적 소외는 감소시킬 것이다.”
마르틴 오브리, 당시 노동부 장관
1992년 9월 12일
 
“마스트리히트 조약 덕분에 우리는 더 즐거워질 것이다.”
베르나르 쿠시네, 당시 보건부 장관
1992년 9월 8일
 
“유럽연합의 가장 훌륭한 전설은 무엇보다 역동성과 상징성에 있다. 유럽연합은 역사의 암흑 속에서 비치는 유일한 빛이다.”
장 다니엘, 논설위원
<르누벨 옵제르바퇴르>(2004년 11월 25일자)
 
“국민투표에서 ‘반대한다’에 투표하는 것은 히틀러가 자행한 대재앙 이후 프랑스와 유럽연합에 가장 큰 재난이 될 것이다.”
자크 르수른, 르몽드 사장
1992년 9월 19일
 
“나는 뼛속 깊이 사회민주주의자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왜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이 유럽 연합을 원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미셸 로카르
<리베라시옹>(1992년 8월 3일자)
 
고백
“나는 유럽연합 건설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두 야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1983년)
자크 아탈리가 <축어적 보고, 1981~1986년>에서 인용(1994년)
 
“유럽연합은 프랑스의 뜻과 거슬러 프랑스를 개혁시키는 기계다.”
드니 케슬레
<트리뷴>(2000년 12월 4일자)
 
“프랑스 정부에 공산주의 장관들과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있는 프랑스의 모습과 그 정치적 논쟁을 상상해보자. 다행히 유럽연합이 있어서 그들의 사고와 논리가 끝까지 가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역시 유럽연합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UMP) 평의회에서
2008년 12월 5일
 
재난의 예언
“국제 경기의 엄격한 규정을 근거로 들어서 근로자들이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야만 높은 고용수준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노동계층이 투지를 보이고,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몇몇 사회 법안들이 터무니없는 착취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과 국가는 자본에 버림받을 경향이 있을 것이다.”
장 뒤레,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경제연구센터 대표
1956년
 
“여전히 이 계획은 공공자금으로 민간 자금을 때울 위험이 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리스 구제금융 계획이 아니라 민간 채권단, 주로 유럽 금융기관의 구제금융 계획으로 보일 수 있다.”
파울로 노게이라 바티스타, IMF 브라질 대표
첫 그리스 구제금융 계획 승인을 위한 IMF 이사회 회의 당시
2010년 5월 9일
 
번역·배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