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대통령의 무능

2014-04-01     장 피에르 세르니

  알제리 정부의 무능력은 잠재적 불만을 자극해 때때로 3월 중순 가르다이아 주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유혈 사태를 일으킨다. 이런 상황 속에서, 4월 17일로 예정된 대선에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현 대통령이 다시 후보로 나서자, 이에 분노한 알제리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는 게 없다.

 알제리의 한 전직 장관은 “여름 끝자락에, 공포의 바람이 정부 최고위층에 불어 닥쳤다. 며칠 만에 정당을 비롯한 보안기관과 정부 그리고 군은 엉망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집권당인 민족해방전선(FLN)은 서둘러 아마르 사아다니를 FLN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2007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국회의장 자리에서 축출된 전력이 있었다. 이런 그를 FLN 중앙위원회는 내키진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아다니는 육군본부 산하에 설치된 정보국(DRS), 즉 정치경찰의 수장, 이른바 󰡐투픽󰡑이라 불리는 신비스러운 이 기관의 종신수장 모하메드 메디엔 장군도 공개적으로 󰡐경질󰡑했다. 이는 알제리에서는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정치경찰에 부여되었던 많은 권한들, 예를 들면 정부 홍보물을 언론에 배포할 수 있는 권리나 체제의 다원주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당과 노조 그리고 단체를 상대로 막후 공작을 펼 수 있는 권리 등이 철회되었다.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4명의 장관(국방, 내무, 법무, 외무)을 포함한 10명의 장관들이 가차 없이 경질됐다. 대통령은 신임 장관들-복직한 헌법재판소 소장은 제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의 결실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뇌혈관 발작으로 지난해 3개월간 파리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했지만 심신이 쇠약해졌다. 귀국 한 달 후인 지난해 8월 중순 밀라노에서 스캔들이 터졌다. 이탈리아 국영 석유회사(ENI)의 자회사인 이탈리아 사이펨(Saipem)의 경영자가 총 110억 달러에 달하는 알제리 수주를 따내기 위해 알제리 중개인들에게 2억 달러의 뇌물을 지불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알제리 당국은 엄청난 뇌물 규모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들의 근심은 다른데 있었다. 예컨대 처음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외국 검사들이 알제리를 부패사건으로 제소한 것이 걱정인 것이다. 따라서 2009년부터 정기적으로 세계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지만 한 번도 재판을 받은 적이 없는 부패 스캔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알제리 법원은 스스로 알아서 납작 엎드리는 법을 배웠다. 알제리 서부지역의 한 법원장이 풀죽은 목소리로 “난 까다로운 사건을 다룰 때면, 판결 심의를 빌미로 휴정을 선포한다. 사실, 난 배석판사들과 함께 대기실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에게 판결을 알려주는 전화를 기다린다”라고 고백했다.
 
2013년 9월 1일, FLN 신임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날, 사아다니는 부리나케 법무 장관, 모하메드 샤르피에게 달려갔다. 그는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유명한 전 에너지 장관 샤키브 켈릴의 이름을 부패사건 서류에서 빼라고 샤르피를 압박했다. 그는 샤르피에게 만약 이를 거절하거나 실패할 경우 장관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로부터 11일 후, 샤르피는 다른 9명의 장관들과 함께 경질됐다.
대통령 선거 전날, 대통령은 이 스캔들을 사회 불안정화를 노리는 시도, 즉 터키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강타한 스캔들 쯤으로 치부했다. 정부 언론들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이 스캔들 주모자들을 규탄하며 이들이 해외에 거주할 것이라고 했다.(1) 그렇다고 국내에는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분명 DRS가 이 사건에 개입되었을 것이다. 부패사건 수사 전문인 DRS는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여러 난처한 사건들을 폭로한 적이 있다.
 
알제리를 좌우하는 4인
 
그중 하나는 알제리 국영 석유회사 󰡐소나트랙(Sonatrach)󰡑과 연관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모호한 조건으로 중국과 일본 회사가 알제리 정부로부터 수주를 따낸 알제리 동서고속도로 건설과 연관된 사건이다. 따라서 정부 언론들은 투픽 장군을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이 악화된 부테플리카의 총애를 받는 󰡐4인방󰡑이(2) 알제리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중국에서 1976년, 마오쩌둥의 임종을 틈타 그의 부인 장칭이 중국 공산당을 장악했던 것처럼, 40년이 지난 지금 알제리에서는 부테플리카의 젊은 동생 사이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압델말렉 셀랄 총리와 사아다니 FLN 사무총장 그리고 이슬람 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자 알제리 동서고속도로 스캔들을 무마시킨 아마르 구울 교통부 장관 등 3인방이 사이드를 보좌하고 있다. 대통령 특별고문인 사이드 부테플리카는 알제에서 서쪽으로 대략 20Km 정도 떨어진 시디 프레드에 위치한 요양원에 요양 중인 자신의 형과 외부세계 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퇴역장군 호신 벤하디트는 자신의 동료였던 사이드를 성토했다.(3) “사이드가 국정을 이끌고 있다. 그의 유일한 적은 DRS이다. 장관, 왈리스 도지사, 경찰, 고위 책임자 등 모두가 그 앞에 엎드린다. 그가 대통령과 연락이 가능한 직통 전화회선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한다. 그리고 군부에서는 가이드 살라가 사이드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가이드 살라가 개인적으로 사이드를 지지하는 것이지, 군부가 그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이고 생각이 단순한 인물로 소문이 자자한 아메드 가이드 살라 참모총장(74)은 예컨대 4인방 중 네 번째 인물이자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 실권자이다.
 
DRS에서 암암리에 홍보를 담당했던 전직 대령 모하메드 셰피크 메스바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2년 총선 무효화 이후(4), 군부의 형식을 갖춘 이른바 콘클라베(Conclave,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시스템으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의 선거회의를 본뜻 비밀회동)가 등장해 행동수칙을 정했다. 참모총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군 지휘관들, 거대 정당들, 군소 정당과 함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해온 정보국 간 비밀회동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결정은 합의 아래 내려졌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1일 내각 개편 때, 가이드 살라를 국방부 차관에 임명함으로써, 군과 알제리 일부를 호령하는 자리에 자신의 수족을 배치했다. 2014년 1월, 당시 내각으로 임명된 자들 중 3명은 퇴임했고,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던 전 책임자는 알제리 북부 블리다 군사재판소에 회부되었다. 그 밖의 다른 내각 임명 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알제리 개혁󰡑을 주도했던 물루드 함루슈 전 총리는 “국민의 군대가 알제리를 구해야 한다”며 알제리 개혁에 동참해 달라고 이들에게 정중히 손을 내밀었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구 정치 “시스템”은 살아남았다. 󰡐4인방󰡑이 구 정치 시스템을 대체하고 15년째 집권하고 하고 있는 현 대통령은 스스로 대선을 이끌기엔 너무나 쇠약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내세워 네 번째 임기를 향한 대선 캠페인을 조종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의 모든 권력은 갈수록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1인, 즉 부테플리카에 집중되고 있다. 부테플리카는 알제리의 장관들과 정부기관 책임자들의 역할을 대체가능한 하찮은 엑스트라 역할로 축소시켜버렸다. 그의 첫 내각에서 장관을 지낸바 있는 한 인물은 “이런 인물과는 일하기 힘들다. 권위적이고, 지나치게 꼼꼼하고, 의심도 많고, 머릿속에 나폴레옹을 그리며 사는 인간이다” 고 꼬집었다. 자신의 허락 하에 혹은 격려 하에 부정행위로 구성된 의회를 시시하게 여겨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부테플리카는 법보다는 지시를, 선거보다는 임명을, 토론보다는 조종이나 얄팍한 수법을 더 선호한다.
 
오바마가 와도 바뀌지 않는다
 
야당은 여태까지 그에게 거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이슬람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 다양한 성향을 지닌 야당들은 소속 사제단과 경쟁 그룹에 따라 분열되어있다. 4월 17일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도 역시 이들 여당들은 서로 다투고 있다. 대선에 출마를 할까 말까? 아니면 서로 연합해 공식 후보를 낼까? 모든 것이 유보적이다. 알제리 국민들은, 비록 이슬람 성전주의자인 지하디스트 그룹이 2013년 1월 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티구엔투린의 가스 시설을 공격함으로써 국가 기반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제리 정부보다는 산악지대나 남부에 집중되어 있는 이들 지하디스트들을 더 무서워한다.
여당 측에서도 한 후보가 등장해 자신의 이름에 걸 맞는 대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991년, 정치 수용소 개설을 반대하다 사임한 전 법무 장관 알리 벤플리스. 부테플리카 첫 임기 때, 총리까지 지낸바 있는 벤플리스는 2004년 대선에 부테플리카 대항마로 출마했지만 6%대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전 법무 장관은 법조계와 자신이 사무총장을 지낸 FLN 내에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슬림 형제단을 포함한 전국적인 조직망도 갖추고 있다. 그는 모든 정치성향을 아우르는 공개 토론을 거쳐 사법부의 독립과 입법부에 보다 큰 권한을 부여하는 새 헌법을 마련해 (알제리를) 민주주의로 전환시키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알제 근처, 칼리드의 한 바에서 만난 건물 벽화 화가 후세인 데이(37)는 길거리의 남자답게 자신의 감정, 즉 회의적인 자신의 의견을 노골적으로 피력했다. “부테플리카는 이제 끝났다! 시나리오는 이미 정해졌다. 선거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버락 오마바가 알제리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제리는 바뀌고 있다.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동서를 가로 지르는 3차선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새로운 풍광들이 펼쳐진다. 종종 공사가 중단된 신축 건물들이 시골에 빽빽이 들어서 있고, 촌락들은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새로운 기업형 농장주들은 대단위 농경지를 차지한 채 트랙터로 농사를 짓고 있다.
 
동부, 보르디 보우 아레리디와 세티프 사이에는 서서히 들어서고 있는 개인 사업체들이 눈에 띈다. 벽돌공장, 청량음료제조업체, 채석장, 방앗간, 식품 가공업체, 조립 공장 등이 옛 국도를 따라 줄지어 들어서 있다. 보르디의 한 가족기업인 콘도르 사는 6500명의 직원을 고용해 태양 전지 패널 , 에어컨, 평면 텔레비전 , 휴대폰, 아이패드 등을 제조하고 있다. 󰡐드라이버󰡑를 생산하던 공장이 변모한 것이다. 이 회사의 부사장, 압델말렉 벤하마디는 “종합제조회사가 대세이다. 그게 경제적으로도 이윤이 남는다”라고 주장했다.
알제리의 또 다른 끝자락에 있는 트렘센(5)에 위치한 한 알제리 기업은 한 유럽기업의 알제리 대단위 이전을 타진중이다. 이 같은 사례는 분명 처음일 것이다. 값싼 인력 (주당 40시간 노동에 평균 200유로)을 비롯한 저렴한 대출과 에너지 비용 등으로 기업인들을 자극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들은 정권 내의 인맥을 총동원해 사기업 보다는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공공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알제의 중산층 사이에서는 최근 두 가지 붐이 일고 있다. 자가용과 에어컨이다. 이것들이 거리와 건물 벽을 장악했다. 직장인들은 보통 아침과 저녁 출퇴근길에 1시간 이상씩을 허비한다. 허허벌판에 중단된 공사판들, 양떼들, 곳곳에 널린 빈민촌 등 도시 모습도 황량하다. 중산층들은 공공부문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사립학교와 유치원들이 우우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알제리 수도 중심가에 들어선 고급 건물들 1층에는 요리나 언어 속성과정을 알리는 수많은 벽보들이 나붙어 있다. 2005년, 알제 근처 델리 이브라힘에 들어선 알알즈하르 병원은 110개의 병상을 갖추고 300명의 직원을 고용한 현대적인 병원임을 내세운다. 이 병원의 원장인 의사 자말에딘 코자바흐는 “안전하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공공병원들의 의사들이 우리에게 많은 환자들 보낸다”고 알려주었다.
 
이것은 분명 빈말은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부테플리카가 다시 대선 출마를 발표하자, 채 몇 분도 안 돼 한 공공부문의 여의사가 반(反)부테플리카 시위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시위 주도자인 아미라 부라우이는 한 민영 텔레비전(6) 토론 방송의 패널로 나와 부테플리카의 네 번째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한 여성의원에게 이 같은 말을 했다.
“난 공공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프랑스 파리의 발드그라스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우리 알제리 여성들이 출산 후 침대가 부족해 같은 침대를 쓰는 처지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알제리는 알제리 정치 지도자들 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장 피에르 세르니·Jean-Pierre Sereni
언론인
 
번역·조은섭chosu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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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2월 17일, 튀니스를 방문한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5개월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알제리에 들리지 않았다. 이 같은 행동은 워싱턴이 부테플리카의 새로운 대선 출마를 지지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우고 있다.
(2) “4인방”은 중국 정치지도자에게 붙였던 이름이다. 4인방 중에는 마오쩌둥 사망 1개월 후인 1976년 10월 6일 체포된 장칭도 포함되어 있다.
(3) 알제리 온라인 신문 <알제리의 모든 것>, 2014.02.12, www.tsa-algerie.com.
(4)1992년 1월, 알제리 총선 때, 지난 “10년간의 암흑기”와의 시민전쟁을 선포한 이슬람구원전선 (FIS)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총선을 중단시켰다.
(5) “알제리의 평온한 날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02.
(6) Echourouk TV, 20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