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밀월 깨진 멕시코 정치
2014-04-01 장 프랑수아 부아예
1938년부터 멕시코 경제의 보루 역할을 했던 석유산업은 신경제주의의 광풍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 났다. 멕시코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 2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에너지 시장에 대한 민간투자 개방을 발표했다.
피가로,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즈 등 세계 주요 언론이 ‘젊고’ ‘매력적이고’ ‘현대적인’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신임 대통령 칭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니에토 대통령에게 2013년은 최고의 해였다. 12월 말 에너지시장(전기, 원유, 2차 제품)에 대한 투자를 국내외에 개방하는 헌법개정안을 확정했고 그 과정에서 좌파를 분열시키는 쾌거까지 거두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2012년 7월 멕시코 대선 직후로 가보자. 근소한 차로 낙선한 제 1야당 민주혁명당 (PRD) 소속의 진보정당 연합후보였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 후보와 연합세력은 대선에서 부정선거와 매표행위가 저질러졌다고 맹비난하고 헤수스 잠브라노 민주혁명당 대표는 선거무효를 요구했다. 대통령 당선자와 반대진영 사이에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듯 했다.
그런데 5개월 후 전쟁이 아닌 한 편의 드라마가 전개되었다. 니에토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브라노 PRD 당대표는 신임 대통령과 여당인 제도혁명당 (PRI) 대표 그리고 국민행동당 (PAN, 기독우파) 대표가 함께 모여 '멕시코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멕시코를 위한 협약은 멕시코가 필요로 하는 ‘구조개혁’ 실시를 위한 일종의 여야 공동 합의문이다.
문제는 멕시코를 위한 협약이 PRD 당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잠브라노 당대표 개인의 의지와 친당대표 성향의 사회민주주의계 의원들의 주도로 체결된 것이라는 것이다. 오브라도르 후보가 이끌고 있는 반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시민운동인 모레나 (Morena, 국가재건운동)와 PRD 내의 소수정파들은 협약에 반대했다. PRD의 ‘배신’을 미리 감지한 오브라도르 후보는 대선 다음날 탈당을 발표하고 모레나를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브라도르의 탈당으로 좌파성향 유권자들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한 잠브라노 당대표는 에너지시장과 1938년 국유화된 국영석유회사 페멕스 (Pemex)의 민영화, 국민들의 반대가 가장 심한 의약품과 식료품에 대한 부가세 과세는 멕시코를 위한 협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니에토 신임 대통령의 최우선 목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PRD가 정부와 필사적으로 싸울 의도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PRD의 지지로 급진좌파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조치들을 포함한 첫 번째 개혁안은 신속하게 처리될 것이며 니에토 대통령은 2013년이 가기 전에 에너지개혁안을 채택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모레나의 마르티 바트레스는 집행위 의장은 여당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니에토 대통령이 우파 단독으로 개혁안을 통과시키면 간접적으로 좌파를 결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고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좌파가 전국적인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니에토 대통령은 일부 좌파와 연계해서 좌파를 분열시키는 동시에 친야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정부정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게하려고 했다.”
뾰루퉁한 우파와 급진좌파
잠브라노 당대표와 PRD 주요인사의 행보는 니에토 대통령의 탁월한 전술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니에토 대통령은 이들과 2013년 1년 동안 개혁법안을 협상했다. 중도 좌파조차 자랑스러워할 조치들이었지만 우파와 급진좌파에게는 모두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잠브라노 당대표 계열 상하원 의원들과 기독우파 정당 PAN의 일부 의원들의 도움으로 교육개혁안, 반독점법, 세제개혁안이 통과되었고 니에토 대통령은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좌파뿐 아니라 우파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교원평가제를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은 낙후된 지역의 교사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교사들의 분노를 샀다.(1) 주요산업에서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반독점법은 세계 제1의 부호이며 멕시코 전기통신분야를 독점하고 있는 텔멕스텔레콤의 카를로스 슬림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2) 지난 20년 동안 미디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텔레비자와 텔레비지옹 아즈테카 (좌파와는 철천지원수) 역시 반독점법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세제개혁에는 의약품과 식료품에 대한 부가세 면제와 대기업의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잠브라노 PRD 당대표는 “세제개혁안은 좌파 특히 PRD의 정책으로 PRD가 제안해서 멕시코를 위한 협약에 포함된 것”(3) 이라고 2012년 10월 열정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너지개혁안 채택 3개월을 앞두고 유권자들은 일부 좌파의원들과 정부 사이의 밀월관계에 좌표를 잃고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PRD는 임시 전당대회에서 멕시코를 위한 협약에 계속 참여한다고 천명했었는데 1주일도 안되어 에너지개혁안에 대한 토론을 며칠 앞두고 탈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석유개발 민영화가 정부의 어떤 양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통과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협약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이 이유였다. 탈퇴 직후 잠브라노 당대표는 대규모 거리 시위를 촉구했고 모레나도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경제침체로 인한 멕시코의 경제위기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민영화가 되면 기름, 가스, 전기 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약속이 매혹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실제로 지상파 TV와 미국 케이블 채널이 전파하고 있는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지상주의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진 일부 국민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를 간파한 정부는 주요매체에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콜레지오 데 멕시코 대학교 세르히오 아구아요 교수에 따르면 “결속력이 강하고 통합된 브라질 노동당 (PT)은 정권을 잡은 도시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 멕시코 좌파는 분열되고 관료적이고 부패와 정치적 후견주의 (clientelism)가 만연해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오브라도르나 카르데나스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유력정치인들을 활용하는데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형사 고발된 대통령
멕시코 좌파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좌파가 마지막으로 서로 힘을 모아 국민투표 실시나 연방최고재판소 제소(가능성은 낮지만)를 통해 개혁안 실시를 막지 못한다면 멕시코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좌파진영이 단일전선을 형성해 전투에 참가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올해 1월, 모레나와 PRD의 주류세력 사이의 결별이 공식화되었다. 오브라도르는 PRD 지도부가 정부여당에 매수되었다고 비난했고 그런 세력과 연대해서 힘든 사법싸움을 벌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제부터 모레나가 혼자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레나는 2월 5일 ‘조국에 대한 배신’ 혐의로 니에토 대통령을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그리고 특별법률팀은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의회의 대통령 해임이나 개혁정책 실시를 막기 위한 시민 인신보호영장 (habeas corpus) 청구 같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중에 있다.
모레나에게 이 같은 사법적 게릴라 전 외에도 장기적이 전략이 있긴 하다. 익명을 요구한 모레나 지도부의 한 간부는 “개혁안을 폐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고 집권을 하는 길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권 창출의 도구는 사회운동과 거리의 지지가 될 것이다. 2006년 대선처럼 선거 부정행위가 없다면 말이다.
2013년 한 해 동안 모레나는 정당의 지위를 얻기 위해 부단히 투쟁했었다. 연방 선거관리 위원회가 정한 정당 설립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2014년 1월말 대부분의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모레나의 지도부는 법률이 정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여러 차례 전체회의를 소집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모레나가 빠른 시일 내에 의회에 진출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2015년 총선에서 모레나는 PRD와 단일 후보를 낼 수가 없다. 정당 결성 후 치르는 첫 선거에서 기존 정당과 연대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열된 상태에서 좌파가 총선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PRD 역시 제1야당의 지위를 잃을 공산이 크다. 많은 수의 당원들과 유권자들이 모레나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실패하면 적어도 상황을 정리하고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는 멕시코의 정치지형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득은 얻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남미 국가에서 좌파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축이 되고 진정한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견된 분열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글·장 프랑수아 부아예 Jean-Francois Boyer
언론인.
번역·임명주 myjooim@gmail.com
(1) Anne Vigna, ‘Dans les télécollèges mexicains' (멕시코의 TV 학교), <Le Monde diplomatique>, 2012년 2월호.
(2) Renaud Lambert, 'Tout l’or du Mexique' (멕시코의 황금), <Le Monde diplomatique>, 2008년 4월호 기사 참조.
(3) ‘Propuesta de Reforma Hacendaria Federal, retoma banderas del PRD. Zambrano’, 2013년 9월 9일, http://tuvozenelpactomexico.prd.org.m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