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호수가 사라진다

2014-04-01     안나 베드니크

  2011년 페루 대선에서 좌파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의 오늘날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이다. 어떻게든 광산업계 압력단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북부 카하마르카 주(州)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민중 시위의 진압도 불사하면서 말이다.

  "여러분의 의견을 누가 물어보긴 하던가요?" 2011년 5월 2일, 페루 안데스 고원에 위치한 도시 밤바마르카의 중앙 광장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전직 군인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오얀타 우말라가 말도 안 되는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과 금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죠? 금은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습니다. 부의 원천은 바로 물입니다" 그러므로 콩가 광산사업은 용인할 수 없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렇다면 콩가 광산사업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거대 금광업체 뉴몬트(51.35%)와 페루 현지기업 부에나벤투라(43.65%), 그리고 국제은행의 민간부문 대출 자회사인 국제금융공사(IFC)(5%)가 구성한 컨소시엄인 야나코차가 주도하는 금·구리 광산 개발사업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4개의 호수가 사라진다. 17년으로 예정된 개발기간 동안 하루 9만 톤가량의 중금속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곳은 다름 아닌 지하수 재충전 지역으로서, 인근 농장, 도시, 촌락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들의 발원지이다.
 
 우유와 치즈 생산지로 유명한 카하마르카 지역은 야나코차의 개발사업으로 이미 여러 곳의 호수가 말라버린 상태이다. 야나코차는 1993년부터 이곳에서 남미 최대의 금광을 개발해왔다. 이를 위해 야나코차는 초당 최대 9백 리터의 물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이는 카하마르카의 주도(州都) 카하마르카 시(市)의 인구 28만4천 명에게 공급되는 식수보다 3~4배 많은 양이다. 환경보호운동단체 및 농민순찰대(사법적 기능을 갖춘 방범조직)들은 야나코차가 일부 하천의 고갈과 중금속, 시안화물 및 기타 독성물질에 의한 많은 오염의 주범이라고 본다. 이러한 가운데 페루국민당이 구성한 연합정당인 ‘가나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광산업계에 대한 주민들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자 많은 이들이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2011년 6월 우말라는 중도파 전직 대통령인 알레한드로 톨레도와 2차 투표 당시 맺은 동맹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우말라 내각의 장관들 중 상당수가 톨레도 측 인사였다. 그런데 집권 후 5개월이 지나자 우말라의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는 극단적 입장은 거부한다! (…) 물이냐, 금이냐가 아닌 합리적인 입장, 즉 물과 금을 동시에 추구하는 쪽을 제안한다(1)” 개발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벌어진 총파업으로 카하마르카 시가 마비되다시피 했을 때 우말라 대통령이 취한 태도는 전임자들과 바를 바가 없었다. 그 역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했다. 2012년 7월 그가 야나코차 사업에 대한 지지를 재천명하면서 촉발된 시위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었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2010년 가나페루당이 마련한 ‘대변화’라는 이름의 정책 프로그램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규탄으로 시작된다. 페루의 수출특화정책을 비판했고 천연자원을 장악하려는 외국기업들의 공세에도 비난을 가했다. 2013년 9월, 광산업 박람회 ‘페루민’ 폐막 연설에서 우말라 대통령은 더 이상 전임자들과의 단절을 꾀하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부터 숙명처럼 광산개발에 매진해온 나라 페루의 대통령은 이렇게 역설했다. “광산업계는 민간투자를 활용하여 국가 발전의 지렛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1993년에서 2012년 사이 페루 광산업에 대한 민간투자는 40배로 늘어났다. 1990년대 들어 우파 출신 알베르토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시하고, 또 2000년대에는 주요 광물 가격이 폭등(금, 구리, 스테인 400% 이상, 아연 150%, 납 350%, 은 550% 이상 상승)하면서 페루 경제의 광산업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외국인 직접투자 1순위 업종인 광산업은 수출의 60%, 외화 소득의 50%, 세수의 15%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페루의 경제는 산업 다변화 수준이 미흡하고 국제시장가격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경제학자들은 페루가 지난 10년 동안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덕분에 빈곤율이 28% 포인트 낮아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수도 리마의 빈곤율은 14.5%인 반면 대표적 광산지대인 안데스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58.8%에 달한다. 광산업은 지역경제의 기반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경제활동인구의 1.3%만이 종사하고 있다. 게다가 농촌의 주요 수입원인 가족농업에 이용되는 토지자원과 수자원까지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말라 정권은 사회복지정책 재원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광산업 관련 세법을 개정했으나 그렇다고 광산업체들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았다. 세금 신설로 인한 추가 비용은 법인세 과세 표준에서 공제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비교적 작았다. 오히려 더 이상 매출이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세액 산출 방식은 바로 광산업계의 제안과 일치했다.
게다가 광산관련 업체들은 정부에 행정절차 간소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금속 가격이 2년 째 하락하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자들을 붙들어두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지난 봄, 시행령 형태로 마련된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페루 정부는 이미 광산개발권 양허 조건을 수정했다. 고고학적 유산 보호를 보장하는 조항은 폐지되다시피 했고(2) 환경영향평가 승인 시한은 100일로 단축됐다. 또한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안데스 종족들은 법령에 따른 원주민 의견수렴 대상에서 제외됐다.
 
 광산채굴·개발권 양허 건수는 늘어나고 있고, 새로운 땅으로 확대되고 있다(일부 지역에서는 토지의 69% 차지). 이와 동시에 광산업은 사회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2013년 9월 발생한 175건의 분쟁 가운데 107건이 광산개발과 관련이 있었다. 페루는 2016년 3백억 달러 이상의 광물을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현지주민들의 저항이라는 최전선을 넘어야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 2012년에는 프랑스 헌병대 고관 두 명이 페루 시위진압경찰에게 ‘군중통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카하마르카를 방문했고, 일 년 후인 2013년 11월에는 프랑스와 페루 간 치안·국방 협력협정 2건이 체결됐다. 조만간 프랑스는 페루에 추가로 교관을 파견할 계획이다.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퇴진하기 직전 시위가 한창이던 튀니지에 당시 프랑스 외무유럽장관 미셸 알리오 마리가 전수한 ‘프랑스식 노하우’가 이로써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고 봐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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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나 베드니크 Anna Bednik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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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2011년 11월 16일 기자회견.
(2) 각 지역 문화담당국은 해당 구역 내의 고고학적 유물 존재 여부를 20일 이내에 확인해줘야 한다. 기한이 지나도 답변이 없을 경우 청신호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