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해체 부추기는 '파견노동지침'
본래 파견 노동 관련 지침을 비롯한 EU 방침은 스트라스부르 소재 유럽의회에서 장기간 논의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 입법 과정이 기이한 비밀집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세요.” 유럽의회 인근에 자리한 브뤼셀의 한 카페. 잠시 취재진이 입구에서 여자를 기다린다. 카페 안에는 양복 상의에 별들이 촘촘히 박힌 유럽의원 배지를 단 양복 차림의 신사들이 모두 하나 같이 노트북 작업에 열중이다. 넥타이 부대로 카페가 북적이는 가운데 한 손에 맥주를 든 벨기에 국립철도회사 유지보수 담당 직원 두 명은 마치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사람인 양 보이기까지 한다. 비로소 정찰을 나갔던 여자가 되돌아온다. “됐어요. 들어오세요. 다행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망설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익명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재차 취재진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잊지 않는다. 실내로 들어간 여자는 벽을 등진 한쪽 구석 자리에 앉아 마지막으로 근심 가득한 눈길로 손님들을 쭉 둘러본다. 오늘의 메뉴로 송로버섯 라비올리를 추천하고 있는 이 카페를 위시해, 룩셈부르크 광장에 자리한 건물들은 근엄한 분위기가 만연한 이 유럽지구에서 유일한 사교의 장으로 통하며 수많은 정책결정권자들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그런 정책결정권자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이가 불쑥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로비스트에게 이곳은 최고의 장소라고 할 수 있죠.”
우리를 카페로 안내한 여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이 좁디좁은 바닥에서 신중함은 오히려 대담함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의원·보좌진·정치고문·관료 등 거의 모두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번번이 거절하곤 했다. 2014년 2월 심의에 들어간 노동자 파견 관련 ‘이행지침 96/71/EC’(박스기사 참조)는 유럽연합에서 일하는 약 1백50만 명의 노동자의 운명이 걸린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위기가 한창인 지금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가운데 노동자 파견 문제가 일각에서 일고 있는 유럽연합 해체 여론을 더욱 부채질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 상원 보고서는 “이 문제가 유럽국 국민들 사이에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높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1) 따라서 파견 노동자 관련 지침 개정안은 의원들 간 뜨거운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여론을 자극하고, 미디어에서도 숱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길로 향하는 지름길이며, 현재 진행 중인 재협의 과정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윽고 여자가 주문한 고급 버섯이 어우러진 라비올리 요리가 나왔다. 여자는 우리가 별로 먹을 것도 없는 얄팍한 등심 스테이크를 주문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본격적으로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취재진이 해답을 찾아 브뤼셀까지 발걸음을 하게 한 그 질문은 바로 96/71/EC를 비롯한 파견 노동자 관련 각종 EU 지침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자가 유럽연합의 입법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모든 법안은 발의권을 독점하는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 유럽의회와 각국 장관들로 구성된 EU 각료이사회가 차례로 법안을 심의한다. 두 번의 심의 과정에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다시 조정 절차가 시작된다.”
지난 인터뷰 때 한 관료도 유럽연합의 입법 과정이 얼마나 끝이 없는 지난한 과정인지 취재진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총회 심의 절차는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대체 750명의 의원들을 상대로 합의안을 도출하고, 28개 언어로 열띤 토론을 주관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가령 슬로바키아 의원의 발언을 듣고 포르투갈어로 트집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가?” 우리의 ‘정보원’(프랑스 원문의 ‘두더지(taupe)’는 정보원을 의미-역주)은 잠시 포크를 내려놓더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소스가 담긴 접시에 코가 닿을락 말락할 정도로 잔뜩 고개를 수그렸다. “매 단계마다 로비가 치열하다. 그러니 입법 과정이 길 수밖에 없다. 입법 과정 전후로 EU 집행위원은 물론 장관,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가 판을 친다. 대개는 전문성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을 내세운다.” 여자는 미소 띤 얼굴로 웅크렸던 몸을 펴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입법 과정을 더 신속하고 은밀하게 진행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 내에 ‘비공식 삼자협의’가 탄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EU 조약에 규정된 절차가 아닌 이 삼자협의에는 두 입법 기관인 유럽의회와 EU이사회가 구성한 소수의 대표자들이 협상자로 참여하며, EU 집행위원회가 중재자 역할을 담당한다. 1996년 통과된 노동자 파견 지침에 관한 재논의 과정도 현재 이 삼자협의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인터뷰 대상자가 메뉴판을 훑으며 말했다. 요컨대 ‘입법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자 수백만 명의 운명이 공개적인 과정이 아닌, 밀실에서 혹은 취재진이 잠시 후 자리를 뜨게 될 이런 식당에서 소수의 참여자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협의의 목적은 “거대한 액셀(Excel) 표”를 채우는 것, 좀더 서정적으로 표현하자면 “네 개의 칸이 달린 문서”를 채우는 데 있다고 한 관련자가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먼저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이 첫 번째 칸을, 유럽의회의 ‘보고서’가 두 번째 칸을, 이사회의 ‘연구’가 세 번째 칸을 채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타협안’이라 불리는 마지막 칸을 공백으로 남기지 않는 최종 과제만이 남는다.
삼자협의는 반민주적 비준 과정
유럽의회에서 100여 km쯤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다니엘 게귀앙의 조촐한 사무실에는 십여 명의 직원들이 한창 작업 중인 문서가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서마다 일일이 제목이 달려 있지는 않았다. 과거 유럽제당업협회 회장과 “유럽농민과 농업협동조합을 공동으로 대변”하는 ‘유럽농민연합-농업협동조합연합회(COPA-COGECA)의 회장을 역임한 데귀앙 대표는 현재 로비 컨설팅 업체를 운영 중이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얼마나 열변을 토하며 말을 했는지 미처 커피가 식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삼자협의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제가 심각하다. 삼자협의는 밀실협상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골방이나 선술집에서 10명의 작자들이 모여 하는 협상은 절대적으로 투명할 수가 없다. 반민주주의적이다! 흡사 콘클라베에 비견할 만하다. 마지막 흰 연기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난다. 사실상 총회 표결이란 것도 그저 한낱 비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 막후 로비에 조예가 깊은 이 60대 노인은 입법 과정이 좀더 ‘투명’했던 과거의 좋은 시절을 그리워했다. “당시 로비스트들은 입법 과정이 투명한 덕분에 더 넓은 운신의 폭을 누릴 수가 있었다. 가령 의원들을 만나러 가면 모두가 그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반면 요즘 로비 시스템은 매우 폐쇄적이다. 그래서 기존에 발로 뛰던 로비스트들의 활동도 훨씬 더 기술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주로 사무 업무를 보는 관료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체 스트라스부르까지 직접 찾아가 유럽의회 인근 술집에 로비스트들을 대거 포진시키고 일일이 악수를 하러 다닐 이유가 무엇일까? 요즘은 모든 게 비공식 삼자협의를 통해 진행되는데 말이다.”
게귀앙 대표가 요즘 극복하기 힘든 각종 장애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과거에는 더없이 편안한 삶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자협의 체제는 로비스트들이 결코 한가롭게 쉬는 꼴을 보지 못한다. 유럽의회에서 일하는 한 관료도 이런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는 한 주에도 몇 번씩 “마이크로소프트·애플·실리콘밸리·유럽상공회의소 등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모두 “노동자 파견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2012년 3월 21일 EU 집행위원회는 본래 지침을 전면 개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법적 장치로 ‘이행지침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거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이 추진한 ‘소셜 덤핑(국제 수준보다 훨씬 낮은 임금수준을 유지해 원가를 절감하고 이로써 제품을 국외시장에 싼값에 판매하는 행위-역주)과의 전쟁’(2)은 너무도 소극적인 규제에 머물렀기에 결국 협상에 참가한 한 여성은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라즐로 안도르 EU 고용담당 집행위원은 다음과 같이 그녀가 평생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할 답변을 내뱉었다. “값싼 노동자를 제공하는 데 안성맞춤인 지침이지 않나! 빈대 하나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타협정신의 어두운 그늘
2013년 12월. 다음은 각국 장관이 EU 각료이사회 차원에서 함께 논의에 나설 차례였다. 각국 장관은 가히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승리라고 자평할 만한 타협안을 도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노동자 보호와 소셜 덤핑 척결을 위해 한걸음 전진한 역사적인 날”(3)이라고 프랑스의 노동부 장관이 자찬했다. 하지만 전진이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1996년 지침은 결코 ‘고강도’ 감독을 금지하지 않았다. 반면, 새 법안은 파견 노동자에 대한 ‘고강도’ 감독을 건설 분야에만 한정했다. 또한 발주기업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연쇄적인 하청 시스템에 대한 규제도 미흡했다.
이에 대해 유럽의회 고용사회위원회(EMPL) 위원장인 페르방슈 브레스 사회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사회에서 타협안을 이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감안한다면 아주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파견 관련 법안을 전면 재논의하는 데는 많은 위험 부담이 따른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올랑드 대통령도 전면적인 개정은 원치 않았다.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빈손으로 논의가 끝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원색적인 표현이 서슴없이 오가는 것은 그만큼 알력 싸움이 팽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996년 법안을 전면 수정했다면, 우리는 아마 박살이 났을 것이다. 사실상 2004년과 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신규회원국(4)은 광폭한 미치광이들이다. 그들은 이 EU 지침이 설립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의 볼셰비즘적인 성격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법안이라고 여긴다.” 관련 사안을 담당 중인 한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관료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삼자협의의 일환으로 다시 개정안 논의는 유럽의회의 소관으로 돌아갔다. 올리비에 플뤼망동 보좌관은 유럽의회의 생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사회에서는 “대개 군인 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관료들을 상대해야 한다.” 반면 유럽의회의 경우에는 모두가 “유럽 해체에 대한 만성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의원들이 대개 하향 조정안을 그대로 수용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3월 5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삼자협의는 2013년 12월 이사회가 제안한 내용을 수용한다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하향 조정안이라고 했는가? 아니,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을 ‘타협정신’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타협정신은 브뤼셀 정치문화 고유의 자질 중 하나다.(5) 브레스 유럽의회 고용사회위원회(EMPL) 위원장도 타협정신을 중요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파견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당장 챙길 수 있는 최소 조건부터 확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외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럽의회 선거 이후에 다시 타진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란 바로 EU 조약에 보장된 네 가지 중대한 자유인 재화·서비스·자본·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호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이 각 민족들을 상대로 경쟁 체제를 형성하게 하는 행위를 자유라 칭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공산당 소속 에릭 보퀘 상원 의원은 말했다. 누구라도 이 네 가지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날엔 모든 이들의 집중포화를 받을 감수를 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에서 일하는 한 관료가 “유럽연합 체제는 이 네 가지 자유에 기반하고 있다. 이 원칙에는 절대 손을 댈 수가 없다”라고 거만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다행히 각국의 민족들은 종종 배타적 집단의식이 가득한 이 세계에 대해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령 2월 18일 유럽의회 ‘예후디 메뉴인 홀’에서 열린 사진전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불끈 주먹을 쥐어 올린 피투성이의 젊은이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거리, 시위대를 위협하는 경찰 대열. 사실상 유럽국민당(EPP) 주도로 열린 이 사진전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사진은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와 마이단 광장에서 저항시위를 벌이는 군중의 모습이었다. 반면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온갖 학대에 시달리며 일하는 파견 노동자들의 시위 모습을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노스크 지역에서 일하는 포르투갈인부터, 플라망빌 유럽형가압경수로(EPR)에서 일하는 폴란드인, 칼라브리아 농촌에서 일하는 루마니아인에 이르기까지, 착취에 시달리는 파견 노동자들의 저항 시위는 수없이 많기만 하다.
(1) Eric Bocquet, ‘노동자 파견 유럽 규정에 관한 유럽정무위원회를 위해 작성된 정보 보고서’, 제527호, 상원, 파리, 2013년 4월 18일.
(2) 스트라스부르 총회 연설, 2009년 9월 15일.
(3) 노동·고용·직업교육·노사대화부가 발표한 공식성명, 파리, 2013년 12월 9일.
(4) 2004년 가입국 : 키프로스,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2007년 가입국 : 불가리아, 루마니아.
(5) Marc Abélès, Irène Bellier, ‘EU 집행위원회 : 문화적 타협에서 타협의 정치문화에 이르기까지’,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제3호, 파리, 1996년.
<상자 기사>
‘좋은 구상’에서 시작된 오디세이 모험
1971년에 이르면서, 로마조약(1957년)이 권고한 인간의 자유로운 통행이 점차 현실화됐다. 인간의 통행을 자유화하려는 목적은 먼저 노동 ‘비용’ 절감에 있었다. 유럽경제공동체(유럽연합의 전신)는 파견 노동자에 대해 본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계속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1986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소셜 덤핑 문제가 한층 심화됐다. 같은 해 부이그 사는 TGV 대서양 노선 공사에 파견된 포르투갈 노동자 46명에게 본국 기준의 임금을 지급했다. 포르투갈 기업 러시 포르투게사도 1990년 EC 사법재판소가 내린 한 유명한 판결문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 서비스 제공기업에게도 파견국의 법률과 단체협약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였다. 이 판례는 1996년 12월 16일 지침 96/71/EC으로 명문화됐다. 이 법률은 원칙적으로는 파견 노동자에게 파견국의 법률을 적용하되, 파견 첫 2년 동안에는 본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따를 것을 명시했다.
브뤼셀에서 취재차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단언했다. “이 지침은 애초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었다. 아무도 유럽연합 확대로 인해 소셜 덤핑 문제가 불거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자크 들로르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연합 확대를 통해 노동자 간 경쟁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유럽의 경영자단체도 동유럽의 신규 가입을 지지하는 수많은 성명을 발표했다. 2007년과 2008년 EU 사법재판소가 자유주의 성향의 판결을 줄줄이 내놓았다. 가령 핀란드의 한 선박업체가 페리선 한 척을 에스토니아 국적의 선박으로 바꾸어 단체협약 적용을 회피하려고 시도한 ‘바이킹’ 사건이나, 스웨덴 노조가 라트비아 서비스 제공업체에 스웨덴의 단체협약 체결을 강제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라발’ 사건, 혹은 폴란드 기업이 공공입찰 사업에 참여하는 건설회사가 준수해야 할 최저임금 기준을 무시하고 독일에서 최저임금 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 루퍼 사건 등 온갖 소송건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EU 사법재판소는 파업을 비롯한 집단행동의 권리를 원칙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집단행동을 실제로 실행하는 데는 일부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암묵적으로 기업의 손을 들어준 EU 사법재판소는 각국의 노동권이 EU 조약의 정수에 해당하는 설립의 자유와 서비스 제공의 자유를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유럽의회 고용사회위원회(EMPL) 위원장인 페르방슈 브레스 사회당 의원도 이런 사실에 동조했다. “일단 외국에 파견된 노동자는 자신의 삶이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애초 프리츠 볼케슈타인 전 EU 집행위원이 본국의 노동 조건(최저임금 포함)을 적용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아마도 노동자의 삶을 간소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스 위원장이 생각하는 노동자가 양탄자 곱게 깔린 유럽연합 기구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막후에서 의원들에게 자신의 급여를 줄이고 삶을 간소화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글·피에르 수숑 Pierre Souchon
언론인이자 노동운동가.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