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갈 길 먼 정치 여정

2014-04-01     세르주 알리미<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지난 1월 26일 통과된 새 헌법으로 튀니지는 잠깐의 정치적 휴식기를 맞았다. 튀니지 새 헌법은 여성의 권리, 신성(神聖), 신념의 자유 등을 다루었고, 경제 중재안들을 통해 국가적 상황을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주요 정당들은 이제야 계획을 수립한 단계이다.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그 어느 곳에서도 아랍 혁명의 긍정적인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튀니지는 이내 아랍의 희망을 바라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10년 12월 한 시위로 시작된 사회적 열망 중 그 어떤 것도 만족스레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튀니지는 긴 정치적 혼란기를 지나 반년 새 좌파 인사가 두 명이나 암살되는 등 최악으로 치달을 뻔한 상황 속에서도, 전체 의원 216명 중 200명의 찬성으로 새 헌법을 통과시켰고 전문 관료들로 구성된 연립정부를 세웠다.(1) 튀니지의 사회적 긴장감은 한층 누그러졌고, 약간의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이슬람주의 ‘엔나흐다’(부흥)당이 집권하는 동안, 반대세력은 엔나흐다당이 또 다른 독재 정치의 기반을 닦아 정부 조직을 독점할까봐 염려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알제리, 프랑스 등의 서방국가들, 노조연맹, 경영진 인사들, 급진 좌파, 중도우파, 인권연맹 등이 입을 모아 ‘비켜 달라’고 정중히 요구해오자 엔나흐다당은 결국 처음 권력을 잡을 때처럼 평화롭게 퇴진했다.
 
 엔나흐다당은 그들의 집권 성적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터키 내 친 무슬림 형제단 세력이 약해지고 있고 이집트에서는 형제단 출신 대통령이 무력으로 축출되는 등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국제적 평판이 악화되고 있음을 고려해 퇴진 요구에 순응했을 것이다. 튀니지의 다음 대선은 새 헌법 제 148조에 따라 ‘2014년이 지나기 전에’ 치러질 예정이다. 이제 혁명은 더 이상 주요 쟁점이 아니지만, 튀니지가 아랍권에서는 보기 드문 작은 행복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와 정치조직의 연계가 정말 유리한 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슬람주의자들이 국가 상부에 자리 잡는 것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자들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반대 세력에게도 또한 그렇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들의 정체성·종교에 대한 집착과 경제적·사회적 무능력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튀니지 좌파 정당인 인민전선(FP)의 함마 함마미 대변인은 “그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모두 애덤 스미스이고 데이비드 리카르도”라고 비꼬며 “무슬림 형제단이 내놓는 경제 정책은 평행적인 수익과 거래가 전부이다. 그들의 정책에서 생산성, 부의 창출, 농업, 산업, 인프라는 물론, 경제·과학·기술력에 대한 전략적 목표 제시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어쨌거나 엔나흐다당이 2011년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발전 모델’이란 것은 ‘튀니지의 재화와 용역을 선보일 신시장 창출’, ‘절차적 간소화’, ‘보다 실질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다각화와 같은 무의미한 말들을 늘어놓아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튀니지의 문명적·문화적 유산과 아랍·이슬람의 정체성에서 기인한 덕망 높은 가치들을 다시금 구현하고, 이를 통해 수준 높은 수고와 노동을 높이 기리며 혁신과 자주성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진부한 주문(呪文)들로 포장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2)
 
 지난 이슬람주의 정부에서 관직을 맡았던 후사인 자지리는 “엔나흐다의 약점은 다름 아닌 경제다. 우리는 보다 가치관적 문제들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당내 인사들만 보아도 정치가는 넘쳐나는데 경제전문가는 충분치 않다. 다른 정당들이 경제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보다 더욱 많이 연구해왔음을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우리도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경제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나쁘지 않은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엔나흐다당 외에도 거의 모든 정당들이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왔다. 경제학자 니달 벤 셰이크는 “우리가 겪은 이 정치적 혼란기의 특징은 종교, 신념, 신앙, 성(性), 동성애, 여성의 권리 등 튀니지에서 상대적으로 터부시되어왔던 주제들이 논의되었다는 데 있다. 반면 경제 정책 기반에 대해서는 논의는 커녕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방에서는 정치적·사회적 혁명과 시위가 수없이 일어났고, 특히 케프, 카세린, 실리아나, 타타우인, 케빌리 등의 지역들은 생산구조의 부재라는 터무니없는 상황으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3)
 
 현재 반(反)이슬람주의 연합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표는 3년 전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정부가 무너진 직후 과도정부의 총리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지지 세력과 ‘자스민 혁명’으로 대표되는 뜨거운 혁명 초반 분위기를 이용해 이전 정부의 자유주의 정책을 갈아엎기 보다는 과거의 경제 모델을 이어온 기존 정책에 그대로 머무르는 편을 택했다. 기존의 경제 정책들은 IMF의 인정을 받기도 하지 않았던가.(4) 하지만 그 결과, 에셉시 전 총리는 “튀니지가 지중해 접경지역에만 집중해온 탓에 오랜 옛날부터 소외되어온 일부 지역들에는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튀니지는 2011년 이래로 해외 투자자들에게 수준 높은 노동력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제공하여 국제 분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을 택해왔다. 그러나 높은 내수를 갖춘 자주적 발전이 결여되어있고 공공투자로 추진되는 이 경제 모델은 부정할 수 없는 지역 불평등을 계속 빚어낼 뿐이다. 비공식경제와 밀수입 위험에도 정부는 한 발을 물러섰고 지하디스트 조직(이슬람 성전주의)들은 이런 틈을 십분 활용했다. 벤 셰이크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인 미국조차도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은행 국영화까지 단행했다. 그런데 튀니지는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에조차 혁명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는가”라며 유감을 표했다.
 
“자긍심이 있는 국가는 빚 갚을 줄 안다”
 
엔나흐다당의 라시드 간누시 대표와 좌파 정당연합인 ‘튀니지를 위한 연맹’을 창설한 장본인이자 해당 연합 소속 ‘니다투니스(튀니지의 부름)’당 대표인 에셉시 전 총리를 함께 살펴보면 현재 튀니지에 체계적인 경제정책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튀니지 정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 두 베테랑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사무실 풍경만 해도 그렇다. 간누시 대표의 사무실은 하마드 카타르 국왕, 타리크 라마단 이슬람학 교수, 이집트의 모함메드 모르시 전 대통령,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완 총리 등 대표적인 이슬람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반면 에셉시 대표의 사무실은 조금 독특하게 꾸며져 있는데, 하비브 부르기바 튀니지 초대 대통령의 모습이 한편에는 흉상으로, 벽엔 대형 포스터로, 테이블 위에는 액자 사진으로 곳곳에 놓여 있다.(5) 그러나 부르기바 대통령이 그토록 처벌하고 싶어 했던 간누시 대표에게 현대 튀니지의 기반을 닦은 부르기바라는 ‘최고의 전사’는 ‘아랍과 이슬람교의 전쟁’을 시작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6)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대표가 경제 계획에 있어서 만큼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 벤 알리 정부가 쌓아둔 외화부채 상환에 대한 질문에 에셉시 대표는 “부채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현재 튀니지의 정부부채율은 50% 이하 수준으로 결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프랑스 등 여느 국가들은 그 비율이 85% 수준에 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7) 그는 “자긍심이 있는 국가는 빚을 갚을 줄 안다. 누가 정부를 이끄는지에 상관없이 말이다. 튀니지는 독립 이래로 단 한 번도 파산한 전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는 간누시 대표가 그 전날 같은 질문에 답변한 내용과 거의 똑같은 내용이었다. 간누시 대표는 “튀니지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모든 차관을 갚아왔다. 우리는 이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라고 답했다.
 
 약소국에게 공공부채 원리금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튀니지의 경우, 부채상환이 전체 정부 예산 중 세 번째로 큰 항목(2013년 전체 예산 중 42억 디나르)을 차지하고 있다. (8) 두 번째로 큰 예산 항목은 튀니지 배상금고(CGC)로, 2013년 기준 55억 디나르에 달했다. CGC에 대한 부담이 이렇게 큰 탓에 누구든 그 무게를 덜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내용 역시 이슬람주의 정당과 그 반대파가 정책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 분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문제인 탓에 그들의 접근이 조심스러운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CGC는 식품 및 연료 소비에 대해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1970년 창설되었다. 그런데 창설 이래로 석유와 곡류에 대한 국제 시세가 급등하면서 해당 보조금으로 인한 정부 지출 수준도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IMF는 지속적으로 보조금 축소를 요청하며 아예 해당 기관이 사라질 것을 기대해왔지만, 정당들은 인플레이션과 시위를 염려해 어떤 권면에도 응하지 않았다.
벤 샤이크는 CGC가 현대 사회가 낳은 성과라기보다는, 저렴한 노동비로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자유주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국가 예산으로 근로자 및 피고용인들의 일용품 소비를 일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4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각종 산업 분야, 일례로 섬유, 기계, 전기 분야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낮은 봉급 대신 밀가루, 휘발유 등을 구입할 때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식당이나 호텔에서 관광객이 주문하는 파스타, 쿠스쿠스에도 보조금이 붙고, 배기량이 큰 리비아제 자동차를 주유할 때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건설한 시멘트 공장이 에너지(주로 수입)를 사용할 때도 보조금이 주어진다. 이에 대해 간누시 대표는 “적지 않게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국제기구들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보조금 지원으로 인한 지출이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 놓았다. 에셉시 대표도 “이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우선순위들을 위해서 예산을 다시 조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보조금 정책 외에는 이렇다 할 정부 차원의 지원방책이 없는 최빈층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국내 생산 투자에 대한 CGC의 지출액을 하향조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 경영진, 노동조합, 이슬람주의자들, 니다투니스당 등이 논의를 벌였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 다들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보조금 남용에 대해서만 비판했다. 튀니지 정부가 언젠가는 CGC 자체를 폐지시킬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경영자 연합인 튀니지상공인연합(UTICA)의 와이디드 보차마우이 대표는 “절대 없을 일이다. CGC를 폐지하면 곧바로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 어떤 정치가도 감히 그런 일을 할 순 없다”라고 단호히 대답하고는 곧바로 “우리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CGC의 보조금 중 자동차 연료 명목이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튀니지노동총연맹(UGTT)의 후사인 아바시 사무총장은 “실직자 및 근로자 중에는 자동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연료비에 대한 보조금 혜택은 전혀 못보고 있는 셈이다. 또한 4~5기통 엔진 차량을 한 대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나, 한 집에 고급승용차를 4~5대씩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주유 시에는 모두 같은 금액(리터당 1.57디나르)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실제로 백만장자의 리무진에 대한 연료 보조금을 중지시키려고 해도, 백만장자가 아닌 경우를 어떻게 구별해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이에 대해 아바시 사무총장은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소관이다. 우리가 목소리 높여 주장을 하더라도, 우리는 노조일 뿐이다. 재력·인력·연구시설을 갖춘 정부가 아니란 말이다. 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라고 답했다.
한편 인민전선은 구체적인 경제 계획들을 내놓았다. 이 정책에는 사기행위와 밀수입을 막기 위한 재정부 장관 및 공무원 기용을 비롯해 석유회사에 순이익 대비 5%의 세금 부과, 공공부채 감사가 있을 때까지 부채 상환 연기, 저소득층을 위해 과세표준 조정, 은행 비밀법 철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CGC에 대해서만큼은 과감한 결단력을 보이지 못했다. 함마미 대변인은 “CGC에는 손을 대선 안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최근 튀니지 정부는 해당 보조금, 특히 석유에 대한 보조금을 조심스럽게 삭감하기 시작했다. 마침 모두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당대표들의 결정, 당원들의 우려
 
 모두의 관심이 곧 돌아올 대선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새 정부 수립으로 인한 대립 구도의 잠정적 중단은 교전이 계속 되지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합의는 정권의 일시적인 균형에 의한 것일 뿐이다. 장차 결성될 연합의 윤곽이 추측할 수 없는 선거 결과를 예견할 것이다. 간누시 대표는 회의적인 모습을 종종 보이는 자신의 지지 세력에게 이러한 국내 정세의 불확실과 불안정을 근거로 들며 연합 전략의 정당성을 납득시켰다. 그는 튀니지가 현재 “여야가 대립하기에는 너무 약해진 상태”라면서, “모든 정당, 전부가 어렵더라도 최대한 많은 정당들과 시민사회, 노조, 경영진이 함께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엔나흐다도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투표 결과를 바란다“고 했다.
 
 반면 에셉시 대표는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그가 이끄는 정당이 ‘벤 알리’주의 조직들과 진보세력, 노조(니다투니스당의 타옙 바쿠쉬 비서실장은 튀니지노동총연맹의 전 사무총장) 등이 뒤섞여 혼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치판에서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엔나흐다당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전국가적 연합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인민전선은 함마미 대변인의 말처럼 엔나흐다가 니다투니스와 손을 잡고 독재정치를 택할 위험이 있을지 모를 상황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니다투니스당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에셉시 대표는 간누시 대표와의 ‘합의에 의한 타개책’ 모색에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현 정부가 “모든 정당에게 지지받고 있다”고 극찬하는 것을 보면, 그가 다음 정부 조직 기반도 넓혀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 에셉시 대표는 상대 진영에 이슬람주의 정당이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모든 것은 선거에 달려있다. 어떻게 되든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인민전선 소속당인 노동자당의 압델부덴 벨라네스 부대표는 “니다투니스와 엔나흐다가 손을 잡을까 우려된다. 서구적 사고방식은 두 거대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들이 사회 안정을 위해 연합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슬람주의정당이 좌파 진영을 선동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전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함마미 인민전선 대변인은 “엔나흐다당은 창당 이래로 한결같은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저항이 있는 곳에서는 후퇴하고, 저항이 느슨해지면 바로 반격하는 전략이다. 그들의 목적은 언제나 이슬람과 무슬림 형제단의 사상을 강요하는 것이며, 퇴보적, 전제적, 독재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그가 내세운 전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반이슬람 세력을 확장해 민주주의에 대한 우선순위를 내세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실현은 긴급한 사회적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결국 모든 ‘민주주의’ 세력이 ‘대중을 위해 경제위기의 여파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데 합의’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소속 연구원인 미카엘 아야리는 그들의 진영, 그들의 당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반문했다. 엔나흐다당은 그들의 당이 선거에서 패하지 않고도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던 것을 지켜보았고, 니다투니스당은 에셉시 대표가 IMF의 호의적인 눈길 아래서도 이슬람주의 세력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며, 인민전선은 경영진 및 벤 알리 추종세력과 함께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지 않은가. 각 정당 지도자들은 연합을 구성하고 정치 조직도를 예상하여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분명히 다져둬야 할 것이다. 정치적 안정은 여기에서 나온다. 이것이 혼란에 빠져 있는 지역에서도 분별력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혁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혁명의 이유였던 경제·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정치적 안정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1) ‘정치적 극단에서 방황하는 튀니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3월호
(2) ‘튀니지의 자유, 정의, 발전을 위하여’, 엔나흐다당 정책공약, 2011년 9월
(3) 벤 샤이크에 따르면, 실리아나 지역에는 6개의 중·대기업이 있는 반면, 백여km 떨어진 마누바에는 322개의 기업이 있다.
(4) 2008년 11월 당시 IMF를 이끌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총재는 “(튀니지의) 경제 정책은 건전한 정책이며, 이것이 신흥 국가들이 따라야 할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5) 하비브 부르기바(1903-2000)는 튀니지 독립의 주역이며, 튀니지 초대 대통령으로 1957년부터 30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6) ‘Rachid Ghannuchi : islam, nationalisme et islamisme’, 프랑수아 부르가 인터뷰, <Egypte/Monde arabe>, 제 10호, Le Claire, 1992, pp.109-122
(7) 튀니지의 국민총생산 대비 정부부채는 45%이고, 프랑스의 경우 95%로 나타나고 있다.
(8) 1디나르(TND)는 약 0.63달러(USD)에 해당한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