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에 저항하는 터키 청년 예술가들
2014-04-01 티무르 무히딘
2013년 5월 1일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골든 혼을 잇는 도개교인 갈라타 다리가 43년 만에 처음으로 양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아스팔트 도로로 된 다리 양쪽이 마치 검은 장벽처럼 세워졌다. 반경 수 킬로미터 내로부터의 진입이 차단되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해주는 선박통행도 오후 4시까지 중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절 축하 행사를 벌이던 시위대는 광장에 집결했고 탱크와 최루탄의 환영세례를 받았다. 몇 주 후, 정부의 게지 공원 재개발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진압 경찰과 대치했다. 중요한 정치적 집결장소인 탁심 광장은 역사적으로 갈등과 국민의 열망이 표출되는 장소였다.
1939년에 프랑스의 도시계획가 앙리 프로스트가 설계하고 현대 터키 재건의 주역 무스타파 케말이 승인한 탁심 광장의 현대적 스타일과 지형은 그런 점을 잘 반영한다. 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과 세브르 조약(1920년)의 결과로 오토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1923년 탄생한 터키 공화국과 오토만 제국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끈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주도하는 공원 철거, 오토만 막사와 ‘동일하게’ 복원, 회교 사원 건축,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철거 등의 정부계획들은 이 끈을 끊어버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스 및 대중교통(얼마 전부터는 전철과 케이블카도 운행한다)의 중심지 탁심 광장은 베욜루 지구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이스탄불의 여러 구역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레스토랑, 극장, 영화관, 바, 나이트클럽 들이 운집해 있다.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아파치’들도 그들 중 하나다. 아파치는 요란한 옷차림에 대담한 헤어스타일을 한 외곽지역 청소년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을 다룬 최초의 저서 아파치 겐지리크(1)를 쓴 사회학자 오메르 미라지 야만은 대도시 외곽지역 출신의 소외된 젊은 세대를 매우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거대도시 에센러(Essenler)와 바그실라(Bagcilar) 북서부 구역을 중심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보면, 지금까지 ‘바로스’(varos), 더 흔하게는 ‘빈민가’(semt)로 불리다 점차 ‘교외’로 불리게 된 도시외곽지역의 그리 활기차지 않은 생활을 알 수 있다.
카페 주인, 버스운전기사, 직업전문 고교 교사와의 인터뷰는 충격적인 외양의 젊은이들에게 허용되는 자유에 대해 사회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적대적이고 엄격한지 보여준다. 그 질서 속에는 젊은이들을 이슬람의 틀 안에 담아두려는 강박관념이 잘 표현된 에르도안 총리의 최근 담화와 유사한 강력한 도덕적 통제 의지가 드러난다. 2013년 11월, 에르도안 총리는 대학의 남녀혼성 기숙사를 예로 들면서 “우리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국가의 거주지에 함께 기숙하도록 허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슬람의 틀을 깨고픈 열망
운동복 바지와 얼룩덜룩한 티셔츠에 머리에는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무리지어 테크토닉 댄스를 추는 아파치들은 ‘터키성’, 즉 각 층의 보수세력이 요구하는 언어와 수니파 이슬람이 빚어내는 국가정체성을 위협하는 듯하다. 이들은 경찰과의 충돌에 익숙하지만 아직까지는 거의 정치색을 띠지 않고 있다. 국가와의 접촉 또는 쿠르디스탄 노동당(PKK)(2)과 진행 중인 평화 협상과정에 누가 될 수도 있는 접촉을 경계하는 친(親)쿠르드 성향의 수많은 청년그룹과 마찬가지로 아파치는 탁심 광장 시위와는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탁심 광장의 그래피티 중에는 “힙스터와 아파치는 서로 협력한다”(3)는 문구도 보인다.
<토품빌렘(Toplumbilim)>(4) 지(誌)가 도시외곽지역의 현상을 특별호로 다룬 것은 유의미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기고자들은 프랑스 자료들을 이용하고, 프랑스와 터키의 비교를 통해 도시화된 마을을 이해하려고 한다. 현장조사가 불충분한데다 주변부에 대한 정보를 작가들에게서 더 쉽게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터키 주요도시들의 특징이었던 판자촌을 다룬 텍스트들이 쏟아지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스탄불 교외 주민들을 다룬 부케트 우즈네르(Buket Uzner)(5)의 작품이 등장한 이후, 신세대 작가들이 보기에 도시의 위상은 땅의 위상과 마찬가지로 변했다. 이제 지평선 끝까지, 그리고 미니버스 노선 끝까지 확장된 도시는 단지 중심과 주변으로만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도시권의 집합체로 여겨지고 그중 일부분이 도시 외곽지역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6)
5월28일부터 6월 16일까지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벌어진 거리투쟁과 강경진압으로 6명이 사망하고 8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250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1972년생 작가 하칸 군다이(Hakan Günday)나 무라트 유르쿨라크(Murat Uyurkulak)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시외곽지역의 주인공들은 급한 성격에 난폭한 비행청소년들로, 공원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할만한 능력은 거의 없다. 유르쿨라크의 소설 <새둥지>(7)에서 탁심 광장은 성전환자들의 둥지이자 시적 상상력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은 인생 그 자체다. 터키를 애통해하는 즐거운 범고래다. 입에서는 물을 내뿜고, 등에서는 피를 흘리며, 엉덩이에서는 라키(터키 전통주-역주)가 흐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60년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쌓여있던 욕구불만을 연상시키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거부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다. 2011년 6월 총선에서 50%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에르도안 총리와 터키정의발전당(AKP)에게 투표했다. 한 설문조사기관의 설문에 대해 51%의 터키인들이 게지 사태 동안 경찰은 주어진 일을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반은 총리가 구현하는 질서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무정부주의와 최근의 세분화된 경향,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점령과 소요 테크닉에 대한 출판물들이 대거 유입되는 현상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년여 전부터 서점의 판매대에는 막스 슈티르너와 미하일 바쿠닌의 저서, 절대자유주의운동과 파리코뮌 해설서들이 자리잡았는데, 이는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표출되는 불복종의 언어
<사비트피키르> 지(8) 2013년 3월호는 온통 검은 색 옷을 입고 얼굴의 반을 스카프로 가린 청년 폭도가 불붙은 책을 내던지려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곧 닥쳐올 시위의 예감이었을까? 이 잡지는 10페이지에 걸쳐 몇 달 내로 대중들이 구입(때로는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중요 저서 목록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대단히 놀라운 저서도 포함돼 있었다. 머레이 북친의 <제3의 혁명>,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무정부주의 인류학을 위하여>, 바리스 세이단의 <터키 무정부주의에 대한 최초의 공동연구서>(2013년)가 그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최근 10년간 사회정치 변화와 국민의 일부만이 누리게 될 더 나은 생활여건에 대한 약속으로 격변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트윗, 그래피티, 음악은 오늘날 저항이 선호하는 표현이다. 차풀러(chapullers,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역주) - 에도르안 총리는 시위대를 ‘약탈자’ 또는 ‘파괴자’를 의미하는 ‘차풀주(çapulcu)’로 취급했고, 시위대는 이 표현을 영어화했다 - 의 노래와 개그는 가수 무가 제란(Müge Zeren)의 룸바 풍 노래 <차풀리타>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울려 퍼질 것이다. 지식인과 작가는 대학생, 노동자, 회사원, 노조원, 실직자들을 연합시킨 이 운동의 주역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류작가이자 기자이기도 한 에지 테멜쿠란(Ece Temelkuran)이나 여류소설가 사마 카이구스츠(9)같은 젊은 세대 작가들뿐만 아니라, 평소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던 <메뚜기의 반란>(10)의 작가 이기트 베네르(Yigit Bener) 같은 작가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베네르는 일간지 <라디칼>에 기고해 “완전히 새로운 언어”, 즉 “자기 고유의 문화를 구현하는 언어, 유머, 사랑, 저항, 나눔, 고통의 언어, 지성, 용기 그리고 불복종의 언어”의 출현을 강조했다.
다양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작가들처럼, 스릴러와 판타지를 물씬 풍기며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대변하는 작가 벨고-투르크 케난 교르군(Belgo-Turc Kenan Görgün)은 <반란의 공원, 이스탄불에서의 한 철>(11)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강렬하면서도 의문으로 가득 찬 위급상황의 비전을 제안한다. 보수적이면서 기술운동과 소비자운동을 제외한 모든 진보에 둔감한 수니파 집단으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거부하기 위해서인 듯 반란자들은 실생활에서 즉흥 파티를 가장해 기괴한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결국 탁심 광장은 급진좌파 월간지에 선언문을 내고, 자본주의는 신의 적이라고 외치는 전투적인 통합운동을 찬양하는 ‘반자본주의 무슬림’의 출현장이 된다.
2006년, 타신 유젤(12)의 <마천루>는 정치 픽션을 표방하며 광기 어린 이스탄불의 도시화를 조롱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건물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위협을 받는 주택들, 불공정한 시스템에 저항할 결심을 하는 좌파 친구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예고이기도 했다. 멜류트 도안이라는 이름의 총리(에르도안과 아주 다르지 않다)는 거세된 남자로, 나무를 벨 생각만 하는 건축가를 동반하고 다니는 민영화의 독재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에서 축출된 많은 사람들이 돌연 텅 빈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도시에 재투자했다. 이 부정적인 유토피아에서는 불만과 탐욕이 터키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부동산 광기와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박살내려는 고집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2013년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글·티무르 무히딘 Timour Muhidine 파리 동양학대학(Inalco) 강사
번역·김계영
(1) <아파치 겐지리크>(Apaçi Gençlik, 아파치 청년이라는 뜻), 아실림 키탑(Acilim Kitap), 이스탄불, 2013년.
(2) 비켄 슈트리앙(Vicken Cheterian), “쿠르드 인을 위한 역사적 기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
(3) ‘힙스터’는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으로 유행에 민감한 중산층 출신의 젊은 층을 가리킨다.
(4) <Toplumbilim>, 26호, 바그람 야이(Baglam Yay.), 이스탄불, 2012년.
(5) <Istanbullular>, 에베레스트(Everest), 이스탄불, 2007년.
(6) “콘크리트 모자이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 참조.
(7) 이 소설은 <터키 작가 선집. 태양의 가장자리>(Galaade, 파리, 2013년)에 포함돼 있다.
(8) <사비트피키르>(Sabitfikir, 고정관념이라는 뜻)는 2011년 온라인 서점 Idefix.com이 창간한 문화전문 월간지이다.
(9) 사마 카이구스츠(Sama Kaygusuz), <그대 얼굴 위의 이곳>, Actes Sud, 아를, 2013년, <기도의 몰락>, Actes Sud, 2009년.
(10) 이기트 케네르(Yigit Bener), <메뚜기의 반란>, 크리스티앙 부르주아(Christian Bourgeois), 파리, 2011년.
(11) www.anatolialit.com에서 배포
(12) 타신 유젤(Tashin Yücel), <마천루>, Actes Sud,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