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의 습기찬 운명

2014-04-01     데바프리야 로이

 젊은 여성 작가인 데바프리야 로이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인 <모호한 여성의 수첩>으로 인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은 아주 어린 신부(新婦)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자문하는 50대 여성과의 놀랍고 감동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다. 핑크빛 도시 캘커타를 배경으로 하여 써낸 그녀의 최근 작품인 <체중 감량 클럽>에서도 그녀는 중산층 출신 여성들의 고뇌, 꿈과 우정을 다시 한 번 다루고 있다.

 1. 핑크빛 하늘
 
 캘커타의 여름 저녁은 석양이 지기 전의 몇 분과 다량의 검푸른 보라색 안개로 스러져가는 저녁 30분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하늘이 핑크빛으로 변한다.
일반적으로 석양은 타는 듯한 오렌지색의 평범한 색깔을 띠고 있다. 시끄러운 길을 따라 빽빽이 들어선 방들 쪽으로 햇빛이 기울면, 빛은 창문의 창살을 통해 사선으로 스며들면서 얇은 광선으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곧 열기가 누그러진다는 것을 주부들에게 알려주는, 즉 차 마실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다.
 
 만약 당신이 운이 좋다면, 석양이 하늘의 한 쪽 구석에서 전율을 떨면서 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핑크빛 눈물무늬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눈물무늬는 몇 분 만에, 그 도시의 모든 회한과 희망을 표현하고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면서, 비단천의 찢어진 틈처럼 급속히 확산되고 뛰고 질주하여 전체 천을 채울 것이다.
 
2. 시각적 착각
 1991년 여름 나는 7살 이었다. 그 후 한 달 반이 지나 인도경제는 자유화된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 후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무너지게 된다. 바캉스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5층에 임대한 아파트에서 보내는 기나긴 날들은 무료했다. 아파트에서 우리는 꽃이 활짝 핀 망고나무와 벽구멍들에 둥지를 튼 제비들을 보고 있다. 거대 도시의 소음이 벽 사이에서 소용돌이 치고, 자동차 소리가 끊임없이 요란하게 울리고, 가볍게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말 그대로 대도시에서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다.
오후 내내 엄마에게 외출하자고 졸라대자 엄마가 들어준다.
 
 석양이 지면서 아롱거리는 핑크빛이 무지갯빛 미광의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시장에 가기 위해 우리가 탄 인력거에서, 마치 안과 병원에서 보게 되는 색맹진단 그림처럼, 거리가 재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나는 보게 된다. 안경을 들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처녀를 당신은 보게 된다. 당신의 시각을 약간 바꾸면, 콘택트렌즈를 씀으로써 안경에서 해방된 그녀가 눈부신 미소를 활짝 띠고 있는 모습을 당신이 보게 된다. 검고 노란 택시들, 구석에 보이는 수많은 벽돌들과 모래, 바람에 날리는 땅바닥의 신문지 조각들, 테라스에서 마른 빨래를 걷고 있는 여인들 등의 모든 거리 모습이, 황금 핑크빛의 석양이 질 때 어떻게 변하는지 보게 된다.
 
 엄마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변화를 느낀다. 엄마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약간 느긋해진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이런 유의 빛깔을 ‘코네 데크하 알로(kone dekha aalo)’라고 불렀단다”라고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이런 석양빛에서 미래의 신부를 바라보는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미래의 신부가 될지도 모를 여인을 하늘빛이 이런 색깔을 띨 때 쳐다본다면, 그 여인은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거야. 시각적 착각이지. 현명한 시어머니들은 그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순간에 그 여인을 봐야 할 것이야.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돼!”라고 엄마가 설명한다.
 
 엄마가 말한 뜻을 내가 새겨보고 있는 동안 엄마는 시선을 돌린다. 어쩌면 엄마는 나에게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현대적인 인도 여성이고 여성 기술자이다. 미래의 신부들과 시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엄마가 내 머리에 채우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인력거는 흔들리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뒤에 도시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가게들과 주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커다란 도로가 보이고, 도로에는 교외 주민들을 가득 실은 시끄러운 커다란 버스가 다닌다. 우리는 이제 보잘 것 없는 집들이 늘어선 꾸불꾸불한 길을 기어 올라간다. 햇볕을 오랫동안 쬐어 색깔이 바랜 그림과 영화포스터 혹은 혁명포스터의 찢어진 조각들이 벽에 붙어 있다. 아직 우리 눈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바로 빌딩들 뒤에 시장이 있다.
 
 그때 내가 어깨를 뒤로 젖히고 목덜미를 팽팽히 당겨 하늘을 쳐다보자, 우리 인력거 위로 현기증 나게 빛을 내는 핑크빛 하늘의 거대한 사발이 눈에 들어온다.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진주처럼 둥글고 단단한 기묘한 감정에 젖는다. 어른이 되어도 나는 그 드문 순간을 귀중히 여길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열쇄가 채워진 장롱 속에 저장할 것이다. 7살의 행복은, 벨벳 보석상자 속의 진주 형태가 아닌 침대 밑 구슬 형태로, 당신에게 너그럽게 다가간다. 나는 행복감에 젖어 엄마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다. 내가 말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고 결국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길 끝에 다다랐고 더러운 시장에 도착했다. 골치가 아파졌다. 비정상적으로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내 피부 속에 파고든 도시의 아름다움을 나는 믿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시각적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3. 주민들
 모든 것이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캘커타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거리들이 내 꿈속에 자주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비(雨)와 서양장기에 대한 애정이 나의 내부의 삶을 살찌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캘커타 주민이 된 때는 7살 먹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착각을 일으키는 햇빛에서 내가 석양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람들이 그 빛에서 미래의 신부를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이곳 주민들은 도시가 그들에게 불어 넣어준 엄청난 의심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스탄불 사람들이 우수에 탐닉하고,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이 축제에 빠지고, 파리 사람들이 깃털장식을 아주 좋아하고, 봄베이의 월러스(Wallahs)(1)들이 시간을 잘 지키는 것처럼, 캘커타 주민들은 의심하는 것에, 다시 말해 비관주의에 빠져있다. 캘커타 주민들은 자기 도시의 아름다움이 시각적 착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황이 항상 더 나빠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4. 컬리지 스트리트
 여름이 빠르게 다가온다. 나는 뒤늦게 책 한 권을 쓸 작정이다. 열대 계절풍이 케랄라(Kerala, 인도 남서단 주)를 덮치고는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열대 계절풍이 다음 주면 여기에 도착할 것이다. 열기가 대단해서 밖에 있으면 몇 분 만에 땀에 흠뻑 젖게 된다. 오늘 아침 나는 컬리지 스트리트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그곳은 나에게 항상 일종의 평안을 주는 장소다. 도시의 북쪽에 위치한 이 구역에는 임시로 선 부티크와 가판대에 들어선 수많은 서점들과 프레지던시 컬리지 같은 오래된 학교기관들이 있다. 프레지던시 컬리지에서 나와 내 남편은 함께 공부를 했고 거기서 사랑에 빠졌다. 우리의 젊은 날의 수많은 표지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대도시에는 새로 지은 호화로운 상가들과 수영장이 딸린 고층주택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 고층주택에는 성공한 정보통신기술자들이 살고 있다. 컬리지 스트리트는 변하지 않았다. 전철이 윙윙 기계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대학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다.
 
 20세기 초 캘커타 남부가 울창한 숲 앞에 만들어졌을 때, 북부는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흑인들의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구역은 무질서하고 더럽고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영국이 상업정책을 통해 전통적인 수공업을 철저하게 파괴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빈곤한 주변부 지역이 계속 굶주림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가난한 소작농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이곳으로 밀려왔다. 근사한 도로, 커다란 호텔, 정원, 신사 클럽(이 클럽에는 흔히 ‘개와 인디언 출입 금지’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이 있는 당시의 중심가인 세련된 ‘백인 구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신임 총독마다 ‘후글리 강 위의 스몰 런던’을 전임자보다 귀중히 여겨, 이 스몰 런던을 장식하기 위해 수십만 루피를 투자했다. 그들의 미적 민감성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상당히 빨리 새로운 중산층이 출현하게 되었다. 상류 계급의 벵골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 행정직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성공을 했다. 인도식과 영국식을 결합한 웅장한 저택들이 캘커타 북부에 등장했다. 캐레이(W.H. Carey)(2)의 저서에서 나는 1756년의 도시를 묘사한 구절을 찾아냈다.
“후글리강 연안은 영국의 고위 행정관들이 건설하여 거주하고 있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요새 같은 집들로 양쪽 강변이 빽빽이 들어찼다. 그 뒤쪽에도 역시 아주 크고 웅장한 수많은 저택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 저택들은 부자가 된 피고용인들과 현지 상인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도시는 초가지붕 혹은 상당수가 진흙 또는 대나무, 거적으로 만들어진 오두막집들로 만들어졌는데, 모두 다 조잡하고 초라했다. 길들은 더럽고 좁고 꾸불꾸불했다. 거기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늪은 건강에 해로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1947년 독립을 한 후 벵골지역은 펀자브 지역처럼 잔인하게 분단되었는데, 약 6백만 명의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동부 인도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피난민들이 앙상한 뿌리를 그곳에 내리며 부유하고 폼 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예전의 위풍당당한 구역들의 거리에서 흑인 도시의 영혼을 울부짖는 것 같았다. 1971년 폭력 속에서 방글라데시를 탄생시킨 파키스탄의 내전은 5백만 명의 새로운 피난민들을 낳게 되었고, 1977년의 참혹한 홍수 때문에 또 다른 이주의 물결이 이어졌다. 캘커타는 지속적인 이민의 충격으로 흔들거렸고 여기에 대응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더럽고, 비좁고, 꾸불꾸불하고, 악취를 풍기고, 비위생적이고’, 비참하고 조잡한 이 도시는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진취적인 노동자들은 북부의 웅장한 저택의 벽을 이용하여 조그만 가판대를 만들어 패스트푸드, 중국에서 만들어진 조잡한 물건, 불법 복제한 CD를 팔았다. 어떤 거리, 어떤 구역, 어떤 공간도 부자들에게만 허용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지되지도 않았다. 오래된 흑인 도시가 심어놓은 뿌리들은 강력했다. 부르주아들과 노동자들 모두 캘커타의 주민들이다. 사실상 그들은 서로 의심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꾸불꾸불한 골목들과 멋진 대로(大路)는,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불완전한 사랑에 사로잡인 채 서로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주민들을 비좁은 장소에 가두어 놓으면서, DNA의 조각들처럼 서로 얽혀 있다.
 
 나는 수많은 작은 서점들과 어둡고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는 컬리지 스트리트 구역을 걷고 있다. 벵골의 독립 출판인들이 이 어둡고 작은 방에서 이런 저런 잡지들을 발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자크 데리다와 자크 라캉의 번역본들, 공과대학 서적들, 벵골의 에로틱한 동시대 시(詩), 레닌과 트로츠키의 삶을 다룬 소비에트 시절의 오래된 책들을 보게 된다. 나는 여기서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도 있다. 역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영국인들을 비난하고 그런 후에 영국 작가들의 책을 몇 권 사고, ‘커피하우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말이다. 이 카페는 예전에 앨런 긴즈버그가 벵골 시인들과 토론하기 위해 매일 오던 곳이다.
 
 열대 계절풍이 벌써 도달한 것일까?
몇 분 사이에 서적상들이 자신들의 귀중한 물품들을 상자 속에 다시 포장하고 있다. 그들은 태풍이 오는 것을 감지한다. 공기 중에 전하(電荷)가 꽉 차있다. 북서쪽 하늘이 어두워진다. 검은 구름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한 낮인데 해질 무렵 같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도시와 도시 주민의 결정되지 않은 운명들을 싣고 간다. 어쩌면 그 운명들은 결정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문자 그대로 수많은 세월에서 내가 소외되었던 그 방식이 나에게 기묘한 만족감을 준다. 비가 내려 물방울들이 먼지 속에서 강력히 흔들릴 때, 나는 어디에선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서있고 싶다.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왜 이 도시가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모든 교활한 재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비를 저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글·데바프리야 로이Devapriya Roy
여성 작가, <모호한 여성의 수첩(The Vague Womans’s Handbook)>(하퍼 콜린스, 뉴델리, 2011년)과 <체중 감량 클럽(The Weight Loss Club)>(루파, 뉴델리, 2013년)의 저자.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1) 음식 행상인들.
(2) 캐레이(W.H. Carey), <영예로운 존(John)사(社)의 멋진 예전 시절. 1600년에서 1858년까지의 영국동인도회사 지배기간에 대한 기묘한 회상. 신문과 여러 출판물에서 편집>, 킨즈 북(Quins Book), 1900년(초판은 18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