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리와 전면전 나선 이슬람 '귤렌'운동

2014-04-01     알리 카잔시질

각종 부패 스캔들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이번에는 언론과 인터넷을 검열하려던 시도로 인해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인기가 더욱 더 곤두박질치고 있다. 결정적으로 그는 중요한 동맹군이던 폐튤라 귤렌의 지지를 잃으면서 한층 입지가 약화된 상황이다. 귤렌은 초국적 영향력을 지닌 수피즘 계열의 사회운동을 창시한 사상가이다.

이 운동을 일컬어 회원들은 히즈메트(Hizmet)(봉사)라고 부르고, 터키 언론은 세마아트(Cemaat)(공동체)라고 부른다. 종교적 성격을 지닌 유력 사회운동단체 ‘귤렌 운동’은 1970년대 페튤라 귤렌에 의해 창설됐다. 귤렌은 수피즘 계열의 저명한 신비주의 사상가(1)로, 현재 미국에 망명해 살아가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유명인사다. 2008년에는 미국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뽑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귤렌 운동’의 목적과 성격에 대해 터키 국민의 의견은 각각 엇갈린다. 지지자들이 이 운동을 예찬하는 만큼, 반대자들은 이 운동을 악마시한다. 사실상 ‘귤렌 운동’ 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어두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의도적인 전략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창설 초부터 ‘귤렌 운동’은 케말리즘(오스만 제국 말기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터키 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한 서구적 개혁 이념-역주)을 주창하는 터키 정부,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군부로부터 심한 탄압에 시달렸다.

1999년 귤렌은 감옥행을 피해 결국 미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한편 ‘귤렌 운동’은 위계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 비중앙집권적이면서도 초국적인 여러 조직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귤렌 본인도 자신이 쓴 책이나 혹은 드물게는 공개적인 발언과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시사했듯이, 이것은 귤렌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상은 ‘귤렌 운동’ 회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지지자 결속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귤렌 지지자들은 종종 예수회 교도들(귤렌 지지자들은 예수회 교도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이나 심지어 개신교 선교사, 오프스 데이(Opus Dei), 더 나아가 프리메이슨단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저 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에 불과한가? ‘귤렌 운동’은 ‘시민종교’(2)에 속하는가? 한 마디로 미국 사회학적 용어로, 한 사회 안에서 세속적 활동에 헌신하는 종교 운동을 지칭하는 것일까? 혹은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숨은 의도를 추구하는 집단인 것일까? 사실상 ‘귤렌 운동’은 직접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막강한 권력과 재정 능력을 지니고 있어 때로는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2002~2011년 귤렌과 연대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도 이 운동의 영향력을 톡톡히 누렸다. 귤렌을 추종하는 법관과 경찰의 힘을 빌려 군부를 정치 무대에서 쫓아낸 것이다. 하지만 2013년 12월 말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해 -역자) 정부가 큰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자 에르도안 총리는 돌연 사법과 치안 시스템에까지 귤렌 인사들이 잠입해 있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공격에 대해 일부 귤렌 추종자 조직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귤렌이 지닌 이미지에 먹칠을 해가면서까지 진흙탕 싸움에 골몰했다. 어쨌든 두 일화는 귤렌 조직의 막강한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귤렌 조직은 에르도안의 정치적 적이었던 군부를 정치 무대에서 쫓아낸 데 이어, 터키의 실력자 에르도안 총리의 입지까지 송두리째 뒤흔드는 능력을 보여줬다. 사실상 터키의 고위 권력층을 부정부패 스캔들로 엮어 줄줄이 기소한 것은 귤렌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들이었다.

 

에르도안 총리를 뒤흔든 귤렌 조직

한편 ‘귤렌 운동’은 터키 민주주의 논쟁,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개헌 논쟁에 관여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2014년 7월 대통령에 선출되기를 희망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싶어 했다. 반면 귤렌은 현행 의회제를 지지하는 동시에 좀더 철저한 권력 분립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교육 사업을 선결과제로 내건 ‘귤렌 운동은’ 현재 140개국에 무려 2000개에 달하는 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명문 고등학교를 운영 중이다.

귤렌 운동은 다양한 교류의 장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파리 플랫폼’이다. 파리 플랫폼은 종교·문화 간 대화, 사회 문제(고용, 차별, 빈곤) 등을 주제로 한 토론과 다양한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한편, 각종 자선 활동도 함께 펼치고 있다. 귤렌 운동의 재정 규모는 약 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원의 상당부분은 ‘신흥 이슬람 부르주아 계층’, 즉 보수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반도-역자) 사업가들(4)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1980년대 이후 부상한 이 신흥 부르주아층은 귤렌의 사상이 지닌 현대성에 깊이 매료됐다. 귤렌 사상은 이슬람 윤리와, 현대 세계에 좀더 관대한 이슬람식 시장 경제의 접목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5) 사실상 귤렌의 교리는 엄격한 종교 생활과 세속적 사회 활동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6) 하지만 정치적 이슬람처럼 양자를 혼융하는 것에는 철저히 반대한다.

터키 사회,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발칸반도 등을 막론하고, 귤렌의 사상은 이슬람 사상과 현대성의 조화를 꿈꾸는 수많은 무슬림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귤렌 운동이 보유한 각종 매체가 그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가령 영문판(Today's Zaman)과 프랑스어판(Zaman France, 온라인판도 있음)으로 동시에 발행 중인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Zaman)>(‘시간’이란 뜻)(발행부수 1백만부)이나 다양한 언어로 운영 중인 각종 온라인 매체들, 그리고 ‘사만욜루’(Samanyolu·‘은하수’라는 뜻)를 필두로 한 TV 방송 등이 대표적인 예다. 더욱이 귤렌 운동의 초국적 조직망도 터키의 외교 및 수출에 많은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귤렌은 종교와 정치의 혼용을 배제하는 자신의 사상에 걸맞게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물론 터키의 정치적 이슬람주의나 ‘밀리 고루스’(Millî Görüş·‘국가비전’이란 뜻으로, 1970년대 에르바칸이 창설한 이슬람단체-역주)의 이데올로기에도 한결같이 반기를 든다. ‘밀리 고루스’는 1996~1997년 터키 통리를 지낸 네흐메틴 에르바칸이 창설한 단체로, 종교예식을 중요시하는 이슬람과 터키 민족주의를 한데 결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귤렌의 사상에 ‘터키즘’(turkism·터키만의 종교, 문화 등을 의미-역주)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귤렌의 메시지가 터키 수피즘에 입각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귤렌 운동은 평화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정작 에르도안 총리가 터키 쿠르드족의 저명한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과 협상을 개시했다는 소식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7)

2002~2011년, 귤렌은 정의개발당(AKP) 정권을 지지했다. AKP 지도부가 정치적 이슬람주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민주주의자’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귤렌의 비전에도 부합했다. 게다가 AKP의 정관에는 이슬람 관련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유력 정당과 막강한 힘을 지닌 사회운동단체 간의 연대는 터키의 개혁과 경제· 외교적 지위 상승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다. 한편 그들은 함께 의기투합해 군부를 축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귤렌은 공개적으로 에르도안 총리의 국정 및 외교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특히 점차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총리의 반 이스라엘 노선을 맹렬히 비난했다. 2011년 에르도안 총리가 독재 이슬람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자 귤렌은 더욱 더 그와 거리를 두었다. 결국 양자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다가 2013년 말 이내 파국을 맞이한다.

 

인본주의적인 귤렌 운동

종교단체는 과연 현대성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현대성을 공화주의와 정교분리라는 프랑스식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터키인들에게는 어쩌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런 현상을 실제로 목도하고 있다. 터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중산층은 다수로 늘어났고, 보수주의를 견지하는 터키 사회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요컨대 사회가 점차 개인주의적이고(이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개인주의적으로 변함) 세속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013년 5월~6월 이스탄불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일어난 ‘터키판 68혁명’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케말리즘에 근거한 독재적 성격의 현대성은 보수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터키 국민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이번에는 오랫동안 멸시의 대상이 되던 계층을 포함한 ‘아래로부터’ 현대성이라는 현상이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터키 공화국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래 가장 저명한 정치인으로 통하는 투르구트 오잘의 주도로 1980년대 추진된 사회·경제 개혁은 터키 전체를 역동적인 국가로 변신시켰다. 하지만 오늘날 합리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터키의 사업가와 중산층이 이슬람을 대하는 태도나 보수주의적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앞으로 사회·경제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태도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의 보수주의적 성향은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 ‘귤렌 운동’인 것이다.

이슬람 종교를 대하는 태도가 점차 현대적으로 바뀌는 현상은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에 비추어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8) 사실상 이 독일 사회학자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국가기관이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이나 교리, 종교적 상징체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과정이다. 이런 사실은 터키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분명히 확인해볼 수 있다.

귤렌은 정신적, 지성적 차원에서 수피교 계열의 종교단체 ‘누르주’(Nurc)의 창시자인 사이드 누르시(1876~1960년)를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귤렌은 이슬람과 현대성(즉 이성과 과학)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누르시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누르시의 사상에 민주적 요소를 접목하고, 교육사업과 같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도입했다.(9) 사회학자 세리프 마르딘은 자신의 저서에서(10), 누르시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독창적인지에 대해 분석했다.

당시만 해도 이 신비주의 사상가는 정부나 도시 엘리트 계급으로부터 광신도나 위험한 반동분자로 오해받는 상황이었던 만큼, 그가 보여준 통찰력은 더욱 놀랍기만 할 뿐이다. 마르딘은 누르시의 사상 속에는 신도의 개인주의를 장려하는 이른바 ‘인격주의’(personalism·자각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사상-역주)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이슬람에는 각기 상반된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율법을 중시하는 교조주의적 성향의 ‘하디스의 사람들(people of hadith)(11)이고, 둘째는 정신성을 우선시하며 종교의 인본주의적인 면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누르시나 귤렌을 필두로 한 신비주의 수피교 신자들이다.

‘귤렌 운동’은 터키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위험으로 작용하는가 아니면 이익으로 작용하는가? 귤렌이라는 인물과 그 사상이 지닌 영향력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력이 쇠한 이 70세 노인이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는 날엔 상황이 180도로 바뀔 것이다. 사실상 터키 사회 내에는 현재 귤렌 지지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좌파 성향의 사회운동단체는 물론, 정의개발당(AKP)이나 혹은 때에 따라 ‘포스트 귤렌 운동’이 정치 무대에서 행사하게 될 미래의 헤게모니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가진 좌파 정당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알리 카잔시질 Ali Kazancigil

정치학자. 국제관계 전문지 <아나톨리아>(CNRS 출판사·파리)의 공동발행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Helen Rose Ebaugh, <The Güulen Movement : A Sociological Analysis of a Civic Movement Rooted in Moderate Islam>, Springer, Dordrecht, 2010년.

(2) Robert N. Bellah, ‘미국의 시민종교(La religion civile aux Etats-Unis)’, <르데바(Le Déat)>, 제30호, 파리, 1984년.

(3) ‘이슬람 칼빈주의자 : 중앙 아나톨리아의 변화 및 보수주의(Les calvinistes islamiques : changement et conservatisme en Anatolie centrale)’ 유럽안정구상(European Stability Initiative), 베를린-이스탄불, 2005년.

(4) Wendy Kristianasen, ‘터키의 중상주의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호.

(5) Dilek Yankaya, <신흥 이슬람 부르주아 : 터키 모델(La Nouvelle Bourgeoisie islamique : le modèe turc)>, 프랑스대학출판부(PUF), 파리, 2013년.

(6) Louis-Marie Bureau, <페튤라 귤렌의 사상. ‘온건 이슬람주의’의 원류를 찾아서(La Pensé de Fethullah Güen. Aux sources de l’« islamisme modéé»>, 라르마탕 출판사, 파리, 2012년.

(7) Vicken Cheterian, ‘쿠르드 민족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

(8) Max Weber, <종교 사회학(Sociologie des religions)>, 갈리마르 출판사, ‘텔’ 총서, 파리, 2006년.

(9) Erkan Toguslu, <시민단체, 민주주의 그리고 이슬람 : 귤렌 운동의 전망( Société civile, démocratie et islam : perspectives du mouvement Güen, 라르마탕 출판사, 파리, 2012년.

(10) Serif Mardin, <Religion and Social Change in Modern Turkey : The Case of Bediüzaman Said Nursi>, 뉴욕주립대학 출판부, SUNY Series in Near Eastern Studies 총서, 올버니, 1989년.

(11) 하디스란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