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대문호 마르케스의 미출판 유작 '월식의 밤'
월식의 밤
2014-04-2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82년도 노벨문학상수상
콜롬비아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지난 4월 17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그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 소설과 소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유파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작품으로 간주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남미 콜롬비아 북부의 작은 해안마을 아르카타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어권 작가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 특히 <족장의 가을>, <콜레라 시대의 사랑>,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등은 현대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여러 차례 소중한 글들을 기고했다. 여기 소개하는 짧은 단편은 그가 2003년 8월 기고한 미출판 유작이다.
몇 년 전부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회고록 집필에 몰두해왔다. 그 첫 권인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는 올 10월 프랑스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짬이 나는 대로 틈틈이 여섯 개의 짧은 단편도 집필했다. 이 여섯 개 단편은 각기 별도로 읽을 수도 있고 <우리는 8월에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전체적으로 하나로 읽을 수도 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소설처럼 극적인 전개도 있다. <월식의 밤>은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월식에서 도망칠 수는 없어요. 우리의 운명인 걸요.”
이 괴상한 호텔의 또 다른 미스터리는 아나 막달레나 바흐에게는 꽤나 복잡한 것이었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초인종과 조명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면 상당히 강압적인 목소리가 각기 다른 3개 언어로 그녀가 현재 있는 방은 흡연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 축제의 밤에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이라고 통지하듯 말했다. 그녀는 방문을 여는 카드 키로 조명과 텔레비전, 에어컨을 가동하고 무드 있는 음악도 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욕조 자쿠지의 에로틱하고 여유로운 물살 소용돌이의 강도를 조절하기 위해 둥그런 욕조에 부착된 전자 키보드 다루는 법도 배워야만 했다. 호기심을 주체 못한 그녀는 묘지의 뜨거운 햇살로 땀에 젖은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머리에 물이 닿지 않도록 샤워용 모자를 쓴 후 물거품에 몸을 맡겼다. 기분이 좋아져서 멀리 떨어진 집에 전화를 해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자긴 모르지. 내가 지금 얼마나 자기를 원하고 있는지.” 그녀의 태도가 얼마나 도발적이었던지 그는 수화기를 통해서도 욕조 속의 격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젠장, 거기서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녀는 옷 입기가 싫어서 침대에서 먹을 수 있도록 룸서비스를 주문할까 했지만 엄청난 룸서비스 요금을 생각하고 무일푼의 가난뱅이처럼 저녁을 먹으러 카페테리아로 내려갔다. 너무 길고 박스 모양으로 된 검은 실크 드레스는 유행에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머리스타일과 잘 어울렸다. 깊게 파인 드레스는 거의 절반쯤 벗은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목걸이와 귀걸이, 모조 에메랄드 반지가 그녀의 사기를 북돋워 눈가에 광채가 다시 돌게 만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을 때는 여덟 시였다. 그녀는 빨리 식사를 마쳤다. 어린애들이 울고 있었고, 날카로운 음악소리가 다소 거슬려서 3개월 이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제3열의 날>을 읽으려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다시 호텔 홀로 돌아오자 홀의 조용한 분위기에 그녀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카바레 앞을 지나면서 한 직업 댄서 커플이 완벽한 기술로 ‘황제의 왈츠’를 추고 있었다. 그 광경에 취해서 그녀는 그들이 춤을 끝내고 일반 손님들에게 무대를 비워주려고 홀을 떠날 때까지 입구에 서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부드럽고도 남성적인 목소리가 그녀를 꿈 속에서 깨웠다.
“한번 출까요, 마담?”
둘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녀는 그 남자의 약간 수줍어하는 듯한 가벼운 향수가 애프터 세이브 로션 아래로 흘러나오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어깨 너머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숨을 참고 혼동스러워 “미안합니다만. 저는 춤출 의상이 아니라서요”라고 말했다. 남자가 즉각 응수했다.
“드레스와 어울리는 건 당신입니다.”
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그녀의 몸이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손으로 가슴과 드러난 팔과 탄탄한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어깨 너머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그 남자가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가장 아름다운 눈으로 그 남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매우 친절하군요. 어떤 남자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그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다시 한 번 춤추자고 침묵으로 청했다. 자신의 섬 위에서 혼자서 자유로운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마치 낭떠러지에라도 매달리는 것처럼 영혼의 온힘을 다해서 손을 쥐었다.
그들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세 개의 왈츠를 추었다. 첫 스텝을 옮길 때부터 그녀는 그의 추잡스러운 리드로 보아 그가 호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고용한 직업 댄서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지만 그의 팔에서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가 리드하는 격렬한 180도 회전 춤에 몸을 내맡겼다. 그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요정처럼 춤추시는군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침대로 끌어들이기를 원하는 다른 누구에게라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왈츠를 출 때는, 그가 그녀를 가슴으로 꼭 안으려고 시도했었고 그녀는 가까스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신처럼 춤을 추며 마치 한 송이 꽃을 다루듯 그녀를 손가락 끝으로 리드했다. 세 번째 왈츠 중간에는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렇게 우아한 솜씨로 그렇게 오래된 작업을 거는 남자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는 약간 창백한 피부에 무성한 눈썹 아래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가졌고 포마드를 바른 칠흑 같은 머리는 정확하게 중앙으로 가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꽉 조인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오는 생사(生絲)로 만든 열대 턱시도는 댄디한 실루엣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비록 꾸민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행동이긴 하지만 불타오르는 그의 눈은 연민을 갈구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춤이 끝나자 그는 그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약간 외딴 자리에 있는 테이블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 다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가 샴페인을 주문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홀에 스며드는 조명의 불빛이 분위기를 아늑하게 했으며 모든 테이블은 나름대로 각각의 은밀한 공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그 친구가 볼레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른 살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리듬을 탈 때까지 그녀가 재치 있게 춤을 이끌었다. 그렇지만 그가 샴페인으로 뜨거워진 피가 혈관 속에서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싶은 욕망을 주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춤을 추었다. 그러나 그가 조금 무리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도했으나 나중에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온힘을 다해 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에 그가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그녀가 느끼기를 원하는 것을 느꼈고 혈관 속에 피가 치솟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증오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두 번째 샴페인 병을 거절했다. 그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잠깐이라도 해변을 산책하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려 경박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내가 몇 살쯤 되는 거 같나요?”
“나이가 그렇게 많다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그가 대답했다.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정도일 거예요.”
이런 거짓말에 진력이 난 그녀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지금 아니면 영원히 아니다’라는 하나의 절대적 딜레마 앞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유감이네요”라고 내뱉고 일어섰다. 그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샴페인을 마셨더니 힘이 드네요. 가야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분명 순수하고 무구한 또 다른 제안으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한 여자가 일단 떠나려고 마음먹으면 어떤 남자도 설사 신이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몰랐던 모양이다. 결국 항복했다.
“바래다 드리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수고하실 필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고마웠어요. 오늘 밤은 잊지 못할 거예요.”
엘리베이터까지 왔을 때 그녀는 벌써 회개하고 있었다. 자신이 증오스러워졌지만 합당하게 행동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구두를 벗고 침대에 몸을 던져 등을 대고 누워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거의 바로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신성한 내밀의 사적 공간까지 침해하는 이 호텔의 법에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것은 법이 아니라 그였다.
복도의 어슴푸레한 빛 아래 그가 밀랍인형 박물관의 인물처럼 보였다. 그녀는 손으로 방문 손잡이를 잡은 채로 무관심하게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들어오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자기 집인 양 스스럼없이 들어왔다.
“마실 것 좀 주시겠어요.” 그가 말했다.
“알아서 드세요.” 그녀가 말했다. “난 이 우주선이 어떻게 가동되는지 하나도 몰라요.”
반대로 그는 다 알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단장처럼 능숙하게 조명을 낮추고, 무드음악을 켜고 미니바에서 두 잔의 샴페인을 꺼내들었다. 그녀도 마치 자기가 아닌 것처럼 게임에 참여해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들이 막 건배를 할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호텔 안전 책임자였다. 매우 친절하게 호텔 프론트에 등록하지 않는 어떤 초대객도 자정이 지난 후에는 스위트룸에 머물 수 없다고 경고했다.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약간 당황스러워서 그녀가 말을 막았다. “실례합니다.”
붉은 모란처럼 얼굴이 빨개져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도 경고를 들었기에 화제를 전환해 얼버무리려 했다. “몰몬 교도들인가 봐요.” 그리고는 틈을 주지 않고 해변에 산책 가서 월식을 구경하자고 초대했다. 그녀는 이 정보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일식과 월식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유혹과 절제 사이에서 저녁 내내 발버둥친 후라서 이번에는 굳이 거절할 만한 합당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월식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어요. 우리 운명인 걸요.” 그가 말했다.
초자연적인 것을 환기한 것이 마지막 양심의 가책의 잔재를 제거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의 조그만 트럭을 타고 월식을 구경하러 떠났다. 관광객이 다니는 흔적도 없는, 올리브나무 숲으로 가려진 외진 만으로 나갔다. 지평선 멀리 시내의 먼 그림자만을 어렴풋하게 느낄 뿐이었다. 고독하고 쓸쓸한 달이 비치는 하늘은 청명했다.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도착하자 그들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허리띠를 풀고 좌석을 편하게 밀어 제쳤다. 그녀는 그 트럭에는 앞에 두 개의 좌석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버튼을 누르자 좌석이 침대로 변했다. 나머지 공간에는 아주 조그만 미니 바와 파우스토 파페티의 색소폰과 하이파이 그리고 휴대용 비데를 갖춘 조그만 화장실과 진홍색 커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걸 깨달았다.
“월식은 없군요.” 그녀가 말했다. “둥근 달뿐이네요. 거의 상현달인가요.”
그는 여유작작했다.
“그러면 일식이 있겠죠. 아무튼 우리는 시간이 많아요.” 그가 말했다.
더 이상 필요한 예비 행위는 없었다. 둘 다 그 동안 무엇을 참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왈츠를 추었을 때부터 이것이 그가 자기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다른 것이라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술사 같은 능숙한 솜씨에 놀랐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살짝 스치면서 한 오라기 한 오라기 실을 벗기듯이, 하나씩 하나씩 그녀의 옷을 벗겨나갔다.
처음 충격에 그녀는 고통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능지처참 당하는 암탉처럼 불쾌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시원한 대지의 바람이 그리웠고 냉랭한 땀에 흠뻑 젖었지만 더 이상 그에게 종속되어 보이거나 왜소해 보이지 않으려고 원초적 쾌락에 몸을 맡겨버렸다. 둘 다 부드러움에 정복당한 난폭한 힘이 가져다주는 상상할 수 없는 쾌락에 굴복했다.
아나 막달레나는 그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밤이 지나고 삼 년 후에 텔레비전에 방송된 범인의 몽타주 사진을 보고 그를 알아보았을 뿐이다. 그는 사기꾼이자 외롭고 향락적인 과부들의 포주로, 그들 중 한 명을 살해한 혐의로 카리브해 경찰이 수배를 내린 살인범이었다.
글·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롬비아 소설가. 1982년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번역·이진홍
에세이스트, 불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