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명 작가 리우 젱운 인터뷰
“나는 가난한 자들의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올해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린 파리 북 페어는 상하이를 초대도시로 선정했다. 프랑수와 제드의 독창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에세이, 〈평범하고도 예외적인〉(Buchet Chastel, 2014)을 읽으면 상하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즈음 살롱은 중국 작가 대표단의 예방도 받았다. 그 가운데는 실비 장티가 처음 프랑스어로 번역한 〈가장 멋진 유희〉(Editions Philippe Picquier, 2014)의 저자 리어가 있었고, 다른 또 한 사람의 초대 작가인 리우 젱운도 포함되었다. 그의 두 작품, 〈1942년을 기억하다〉와 〈천 마디 말처럼 한 마디 말로〉는 최근에 각기 갈리마르 출판사와 블뢰 드 쉰느 출판사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돼 출간되었다. 내가 중국 베이징에서 그를 만난 것은 어느 화창하고 맑은 일요일이었다. 요즘 북경에서 이런 날씨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활짝 미소 띤 얼굴에 손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전통 보온병을 든 리우 젱운은 탁자 위에 최근 프랑스어로 번역된 자기의 소설들을 내려 놓았다. 그중에는 2004년 블뢰 드 쉰느에서 출판한 〈고급관리들〉도 있었다. 비록 10년 전에 썼지만 여전히 시사성 가득한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에서 공공 서비스가 장관이 바뀌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알력 다툼이나 새로 부임한 자의 환심을 사려고 가벼운 속임수를 쓰는 따위로 어떻게 왜곡되는가를 익살스럽게 묘사했다. 2013년 시진핑이 새 주석이 되고 난 이후부터 10여 개의 부처와 공공서비스 부처의 책임자가 바뀌었다. 이로 인해 다소간 어리벙벙한 반응을 상상할 수 있다. 고급 관리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는가? 그들의 부하 직원들 역시 그의 환심을 사려고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짓들을 하는가? 비유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고급관리들이란 오염과도 같습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질 뿐이라고 했다. 당연히 고급관리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분명 그는 훨씬 더 가혹한 비평을 담아서 소설을 다시 쓸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위구르족 거주지인 쿤밍역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틀 후인 3월 2일이었다. 그 테러에서 마스크를 쓴 범죄자들이 단도로 29명을 살해했다. 중국 당국은 위구르족 분리주의자들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이같이 끔찍한 폭력은 당연히 중국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리우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는 직접적으로는 위구르 신장 자치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터부 중의 터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들이 동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 말도 안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의 묘사가 아니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문맥을 뒤져보고 그 행위의 원인을 따져보는 것이지요. 대개의 경우 지금 현재 드러나는 이유는 과거에 생긴 것이라는 걸 알 때가 많습니다”라고 세심하게 설명했다. 위구르족의 본거지인 중국 신장 자치구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해서도 밝혀내야 할 것이 많다.
리우는 1942년 당시 일본군의 점령 아래 있던 자신의 고향 허난성에서 3백만 명을 죽게 한 대기근에 대해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계속 펼쳤다.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살인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죠. 그런데 아무도 이를 기억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할머니에게 이 대기근에 대해서 말하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죠. “굶어서 죽는 사람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 언제적 기근을 말하는 거야?” 그가 살았던 얀진현 주민들도 마찬가지 대답이었다. 리우는 포기하지 않았고 꼬박 1년 동안 작업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는 “〈1942년을 기억하다〉 속에서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주민들의 시각을 설명하고 묘사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왜 3백만 명의 죽음을 까맣게 잊어버렸는가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그려보고 싶었지요”라고 덧붙였다. 허난성의 주민들은 기근을 겪으면서 딜레마에 직면했다. “자신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점령군인 일본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중국의 통치 하에서 굶어 죽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밀려나서 사라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생존을 선택했죠. 이것이 이 시기에 일반화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의 기억 상실증을 설명해 줍니다.
“죽음 앞에서도 농담을 했다”
그러나 특히 리우가 흥미를 느낀 것은 중국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은 기근을 겪어봐서 이제 농담으로 넘어가는 것을 습득하게 되었어요. 곧 숨이 넘어갈 시점에서도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이웃보다 하루, 이틀, 사흘은 더 살았다. 그건 벌써 대단한 것이라고요.” 실제로 농담이란 가혹한 상황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리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농담은 강철도 녹게 만들죠. 그런 대재앙에 직면하면, 처음에는 두려워합니다. 두 번째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죠. 세 번째는 농담을 합니다. 이것이 중국인들이 체험한 것입니다. 전 국민이 이 저주의 액운을 쫒아내려고 농담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우스운 것은 죽음 앞에서 농담을 한다는 그것이 더 농담 같지 않나요?”
그의 계획은 소비에트 연방과 서구국가들을 따라 잡으려는 강박 관념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편주)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을 말해보는 것이다. 이 운동은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기근을 몰고 왔다. “1962년을 제목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책의 구상은 이미 되어 있습니다. 쓰기만 하면 되죠. 물론 ‘위대한 조타수’보다는 장제스(蔣介石, 1887~1975:편주)의 국민당 권력을 문제시하는 것이 더 쉽겠지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편주)의 공개적인 평가에 의하면 마오에게는 좋은 것이 70%, 나쁜 것이 30%이니 말입니다.” 대약진 운동 기간 중 발생한 죽음들을 조사‧기록한 역사학자이자 기자인 양지시앙이 쓴 <묘비>는 아직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죠. 그러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묘비> 같은 에세이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겠죠. 내가 말하려는 바는 소설이란 과거라는 뿌리에 잠겨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라고 그가 설명했다. 그는 검열에 대해 “연출가들보다는 덜 어렵겠죠. 공무원들이 책을 잘 안 읽거든요”라고 비꼬듯이 말했다. 그의 낙관론이 증명될지는 미래가 말해줄 것이다.
“중국은 비전이 부족하다”
“나는 서구에서 마오쩌둥을 히틀러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평가는 아닙니다. 일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에 마오가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농부들을 결집하고 그들을 먹여주었습니다. 중국을 다시 일어서게 만든 것은 바로 그였죠.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나에게는 분명 한 사람의 영웅으로 남은 셈이죠. 분명 그가 추진한 정책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과 그로 인해 초래된 죽음들을 목표로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눈으로 과거를 평가할 수도 없고요. 문제가 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한 혁명의 전형입니다.”
중국에서 그는 이미 잘 알려진 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세대의 대변인 역할을 바라지는 않는다. “저는 인간이라는 이름,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가장 허약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가난한 자들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말문을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이 자기 나라의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에게 인터넷은 신의 선물입니다. 예전에는 신문과 텔레비전뿐이었죠. 중국인들은 듣기만 했어요. 이제는 인터넷과 더불어서 그들이 말을 합니다. 그것이 변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에도 유리합니다. 중국은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단 하나의 목소리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고통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들어보면, 부침이 어떻든 간에 변화는 불가피해 보였다.
그가 이야기하기를 동의한 유일한 주제는 오염 문제였다. 사실 이 오염 문제가 금년 3월 초 베이징에 들이닥쳤고 모든 베이징 사람들 사이에 대화의 주제였다. 그의 평가는 조금 가혹했다. “하나의 정책을 추진할 때는 그 결과도 예측했어야 했지요. 생산하고 또 생산했지요. 그리고 이제 재앙을 만나게 되었지요. 중국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용기도 아니고요.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마음은 선량합니다. 그러나 비전은 매우 나빠요. 즉각적인 효용성밖에 볼 줄 모릅니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이며 경제학자. 전 〈위마니테 디망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는 <Chine-Inde. La course du dragon et l'éléphant>(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Fayard·Paris·2008) 등이 있다.
번역·이진홍
에세이스트, 불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