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로 중심 이동한 러시아의 외교 전략

2014-04-28     장 라드바니< 프랑스 국립동양학대학 교수>

 

러시아의 외교 정책은 올해 초부터 두 가지 큰 사건을 맞았다. 첫째는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조직단계부터 서방매체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현 정권에 대한 거대한 비판여론이 형성되어 왔다. 두 번째 사건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불거진 우크라이나 사태이다. 이 중대한 사건들은 러시아 정부가 펼치는 신(新)외교정책의 두 얼굴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소프트 파워’에 발을 내딛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간 세력균형이라는 폭력적이며 보다 전통적인 수단을 사용하려는 모습이다.

러시아에게 있어 소치 올림픽은 자국이 이렇게 중요한 국제행사를 유치할 만한 역량 있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였다. 러시아는 경기 운영은 물론 소치가 속한 코카서스 지역의 치안 문제에까지 특히 신경을 쓰는 등 행사 전 분야에 최신식 기술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고취시켜, 날로 다극화되어가고 있는 국제사회 속에서 러시아를 다시 핵심 강대국으로 세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이기도 한 국제여론을 활용할 계획이었다.(1) 결과적으로는 왜곡된 서방 여론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소치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당초 기대했던 효과는 얻을 수 없었다. 주요 매체들이 신뢰할 수 없는 올림픽 준비 과정에 대해 대서특필했고, 특히 비정부기구(NGO) 통제법, 인터넷 규제법, ‘동성애 선전’ 금지법 등 푸틴 대통령 재취임 후 통과된 탄압적인 법안 내용들을 상세히 전해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이후 반(反)푸틴 활동가로 알려진 록밴드 ‘푸시 라이엇’의 멤버와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사면시키거나, 올림픽 기간 동안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는 등 뒤늦게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론은 별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소치 올림픽 기간 중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독립)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의 유혈 사태가 일어나 더욱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은 곧이어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 문제로 이어졌다. 유혈 사태 이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과 함께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이 내놓은 대책들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이끌고 갔다. 결국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가장 거대한 반러시아 진영이 생겨나는 결과를 낳았다.(2) 러시아의 이미지는 크림 반도 합병의 승인 절차를 밟기도 전에 이미 크게 실추되고 말았다. 그 어떤 애국주의 집회로도 회복되지 않을 곤두박질이었다.

 취약점 드러낸 ‘소프트 파워’ 전략

 소치 올림픽은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외교정책 도구들 중에서 뒤늦게 손에 잡은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이었다. 강권적인 영향력이 아닌 이념·문화·과학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인 소프트 파워에 대해, 2012년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미 서방 열강들이 우세를 드러내고 있는 이 분야에 늦게 뛰어들게 된 사실을 유감스럽게 여기고 있다. 국제사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 그 자체만큼 그에 대한 담론과 해석들 또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다른 국가에 강요하기 위해 이러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가짜 NGO들, 또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국가 안정성을 위협하려는 조직들의 활동”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3)

2003년과 2004년, 조지아(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서 ‘색깔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러시아에게 있어 결사와 표현을 더욱 강력하게 제한하는 법을 채택하는 등 국내외 정책에 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국가 이미지 개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러시아는 ‘루스키 미르(Russkiy Mir·‘러시아 세계’)’라는 기관을 설립해 러시아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재외 동포들의 지지를 받고자 했다.(4)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정책 도구들을 불완전하게 구사하고 있다. 지도층이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들, 특히 경제적·군사적 압력에만 계속해서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책 관련 학술지인 <국제 문제에서의 러시아(Russia in Global Affairs)>의 피오도르 루키아노프 편집장은 “현재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전략은 추진하고 있는 발전 모델에 매력을 부여할 만한 그 무언가가 없다”고 분석하며,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외에도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음을 꼬집었다. 과거 소련이 이념적 요인에 더해 용납 가능한 대체 전략들을 함께 제공했던 것과 달리, 러시아는 “진보와는 확연히 거리가 먼, 기존의 재래적이고 보수적인 담론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5)

예를 들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접근하고 있는 구소련 국가들을 제지하기 위해 러시아는 계속해서 경제 제재와 관세 조정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분쟁도 그러한 예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사이트 ‘뉴스플롯’은 지난해 2005~2013년 사이 러시아가 인접 국가들에 자행한 ‘식품 전쟁’의 15가지 내용을 정리해 싣기도 했다.(6) 조지아와 몰도바산 포도주, 벨라루스산 유제품, 폴란드산 육류, 우크라이나산 초콜릿 등의 수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분쟁 발생 시 망설임 없이 군사 개입을 해오고 있다. 2008년 8월, 조지아 대통령이 직접 폭격을 명령한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 시는 러시아 군이 주둔해 있는 곳이었다. 폭격이 일어나자 곧이어 대대적인 반격이 이루어졌고, 러시아군은 조지아 서부지역을 일시 점령했다. 그 결과 러시아 정부는 분리주의 지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대해 독립을 선언했고, 이는 구소련 국가들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이 1991년 출범하며 맺었던 영토 보전권에 대한 협약을 깨뜨린 일이기도 했다. 올해 3월 일어난 우크라이나 키예프 유혈 사태 후에도, 러시아는 급박한 국민투표로 크림 반도 합병을 처리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러시아 군을 크림 반도에 보내 통제권을 잡았다.

러시아 정부는 무력을 수단으로 삼는 이유를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들이 국제사회에 던지고 싶어 하는 도전장은 사실 우크라이나 문제와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바는 현재 세계 안보에 대한 규범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2007년 2월 10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43회 국제보안회의 당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의 이러한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국제적 규범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다가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해당 규범들을 위반하고 있는 일부 서방 국가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 미국 지도층은 소련의 붕괴와 바르샤바 조약 해체 이후 러시아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는 기회를 틈타 하나의 단일 초강대국, 즉 자신들이 패권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세계는 계속해서 변화했다. 이제는 신흥 국가들, 특히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연합하며 세계 안보를 위한 기반을 논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결국 미국이나 다른 주요 서방국이 자신들의 여러 영향권에서 해왔던 것처럼, 러시아도 정당한 전략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그 관심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의 지도층은 2008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NATO 가입을 제안했고, 2013년에는 EU-우크라이나 협력협정을 협상했다. 그들은 두 국가의 영토에 미치는 러시아의 관심을 억제하기 위해 애썼고, 해당 국가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일부 미국 지도층은 플란드·스웨덴 등의 유럽 국가와 손을 잡고, 미국 국제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과거 주장했던 전략들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다.(7) 푸틴 대통령의 대외정책 자문위원인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위기에 이르자 러시아가 세바스토폴 항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며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표현했다.(8)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병력을 집결해, 서방 국가들을 향해 잠시 세력이 약해졌던 지난 시기에서 벗어났으며, 외교관계와 국제무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더라도 전략적 이익을 주장할 것이라고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이렇다 할 대책을 지니고는 있는 것일까?

  아시아 중심의 세력 재균형 전략으로 선회

  최근까지 러시아는 인류·문화적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오랜 파트너인 유럽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난해까지도 EU는 러시아의 대외 무역에 있어 가장 큰 소비자이자 가장 큰 공급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연결한다는 같은 이점을 가진 터키와 달리,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서쪽으로 대륙, 연안에는 태평양’이라는 두 방향 간의 상호보완성에도 관심을 보여 왔다. 사실 그다지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소련 붕괴 전인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연설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부터 푸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늘날 러시아가 세력 재균형 전략을 통해 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실제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가장 분명한 요인은 태평양 지역의 놀라운 역동성일 것이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에 협력과 투자를 더해 러시아 경제 재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푸틴 대통령이 1998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하고, 2012년 APEC 정상회담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편 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심은 러시아 극동지역을 휩쓸고 있는 인구위기의 의식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이후 러시아 극동 지역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이 광대한 지역 전체에서 인구수가 무려 2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대로라면 현재 굉장히 활발한 중국 지역과 맞닿아 있는 이 전략적인 지역을 활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시아 중심의 세력 재균형 전략의 또 다른 결정적 요인으로는 유럽과의 관계 악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기구들은 계속해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해가며 해당 국가들에게 러시아와의 관계, 특히 에너지 교역에 있어서 자신들이 규정한 규범을 기준으로 삼도록 강요하고 있다. EU는 2004년 유럽근린정책, 2009년 동방 파트너십 정책 등의 일환으로 CIS의 몇몇 회원국에 연속적인 정책들을 제안하고, 여기에 더해 석유 및 가스 공급처를 다양화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자 애써왔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노스스트림, 블루스트림 등의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와, 흑해 아래로 지나는 가스관인 사우스스트림 프로젝트 등 서쪽으로의 수출 채널을 재편성하여 대응했고, 교역량 중 일부를 아시아로 돌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 2011년 러시아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으로 중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현재 위기상황의 결정적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EU 내에서도 유럽의 가장 큰 동방 이웃국인 러시아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할 뿐더러, 러시아와의 보다 근본적인 관계 정립에 관해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를 포함한 ‘대유럽(Greater Europe)’의 발전과 안보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전략들을 세우지 않고 있다. EU는 러시아가 내놓는 전략들을 비판하며, 러시아에 대한 거리두기 정책만을 구사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의 전략적 도구화가 되어가고 있는 NATO에 대해서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보고,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은 가중되었다. 유럽이 제도적·경제적인 위기에 접어들 때쯤 취했던 이러한 자세 덕분에, 미국과 별다른 길을 내지 못하는 힘 잃은 연합 관계는 미뤄두고 아시아의 신흥 강대국들과의 관계형성을 보다 가속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을 압박하고 협박하기 위한 도구로 삼고 있는 이러한 세력 재균형 전략은 사실 기술적·조직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 먼저 기술적으로 볼 때, 러시아 동부가 겪고 있는 에너지, 교통, 주택 분야의 극심한 인프라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극동개발부를 창설해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그 효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정적인 필요가 너무 클 뿐만 아니라,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담에서 생겼던 막대한 지출을 고려해볼 때 투자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양 지역으로 원유를 운송할 수 있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이 떠오르고 있긴 하나, 러시아 정부에서 가스액화 기술 개발이 늦어지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덕분에 유럽으로 수출하던 다량의 탄화수소 연료를 금방 아시아 지역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기술 개발 가속화를 위해 자금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러시아를 단순한 원료 공급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역할에만 머무르게 할 뿐이며 결국 러시아의 현대화는 더욱 지연될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정권이 중앙 집중화되면서 다른 연방의 주도권은 점점 축소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이에 많은 시베리아인들은 목소리를 높여 시베리아 각 지역의 실질적인 개발을 보장하기 위한 자체결정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푸틴 정권은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9)

  외교적 고립의 적신호들

  또 다른 난관은 러시아가 다른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1년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CIS를 결성하며 러시아가 지배하는 단일 동방 시장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들에게 충성된 국가들 속에서 핵심 세력을 다지려던 러시아 정부는 우유부단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용어와 역할이 뒤섞인 상태에서 비슷비슷한 경제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삼국 관세동맹, 단일경제권(CES),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urAsEC), CIS 자유무역지대 등이 그 예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1994년 제안해 2015년 출범을 앞두고 있는 유라시아 연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네 개의 경제 공동체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조직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의 삼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성격에 따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서너 개씩 합류해 있는 상황이며(단, 우즈베키스탄은 옵저버국 이상의 자격은 없음), 경제공동체와 자유무역지대에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중 실제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조직은 하나도 없다. 러시아가 다른 국가들이 전부 자신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자국의 자율권과 통제권을 모두 요구하고 있는 까닭이다. 결국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 유럽, 중국, 이란 등 강력한 제3국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거대 이웃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속해 있지만, 그 단계를 넘어 더욱 다양한 국가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을 빌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조직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러시아로서는 전과 달리 각각 독립적인 주변 국가들과 균형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말았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를 합병하면서, 동시에 소련 해체 이후 모국에서 떨어져 나간 러시아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규모 동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대처럼 정부에서 ‘외국 기관(foreign agent)’이라고 규정한 몇몇 반대진영에 공격을 가했고, 전국으로 조직된 언론 진영은 과거의 악몽 같던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덕분에 2011~2012년에 일어났던 반정부 시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국민들을 대통령 중심으로 빠르게 결집시킬 수 있었다.(10)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지금 상황이 러시아 국내외에 미칠 영향은 막대할 것으로 여겨진다.

코카서스, 볼가, 시베리아 등 러시아의 여러 지역에서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사회적 행동에 참여하고 있고, 중앙집권적 권력을 비판하는 반대시위들이 급진 이슬람부터 지방자치주의까지 전체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폭발적인 민족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의 권위주의적 정권은 중앙 분리주의 세력 뒤에 숨어 있지만, 어느 날 단 한 번의 정치 변동이나 경제 위기로도 분리주의 세력이 약화되고 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크림 반도 합병의 불안정한 여파는 러시아 국내보다도 국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만 해도 전체 국민 중 25%가 러시아 민족(대부분 무국적자)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결국 크림 반도에서 진행된 국민투표의 결과는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분쟁을 빚고 있는 몰도바, 북부 지역에 러시아어 사용자가 다수 분포되어 있는 카자흐스탄에게도 일종의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91년 이래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영원한 동맹국임을 계속해서 자처해왔다. 하지만 후임 대통령들도 지금처럼 온순한 입장을 취할지는 알 수 없다. 2008년 조지아가 CIS를 탈퇴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마저 3월 19일 탈퇴를 선언한 이 상황에서, 카자흐스탄마저 분리를 결심한다면 러시아가 90년대 초반부터 주변국을 ‘가까운 외국(near abroad)’이라 칭하며 마음대로 주무르려 애써왔던 지난 20년간의 시도가 전부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난 3월 27일,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 상태를 보여주는 첫 번째 징후가 나타났다. 국제연합(UN)이 크림 반도 합병 불승인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 것이다. 러시아의 우방국 중에서는 아르메니와 벨라루스만이 합병 불승인 반대표를 던졌고, 중국과 카자흐스탄은 기권했다. 키르키즈스탄이나 타자키스탄은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11)

동포들의 귀환을 반기는 러시아 시위단의 승리의 함성 너머 동우크라이나의 있을지 모를 분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은 결국 피로스의 승리(상처뿐인 영광)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1) 기욤 피트롱, ‘스키 활강의 지정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2월호

(2) 올리비에 자젝, ‘편집증적 반러시아 망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4월호

(3) Vladimir Poutine, ‘La Russie dans un monde changeant’, <모스코브스키 노보스티>, 2012년 2월 27일호(러시아어)

(4) Tatiana Kastoueva-Jean, ‘‘Soft power’ russe : discours, outils, impact’, <Russie. Nei. Reports>, 제5호,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2010년 10월

(5) Fiodor Loukianov, ‘Les paradoxes du soft power russe’, <La Revue internationale et stratégique>, 제92호, 프랑스 국제전략관계연구소(IRIS), 파리, 2013년

(6) www.newsplot.org(우크라이나어)

(7) Zbigniew Brzezinski, ‘Le Grand Echiquier. L'Amérique et le reste du monde (거대한 체스판)’, Bayard, 파리, 1997년

(8) <파이낸셜 타임즈>, 런던, 2014년 3월 5일

(9) ‘La Sibérie, eldorado russe du XXIe siècle?’, <La Revue internationale et stratégique>, op. cit.

(10) 장 라드바니, ‘푸틴의 재등장에 거는 러시아 국민의 기대와 불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4월호

(11) 크림 반도 합병 불승인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서 100개국이 찬성을, 11개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58개국은 기권했다.

  글·장 라드바니 Jean Radvanyi

프랑스 국립동양학대학(INALCO) 교수, 유럽-유라시아연구센터(CREE) 공동 소장. 저서로는 <또 다른 러시아로의 회귀>(르보르드로, 2013) 등이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