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소농 죽이는 EU 농업정책

2014-04-28     마리우스 가리그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지난 2013년 1월 유럽의회로부터 한차례 승인이 거부된 바 있는 EU 2014~2020년 중기 예산안에 마침내 합의했다. 이번 예산안에는 EU 공동농업정책(CAP)의 중기 예산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오는 7년간 공동농업정책에 할당되는 예산액은 총 3,730억 유로로 이는 지난 2007~2013년 예산에 비해 12% 감소한 수준이다. 그러나 예산액의 변화보다도 회원국 간 예산 분배 모델을 바꾸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EU는 2003년 이후 신규 회원국이 된 동유럽 국가들과 기존 회원국 간의 지원금 균형을 맞춰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모든 회원국의 2020년 헥타르당 최소 지원금을 196유로 선으로 맞추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1)

결국 전체 예산액은 줄어들었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몫이 늘어난 국가도 있다. 주폴란드 프랑스대사관 소속 알렉상드르 마르티네 농업담당관은 이번 정책을 통해 폴란드 농가에 주어지는 직접지불금이 유럽 전체 평균의 80% 수준인 헥타르당 185유로에 달할 것이며, 폴란드 측에서는 중기적으로 볼 때 240유로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직접지불금을 통해 지역농업의 경쟁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티네 담당관은 “러시아, 터키, 유럽 지역으로 수출되는 폴란드산 낙농제품의 양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국가들은 프랑스 입장에서도 중요한 수출 시장으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그는 “폴란드산 낙농제품이 프랑스산보다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금 규제도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노동비도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폴란드 코브루지 지역 낙농업가인 피오트르 돌리갈스키는 “EU에 가입하고 9년이 흐른 지금, 폴란드 시장이 서유럽 제품들로 잠식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자신했다.

  빠르게 무너진 폴란드 소농가들

  그러나 폴란드가 단박에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돈육협회(INAPORC) 기욤 후에 회장은 “시장 장벽 철폐 이후 폴란드 소농가들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고 언급했다. 노동집약적인 재래식 농업이 자본집약적 서구식 농업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2) 시장경제 도래와 상품 가격 폭락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을 덮치고 말았다. 2012년, 폴란드의 마렉 사비스키 당시 농림부 장관은 8년 만에 30만 농가가 사라졌고, 그 중 대부분이 5헥타르 이하의 농지를 가진 소농가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동유럽 국가들은 EU에 가입하면서 유럽 시장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출을 중단해야 했던 반면, 서유럽 국가들은 탄탄한 국가 지원을 등에 업은 자국 농산품들이 폴란드 시장을 휩쓰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제로 폴란드는 새로운 기준에 맞추어 콘크리트 포장, 수자원 미생물 분석, 낙농가 전용 저장시설 건설 등의 과제를 치러야 했다. 물론 특별 지원금이 책정되어 있긴 했지만, 소농가들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전부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여기서 살아남은 농가들마저 또 다시 농장 확장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폴란드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지역 농업현대화 및 정비사업 사무국의 안드레지 그로스 국장은 “주 목표는 농장 수 증가가 아닌, 농장 규모의 확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바르샤바 서쪽에 위치한 코데체크 지역에서 4천 헥타르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농장주는 “농장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헝가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농업 연구 전문가인 페린느 반덴브루케의 조사에 따르면 EU의 전체 농업 지원금 중 45%는 축분처리시설 등의 프로젝트에, 25%는 인프라 현대화 등에 할애되고 있어 사실상 현재 EU 지원 프로그램 중 소규모 농가를 위한 내용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다.(3)

결국 신규 회원국들은 전통 재래식 농업과 자가소비 농가를 희생시키며 새로운 국제 시장의 판로를 개척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EU 지원 확대를 통해 이제는 유럽 공동체 안팎의 새로운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단단히 갖추었다. 일례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유럽 낙농제품 쿼터 제도가 오는 2015년 폐지될 예정이지만, EU 가입 이후 빠르게 쿼터를 채워온 폴란드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것이다. 폴란드 축산업계는 이제 커져가는 세계적 수준의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높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불평등한 직접지불금 형평성 정책

  하지만 프랑스 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특별한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요플레 등 유제품 브랜드로 유명한 프랑스 낙농협동조합 소디알(Sodiaal)의 프레데릭 쇼숑 개발협력 담당관은 “최근에는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프리미엄 우유 제품의 값은 프랑스산에 비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며 “그래서 이 국가들을 특별히 경쟁력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프랑스 업계는 이 국가들을 자국 제품을 수출할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다. 중·동부 유럽 국민들의 구매력은 서유럽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페린느 반덴부르케의 설명에 따르면 헝가리의 경우 과일 및 채소 수입량이 2004년 이후 연간 25%씩 증가하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보다 ‘매끈’하고 저렴한 네덜란드와 독일산 상품들이 헝가리 시장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변화다”라고 덧붙였다.

이보다도 프랑스가 실제로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각 회원국 내 지역 간 직접지불금 형평성 정책으로 인해 농가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EU가 내놓은 형평성 정책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농가가 받게 될 직접지불금은 헥타르당 250~260유로로, 이 경우 브르타뉴 지방 낙농가들은 전체 소득의 13%가 감소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곡물농가들은 프랑스의 지원금 수준이 유럽 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불평등하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곡물 및 두류·유지작물 생산자 협회(Orama)에 따르면 이번 2014~2020 공동농업정책으로 150헥타르 이하 프랑스 곡물·유지작물 농가가 받을 수 있는 직접지불금은 평균 182유로로, 이는 현재 293유로인 데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결국 지역 간·회원국 간 직접지불금 형평성 정책으로 인해 동·서유럽의 균형이 뒤집힐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밀 생산자협회(APGB)의 니콜라 페렌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4년 프랑스 농가에 대한 헥타르당 지불금이 루마니아보다 낮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형평성 정책을 통한 이득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루마니아 농민환경단체 에코루랄리(EcoRuralis) 소속 아틸라 슐츠 공동농업정책 담당관은 “직접지불금을 받을 국내 대규모 농장들도 루마니아 농장이 아니다.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등 외국 기업들이 농가 토지를 사들여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소수 상위권이 지원금 독차지

  자국에 주어진 지원금을 실질적으로 재분배하는 역할은 각국의 손에 달려 있다. 루마니아의 경우, 대규모 농장에 지급되는 지원금이 결국 1990년 사회주의 체제 붕괴 직후 시작된 토지 매점 현상을 한층 더 가속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토지 매점 현상은 당연한 결과로 볼 수도 있는데, 구소련의 영향으로 생겨난 ‘콜호스(협동농장)’와 ‘소프호스(국영농장)’ 등의 초대형 농장들이 체제 붕괴 후에도 그대로 남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제공하게 된 까닭이다. 아틸라 슐츠 담당관은 “외국 기업들이 루마니아 토지에 투자하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낮은 토지가격과 더불어 EU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금에 있다. 지원금이 늘어날수록 토지매점률도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슐츠 담당관은 현재 570만 명의 농민들이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반면 “소수의 상위권이 수천만 유로를 받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관료주의와 더불어 최소경작면적 기준선이 지나치게 올라 나타난 결과이다. 그는 “지원금의 51%가 루마니아 농가 전체의 1%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1) 에스토니아·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는 2004년, 불가리아·루마니아는 2007년, 크로아티아는 2013년에 가입했다.

(2) cf. Catherine Darrot, ‘Les paysans polonais a l'epreuve de la PAC’, Agrocampus, 2008, http:··tel.archives-ouvertes.fr

(3) Perrine Vandenbroucke, ‘Dynamique et durabilite des exploitations agricoles dans la zone periurbaine de Budapest’, AgroParisTech, 2007.

  글·마리우스 가리그 Marius Garrigue, 클리오 랑댕비볼로로나 Clio Randimbivololona

  언론인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