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경제위기와 신뢰상실, 이명박 정부의 '이중고'

2009-05-05     필리프 퐁스 | 도쿄특파원

 

국민들 지나친 비관론 빠져 우파에 몰표

해법은 우경화 아닌 직접 참여 민주주의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에 의존하지 않고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아시아 연대기금’을 창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지지를 기대하면서, 이 기금에 240억 달러를 분담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사회 불안과 북한과의 긴장 고조, 신뢰의 추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 당시 “세계화된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1인당 국민소득을 연 4만 달러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12개월 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그도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이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한국이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고, 대북 강경책으로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지난 10년을 통틀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6자회담(중국, 남한, 북한, 미국, 일본, 러시아)에서 한국이 배제될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2009년 4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성 발사체, 혹은 장거리 미사일이었을지도 모르는 물체를 발사했지만 이에 대한 한국민의 반응은 차분했다.   

  사실 한국 국민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북한 정권이 가하는 온갖 비방과 위협에 익숙해진 터였다.
한국 정부는 수주일 동안 요격 가능성을 발표하며 한바탕 군사적 소동을 벌인 뒤 미국 정부가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좀더 온건한 자세를 되찾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정부는 동아시아의 안정을 “심각하게 해치는” 북한의 이런 행위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단호한 제재’를 요구하는 국가들의 선두에 서 있다.

  하지만 이런  행보에 놀란 이는 아무도 없다. 전임자들이 지나치게 친북적이라고 여겼던 이 대통령이 취임과 더불어 가장 먼저 취한 조처는 북한 정권이 양보를 하지 않는 한 대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이에  북한은 2008년 말 남북한 간 불가침 합의를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도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취임 직후부터 대북 강경 노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단 사그라지면 미국은 북한 정부와 직접 대화를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국으로서는 “미국 정부와 공조할 수밖에 없겠지만 북한이 한국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세종연구소 백학순 연구원은 밝혔다. 그러나 북한을 직접적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한국 국민은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경제 상황 악화를 더욱 우려하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3분의 2가량을 국외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경제위기와 사회위기가 맞물릴 위험이 크다.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 3월 고용 창출과 영세민 지원을 위해 29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한국의 사회위기는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폭풍으로 야기된 것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금융위기는 적어도 지역적으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재기를 위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의지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비록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말이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와 무관하게 전세계에 걸친 위기 속에서 국외의 상황에 따라 회복이 좌우되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11년 전만 해도 비교적 동질성을 보였던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가 지금은 그때와 달리 심화된 것도 차이점이라고 사회학자 김용학은 강조한다. 여러 연구소들의 발표를 보면 올해 상반기 말까지 한국에선 5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는 분열되고, 국회에서는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한 정당들이 난장판을 벌이고 있으며, 국가원수의 지지도는 하락하는 가운데 지금의 고요함이 언제 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연봉 삭감과 초과근무 감축을 통한 고용 유지 조처가 마련됐을뿐만 아니라, 10~20%에 이르는 초임 삭감에 의욕을 잃고 학업을 연장하는 대학생들이 증가해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졸업자 수가 줄어들면서 문제를 완화시키고는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고통스러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으며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역경 앞에서 어느 정도 연대의식이 발휘되고는 있지만 이념의 골은 깊어만 간다. 정부를 비판하면 곧잘 ‘빨갱이’ 취급을 당한다는 사실은 이처럼 불안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비판하면 곧잘 ‘빨갱이’로 취급
  길지 않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 가운데 이명박씨는 여론과 가장 짧은 ‘밀월’을 즐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선 3개월 만에 20%로 급락한 지지율은 지금도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그의 정책은 얼마 가지 않아 부적절함을 드러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버리고 타협을 모색하는 마당에 대북  강경책을 주장했고, 월가의 몰락으로 폐해가 드러나고 있던 완고한 신자유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위기의 파급효과를 저지하기 위해 케인스식 해법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은 이번 경제위기에서 직격탄을 맞았고 궁핍하던 옛 시절의 습관을 되살려 근검절약과 상부상조를 다시금 배우는 중이다. 성공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이 나라에서 치욕으로 여겨지는 가난은 그 모습을 공원이나 지하도에 감추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아직 1998년 당시처럼 참담한 결과(심리적 공황, 금 내다팔기 운동, 자살)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들처럼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게 올해는 무척이나 고된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진영옥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고용주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사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등 이번 기회를 틈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손보려 하고 있다”고 분개한다. 민주노총은 현재 조합원 수가 80만 명에 이르며, 가장 활발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조직이다. 하지만 지난 1월 간부가 연루된 내부 성폭행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탓에 4월 말에 시작되는 사용자 쪽과 임금·고용 연례교섭을 이끄는 데 별로 유리한 처지가 아니다.
 
 정당들, 시민 만족시킬 역량 없어
 물론, 지금 한국인들은 결속을 다지고 있어 ‘시민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시민사회의 요구를 연계해줄 역량을 갖추지 못한 듯하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독재를 경험한 한국은 1987년 여름이 되어서야 거리시위에 힘입어 민주화를 이룩했다. 대표적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이 그로부터 10년 뒤 집권하면서 민주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2007년 12월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표되는 우경화 현상이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쟁취한 민주화의 가치 훼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임 대통령은 우파 지지자를 비롯해,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유권자들, 그리고 원칙 없는 재분배 정책보다는 성장 가속화가 자신들에게 이로울 것으로 기대한 노동계 일부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
 집권당의 대선 참패는 당시 이미 나타나던 고용 불안정, 청년 취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 등에 대한 불안 여론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양호하던 당시 경제지표에 비추어볼 때 도를 지나친 비관주의도 패배에 한몫을 했다.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중국의 급팽창을 보면서, 과거에 이와 유사한 비약적 발전을 경험한 한국인들은 왠지 자국의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라는 약속의 실패에 실망한 많은 이들은 경영인 출신으로 서울시장을 역임한 적극적 면모의 이명박이 내건 신자유주의에 마음이 끌렸다. 이명박은 재벌들에 좋은 것은 필경 국가에도 좋다고 주장하면서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폈고, 유권자들은 그에게 거리낌 없이 몰표를 던졌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정부는, 연성장률 7%를 달성하고 국민소득을 현재의 2만4천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증대시키며 세계경제 순위 13위 국가에서 7위로 끌어올린다는,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놓은 ‘747 계획’의 비현실적인 목표를 선전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에 국민은 분개했다. 2008년 4월 말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유발된 파동을 계기로 수주일 동안 서울에서 하루 최대 10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시민들의 분노는 정권 반대 움직임으로 비화했다.

 이런 여론의 ‘봉기’에 정부는 난데없이 허를 찔렸고, 이 과정에서 일부 한국인들의 외국인 혐오 반응을 엿본 외국 분석가들은 당혹감을 느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미국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사실상 각양각색의 불만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됐다. 식품 안전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대열에 교육 개혁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이 합류했고, 열렬한 개신교파에 속한 대통령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불교 신도들이 동참한 데 이어 마침내 노조들까지 가세했다. 비록 평화적으로 출발한 연대 시위였지만 국가의 전략적 독립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인 잠재적 반미주의가 여기에 없지는 않았다. 시위는 확산될수록 더욱 격렬한 양상을 보였고 곳곳에서 진압 경찰과 충돌했다. 이전 세대 시위대가 화염병으로 무장한 것과 달리 이들 시위대는 촛불을 손에 들었다.

 경찰의 진압은 거세지고 시민들은 지쳐가는 와중에 대통령이 사과문을 통해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시위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주특기인 밀어붙이기를 빗댄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저항 시위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는 공로를 세웠다”는 것이 국립 호주대학교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인 개번 매코맥의 평가다.

 인터넷 통제를 위한 무리수
 인터넷을 통해 각종 운동이 이합집산을 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강한 순발력은 한국에서 이뤄지는 정치 참여 활동의 특징 중 하나다. 인터넷상의 시민, 즉 네티즌들은 경제 시스템을 감시하고 그 문제점들을 고발한다. 이처럼 시민의식의 새로운 표현은(1) 1960~80년대의 ‘민주화 세대’와 비교해보면 이데올로기가 약해진 반면 정서적 측면이 강화됐다. 정부는 여기에 우려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인터넷 공간의 비폭력적인 특성상, 딱히 질서유지를 명분 삼아 제어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신 정권은 사이버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을 이용해 인터넷망을 통제하려고 한다. 주요 인터넷 뉴스 사이트 중 하나인 <오마이뉴스>는 이런 시도를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비난했다. 사실 대형 언론사들이 친정부적 색채를 띠는 데 반해 포털 사이트들은 상당수가 견제 세력의 공간이 되고 있다. 

  한국은 사회의 민주화가 정치권의 발전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한국 정치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보다 출신 지역에 따라 그 구도가 결정되고 있다. 이런 줄서기를 이용한 기회주의적 작태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2008년 4월 총선의 투표율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저치인 46%를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 투표 결과(한나라당은 총 의석 299석 중 153석을 차지한 반면 민주당 의석은136석에서 81석으로 줄었다)를 통해 한국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단절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60~80년대에는 학생운동이 반독재 투쟁 세력의 주축을 이루었다. 그리고 노동계와 시민운동이 저항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민주적이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성장한 오늘날의 많은 한국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희생·연대)와 진보적 이상보다는 물질적 발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창립 멤버이자 전 민주노총 위원장인 이수호의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관심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노골적으로 행사되기도 하는 금권력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파에 대항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대안 세력이 전혀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현 정치 세태에도 실망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탈정치화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이수호는 밝힌다. 이들의 정치 참여는 종종 산발적인 활동들로 이뤄지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당시처럼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융합되기도 한다. 이명박의 우경화 노선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수렁에 빠져든 지금, 이런 직접민주주의가  앞으로도 여러 가지 놀라움들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벵자맹 주아노, <서울, 어떤 도시의 발견>(Seoul, L’invention d’une city), 2006 참조.

글/필리프 퐁스 Phillipe Pons

주요 저서로는 <1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의 비참과 범죄>(1999), <에도부터 도쿄까지>(1988)가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