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의 귀에 속삭이는 사람
사회자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사회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 많은 시청자들의 눈이 쏠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자가 하게 될 말은 중요하다. 사회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임금 인상 속도가 느립니다. 많은 사람들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노동자 수 천만 명을 대표하는 유럽의 노조 45명은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노조 45명은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방송은 노동자 45명의 요구사항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며 노조 대표 3명을 방송에 모셨습니다.”
1991년 9월 18일에 FR3 채널을 통해 방영된 <세기의 행진> 방송으로 사회자 장 마리 카바다는 매끄러운 진행을 했다. 방송 중에 시청자들을 속인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출연한 3명은 노조 간부가 아니라 대기업 대표였던 것이다. 공영 방송은 짧지 않은 방송 시간 동안 경영자 3명에게 입장을 이야기 할 기회를 준 무대로 전락한 것이다.
저널리스트인 프랑수아 뤼팽은 최근 유럽에 관한 저서(1)에서 이 방송 이야기를 언급하며 유럽 문제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뤼팽은 유럽 기관들을 활보하는 또 다른 주역인 로비스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카바다 보다 교묘하다. 로비스트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권력자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좌파당의 사무총장인 가브리엘 아마르가 저서(2)에서 밝혔듯이, “원래 로비라는 단어는 영국 의회의 복도를 뜻한다. 영국 의회의 복도는 압력 단체들이 의원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비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한 것일까? 벨기에의 사회학자 제프리 귀앵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신 귀앵은 유럽의 영향력 있는 로비 단체인 유럽테이블라운드(ERT)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ERT는 1980년대 초, 유럽 의원 두 명의 정치적인 노력으로 창설되었습니다. 한 명은 훗날 토탈 그룹의 대표이자 프랑스사용자전국회의(CNPE)의 대표가 되는 프랑수아 자비에 오르톨리이고 또 한 명은 벨기에의 에티엔 다비뇽입니다. 두 사람은 스웨덴의 자동차 기업 볼보의 페르 질렌햄머 대표에게 40여 곳의 대기업 총수들을 회원으로 하는 클럽을 만들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뤼팽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ERT는 유럽위원회의 요청으로 생겨난 로비단체인가요?” 이에 대해 귀앵의 대답은 이렇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신중한 것입니다. ERT가 유럽위원회에 압력을 넣은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유럽위원회가 ERT에게 경제와 금융계에게 유럽의 열쇠들을 맡긴 것이죠.” 이것이야 말로 암탉들이 늑대에게 닭장 열쇠를 맡긴 꼴이 아닐까?
<각주>
(1)프랑수아 뤼팽, <Faut-il faire sauter Bruxelles?>(브뤼셀을 달래야 하는가?), Fakir Editions, 아미앵, 2014
(2)가브리엘 아마르, <Les Lobbys en Europe. Le grand trafic néolibéral>(유럽의 로비단체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거래), Bruno Leprince, 파리, 2014
글 ․ 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지극히 적게>(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