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을 기억하다>, 3백만 명을 죽인 대기근의 증언
“단 1년 동안 3백만 명이 죽었다. 그것은 아무런 일도 아닌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중국 작가 리우 젱운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과 1943년 중국 허난성을 강타한 무시무시한 가뭄을 이렇게 회고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지역 중 하나인 얀진현에서 1955년에 태어난 이 작가는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그 자신 역시 30세가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거대한 집합 망각증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먼저 가까운 친척들, 그의 할머니, 삼촌들, 이웃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증언은 드물었고 기아로 고통 받던 사람들을 식인귀로 둔갑시킨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허약하기만 했다.
〈1942년을 기억하다〉는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구름이 황폐하게 유린해버린 대지만큼이나 건조한 짧은 에세이다. 화려한 문체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마치 맨 처음 이를 장제스에게 알린 미국인 신문기자 시어더 화이트의 글처럼 작가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실과 증언만 나열했다. 당시 중국을 철권 통치하던 장제스 국민당 총재의 유일한 관심은 허난성 코앞까지 다가온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는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압수를 되풀이했으며 현물 세금을 증가시켰다. 군대를 먹이기 위해서 국민을 더욱더 굶주리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계산 착오였다.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들을 먹여주는 쪽에 서버렸다. 일본군이 농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던 것이다. 5만 명의 중국 병사가 바로 자기 동족들에 의해 무장해제 되었다. 3주 만에 6만 명의 일본군이 30만 명의 중국군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아직 프랑스어로 번역은 되지 않았으나 1992년 중국어로 발표된 이 책은 20년 후 평 사오강 감독에 의해 <Back to 1942>라는 제목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영화는 대성공이었다. 2억 명의 관객이 인터넷을 통해 이 영화를 감상했다. 리우가 망각에 대항해서 썼다는 첫 번째 도박에서 이긴 것이다.
그는 “내가 1942년에 대해 쓴 것은 또한 1962년의 대약진 운동과 그 때문에 죽은 3,600만 명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세상은 훨씬 더 미묘하다. 그때의 책임자였던 국민당도 일본군도 더 이상 여기에 없지만 마오쩌둥과 공산당 체제는 여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천 마디 말처럼 한 마디 말로〉는 리우의 가장 최근 작품으로 2011년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오둔 상(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을 배출함-편주)을 안겨준 책으로 최근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이번에는 집합적인 역사 대신 다양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대신 자리 잡고 있다. 말이 인물의 고독을 설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말이란 이중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대체 신이 없는 사회에서 누구에게 고백하고 누구에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타인에게 자신을 열어야겠죠, 그런데 어떻게 그 이타성을 알아보고, 어떻게 이타성을 실행할까요? 더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 사회를 반죽해버린 공동체의 실상에 부합하도록 단 한 가지 천편일률적인 목소리로만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이곳에서,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라 경청할 수 있도록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글·필리프 파토 셀레리에르 Philippe Pataud Célérier
번역·이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