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클럽의 독점적 소유를 뒤흔드는 서포터들

2014-06-03     다비드 가르시아

이미 월드컵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이 정치적 환멸과 인위적인 열광의 분위기 속에 이번 월드컵을 개최한다.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표현의 장이자 간혹 지나친 폭력의 장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축구장을 두고 스포츠산업계는 질서정립을 위해 고심 중이지만, 한편으로 축구장은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일부 축구팬클럽들은 축구장의 서민적인 모습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로 2014년 2월 1일. 백여 명의 성난 코린티안스 팬들이 선수단의 훈련장에 무단침입했다. 연달아 실패를 한 선수 두 명을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태도였고, 불운한 선수들은 간신히 성난 팬들을 피할 수 있었다. 4일 후 열린 한 경기 도중 성난 코린티안스팬들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브라질 사회학자 마우리시오 무라도는 “깡패에 가까운 축구팬들은 전체 축구팬클럽 회원의 5%에서 7%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진정한 축구팬이 아니라 마약중개를 하거나, 깡패인 집단이다. 이들을 축구장에서 영구추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분석했다.(1) 두 달 전에는 바스코다가마 팬들과 아틀레티코 파라나엔세 팬들 간의 폭력충돌로 4명이 중상을 입었다. 1988년 이후 현재까지 브라질 내 234명의 축구팬이 사망했다.(2)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펠레는 1995년에서 1998년 스포츠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훌리건들이 축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3)

축구를 ‘지키기’ 위해 통제불가능한 요소들을 ‘제거’해 낼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영국의 사례를 브라질에 도입하고 싶어 한다. 영국 런던에서 맨체스터, 리버풀에 이르기까지 축구장을 질서정연하게 만드는 꿈이 현실이 되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희생한 대가다.

축구장 내 폭력사태 증가는 1980년 이후 축구에 대해 자본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나타났다. 훌리건들은 축구팀을 향한 응원가 대신 경쟁팀 팬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영국에서 시작된 훌리건은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훌리건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은 경찰력 투입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축구장 구축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현대스포츠의 기준에 걸맞은 새로운 축구장은 ‘쇼를 관람하는 소비자 중심’이며, 2010년 세 명의 사회학자가 라마 야데 프랑스 스포츠부 장관에게 제출한 ‘축구 응원문화를 위한 정책제안서’와 일맥상통했다. 입석제가 폐지되고 좌석제가 일반화되면서 관중들의 편의가 크게 향상되었다. 동시에 입장료도 상승하여, 2013년과 2014년 런던 아스널팀의 홈구장인 에미러츠 스타디움 연간 회원가입비는 가장 저렴한 회원권이 1155유로(약162만원)였다. 지불능력이 없는 축구팬들에게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이들이 훌리건이건 아니건 간에 이들은 더 이상 현장에서 그들의 팀을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4)

2000년대, 대자본가와 투자기금들은 영국 명문팀을 사들였다. 북부 영국의 상징적인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그렇게 미국국기를 달게 되었고, 수천 명이 “미국인 구단주인 글레이저에게 한푼도 주지 마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친근한 분위기를 보전하기로 결심한 분리주의자들은 2005년 유나이티드 축구클럽을 창단했다.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유나이티드팀은 참여민주주의를 충실히 이행한다. “연간총회 당시 맥도날드사를 스폰서로 삼을 것인가 여부가 투표에 회부되었고, 95%가 맥도날드 유나이티드가 되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다.” 자체운영되는 이 7부리그 소속 축구팀을 대변하는 비니 톰슨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본주의와 공동소유 절충을 택한 스완지팀

  축구 비즈니스의 해방 선구자인 웨일즈 스완지시 축구팀 팬들은 또 다른 대안을 시범 중인데, 자본주의와 공동소유화의 절충 방식을 채택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축구팀이 1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값에 매각되었고, 같은 해 10월 런던에 거주하는 호주 출신 사업가 토니 페티에게 되팔렸다. 축구팀을 소생시키기 위한 새로운 구단주들의 역량에 회의적이었던 150명의 팬들은 8월 협회를 창립했다. 협회는 600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소주주 그룹에게 신뢰할 만한 구단인수자를 찾는 임무를 주었다. 협회 사무국장인 나이젤 헤이머씨는 “거리시위로 페티 구단주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소주주 그룹은 축구팀을 지지하는 지역기업가들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협상을 통해 지속가능한 투자 방법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투쟁에 진저리가 난 토니 페티는 2002년 1월 스완지 축구팀을 컨소시움에 전매했다. 협회는 회원모집을 통해 5만 파운드(약8600만원)를 모아 구단 자본금의 20%를 획득함으로써 이사회 내 자리를 확보했다. 이사회 내 협회대표인 휴 코즈씨는 “일개 주주의 단일지배를 방지하기 위해 주주들은 자본금의 25%를 초과 보유할 수 없다. 팬클럽이 확보한 이사회석도 폐지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경제적 쇄신을 거친 스완지팀은 열 시즌 만에 4부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섰다.

선수단 훈련장은 스완지 축구팀의 성장 현황을 보여준다. 협회 내 홍보담당자인 알랜 루이스씨가 “스완지는 선수들에 대한 투기보다는 시설투자에 600만 파운드(약104억원)를 지출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전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라고 귀띔했다. 휴 젠킨스 회장의 세심한 배려 아래 선수들의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젠킨스 회장은 “팬클럽이 이사회 자리를 확보했다는 것이 팀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라고 경고했다.

선수단의 급여 삭감에도 스완지팀 본사 앞에는 페라리, 포르쉐 등 값비싼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스완지팀은 다른 일류팀들과 재정상의 관행에 있어 차이를 두지 않으며,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천정부지 수준의 급여를 선수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연간 팬클럽회원권은 459유로(약64만원)인데, 서민층에게는 비싼 금액이다. 루이스씨는 “경제적 제약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팀을 응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 사이에 일종의 타협안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변론했다.

1990년대 말 영국에서 설립된 서포터즈 다이렉트(Supporters Direct)는 의결기관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안토니아 헤이지만 유럽지부장은 “단기간의 성적 올리기만을 추구하는 관행이 많은 축구팀들을 결정적 위기로 몰아넣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서포터즈 다이렉트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팀 성장을 도모한다”라고 설명했다. 서포터즈 다이렉트는 22개 국가 내 회원들을 두고 있는데, 특히 지나치게 강했던 축구팬들의 견제 역할에 조심스럽게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는 스페인과 독일 내에도 회원들을 두고 있다.

협회지위를 부여받은 독일 축구팀들은 ‘50+1제도’에 따라 운영되는데, 팬들에게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폭스바겐 소유의 볼프스부르크팀과 바이엘사 소유의 레버쿠젠팀만이 이러한 제도에서 예외적이다. 이에 대해, 형평성 논리를 앞세우며, 하노버96팀의 회장은 축구팀을 사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스포츠 중재재판소가 2011년 8월 30일 하노버96팀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독일의 이 같은 특이한 제도도 끝을 보는 듯하다. “이 같은 판결 이후 50+1제도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축구팀들은 이제 브랜드기업들의 단순한 광고용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젠스 바그너 함부르그SV 팬클럽 대변인이 우려를 나타냈다. 광고에 열이 오른 레드불(Red Bull)이 2009년 라즌발 라이프치(RasenBall Leipzig)를 창설하면서 선두로 치고 나섰다. 레드불 상표를 독일어화하는 방식을 통해 브랜드명의 축구팀 이름 도입 금지법을 교묘히 피해갔다.

  회원당 한 표의 평등에 기초한 스페인 명문 클럽들

  점차 확산되는 독일축구의 표준화에 반대하는 함부르크의 또 다른 축구팀은 극단적인 대안 문화에 충실하다. 장크트파울리(FC Sankt Pauli)팀은 펑크 커뮤니티와 홍등가 지역이 집중된 저소득층 지구의 반항적인 정신을 드러낸다. 반인종차별과 반파시즘을 규정한 장크트파울리팀은 2부리그에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집한다. 이들에게 밀레른토르 홈구장의 이름을 스폰서의 명칭으로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물론 홈구장 개축 당시 명사들을 위한 박스 좌석을 설치했지만, 새로운 12,000개의 좌석 중 10,000석이 입석으로 서민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저렴한 좌석은 7유로(약9800원)이다.

스페인의 경우, 1992년 이후 팬들의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했다. 펠리페 곤잘레스의 사회주의 정부는 축구팀들을 스포츠주식회사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협회원 중심 체제를 폐지시켰다. 각자가 축구팀의 자산 일부를 보유하는 협회원들은 축구팀의 공동소유주들로, 선거를 통해 구단지도자들을 지명했었다. 유럽 내에서는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 회원당 한 표의 평등에 기초한 이 제도는 수십 년간 표준모델을 제공했다. FC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틱 빌바오와 아틀레티코 오사수나의 네 팀만이 이러한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법의 제창자들은 공동소유제에 기초한 회원의 막대한 지위가 투자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보았다. 이들은 안정적인 주주들이 회원들을 대체하면서, 축구팀들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주장과는 달랐다. 오히려 최고선수들을 유치하겠다는 일념으로 팀들은 막대한 부채를 떠안았다. 많은 팀들이 퇴보 위기에 처해 있고, 심지어 일부 팀들은 파산 위험에 이르렀다. 세날레스데우모의 대변인 에밀리오 아베혼은 “명예경쟁에만 치중함으로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부채규모는 열 배로 증가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회원 가입비용은 세 배로 뛰었다”라며 가슴 아픈 표정으로 말했다. 세날레스데우모 서포터즈협회는 십 년 전부터 마드리드팀의 주주들에 맞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마드리드팀이 부정한 방법으로 팀을 독점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은 이미 수차례 판결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1987년 협회원들에 의해 회장으로 선출되었던 헤수스 힐은 극단적 자유주의자이면서 외국인 혐오자였으며, 마르벨라의 전직 시장으로 2004년 사망했다. 그는 1991년 9월 아틀레티코팀이 주식회사로 탈바꿈하는 순간 팀을 독점해 버렸다. 공동파트너 엔리케 세레쏘의 조력으로 그는 단 1페세타로 치르지 않고 불법적으로 90%의 주식을 순식간에 차지했다. 법정시효가 만료되면서 그는 감옥행을 면했고, 헤수스 힐의 뒤를 이어 팀의 회장이 된 세레쏘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2월 4일 스페인 최고법원은 변칙적인 자본금 증가를 무효화시켰고, 그 결과 세레쏘와 힐가는 과반수를 잃게 될 수 있다. 아베혼씨가 “그 덕분에 새로운 이사회 선출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희망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비폭력적이고 민주주의적 응원문화의 길이 열릴 것인가?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Olympique de Marseille)의 비화>(플라마리옹, 파리, 2013년)의 저자

번역· 김윤형

 

(1) <L’Equipe>, 파리, 2014년 2월 12일

(2) 브라질 최대 스포츠 일간지 <Lance>, Andrew Warshaw, <2014년 월드컵의 안전과 치안을 보장하겠다는 브라질의 약속을 무색하게 만드는 통계수치>, 2013년 12월 10일, www.insideworldfootball.com

(3) Pierre Godon, <브라질 내 축구팬들 간의 폭력사태가 월드컵과 무관한 이유>, France TV Info, 2013년 12월 11일, www.francetvinfo.fr

(4) 미국 내 야구계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나타났다. Richard A. Keiser, <살롱 스포츠맨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