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서양의 신 지정학

2014-06-03     세르주 알리미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범대서양 거대시장(GMT) 협상은 세계를 변모시키려는 자유주의자들의 결의를 확실히 보여준다. 주주들을 위해 법정을 동원하고, 진보주의의 이름으로 비밀을 만들어내며, 민주주의를 로비스트들 손에 맡긴다. 그들의 창의력은 끝이 없다. 협정 비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GMT의 궁극적 목적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가능성을 모색하며 접촉하고 있는 시점에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목적도 덧붙여져 있다.

 ‘자유무역주의’라는 미국의 독수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유럽의 어린 양떼를 유린하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한다. 이와 같은 비유적 이미지는 유럽의회 선거운동과 맞물리면서 수많은 공공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비유는 놀랍기도 하거니와 정치적으로 미묘한 문제다. 한편으로는, 고용, 환경, 보건 분야에서 보호를 금지하는 새로운 자유무역 법규로 인해 미국에서조차 지방자치단체들이 희생자가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이익을 위협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상대 소송에 열중하는 많은 유럽 기업들-베올리아 같은 프랑스 기업이나 지멘스 같은 독일 기업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미지는 유럽 땅에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유럽 기관들과 정부가 담당하는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범대서양 거대시장(GMT)을 반대하려면, 그것이 설령 미국이라 할지라도 특정 국가를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투쟁의 쟁점은 범위가 더 넓고 더 야심차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자신들이 야기한 경제위기를 보상받기 위해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는 새로운 특혜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런 종류의 전 세계적인 전투는 자본력 사이에 존재하는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오늘날 뒤처져 있는 세계민주주의의 연대의식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협상에서는,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고 우기는 커플들을 경계하는 것이 좋다. 이 원칙은 보호무역주의와 진보주의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민주주의와 국경 개방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 무역정책에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 나폴레옹3세는 전제국가와 자유무역을 결부시켰다.

그런데 이 시기는 미국에서 공화당이 미국노동자들을 걱정한다고 주장하던 시기지만, 사실은 관세 보호를 애걸하던 철강 ‘벼락부자(악덕자본가)’들의 입장을 더 보호하려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다. 1884년 전당대회에서 미국 공화당은 “노예노동에 대한 증오와 모든 인간이 실제로 자유롭고 동등해질 것에 대한 갈망에서 공화당은 탄생했다”고 밝히고 “미국이든 외국이든, 어떤 예속된 형태의 노동이든, 우리의 노동자들을 그런 노동과 경쟁시키려는 발상에 최종적으로 반대한다”(3)고 선언했다. 이 시대에 이미 사람들은 중국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캘리포니아 철도회사들이 보잘 것 없는 월급을 주고 강제노역 수준의 노동을 시키기 위해 고용한 아시아 출신의 수천 명의 토목공들이 문제였다.

클린턴 " 무역개방은 미국을 부유하게 한다"

한 세기 후 미국의 세계적 위상은 변화했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누가 더 저질의 자유무역 세레나데를 잘 부르는지 경쟁하고 있다. 1993년 2월 2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독려하는 기조연설 덕분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NAFTA는 몇 달 후 비준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구촌”이 미국의 실업과 저임금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자고 제안했다. “개방과 무역은 미국을 부유하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혁신해야 한다. 경쟁에 과감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개방과 무역은 우리에게 새로운 고객을 보장해 줄 것이다. 개방과 무역은 세계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며, 원자재와 서비스 소비자이기도 한 우리 생산자들의 번영을 보장해 줄 것이다.”

이 시기부터 다양한 세계무역자유화 협상과정을 통해 평균 관세가 인하되었다. 1947년 45%이던 관세는 1993년 3.7%로 떨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투키디데스부터 아담 스미스까지 학자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무역의 습성은 전쟁의 습성과 반대된다. 서로 도우며 함께 공동외양간을 지은 이웃들이 나중에 그곳을 불지를 염려가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상호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사람들이 맞설 가능성은 더 적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믿는다면, 무역관계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 규칙이 모든 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3월 쿠바에 대한 무역 제재 강화 법안에 서명했다.

클린턴 대통령 연설 10년 후, 파스칼 라미 EU 집행위원-프랑스의 사회주의자로 2005년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되었다-은 그의 분석을 이어갔다. “나는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무역개방은 인류의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역을 개방하면 개방하지 않을 때보다 불행과 분쟁이 적게 발생한다. 무역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무기가 멈춘다. 몽테스키외가 나보다 더 잘 설명했다.” 하지만 18세기의 몽테스키외는 중국 시장이 한 세기 후에 개방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개방도 백과사전파의 신념 덕분이 아니라 함포와 아편전쟁, 그리고 여름 궁전의 약탈에 뒤이은 것이었다. 라미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덜 원기왕성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기질상의 문제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범대서양 거대시장을 옹호하기 위해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자유무역 신조를 이어받았다. 유럽 기업도 마찬가지고 사실상 세계 모든 나라의 기업들이 자유무역을 신봉한다. “협정을 통해 우리의 수출은 10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고, 미국과 유럽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서양 양안의 성장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4) 그의 발언에서는 겨우 언급된 정도였지만, 협정의 지정학적 범위는 성장, 고용, 번영으로 표현된 불확실한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멀리 내다보는 미국은 구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범대서양 거대시장에 기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은 러시아의 통합 전망을 완전히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도 유럽 지도층의 의견은 거의 전적으로 일치한다. 일례로 프랑수아 피용 전 프랑스 총리는 “우리는 유럽 문명에 위험요소가 되는 신흥국가들이 부상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 우리의 분열이란 말인가? 이건 미친 짓이다”(5)라고 평했다. 알랭 라마수르 유럽의회 의원은 범대서양 거대시장이 대서양 동맹국들로 하여금 “공통규정에 합의하고 이후 중국에도 그 규정을 부가할 수 있을 것”(6)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미국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중국은 초대되지 않았는데, 이 협정은 마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도 추격을 두려워하는 미국과 유럽

 범대서양 거대시장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지식인 리처드 로즈크랜스가 하버드대에서 미·중 관계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저서에서 그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대 그룹이 동시에 약화될 경우 아시아의 신흥 열강들과의 서열 격차가 훨씬 좁혀질 것이라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연구, 개발, 소비, 금융 분야에서 서구의 두 축이 연합해 하나가 되지 않는 한, 둘 모두 뒤처지게 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가 이끄는 동양 국가들이 성장과 혁신, 소득 분야에서 서구를 추월하게 될 것이고, 결국 군사력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7)

로즈크랜스의 전체적 설명은 경제학자 로스토우의 유명한 발전단계설(개발도상국의 성장과정을 전통적 사회, 도약을 위한 선행조건기, 도약기, 성숙기, 고도의 대중소비시대라는 5단계 성장단계론으로 주장한 이론-편주) 분석을 연상시킨다. 한 국가가 발전한 후에는, 가장 빠른 생산성 성과(교육 수준, 도시화 등)를 이미 실현했기 때문에 발전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몇 십 년 전에 이미 완숙기에 이른 서구경제의 성장률은 중국이나 인도의 성장률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이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야말로 이들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카드다. 그렇게 되어야 맹렬하지만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신흥국들에게 그들의 게임을 계속 강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외적 위협-지난날에는 소련의 정치적, 이념적 위협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아시아의 경제적, 무역상의 위협-을 부각시킴으로써 착한 양치기(미국)의 지도 아래, 세계의 새로운 질서의 핵심이 곧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 위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신도들을 집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로즈크랜스의 설명대로 “역사에서 열강들 간의 헤게모니 이동은 대체로 중대한 분쟁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더욱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리더십의 신흥 패권열강으로의 이전”이 ‘중국과 서구의 전쟁’으로 진행되지 않게 할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아시아의 핵심 양대 국가인 중국과 인도를 몰락하는 대서양 파트너들과 합류시킬 희망이 없다면,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경쟁심을 이용하고, 일본의 도움을 얻어 두 나라를 견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을 자신들의 ‘동양의 종착역’으로 삼을 정도로 중국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그런 이유로 서구 진영과 결속하는 나라다.

이러한 원대한 지정학적 그림은 문화,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경우에 따라서 선택되는 몇몇 비유는 그 발상이 덜 고상한 것임을 보여준다. 로즈크랜스는 “주어진 상품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생산자는 자신의 공급량을 늘리고 시장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프록터앤드갬블(P&G)이 질레트를 합병했던 것처럼 해외 회사와 합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국가도 마찬가지 선동에 직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범대서양 거대시장 전투가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어떤 국민도 자기 나라와 영토를 소비재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등이 있다.

 

(1) “보호무역주의와 그 적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레 리엥 키 리베르, 파리, 2012년

(2) 하워드 진, “‘벼락부자’들의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9월호

(3) 존 게링, <미국의 정당 이데올로기, 1828~1996년>, 캠브리지대학출판부, 2001년, p.59

(4) 프랑수아 올랑드 공동기자회견, 백악관, 워싱턴, 2014년 2월 12일

(5) RTL, 2013년 5월 14일

(6) France Inter, 2014년 5월 15일

(7) 리처드 로즈크랜스, <서구의 재기 : 범대서양동맹은 어떻게 전쟁을 방지하고 미국과 유럽을 재건하는가>, 예일대학출판부, 뉴헤븐, 2013년. 이하 인용문 역시 이 문헌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