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계층의 기권율이 높을 때, 반사이익은 누가?

2014-06-03     셀린 브라코니에, 장 이브 도르마젱

 

지난 15년 전부터 유럽의회 선거에는 소수의 유권자만이 참여하고 있다. 기권율 증가는 프랑스 민주생활의 주요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여당 정치인에게 실망한 기존의 좌파 유권자 사이에서 기권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14년 3월 23일과 30일, 양일에 걸쳐 실시된 프랑스 지방선거(시의회 선거-역주)가 끝나자, 극우파 부상과 관련한 분석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지역민이 국민전선(FN)에 거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총평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봇물을 이루는 수많은 성명과 기사, TV 보도와는 사뭇 반대되는 분석도 있다. 이번 선거, 아니 더 나아가 지난 30년 간 실시된 모든 선거에 중요한 변수가 되어온 요인, 즉 기록적인 기권율과 관련한 분석이다. 가령 높은 기권율을 감안하는 경우 FN 부상에 관한 보도 열풍에는 사실상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FN이 지난 2008년 지방선거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FN이 엄청난 압승을 거뒀다고 보기는 힘들다. FN 후보가 출마한 인구 1만 명 이상 규모 도시 415곳에서 극우정당 FN이 획득한 유효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마린 르펜 후보가 획득한 유효표보다도 더 적었다. 더욱이 총유권자 수를 감안한다면, 이 도시들에서 나타난 ‘FN 돌풍’에 대해선 좀 더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사실상 2012년 대선전 1차 투표에서는 르펜 후보가 총유권자의 12%에 해당하는 표를 얻었다면 이번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FN이 올린 득표율은 불과 8%에 그쳤기 때문이다.

‘푸른 물결’(파란색은 우파의 상징색-역주) 현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우파가 인구 1만 명 이상 규모의 코뮌(지방행정 기초단위, 시·읍·면을 포괄-역주) 162곳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2014년 이 도시들에서 우파 정당들(심지어 프랑스 민주운동(Modem)을 포함하는 경우에도)이 결집한 유권자 수는 2008년 선거 때보다 더 적었다는 사실이다.(1) 이런 역설적인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기권표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우파는 다소 입지가 약화된 상황에서도 좌파 성향의 유권자가 대거 선거에 불참하면서 2014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30여 년 전부터 선거마다 기권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런 철칙을 벗어난 유일한 예가 대통령 선거뿐이다. 1983년 지방선거 때 2차 투표에 불참한 비율이 총유권자의 20.3%에 달했다면 지난 3월 선거에서는 기권율이 무려 37.8%까지 치솟았다.

한편 여기에 선거인명부 미등록자(투표 가능 연령자의 7%)까지 포함한다면, 유럽의회·지방의회·도의회·국회의원·시의회 선거의 투표 불참 비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프랑스 선거의 주요 경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이런 ‘참여의 위기’는 특히 도시자치단체(도시 코뮌) 차원에서 훨씬 더 도드라진다. 이제 도시 자치단체에서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령 2014년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1만 명 이상 규모 도시 980곳의 투표 참여율은 56.5%에 그쳤다. 심지어 10만 명 이상 규모 도시들에서 투표율은 53.8%까지 추락했다.

  기권이 실질적으로 선거 결과를 좌우

이런 현상이 더욱 더 심각하게 비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투표에 참여하는 소수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체 유권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권은 사실상 실질적인 선거 결과를 뒤바꿔 놓고 있다.

기권의 양상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몇 가지 결정적인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먼저 연령을 꼽을 수 있다(특히 지역 단위 선거들에서 도드라짐). 청년층과 달리 노년층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인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이 분석한 연령별 투표율(2)만 봐도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2008년 지방선거 때 18~24세 연령층 가운데 투표장을 찾은 이들의 비율은 단 41.2%에 불과했던 반면, 50~64세 연령층 가운데 참정권을 행사한 비율은 무려 80.2%에 달했다. 요컨대 노년층이 청년층에 비해 거의 2배나 많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한편 기권은 비교적 생활적인 면이나 직업적인 차원에서 불안전성에 덜 시달리는 사람들의 의사를 평균치보다 더 많이 반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2008년 공무원·자영업자의 투표율은 임시직·실업자의 투표율과 비교해 무려 23%p의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사회계급·세대별 차이는 지역별 투표율 격차로까지 이어진다. 주로 청년층과 서민층 거주자가 주류를 이루는 고층 아파트 단지 및 임대주택 단지 지구에서는 투표에 불참(선거인명부 미등록과 기권)하는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생드니 동부에 위치한 12동 건물로 이뤄진 코스모노트 단지에서는 오래전부터 투표 불참자가 다수를 이루었다. 심지어 최근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불참자 비율이 주민의 무려 3분의 2까지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나이가 젊고 학력 수준이 낮으며 평균보다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는 코스모노트 단지 주민들은 투표를 삶의 조건을 향상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행위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 같은 투표에 대한 대대적인 무관심은 그 어떤 요인에 의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당 지부와 시민단체, 심지어 해당 지구 내 거주하는 지역의원의 존재마저도 대세를 뒤집지는 못한다. 이처럼 코스모노트 단지는 지난 20년 동안 정치 불모지가 되어 왔다. 승리가 유력시되는 두 좌파 정당이 선거 수일 전 가가호호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해봤지만 이런 고질적인 경향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4년 1차 투표에서 가장 투표율이 저조한 지역들을 살펴보면, 코스모노트 지구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가령 이 지역들은 대개 고층 아파트 단지이며, 이민자나 불안정한 삶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결국 지역 내 사회·인종적 분리 현상이 선거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빌리에르벨(기권율 62.2%), 보엉블랭(62.1%), 에브리(61.3%), 스텡(61%), 클리쉬수부아(60.2%), 보비니(59.4%)(파리 교외지역 5곳과 리용 교외지역 1곳)는 프랑스에서 가장 기권율이 높은 10대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오래전부터 공산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보비니가 이번 선거에서 프랑스민주독립연합(UDI)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가 전체 유권자의 26.4%, 지역 거주민의 12.3%에 의해서만 이뤄진 승리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컨대 이 같은 선거 결과가 빚어진 것은 첫째, 투표권이 없는 이민자나 청년층 비중(30세 이하 주민이 전체 주민의 약 45%)이 높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주민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환멸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제약이 심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선거제도 역시 투표율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번거로운 선거인명부 등록 절차는 유권자가 스스로 참정권을 포기하는 주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선거인명부 등록이 자동화되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특별한 절차(18세 젊은이만 예외)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거주지를 옮기거나 선거를 실시하기 일 년 전에는 반드시 선거인명부 등록 절차를 새로 밟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절차는 거주지를 자주 옮겨 다니는 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선거인명부 등록 오류’를 초래하기도 한다.

 

 정권교체 메커니즘이 기권의 원인

 현재 본지가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과 함께 실시 중인 한 조사에 따르면, 특히 젊은이를 비롯한 유권자 6백만 명이 선거지와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툴루즈나 몽펠리에와 같은 대규모 대학 도시들에서는 18~24세 연령층이 해당 지역 인구의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유권자 대비 비율은 단 7%에 불과했다. 결국 거주지 인근에서 투표를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선거에 불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으로 선거 참여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기권율이 매번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이동성이 점차 높아지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현 제도를 굳이 존속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기권율이 높아질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정당은 어디일까? 사실 이를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먼저 관련 설문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사대상자들은 흔히 실제보다 부풀려 답을 하려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기권율이 40%대에 육박했던 선거에서도, 응답자의 무려 80%가 “반드시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실제 투표를 하는 사람은 관련 설문조사에 더 우호적이어서 표본 집단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1970년대 이후 나타난 유권자들의 사회적 지형 변화 역시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실 좌파가 여전히 노동자나 서민층의 목소리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이 계층의 기권율이 높은 경우 더 많은 타격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파들의 지지기반을 이루던 유권자 집단은 오늘날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세분화되었다. 가령 오늘날 우파와 FN은 서민층 가운데 일부 계층의 지지를 상당 수준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좌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회당(PS) 역시 투표 참여에 적극적인 50~64세 연령층은 물론, 간부직이나 고학력자층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설문조사에서 유권자층을 분류하는 방식대로라면, FN이 계층별 기권 양태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평균 수준에 비해 연령과 생활수준, 학력수준이 더 낮은 FN 지지자들은 기권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념과 달리 FN은 대선전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유권자의 참여가 높았던 선거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요컨대 기권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정치적 맥락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최근 지방선거에서는 좌파에 불리한 방향으로 ‘양극화된 기권 현상’이 높게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 2차 투표의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전체 주민의 60% 이상이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인구 1만 명 이상 규모의 도시들의 기권율이 주민 다수가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지했던 도시들의 기권율보다 무려 5%p가 더 높았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격차가 PS의 참패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한편 1만 명 이상 규모의 도시들에서 이번 1차 투표와 2차 투표 사이에 투표율이 다소 증가한 현상 역시 우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가령 두 선거 사이에 우파의 유권자는 14%가 증가한 반면, 좌파 유권자 증가는 단 3.5%에 그쳤던 것이다. 이제 기권율 증가는 선거전의 양상을 뒤바꾸고 있다. 그동안은 오랫동안 ‘온건한’, ‘중도 성향’의 ‘부동표’를 잡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는 같은 정파의 유권자를 얼마나 결집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정치지형을 좌우하는 두 요인, 즉 무조건적인 좌·우파 간 정권 교체 현상과 지속적인 기권율 증가 현상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상 2007년을 제외한다면, 1978년 이후 임기 말에 접어든 집권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총리의 소속당은 언제나 어김없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이런 정권교체 메커니즘이야말로 기권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정권교체 메커니즘은 기존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국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투표장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또한 지난 30년 동안 임기 말의 후보가 선거에서 어김없이 패배한 것은 사실상 이전에 그들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기권을 선택한 탓이었다.

 글·셀린 브라코니에, 장 이브 도르마젱 Céline Braconnier, Jean-Yves Dormagen

생제르맹 엉레대학교 정치연구소 교수, 몽펠리에1대학교 정치학 교수. <기권의 민주주의>(갈리마르 출판사, 파리, 2014년)(초판은 2007년 발행)를 공동 집필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2014년 1차 투표 득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25.1%인 반면, 2008년 1차 투표의 득표율은 26.8%에 달했다.

(2) 투표율 조사,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 2007~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