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심화가 불러온 '피케티 열풍'

혁신적인 실증 분석에 불구, 신자유주의적 비판 미흡

2014-06-03     유승경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은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장기적인 변화를 분석하여 지난 세기의 경험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기 위한 지난 15년간의 연구 작업의 산물이다. 이 책은 부의 분배에 관한 혁신적이고 의미 있는 실증분석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경제사 연구나 경제체제의 비교 연구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필수적인 참고문헌으로 남을 대작이다. 무엇보다 불평등 문제에 관한 기존의 경제학적 논쟁을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이론적 논쟁, 실천적 운동을 촉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깊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3부에서는 주로 프랑스, 영국, 미국에 대한 통계를 사용하여 부의 불평등의 측면들, 즉 자본-소득 비율, 소득의 불평등, 자본 소유의 불평등 등이 장기에 걸쳐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의 특별한 기여는 상속받은 유산을 불평등의 주요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4부에서는 부의 불평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논쟁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1970년대 이후 부와 소득 불평등 심화  

이 책에서 부(자산)는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모든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으로 정의되며 이는 곧 자본을 의미한다. 즉, 한 개인의 부(富), 즉 자본은 그가 가진 동산과 부동산의 총합에서 부채를 공제한 것이다(p. 프랑스판 86).(1)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의 동학 내에는 완화와 심화를 번갈아 야기하는 강한 메커니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요인에 주목한다. 그가 불평등 심화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들고 있는 것은 r>g의 경향이다. 여기서 r은 자본의 수익률(이윤, 배당, 이자, 임대료 등)을 말하며 g는 경제성장률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수익률(r)은 경향적으로 성장률(g)보다 높았다. 지난 1세기 반 동안 선진국에서 자본수익률(세후)은 연간 약 4~5%였지만 성장률은 연간 약 1~2%에 불과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자본이 국민소득 보다 빠르게 늘어난다.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으면 전체 국민소득에서 자본에게 소득으로 돌아가는 몫이 커지게 된다.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두 번째의 근본적 경향은 저축률/소득증가율(=s/g)의 상승이다. 성장속도 g가 느린 경제에서 저축률이 높으면 경제 성장에 비해 자본축적이 대규모로 이뤄진다. 즉, 불황에 빠진 사회에서는 과거의 경제활동의 산물인 자본이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갖게 되어 부의 분배에서 상속된 유산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p.262~263).

부의 불평등 심화 경향은 자본-소득비율(=K/Y)의 증가를 통해서 실제로 강화되고 있다. 1970년대 초 선진국에서 총자본의 가치는 2~3.5년 치의 국민소득에 해당했는데(=200~350%), 1970년대 이후 자본이 대폭 증가하여 40년이 지난 2010년 초에는 총자산이 4~7년 치의 국민소득에 맞먹게 되었다(=400~700%)(p.273). 따라서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는 자본 소유자에게로 부의 집중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어 현대 자본주의가 자본-소득 비율이 600~700%에 이르는 18세기와 19세기의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세습자본사회(société patrimoniale)의 도래를 우려하게 만드는 경향은 여러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소득의 측면에서도 분배는 극단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우선, 노동소득을 보면 2010년 기준으로 상위 1%(10%)가 전체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유럽의 경우 7% (25%)이며, 미국은 12%(35%)에 이른다. 하위 50%의 비중은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30%, 25%에 불과하다(p. 390). 여기에 다른 형태의 소득(이윤, 배당, 이자 임대료 등)을 합치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더욱 악화된다.

자본 소유 면에서 상위 1%는 자본가계급이며 상위 10%는 자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광의의 자본가계급이라 할 수 있다. 2013년의 경우 상위 10%가 자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총자본의 60%, 영국과 미국은 70%씩을 차지하고 있다. 전지구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013년 세계인구의 100만분의 1인, 상위 0.1%는 세계총자본의 20%를, 1%는 50%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가 소유한 자본은 5%도 되지 않는다(p. 698).

  부의 불평등으로 현대 자본주의 18~19세기형으로 회귀 우려

피케티는 현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지난 200년 간 자본의 불평등 정도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고찰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혁명 전야에는 상위 1%(10%)가 총자본의 60%(90%)를 차지했다. 그는 이를 두고 당시 발간된 팜플렛인 <3계급은 누구인가?>는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우리는 99%이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P. 544).

  유럽의 경우 1810년 상위 10%가 가진 자본은 전체의 80%를 넘었고, 19세기 내내 증가하여 1910년에 최고치인 90%에 도달했다. 제1차 대전(1914~18)이 끝난 뒤 인민의 투쟁에 의해 강제된 부르주아지의 양보에 따라 비중은 감소하기 시작하여 2차 대전 이후에도 지속되다가 1975년을 기점으로 추세가 반전되었다. 2010년 그 비중은 65%에 달했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여기서 피케티는 하나의 결론을 추론하는데, 부의 분배는 사회적 투쟁과 계급 간 역관계에 의해 변한다는 것이다. 1910년부터 1970년까지 최상위층의 부가 감소한 것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볼세비키 혁명, 대공황 등의 충격과 그에 따른 자본에 대한 정부의 자본통제 정책 때문이다. 1950~60년대에 이 비중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1979~80년의 앵글로색슨의 보수혁명, 소련의 붕괴, 1990~2000년대의 금융의 세계화와 규제완화 등으로 자본의 집중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2010년대 초부터 1913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사적자본의 번영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p. 76) 1910년 이후 전쟁과 공황에 의해 인민의 불만과 저항이 증가하여, 정부가 인민의 요구에 양보하는 여러 조치를 취해졌지만, 1970~80년대에 인민계급에 반대하여 자본가 계급이 공격을 시작하였다는 설명이다.

피케티는 계급투쟁의 영향이 조세제도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프랑스, 독일, 미국의 경우 1900년대에는 최고 소득세율이 2~8%에 불과했으나 1차 대전을 거치면서 40%~79%까지 인상되었다(p. 805~806). 특히 미국의 경우 1942년 88%, 1944년에 94%까지 올랐는데 이 세율이 196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었다. 상속세율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1937~39년에 70%까지 올랐다(p. 811~815). 최상위층이 부의 60~7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상위 10%에 대한 높은 상속세율은 불평등의 완화에 결정적이었다(p.707).

그러나 1970년대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의 경우 닉슨 행정부부터 최고 소득세율은 낮아졌는데, 레이건이 당선되자 60%까지 내려갔고, 조지 W. 부시가 집권한 후 35%까지 내려갔다. 유럽의 경우도 유사하다(P. 819). 그리고 최고세율의 인하는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최고경영자의 임금이 크게 인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로 소득과 자산부문에서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p. 824~826).

  글로벌 자본세 구상, 정치적 힘으로 실현 가능

피케티는 21세기에 등장한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를 규율하기 위해 복지국가의 건설과 누진소득세와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을 제안한다. 자본주의에는 자본수익률이 경향적으로 경제성장률 보다 높고, 1980년대 이후 소득자체의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자본세와 누진 소득세를 도입하여 국가에 의한 복지공여를 확대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두 형태의 세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그도 스스로 글로벌 자본세가 다소 유토피아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 피케티는 이러한 제안들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책의 전체 맥락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경제결정주의를 비판하면서 조세정책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적정한 세율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는 20세기에 최고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은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에 따라 0%에서 90%까지 변동했다는 점을 강조한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사회적 상황변화에 따라 당장은 적용 불가능해 보이는 제도도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없는 점은 아쉬워

피케티는 '21세기의 자본'을 통해 장기에 걸친 실증분석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지만 아직 아쉬운 부분, 향후 더욱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 우선 피케티는 역사적, 지정학적,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한 노력은 부족하다. 자본/소득비율이나 자본과 소득의 불평등의 변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수치의 비교에 한정하였을 뿐 그러한 변화를 야기한 근본적 메커니즘의 분석에는 이르지 못했다. 경제의 특정지표가 절대적인 수준이 같더라도 그러한 현상을 낳는 경제체제의 논리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소득비율이 18~19세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자본주의와 200년 전의 자본주의는 작동원리가 엄연히 다르다.

특히 그는 1970년대 이후 자본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로서 신자유주의의 득세,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 등을 들고 있지만, 해결책은 전적으로 조세제도의 재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논쟁거리이다. 조세를 통해 신자유주의와 단절하자고 주장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자체에는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무역의 자유화로 인해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세계적 차원의 무한경쟁에 빠져들면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는 하락했으며,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의 세계화로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세계경제의 불안정은 심화되었다. 그런데 피케티는 '보호주의적, 민족주의적 퇴행'을 막아냄으로써 자본주의와 사적 이익에 대한 통제를 재강화할 필요성을 주장한다(p. 16).

그가 세습 자본주의의 교정 수단으로 조세제도만을 언급하는 이유도 자유주의체제의 핵심인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를 주어진 질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이는 피케티가 현재 유로존 내의 공동조세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피케티는 유럽의 통합을 위해 금융과 무역의 자유화를 수용한 유럽사회당의 다수파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도 사실상 위기에 처한 유로존을 회생시키고자 하는 유럽사회당의 입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로존의 지지자들은 유럽통합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극우파가 크게 득세하는 결과를 낳았다. 피케티는 유로존을 지지하고 있지만 유로존 유지를 위한 긴축정책으로 유럽은 성장이 멈추었고 실업률은 높아만 가고 있다. 혹시 신자유주의적 유로존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만으로 인해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가 프랑스 보다 미국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글·유승경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제도주의

경제학자인 자크 사피르 교수의 지도아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과 우리금융

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을 거쳐, 현재 지식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1) 이 책에서 부, 자산, 자본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판에서는 ‘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richesse(일반적인 ‘부’)’, ‘patrimoine(유산을 포함한 축적된 자산)’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지만 영어판에서는 ‘wealth’로 통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