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로비스트들에만 우호적인 EU 집행위의 비밀협상

2014-06-03     마르탱 피죵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TTIP)을 둘러싼 협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불투명성이다. 드휴흐트 유럽연합(EU) 통상부 집행위원이 “통상 관련 협상에 비밀은 없다”(1)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협상대표는 2013년 7월 5일자 서신에서 미국의 협상대표인 대니얼 멀라니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협상 원본, 양측의 제안, 첨부된 설명 자료, 양측이 교환한 서신, 협상과 관련해 양측이 주고받은 기타 정보를 포함한 TTIP 협상 관련 모든 문서는 기밀 유지될 것이다.”(2)

이 같은 비밀주의 전략은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감춰진 뒷거래가 필연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비밀주의로 인해 국제 협상이 실패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드라큘라 효과’(3)라고 불리는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1998년 다자간투자협정(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 MAI)이 결실을 맺지 못했고, 이어 2012년 유럽의회는 위조품의 거래 방지에 관한 협정(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 ACTA)을 거부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EU 집행위 통상총국(DG Trade)은 국제통상협상테이블을 초록색 펠트모직이 깔린 카드게임 테이블로 여긴다. EU 집행위 통상총국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통상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밀 유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카드게임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내 패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4)고 한다.

유럽의회는 미국과 EU 간 교역의 상세한 내역에 제한적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다. 협상단은 유럽의회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국제통상위원회 내 정치적 그룹별로 단 한 명의 EU 의원에게만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를 받은 의원들은 이 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동료들이나 외부 전문가에게 검토 용도로 이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EU 회원국들에 제공되는 정보는 유럽의회 의원들이 받는 정보와 동일하다. 현재 진행 중인 캐나다와 EU 간의 무역협정(Canada-EU Trade Agreement, CETA) 관련 협상에 있어서도 각국 정부는 5년 전부터 진행 중인 협상의 주요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EU 집행위가 원본 대신 요약본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는 회원국 정부가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 틀 안에서 TTIP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집행위의 권한, 임무가 정해지면 회원국들이 추후 협상의 추이에 따라 그 권한과 임무를 수정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심지어 그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말이다. 이는 다른 회원국들과의 연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는 동안 집행위는 회원국들이 이견을 표명할 때 그들의 반대를 교묘히 피하기 위해 어떤 명목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게다가 TTIP와 관련해 EU 집행위 통상총국이 전달한 자료는 EU가 내놓은 제안뿐이다. 미국은 EU 회원국이나 유럽의회가 미국의 ‘협상 입장’을 검토, 분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복사나 필기가 불가능한 특별심의실에서 종이로 된 자료를 단순히 조회하는 것만을 허용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협상 문안밖에 볼 수 없는데, 이는 이미 진전된 협상의 초안일 뿐, 각 진영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사전 자료가 아니다. 현재 모든 조회를 단념하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미국, 협상 입장 검토·분석을 원천 금지

 집행위에 따르면, 이렇게 비밀을 유지하면 ‘EU의 이익을 보호’하며 ‘신뢰 분위기를 보장’해 협상가들이 ‘가능한 한 최선의 협약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협업한다’(5)고 했다. 그렇지만 비밀 협상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무역기구(WTO)조차 국가별 분담 내역과 협상 원본을 공개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익명의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끼리 비밀리에 논의하는 것보다는 투표로 선출된 각국의 대표들이 공개적으로 중요한 쟁점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일까? EU 집행위는 논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힘의 관계를 ‘제어하기’ 위해 완전하고 상호적인 협상의 투명성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일까?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이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이 밝혀지면서 유럽 국가정상 간의 통화를 비롯, 거의 모든 통화를 감청할 수 있는 미국의 사이버 감시 시스템의 위력이 확인되었다. 여타 협상 과정에서의 정보 유출 사례를 통해 EU 집행위 통상총국이 평가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부 옵서버, 특히 해당 분야 전문 대학교수가 협상 내역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했고, 이를 통해서만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협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바로 다국적 기업의 로비스트들. 이들은 집행위가 조직한 TTIP에 관한 공개자문위원단의 대다수를 구성하며 특혜를 누린다. 비교적 정보를 잘 제공받은 노조 대표는 자문 활동에 대해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받지만,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로비스트는 이들 회사를 위한 세부 논의를 위해 회의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유럽의 살충제 회사의 로비스트는 협상 문안 제출 마감일 이전에 연락을 받아 미국의 로비스트와 공동 작업을 하도록 요청받았다. 미국에서는 또한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협상에의 접근권이 제한된 일반 대중이나 미디어와는 달리, 로비스트들은 보다 광범위하게 협상에 접근할 수 있다.(6)

협상 준비 단계부터 EU집행위가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로비스트들에게 더 우호적이었던 측면이 있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EU 집행위 통상총국이 조직한 130회의 협상 준비 회의(7) 가운데 119건이 대기업과 로비스트들이 원하는 바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EU의 행정 문서에 대한 접근에 관한 법령에 따라 이 같은 정보가 공개되고 수십여 개의 회의록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 회의록들은 광범위하게, 때로는 완전한 검열을 거쳤다. 집행위는 일부 내용이 EU의 협상 입장에 관한 것이라며 투명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집행위는 기업들에게는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민감한 사안들의 공개를 꺼리고 있다.

TTIP 협상은 특히 기존의 규제와 추후에 도입될 규제간의 ‘일치’를 목표로 한다. 향후 지금보다 더 잘 다루기 위해 가장 민감한 사안을 협약에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이 원칙은 산업계 최고 경영진의 압력을 받았다. EU 집행위 통상총국이 뉴욕타임즈에 실수로 잘못 보낸 내부 문서(8)에 나와 있듯이 말이다.(9) 유럽 기업 경영자를 대표하는 비지니스 유럽(Business Europe) 협회는 미국 상공회의소와 더불어 ‘다방면으로 그리고 부문별로 규제 협력을 이끌기 위해 새로운 도구와 관할 프로세스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행 규제와 향후에 취해질 규제 조치 간의 불일치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용자 측이 앞서 말한 ‘프로세스’에 참여할 거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3년 12월에 공개된 EU의 또 다른 문서를 보면 이 같은 제안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제안이 협상 프로그램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드휴흐트 위원은 2013년 10월 TTIP가 ‘규제 협력 위원회’(10) 설립을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11) ‘관련 당사자들의 적절한 참여에 의해 제공되는’ 평가에 기초한 ‘규제 일치’ 장려가 그 목적으로, 주로 기업이 희망하고 요구하는 바가 아닐까.

글·마르탱 피죵

Corporate Europe Observatory(CEO)의 연구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 산업 관측소는 압력단체 및 압력단체가 유럽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The Guardian, 런던, 2013년 12월 18일

(2) DG Trade 사이트 : http://trade.ec.europa.eu

(3)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영화화할 때 전통적으로 드라큘라는 햇빛을 못 견뎌하는 뱀파이어로 묘사된다.

(4) DG Trade 사이트에 있는 TTIP에 관한 ‘흔한 질문’에 대한 답변

(5) Ibid.

(6) <This Time, Get Global Trade Right>, 뉴욕타임즈 사설, 2014년 4월 19일

(7) www.asktheeu.org 사이트가 공개한 리스트

(8) 브뤼셀에 위치한 Corporate europe observatory, <TTIP documents released by the european commission>, 2013년 10월 9일

(9) Danny Hakim, <European officials consulted business leaders on trade pact>, 뉴욕타임즈, 2013년 10월 8일

(10) Corporate europe observatory, <Regulation – none of our business>, 2013년 12월 16일

(11) 2013년 10월 10일 프라하에서의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