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주의, 러시아판 '문명의 충격'

2014-06-03     장-마리 쇼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권력의 수직적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 민족주의 움직임과 보수주의 움직임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보수주의의 다양한 흐름 속에 유라시아주의가 새롭게 태어났고 알렉산드르 두긴은 이를 주도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러한 지적 시도의 목표는 이미 몰락한 서구적 현대성과 차별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전통 수호를 통해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문명 블록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잊었겠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2015년 1월 출범을 목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추진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둘러싼 경제전략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협력협정 체결을 위해 진행하던 협상을 중단하자,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력을 포기하고 대신 EEU라는 강력한 지역통합체 출범의 첫 단계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시가 추진하는 경제공동구역 창설에 동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러시아는 지역 강대국 지휘를 회복하기 위해 옛 소련 주요 국가들과 관계 증진에 힘쓰고 있고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차별화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다양한 민족주의 이념들이 이러한 활동에 자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이념은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52세)이 이론화한 ‘유라시아주의’이다.

러시아 세력을 떨치는 데에 이용되는 유라시아주의는 사실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순되는 현실과 발현을 아우르기도 하는 이 이념은 1917년 혁명 직후 백인 이민자 후손들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역사학자 마를렌 라뤼엘에 따르면 이는 ‘유럽을 거부하는 개인적 경험’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유럽에 대한 거부는 이후 볼셰비즘 활동(1)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왕정주의 및 서구 입헌주의와 결별하는 움직임 가운데 점차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행보 속에 동양적 특색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로만 야콥슨 등 프라하 학파(1928~1939) 언어학자들은 러시아의 아시아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핀·우그리아계, 투르크·타타르계 민족, 그리고 투르크·몽골계 골든 호르드(Golden Horde, 킵차크 칸국)와 교류하면서 형성된 러시아의 복합적인 민족 기원을 강조했다. 1930~40년대를 지나면서 이민족 출신 유라시아인들은 소련 진영을 택했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초기 유라시아주의는 막을 내렸다.

유라시아주의 연구를 계승한 건 시인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민족학자 레프 구밀료프(1912~1992)였다. 투르크 유목문명(투란)을 연구한 그는 슬라브-투르크 운명공동체의 개념을 선보였다. 소련 치하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던 그의 연구물은 1990~2000년대 모스크바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카자흐스탄의 새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유라시아주의가 푸틴의 주장 및 행동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르 두긴을 통해 이론이 소개된 이후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1992년 작가 에두아르드 리모노프(2)가 이른바 ‘갈색 공산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민족볼셰비키당을 창당한 것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적진과의 연대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이념적 재정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1년 이후 소련의 종말을 목도한 이들에게는 애국심이 제1의 대체이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초자유주의까지 수용한 건 아니다.

애국심을 전파하는 주요 매개체는 러시아연방 공산당의 조직인 애국국민전선이다. 이 조직은 10월 혁명을 기리는 동시에 공산주의자와 차르주의자의 화합을 추구하였고, 마르크시즘을 따르는 동시에 정교회와 가까워지려 애썼다. 또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권위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주장했으며, 2012년 반(反)푸틴 시위에 동참하면서도 그 속의 친(親)서구적 경향은 배격했다. 이처럼 상반된 모습들을 내포하고 있기는 민족볼셰비키당도 마찬가지다.

리모노프는 아웃사이더이자 신(新)에로문학의 선구자이며, 그 어떤 형태의 보수주의와도 가깝지 않으며 이른바 ‘메탈리스티(metallisty)’라 불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록음악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푸틴 정권 타도를 목표로 ‘또 다른 러시아’를 창설하며 야권 민주주의자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족볼셰비키당은 결국 2007년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두긴의 ‘제4의 정치이론’

‘리모노프 없는 민족 볼셰이즘’의 주창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은 2001년 러시아 정교, 이슬람교, 유대교 인사들이 참여한 유라시아 운동을 창설했다. 그가 2012년 발표한 저서 ‘제4의 정치이론’은 그의 세계관과 목표를 명확히 보여주었다.(3) 그에 따르면 자신의 정치이론보다 앞서 등장한 세 개의 이론 가운데 두 개, 즉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실패했고 남은 하나는 자유주의이다. 두긴은 “제 아무리 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쳐도 그것이 역사의 끝, 또는 이데올로기의 끝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선보이는 고유한 개념이 바로 ‘적극적 보수주의’이다.

논쟁적 저술가인 알랭 소랄(4)이 서문을 쓴 이 책에서 두긴은 르네 게농의 사상처럼 합리성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배격하며(그는 정신세계가 엘리트를 만든다고 본다) 자유주의를 경멸하고 진보를 거부하며 강한 국가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철학자 칼 슈미트의 사상이 깔려있다. 저자는 전통적 대결구도를 그대로 계승하되 이를 “해상세력(대서양주의)과 유라시아 지상세력 간에 벌어지는 문명 전쟁”이라고 새롭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이 전쟁의 중심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서구 모델의 보편성 주장이나 이른바 외생적 현대화가 노예제도,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의 구실로 작용한다”고 비판했다. 두긴은 보수주의적 혁명을 위해서는 이를 대신하여 ‘전통’(종교, 위계질서, 가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기 신유라시아주의 주창자 가운데 한 명인 알렉산드르 파나린(1940~2003)은 ‘이웃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적 다윈주의’를 비판하고 “우리는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회적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즉,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대다수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한다”(5)고 덧붙였다.

2013년 알렉산드르 두긴은 프랑스의 신(新)우파 사상가 알랭 드 브누아(6)와의 인터뷰를 모아 ‘유라시아의 부름’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표했다. 두 사람의 첫 토론은 1992년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는 지정학자 로베르 스퇴케르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러시아연방 공산당 당수 게나디 주가노프와 그의 동지이자 시사지 <덴>의 편집장인 알렉산드르 프로카노프도 함께 했다. 이에 앞서 <덴>은 나치 친위대 벨기에 왈롱 사단장을 지낸 뒤 1945년 스페인으로 망명한 레옹 드그렐과 가진 인터뷰를 게재하면서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 바 있다. 러시아는 이처럼 해로운 혼돈 속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라시아주의는 인종적이며 정체성을 중시하고 반(反)유대적이며 러시아 중심적인 민족주의 흐름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 사조는 1917년 혁명을 유대인들과 기타 이민족들이 일으켰다고 보며, 그 지지자들은 소련이 러시아 민족 기관들의 설립을 막은 반면 비(非)러시아계 공화국들은 자기 민족 고유의 기관들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 러시아연방도 러시아 시민과 러시아 민족은 엄연히 다름을 간과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살인도 불사하며 외국인 추방에 앞장서고 있는 극우파가 2005년부터 매년 11월 4일 주최하는 ‘러시아 행진’의 구호는 바로 ‘러시아는 러시아인의 것’이다.

2006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브뤼셀본부 러시아 대표를 지낸 바 있는 로디나(‘조국’을 의미) 당수 드미트리 로고진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러시아인들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즉, 자기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러시아의 인종주의는 마이단 광장 시위의 결과 들어선 우크라이나 정부의 신(新)나치주의 지지자들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나치 협력세력과 무장 친위대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스보보다당과 갈리치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여러 민족주의 조직들은 매년 4월 28일에 나치 무장 친위대 갈리치아 사단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한다.(7)

초대륙적 결속을 주장하는 신유라시아주의

이와는 달리 신유라시아주의는 메시아적이고 개방적이기를 추구한다. 유라시아 공간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가운데 ‘전통’을 통해 초대륙적 결속을 다질 것을 주장한다. 즉 ‘대유럽’을 미국의 품에서 해방시켜 축제에 동참시키고자 한다. 두긴은 거추장스러운 친분 관계는 과감히 끊고 푸틴 시대가 요구하는 이념적 필요에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절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구현하는 국가적 신(新)보수주의는 인종적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동시에 ‘애국주의’를 공산주의의 영향으로부터 탈피시키고자 한다.(8) 신유라시아주의는 이러한 정반합의 기반이 된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가족, 성적 미풍양속, 기독교 윤리와 같은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러한 태도는 유라시아주의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두긴이 푸틴 정권의 방향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력은 조심스럽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두긴은 자신이 정계 지도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민족볼셰비키당과 신유라시아주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베라 니콜스키(9)는 “두긴이 보여주는 이런 활동상은 비단 합리적 근거가 결여된 환상만은 아니다. 그가 실제로 집권층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니콜스키는 통합러시아당 소속의 대통령 측근 가운데 두긴의 추종자들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도 했다. 애국적 성향의 인기 언론인 미하일 레온티에프, 정치학자 세르게이 마르코프(2007년 러시아 의회 의원으로 선출), 통합러시아당의 이념문제 담당인 이반 드미도프 등이 그들이다. 두긴은 푸틴이 2000년 처음 크렘린궁에 입성했을 때부터 그를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두긴은 푸틴의 노선을 옹호하는 한편 ‘국민’과 가까워지려는 대통령의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국민’은 결국 두긴 자신을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유라시아 대(大)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는 현재 태동 중인 지역경제연합을 말한다. 이것이 성사될 경우 옛 소련지역의 경제잠재력의 80%를 아우르는 공동시장이 탄생하게 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연합체는 슬라브, 핀·우그리아, 투르크, 아르메니아 등 민족을 포함하는 드넓은 유라시아 고유의 문화권도 형성하게 된다. 이슬람 사상가 게이다르 제말은 이러한 연합은 이미 ‘사산아(死産兒)’라고 주장(10)한다. 반면에, 알렉산드르 두긴은 “여전히 푸틴이 지정학적·정치적으로 보다 고결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북부 유라시아 공간에 공통된 문명적 배경을 바탕으로 초국가적 연합체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본질적 비전을 보여주는 이러한 담론은 수억 명의 유라시아인들이 처한 구체적 문제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신유라시아주의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어차피 목적은 그게 아니다. 두긴이 염두에 둔 대상은 엘리트 지도층이다. 신유라시아주의자의 영향력은 고위층에 국한되어 있고 20여개 국가에 조직망을 두고 있다. 반면 이들 국가와 대결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미국을 추종하며 막강한 세력을 자랑한다.

신유라시아주의자들은 유라시아의 각국 정권에 ‘아이디어 박스’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서구모델 및 미국이 펼치는 이른바 ‘아나콘다 전략’에 저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색깔 혁명’부터 현재 우크라이나의 ‘쿠데타’에서도 그랬듯 러시아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점진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문명권 간의 경계가 우크라이나를 관통한다고 여기는 신유라시아주의자들은 러시아인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서부 주민들의 증오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르 두긴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차지한 것을 기뻐하며 “러시아의 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군부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노보로스크(새로운 러시아)’라는 옛 명칭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도 대안적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전개되는 민족주의의 핵심부를 강화함으로써 자유주의 유럽이 이 지역의 우크라이나적 성격에 거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극우 민족주의자에게 러시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유라시아성이라는 차악(次惡)을 선택하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이러한 계산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정교회 및 우크라이나 동방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이 타락하고 방탕한 유럽을 비난하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서구에서 동성애자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나, 여성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이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공연을 한 사건, 우크라이나 여성단체 피멘의 반라 시위 등은 모든 전통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포위당한 요새의 이데올로기는 당장은 서구의 팽창주의에 대한 강경한 반발처럼 보인다. 즉, 슬라브, 이슬람 할 것 없이 중앙아시아의 강국들과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무력에 호소하는 듯하다. 만일 중국의 동맹국들과도 연대를 맺는다면 이들 국가는 서부의 위협뿐만 아니라 남쪽의 테러분자들에게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공습>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신유라시아주의자인 발레리 코로빈은 2014년 초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11)

 

글·장 마리 쇼비에 Jean-Marie Chauvier

언론인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마를렌 라뤼엘, ‘러시아-러시아 망명-주류문화의 삼각관계: 유라시아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서구의 프리즘’, 2004년 12월 2~4일 리옹 ENS-LSH에서 열린 심포지엄 ‘동서유럽연구소 첫 만남’

(2) 소설가 엠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리모노프>(2011)의 소재가 된 인물

(3) 알렉산드르 두긴, <제4의 정치이론. 러시아와 21세기 정치사상>, Ars Magna, 낭트, 2012년

(4) 에블린 피에예, ‘극우파의 이념적 혼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0월호

(5) XXX

(6) 알렉산드르 두긴, <유라시아의 부름. 알랭 드 브누아와의 대화>, Heartland 총서, Avatar, 에탕프, 2013년

(7) 엠마뉘엘 드레퓌스, ‘우크라이나의 극단민족주의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3월호

(8) ‘소련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애국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3월호


(9) 베라 니콜스키, <현대 러시아의 민족볼셰비즘과 신유라시아주의. 이데올로기의 군사적 행보>, Mare & Martin, 파리, 2013년

(10) <Artogeia>, 모스크바, 2013년 8월 12일

(11) 발레리 코로빈, <러시아 공습. 지정학과 전쟁의 예감>, Piter, 상트페테르부르크,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