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영상이 거래되는 미래 해체 사회
2014-06-03 로랑 코르도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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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경 스미스키가 브로커 카페에 도착했을 때, 테라스에는 아직 빈자리가 몇 개 남아있었다. 그는 자리를 잡기 전에 먼저 좌석 현황기로 향했다. 오후 타임 발행가인 150파운드로 팔고 있는 마지막 좌석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어제보다는 높은 가격이다. 봄이 되니 거의 자동으로 수요가 높아졌다.
태양 위치 측정기로 보아, 일조 시간이 아직 세 시간은 족히 남아있었고, 채리티 비즈니스 빌딩 건물에 태양 반사각이 270도인 것을 감안하면 테라스에 아직 두 시간은 더 실질적으로 볕이 든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사람들이 계속 몰려든다면 스미스키는 앞으로 한 시간 가량은 쓸 만한 가격에 자리를 되팔 수 있었다. 때만 잘 잡으면 될 일이었다.
스미스키는 자신의 계산에 따라 가장 오래 볕이 들 만한 구역에 있는 좌석 가운데 빈자리 하나를 찾아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일단 단말기 안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단말기는 좌석 우측에 달린 접이식 테이블 위에 부착되어 있었다. 화면에는 좌석 임대권이 표시된 뒤, 곧이어 그의 태블릿에 임대권이 발부됐다. 잠금 해제가 된 화면에서는 음료 메뉴판이 떴다. 이곳 브로커 카페에서는 음료 가격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표시된다. 원할 경우 음료는 1시간 기한의 선물 계약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카페인 함유 커피 중 휘핑 크림을 얹은 것으로 간신히 주문을 끝낸 스미스키는 화면에서 눈을 뗀 뒤 곧바로 오랜 지인 하나를 알아봤다. 밥 허스리에였다. 밥은 진작부터 스미스키가 온 걸 눈치챈 듯했다. 그는 서슴없이 스미스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 어이, 필립. 잘 지냈나?
밥은 스미스키의 어깨 위 옷매무새를 바로잡아주며 말을 건넸다.
- 자넨 어떤가? 여기서 이렇게 보니 반갑네, 밥.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지?
그때 밥이 코를 씰룩이며 얼굴을 약간 찡그리던 것을 본 스미스키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게 뭔지는 스미스키 본인도 이제 막 알아챈 참이었다.
- 이보게, 필립. 자네 하나도 안 변했군, 그래! 심지어 내 보기엔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은데? 내 이름이 이제 로널드라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네를 신분모독죄로 고소할 수도 있어. 알다시피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벌인 게 아니잖나?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었다. 로널드는 가장 주가가 높은 대여섯 개 이름 가운데에서 이 이름을 사들이느라 꽤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당시로서는 로널드의 자금 수준을 뛰어넘는 무리한 투자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투자였다. 걸핏하면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돈 많은 바보들에게 신분모독죄로 적잖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민사 재판에서 가장 수완이 좋은 변호사 한 명과 함께 로널드가 이들에게서 뜯어낸 위자료는 그의 거래에 충분한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스미스키는 로널드가 자신에게 표하는 이 가식적인 우정 덕분에 그 같은 불쾌한 위자료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미스키는 로널드의 이 짓궂은 성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로널드의 애 같이 뾰로퉁한 표정은 이 같은 상황에서 그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켜주었다.
- 미안하게 됐네, 로널드. 오늘은 내가 영 제정신이 아니라서 말이야.
테라스 자리도 조금씩 채워져갔고, 이제 남은 빈자리는 하나도 없는 듯했다. 스미스키는 단말기 화면 위로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테라스 자리의 가격은 한때 195파운드까지 뛰었다가 한동안 175파운드에서 안정세를 유지했다. 로널드는 반색을 표했다.
- 이제 몇 분 후면 장사가 좀 될 것 같군.
문득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테이블 주위를 황급히 돌아보더니 스미스키 옆으로 와 몸을 웅크렸다. 로널드는 스미스키의 좌석에 팔꿈치를 얹었고, 오른손은 언제든 단말기를 조작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한동안 이 자세를 유지하던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모니터 위에 펼쳐지는 정보들을 넋 나간 듯 바라봤다.
스미스키는 로널드가 초조해하는 건 아닐까하여 경계했다. 로널드는 조금이라도 더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가 장난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일과 놀이의 경계는 흐릿한 편이었고, 로널드는 실로 대박의 행운을 누리는 것과 약간의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것 사이에 별다른 구분을 두지 않았다. 이에 스미스키는 짜증 섞인 말투로 로널드에게 말을 던졌다.
- 로널드, 지금 자네가 우리 좌석을 팔 궁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나는 현재로선 이 자리를 떠날 마음이 조금도 없단 말일세.
- 걱정하지 말게나. 잠깐 동안은 더 가격이 올라갈 거야. 앞으로 한 시간 반은 더 볕이 들 것이고, 한 시간 안에는 시세가 떨어질 일이 없을 걸세. 나는 좌석 10개를 현물로 175파운드에 샀는데, 190파운드가 되면 매도 주문을 넣을 거야. 어떻게 될지 같이 한 번 두고 보세나.
자기 자리로 돌아간 로널드는 테라스를 훑어봤다. 그는 스미스키에게 좀 더 멀리 떨어진 몇몇 테이블을 보라는 식으로 턱짓을 했다. 로널드는 신이 나서 말했다.
- 이 다섯 개 빈자리가 다 내 자리라네. 기다리는 사람들 수를 보건대, 머지않아 가격이 뛸 거야. 저 사람들, 아주 자리에 앉고 싶어 안달이 났을 걸? 그래 보이지 않나? 두고 보게. 저 사람들은 곧 지갑을 열게 될 테니 말이야.
로널드는 흡족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비유적인 표현을 섞어 말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잘 쓰지 않는 상투적인 표현들이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좀 더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갑이 열릴 것이라는 식의 표현 역시 더 이상은 통용되지 않는 고릿적 지불 방식을 비유적으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요새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는 로널드도 한동안 좀 쉬는 분위기였다. 로널드는 채리티 비즈니스 빌딩의 전면 광고에 넋이 나가 있었다. 거대한 화면 위에서 여자 하나가 크림으로 가슴을 마사지하고 있었는데, 가슴을 커지게 만들어주는 크림이라고 했다. 몇 초간 여자가 가슴을 마사지하는 육감적인 장면이 나가고 난 후, 이내 곧 여자의 가슴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빵빵하고 탄력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한 놀라운 장면에서 화면이 잠시 정지됐다.
이어 감미로운 여자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면서 이 크림을 사용하면 성적 매력 지수가 놀라울 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예순이 넘은 사람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광고 속 여자에게서 나타난 급격한 변화로 미루어보면 이 여자가 레벨 5로 올라갈 수 있으리란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레벨 5면 조세국에서 부여하는 성적 지수 단계에서 최고 등급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광고 속 기적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크림 한 통이 120파운드였으므로 이 투자의 수익성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모든 여자들이 그 같은 가슴둘레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어딜 보더라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로널드는 무의식 중에 태블릿을 만지작거렸다. 태블릿을 켠 로널드는 화면에 전송 페이지를 띄운 뒤, 주위 카메라 보기를 선택했다. 카메라는 제일 잘 잡힌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화면에 나타났다. 테라스 반대쪽 끝 구석에 있는 구명 산소 장치 위에 설치한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로널드가 말했다.
- 아들 녀석한테 2~3분 정도 면상 좀 비춰줘야겠어. 녀석이 좋아할 거야.
로널드는 입에 마이크를 갖다 대고는 잠시 멈칫했다.
- 그건 그렇고 화면에 자네 얼굴이 나와도 괜찮겠어? 아니면 화면 각도를 좀 조절해줄까?
이에 스미스키가 말했다.
- 괜찮아. 내겐 C레벨 배지가 있으니까. 확인해보겠나? 신호 넣기 전에 한 번.
로날드는 숨이 넘어갈 듯 웃어젖히며 말했다.
- 뭐? C레벨? 자네 아주 허공에 돈을 다 뿌리고 다니는구만. C레벨 배지로 도대체 뭘 보호하겠다는 겐가? 자네가 무슨 스타라도 되나? 그래서 사람들이 자네 사생활을 뒤쫓지 못하게 하려는 게야? 확실히 필립, 자네는 늘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어.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자네 회사를 높이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야.
C레벨 배지의 인증이 되고 난 후 화면에는 오직 로널드의 얼굴만이 비춰졌으며, 스미스키의 얼굴은 완전히 감춰졌다. 대신 그 자리는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로 채워졌다. 마치 그 시간 브로커 카페에는 스미스키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테이블에는 로널드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C레벨 배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네트워크 전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이 배지를 갖기 위해 상당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B레벨 배지를 갖고 있으며, 4분의 1가량이 A레벨 배지를 착용한다. A레벨 배지는 C레벨 배지의 반대 격이라고 보면 된다. A레벨 배지를 가진 사람은 원격으로 그 행적을 쫓아갈 수 있다. 사이버상에서 이용자가 A레벨 배지 착용자를 타깃으로 삼고 관찰을 하면, A레벨 배지 착용자는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 당할 수 있다. A레벨 배지를 단 사람들이 어딜 가든 아무런 방해 없이 그 뒤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최적의 각도를 제공하는 카메라를 자동으로 감지하여 표적이 된 사람이 가장 잘 포착된 모습을 화면에 띄워준다. 따라서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뒤를 쫓을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통해 초당 125프레임의 속도로 초고화질 영상이 제공된다. A레벨 배지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집안에 카메라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카메라는 심지어 이들의 침실이나 욕실에도 설치된다.
A레벨 배지를 찬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서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자기 집에 몇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느냐에 따른 자기만족감도 있지만,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두는 목적은 물론 그에 따라 생겨나는 영상 저작권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따라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고, 일정 시간 동안 이들의 관심을 고정시킬 수 있다.
영상 저작권료는 시청자의 수와 접속 시간에 비례한다. 노출되는 영상의 초당 가격은 저작권자 스스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나, A레벨 배지 사용자가 요구할 수 있는 가격과 이들이 거둬들일 수 있는 총수입은 배지 소유자의 성적 매력 지수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나 좋은 몸매로 얼마나 잘 노출시키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스미스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로널드는 아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정성껏 준비했다. 영상 메시지 전송 작업이 다 끝나고 난 후, 로널드는 자신이 사두었던 좌석들의 시세를 알아봤다. 현 시세는 189파운드였다. 몇 초 후, 좌석의 시세는 190파운드를 돌파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로널드는 뛸 듯이 기뻤다. 그는 150파운드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경제학자. 근저로 현대사회의 광기를 폭로한 풍자성 공상과학 소설 <해체 사회(La Liquidation)>가 있으며, 이 글은 소설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번역·배영란 runaway44@hanmail.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책의 탄생>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