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계급의 저항의식 소진되었나?
[기획/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신랄한 경제 비판, 호기심 충족 위해 소비돼
다시 맞은 변화 기회에 비판 지식 활용해야
비비안 포레스터의 저서 <경제적 공포>는 1996년 출간된 이래 100만 권이 팔렸고, 나오미 클레인의 <노 로고>(No logo·2000)는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팔리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고, ‘대안 세계주의자들’의 시위가 등장하고, ‘대안’ 출판의 맹아가 싹트고, 수천 개 대중집회에 청중이 모여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경제 체제를 문제 삼는 분석들을 지지하면서 기존 이념을 비판하는 일련의 폭발물이 지구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자본주의 영속성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교양 계층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 내동댕이쳐진 대중 계층에 관심을 갖는 지식계층(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이 자유주의의 거대한 성벽에 균열을 내고 있다.
<적색>시리즈, 1968-제라르 프로망제르 | ||
운동의 핵심은 비판 지식 고취
혁명적 조합운동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말 노동조합운동 조직가인 페르낭 펠루티에의 지적처럼 ‘자신의 불행에 대한 지식’을 노동자가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 그런 경우에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운명의 장막을 찢고, 착취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결국 그 메커니즘을 파괴하기 위해 단합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힘은 오직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파괴될 뿐이다”(1)라고 1843년 카를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대중 교육의 책무가 혁명적 조합운동에서처럼 자주적으로 관리되든 혹은 레닌주의에서처럼 정당에 귀속되든 간에, 대중이 비판적 지식을 섭취할 때만 해방의 전제 조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판적 지식을 지닌 사람들은 이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미요(2000년 6월 맥도널드와 유전자변형 식품 반대집회가 개최된 프랑스 아베롱 지방의 도시), 라르자크(2003년 6월 세계무역기구 반대집회가 열린 프랑스 도르도니 지방의 도시), 혹은 포르투알레그레(다보스포럼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포럼이 여러 번 개최된 브라질의 도시) 등에서 열린 일련의 대중집회는 중산층의 정치 교육에 공헌했다. 2009년 1월 브라질 벨렘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 세계 곳곳에서 온 대안 세계화 전문가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고받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은 시위가 때때로 국제적인 난장판 양상을 띤 것에 대해 한탄했다. 대학 캠퍼스 두 개의 면적에 해당하는 넓은 장소에서 대부분 학생과 교사로 구성된 브라질 대중이 참석한 워크숍과 강연이 열렸고, 그 옆에는 수많은 진열대가 놓였다. 여기서 결사단체 운동가들, 거리 신문팔이들, 마르크스 서적상들이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문신 판매상, 파라과이 찻잔 판매상, 사과주 상인, 씨 목걸이 제조업자, 그리고 마리화나 합법화 지지자 등과 호객 경쟁을 벌였다. 이런 경쟁은 대표단이 제공하는 축제와 무료 콘서트를 보려고 그들 각자가 부스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됐다.
사회참여 서적 살롱전, 사회운동가들의 논쟁 모임, 그리고 연합 서적상들의 전시회 및 독립영화제 등이 어우러진 지역사회 포럼이 흥행하는 이유는 지식과 즐거움을 함께 주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에서 분열의 고리를 끊고 투쟁의 기억과 불꽃을 지속시키고, 참여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구상된 이런 행사들은 엄청난 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 당국은 이런 행사를 용인하고 때로는 지원한다. 시 당국이 이런 행사를 지원하는 것은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문화 다양성 활동에 기여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태만을 은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오락으로 변모한 시위
층이 행사에 대거 참여하면서 정치 교육의 장이 노동현장에서 여가현장으로 이동했다. 많은 청중을 휘어잡는 저명인사들은 연단에 올라 선동적인 긴 연설을 하기보다는 참석자들이 피곤하지 않도록 연설을 가급적 짧게 한다. 이렇게 시위가 물리적 충돌로 변질되기보다는 정치적 음색을 띤 문화·오락으로 변모한다.
4월 9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불복종’ 단체의 대변인이고 프랑스 최고의 저항운동가 중 한 명인 자비에르 르누를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불복종 실습을 하는 데 학생 한 명당 50유로를 받고, 저술을 통해 좌파가 관심 갖는 분야의 게임들을 고안하지만, 특히 티베트 지지운동같이 관심이 쏠리는 분야로까지 자신의 고객들을 유인하려 애쓴다.”
우리는 한 유력 일간지의 편협한 경제 지상주의가 유도하는 대로, 중산층의 사회운동을 고작 돈벌이 시장터 정도로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돈벌이 수단으로 왜곡·축소하는 이 시장터에서는 어쩌면 시위 전문 용역회사가 상당한 보조금을 받고서 사회 전복에 열광하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저항정신이 소진돼가는 징후들이 눈에 쉽게 드러난다.(2) 신속한 결과를 요구하는 조급증이 그 징후 중 하나다. “자신의 조급증을 이론적 논거로 삼는 것은 유치한 어린아이의 순진성에 불과하다.”(3) 런던에 피신한 파리코뮌 가담자들에 대한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폭언은, 에두아르 바이앙처럼 국제노동자연맹의 활동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던 사회운동가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반면에 이 사회운동가들은 1871년 파리코뮌과 싸운 베르사유 정규군에 즉각적인 보복을 가하고 싶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생겨난 10여 개 소규모 운동을 목격하면서 엥겔스의 곤혹감을 상상해본다. 세계의 억압에 대항해 1989년부터 유럽에서 결성된 ‘노(No) 넥타이 연합’을 비롯해, 영국에 본부를 둔 전쟁 및 세계화 반대의 ‘비밀봉기 광대 반란군’ 그리고 ‘나체 자전거족들’, ‘광고포스터 낙서가들’, ‘도시 공간의 축제 장소로의 재정비’ 같은 단체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단체들은 정치적 목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입 방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단체에서는 흰 마스크를 쓰고, 저 단체에서는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가져온 제품으로 소풍놀이를 하는 식이다. 제과점의 사탕 파티에서처럼, 이들은 젊은 대중들에게 컬러 부채를 나눠주고 대중은 각자의 방식과 취향으로 뭔가를 조금씩 먹는다. 조직도 없고 장기 비전도 없다. 이들의 행동에는 진지한 참여가 없고 ‘행위’만 있을 뿐이다.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사이트로 연락을 받은 활동가들은 미디어적 관심을 일으키는 순간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뿐이다.
프랑스의 인기 텔레비전채널 <TF1>에서부터 월간지 <테크니카르트>(4)까지 기자들은 이런 미디어적 사건들을 매우 좋아한다. <누벨 옵세르바퇴르>(2009년 3월 19일)는 오간르벨사의 신발 광고와 1회당 50유로를 받는 ‘스트레스 퇴치 훈련지도자’의 사진 사이에 ‘경제위기에 대항하는 60가지 약삭빠른 계획’이라는 타이틀로 이런 사건을 슬그머니 게재했다. 텔레비전채널 <카날 플뤼스>의 <새로운 체제 비판자들>(2008년 1월 16일)이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한 비정부기구의 책임자이며 석사를 마치고 7번의 인턴을 거친 27살의 줄리엥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눈이 내리는 전철역 밑에서 3시간 동안 전단지를 뿌리려고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단체 회원들과 함께 임대아파트에서 즉석 파티를 벌이면서 주택 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진지한 참여 없이 ‘행위’에 집중
아이러니하면서도 뭔가 어긋난 이런 항의 이미지는, 수없이 반복된 대중 시위에 미디어가 오랫동안 부여했던 육중하고 서글픈 모습과 대조된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저항운동의 조직화와 지속적인 세력 확대에 방해가 된다. 이들의 항의 방식은 신경제 구조가 중시하는 즉각적인 성과를 벤치마킹해 순간적인 참여라는 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갖고 참여한 학자·연구원·언론인·비평가의 생리가 결과적으로 참여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고유 연구를 하나의 참여 형식으로 동질화한다면, 저항정신이 급작스럽게 소진되지 않을까? ‘자조’(自嘲)라는 유쾌한 글쓰기에서 사회학자 알랭 아카르도는 ‘비판적 사상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비판적 사상가는 자신의 책상에 틀어박힌 채, 오른쪽 책 더미에서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것을 끝장낼 필요성에 대해 기술한 책을 꺼내서 그 책에 주석을 달고 왼쪽 책 더미에 놓는다. 계속해서 이런 행위를 반복한다. “비판적 사상가가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자신의 이전 책들을 보완할 때와 수치들로 가득한 책을 쓰고 있을 때뿐이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것을 끝장낼 필요성을 동시대인들에게 강조하기 위한 책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비판적 사상가의 책들은, 끊임없이 오른쪽 책 더미에서 왼쪽 책 더미로 옮기는 다른 비판적 사상가들에게 읽힐 뿐이다.”(5)
사회운동가 이야기 책, 저항 잡지, 모든 종류의 전복에 대한 학회 논문이나 그와 같은 기사들이 쌓여간다는 것은, 이런 우화가 어느 정도 사실성을 띠고 있다는 증거다. 1842년 마르크스가 발표한 저명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이후로 거꾸로 달려온 길을 아카르도가 조롱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이며 프랑스어권 작가), 조르지 폴리체르(프랑스 철학자이며 헝가리 출신의 마르크스 이론가), 시몬 베유(억압당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프랑스 여성 사상가), 에메 세제르(프랑스어권 시인이며 정치가) 등과 같이 헌신적이고 겸손한 수많은 사람들이 20세기에 그런 시도를 했다.
?저항의 소진 징후는 개혁적 사고에 관심을 가진 지식층에서 수없이 관찰되는 ‘불참여’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텔레비전에서 텔레비전을 비판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언하려 했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 한 시청자는 감독과 ‘완전히 동의’한다고, 그리고 동시에 텔레비전을 비판한 텔레비전방송 진행자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정치 측면에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어떤 논의의 주역들과 그들의 논거에 대해 나비 수집가의 돌출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배우고 즐기는 수단으로 텔레비전에 접근한다면 두 가지 태도가 ‘완전히’ 양립할 수 있게 된다.
저항의식의 소진 엿보여
지적 탁월성을 빙자해 찬성과 반대를 병행하고 (가능하면) 자신의 학술 참고 서적을 정치적 논거와 대립시키고 심지어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태도는,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지식층이 사회 전쟁의 현장에 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 있다는 증거다. 원대하고 고귀한 대의를 위해서만 참여하는 성향은, 폴 니장이 1932년 <경비견(犬)들>에서 고발했던 대학교수나 예술가들에게 특히 뿌리박혀 있다.
?2003년 1월 3일 <르파리지앵>은 당시 중산층 보헤미안들의 총아였던 여가수 자지(Zazie)에게 “당신은 까다롭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나는 여러 면을 지닌 역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비판하기 좋아하면서도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나는 쇼비즈니스를 비판하기 좋아하면서도 음악 시상식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택을 강요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수들이 자신들의 저작권을 위협하는 불법 복제에 갑자기 항의하는 것처럼, 텔레비전 시청자가 만약 다큐멘터리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없앨 필요성을 언급한다면 ‘예’와 ‘아니요’ 중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우리는 준비돼 있다. 공적 업무에서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그리고 사적 업무에서 경제위기로 공격받는 지식층들이 불안정을 느끼면서 대안 사상과 계층 이익을 결합해주고 있다. 교육자·연구자·학자·언론인이 지금 결집하고 있다. 조직하고 계급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단지 높고 고상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닐지라도 다시 가능해진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할 것이다. 이번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고서 그러는가?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작가. 저서 <반역자들의 예언>(2002), <세계를 조종하는 리모컨>(2005) 등이 있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각주>
(1) 카를 마르크스, <헤겔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1998, 25쪽.
(2) 조지프 히스 & 앤드루 포터의 <고갈된 폭동, 반문화의 신화>(2006)를 참조 바람.
(3) ‘코뮌-블랑키스트들의 프로그램’(1874), 레닌이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1920, 8장에서 인용.
(4) ‘시민 불복종에 대한 탐방 기사’, <TF1> 저녁 8시 뉴스, 2009년 4월 1일, ‘신행동주의자’, <테크니카르트>, 2009년 2월.
(5) 알랭 아카르도, ‘자조’(自嘲), <감소>, 40호, 200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