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관료 먹여살리는 미국의 금융감시 체제
‘베엔페-파리바(BNP-Parisbas)’ 은행에 부과된 벌금이 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한 기사는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베엔페-파리바 은행은 스위스의 자사 지점이 미국이 쿠바, 이란, 수단에 대해 내린 엠바고(통상금지 명령)를 위반한 사실 때문에 고소를 당했다. 이 사건은 국제 금융 분야에서 판례와 사법적 관행(1)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 달 전부터 프랑스의 다른 두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도 마찬가지로 미 당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발표가 나기 직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예고된 제재가 지나치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6월 4일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크리스티앙 누와이에는 “프랑스와 유럽 수준의 규칙, 법, 규정 및 유엔이 정한 규칙에도 ‘합당한’(2) 거래를 미국법이 불법으로 취급하는 것이 놀랍다”고 표현했다.
만약 크리스티앙 누와이에가 지난 수년간의 정치변화를 잘 주시했다면,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일본이 눈부시게 성장하자 미국이 쇠락할 것이라는 논쟁이 맹위를 떨쳤던 1980년대 말부터, 영국의 여성정치인 수잔 스트레인지가 미국의 ‘구조적 파워’를 강조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 경제의 틀을 결정하는 미국의 파워는 다른 국가, 다른 국가의 정치 제도, 다른 국가의 기업, 다른 국가의 전문가들이 그 틀 내에서 행동해야만 하는 구조를 만들고 다른 국가들이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3)
‘미국의 적’으로 간주된 국가들과 개인들에 대해 냉전기간에 만들어진 제재 무기가 1990년대에 엄청나게 발전했다. 1996년 이란·리비아 제재법(ILSA)과 더불어 미국의 치외법권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이 법에 의해 워싱턴은 이란·리비아와 무역거래를 하는 제3세계 국가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국제 은행들에 대한 미국의 파워는 ‘테러리즘에 대한 금융전쟁’(4)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유럽은행들, 미 금융규제에 거액벌금 줄 이어
금융의 흐름에 대한 감시가 이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전에 드골 장군이 이야기했던 ‘과도한 특권’의 새로운 형태가 생겨났다. 달러 거래가 미국의 영토 밖에서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모든 달러 거래가 미국법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금융제재를 담당하는 미 재무부 산하 외국자산통제국(OFAC)의 힘은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거대 국제 은행들은 이런 변화를 간과했다. 게다가 조언을 잘못 받은 베엔페-파리바는 어설픈 짓을 여러 번 했다. 2006년 당시 미 재무부에서 테러리즘과 금융 분야를 담당했던 스튜어트 레비 차관이 파리은행 본부를 방문하여 은행 고위경영진에게 이란과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 경고를 했다. 베엔페-파리바는 이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엠바고 상태에 있는 국가들과 거래를 했다. 결과적으로 베엔페-파리바는 ‘비협조적인’ 은행으로 낙인 찍혔다. 미국은 이 은행의 예치금이 11억 달러뿐임에도 불구하고 벌금으로 160억 달러(약 100억 유로)를 부과하려 했다.
이 사건에서 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뉴욕 주 금융서비스 부서 팀장인 벤자민 로우스키가 경매가를 올렸다. 더 ‘창조적인’ 제재의 선두주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최고 경영진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관철되어 다른 경영진과 더불어 제네바의 베엔페-파리바 은행의 집행위원장이었던 조르주 쇼드롱 드 쿠르셀이 옷을 벗었다. 게다가 로우스키는 베엔페-파리바 고객들의 달러 환금 업무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킨다는, 심지어 은행 허가증을 회수한다는 협박도 했다.
이 사건은 금융규제들이 다시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5년간 미국은행과 외국은행들이 미국에 낸 벌금 총액이 1,000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평가했다. 2013년에만 벌금 총액이 520억 달러로 상승했다. 미국은행들 중에서 1위인 ‘제이피 모건 체이스’ 은행이 부동산 위기 책임 명목으로 130억 달러를 지불하여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마지막 협상 국면에 접어든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똑같이 부동산 위기 책임 명목으로 12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여 아마 2위를 차지할 것이다.
대부분의 거대 국제금융기업들 역시 미국 규제기구들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 2012년 네덜란드 금융기업 ‘아이엔지’와 영국 금융기업 ‘스탠다드 차타드’는 엠바고 상태에 있는 국가들과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각각 6억1천9백만 달러와 6억6천7백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또 다른 영국 금융기업 HSBC는 돈세탁 공모, 조세회피 지원 및 엠바고 비(非)준수 혐의로 19억 달러를 지불했다. 상당수의 스위스 은행 직원들 역시 미국인들의 조세회피를 도운 혐의로 체포되었다. ‘스위스 크레디’ 은행은 26억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그리고 스위스 크레디 은행은 20년 만에 최초로 위법행위를 했다고 자발적으로 인정한 은행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1980년대 말 이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당시 저축은행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미 규제당국은 저축은행들에 대해 사기와 여러 가지 직권남용으로 1,100건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때 약 8백 명의 책임자들이 실형을 받았다.(6) 그러나 그 후 곧바로 뉴딜 정책에 의해 개혁이 시작된 이래, 금융 규제 시스템은 유례없는 자유방임의 시대를 맞았다.
무제한적인 규제완화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실상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던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 성장의 모터인 금융혁신을 이루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규제가 바로 자율 시장이라는 규제”라고 쉼 없이 반복해 주장했다. 그의 법을 위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쇠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금융시장의 경이로운 팽창과 눈에 띄게 건전해진 미국의 경제상황(1991년 3월부터 10년 이상 연속 경제 성장)이 그의 말을 증명해 주었다.
현대화에 꼭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중요한 법들을 통하여 자유주의 원칙들을 시행해 나갔다. 결국 1999년의 ‘그램-리치-브릴리 금융서비스 현대화 법안(Gramm-Leach-Bliley 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은 상업은행과 그 밖의 다른 금융 분야들과의 분리 원칙을 공식적으로 폐기해 버렸다. 반면 2000년의 ‘상품선물 현대화 법안(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은 모든 효율적인 통제를 벗어난 파생상품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합법적으로 왜곡된 것들을 타파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규제들 자체가 이런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었다. 규제들 자체가 테러리즘이나 경제적 제재 문제를 제외하고는 금지하는 사항이 거의 없었다. 은행이 규제 위반으로 적발되었을 때도, 은행은 거의 제재를 당하지 않았다. 적발되면 통용되는 처방전에 따라 ‘혐의를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으면서’ 소액의 벌금만 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적발은 아무런 억제 효과가 없었다.
모든 것 혹은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되거나 용납되는 세상에서, ‘보지도 않고 적발하지도 않는’ 규칙이 통용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규제당국은 무장해제 되어 있었다. 시스템 붕괴의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subprime)과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s, CDS)가 불법적인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규제당국은 엄청나게 당황했다. 게다가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들은 경기침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실물 경제를 인질로 삼고 있었다.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에서 “대중의 현재 분노는 성경에 쓰인 복수를 원하지만 우리는 일단 화재를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그것 때문에 몇몇 방화범이 받아야 할 정당한 처벌을 회피하게 될지라도 말이다”라고 자신의 딜레마를 설명했다.(7)
벌금 줄이려 미국 전직 고위관료 채용
사실상 방화범들은 자신들이 불을 낸 화재에서 자신들을 구해내는 거액 보조금의 주요 수혜자들이 되었다.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 이 보조금은(대략 13조 달러로 추정)(8) 국가 경제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금융 분야가 자기들 마음대로 진행되게 허용해 주었다. 오랫동안 너무 관대해서 비판을 받고 있던 몇몇 규제당국은 자신들이 금융의 전체 국면을 제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을 바꾸었다. 규제당국은 법에 도전하는 것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규제당국은 자신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곳에서 엄벌을 주려고 결정했고, 특히 그 방침을 알리고 싶어 했다. 심지어 은행 내부에서 내부고발자가 위반 사항을 고발하면 금전적 보상과 일자리를 보장해 준다고 말하면서 내부고발을 독려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규정준수 점검부서들이 강력히 부각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 부서들은 법이 엄격히 준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항상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2010년 통과된 도드 프랭크 법안(Dodd-Frank Act) 덕택에 새로운 권력을 갖게 된 규정준수 점검부서들은 규정준수를 이중적으로 체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부서들이 금융시스템을 더 안전하거나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규정 비준수에 대한 응징책은 특히 벌금액을 임의적으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위기관리 중에도 상황이 변하고 그 변화에 맞추어 다른 수많은 요인도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부기구들은 수많은 법적, 이데올로기적, 재정적,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한다. 연방 기구들은 외교정책을 무시할 수 없는 반면, 뉴욕주 DFS(금융서비스 부서)와 같이 국내 기구에 속하는 기구들은 선거의 저의나 국내 정치를 고려해야 한다. 표적이 된 은행들은 주로 커뮤니케이션 및 홍보 분야에서 일하는 수많은 변호사와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절한 전략을 채택하는 것과 개인으로 돌아간 전직 고위공무원들을 채용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돈세탁, 탈세 및 그 밖의 다른 범법 행위로 진창에 빠진 HSBC 같은 경우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이 은행은 특히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위해 돈 가방을 이송해 주었다. 그런데 이 은행은 형법상 처벌도 받지 않으면서 19억 달러의 벌금으로 진창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이 은행이 법률 담당 팀장으로 테러리즘 및 금융 정보를 담당한 전직 재무부 차관인 스튜어트 레비를 채용하는 묘수를 생각해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레비는 2006년 엠바고에 걸려 있는 국가들, 특히 이란과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 위해 베엔페-파리바와 HSBC 같은 거대 유럽은행들을 방문한 사람이다.
글·이브라힘 워드 Ibrahim Warde
미국 플레처 법률·외교 대학원 객원교수, <제국주의적 프로파간다와 테러리즘에 대한 금융전쟁>(아곤느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마르세유-파리, 2007년 공동 출간)의 저자
번역·고광식
(1) 앙투안 가라퐁(Antoine Garapon), 피에르 세르방-쉬레베(Pierre Servan-Schreiber), 사법적 거래. 세계화된 법규준수를 강요하는 미국 시장, P.U.F., 파리, 2013년
(2) 세바스티앙 포미에(Sebastien Pommier), “그들은 베엔페-파리바 전사(戰士)를 구하고 싶다”, <렉스프레스>, 파리, 2014년 6월 4일
(3) 수잔 스트레인지(Susan Strange), <국가들과 시장들>, 핀터, 런던, 1988년
(4) 이브라힘 워드(Ibrahim Warde), <제국주의적 프로파간다와 테러리즘에 대한 금융전쟁>, 아곤느-<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마르세유-파리, 2007년
(5) 리처드 맥그리거(Richard McGregor), 애런 스탠리(Aaron Stanly), “은행들이 미국에 1000억 달러를 지불하다”, <파이낸셜타임즈>, 런던, 2014년 3월 25일
(6) 그레첸 모겐슨(Gretchen Morgenson), 루이즈 스토리(Louise Story), “금융위기에서 고위층 기소는 없다”, <뉴욕타임즈>, 2011년 4월 14일
(7) 티모시 가이트너(Timothy F. Geithner), “스트레스 테스트: 금융위기에 대한 고찰”, 크라운 출판사, 뉴욕,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