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유린하는 다국적 기업

2014-07-02     마르틴 뷜라르, 브누아 브레빌

 

국가를 법정으로 끌고 가서 자사의 법을 강요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다국적기업.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이러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5백 건이나 존재한다.

프랑스 베올리아 그룹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단돈 31유로 때문이었다. 최저 임금을 400이집트파운드(약 41유로)에서 700이집트파운드(약 72유로)로 인상한 것은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집트가 얻어낸 몇 안 되는 성과였다. 베올리아는 이 금액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012년 6월 25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이집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 이유는 ‘새로운 노동법’이 알렉산드리아(이집트 제2의 도시-역주)와 베올리아 사이에 폐기물 처리를 위한 민관협력의 일환으로 체결한 계약에 저촉된다는 것이다.(1) 현재 협상 진행 중인 범대서양 거대시장 협정(GMT)에도 이처럼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측과 재계에서 희망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GMT를 체결하는 모든 정부는 이집트가 겪은 실패와 같은 상황에 노출된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제도(ISDS)는 이미 다수의 민간기업에 거액을 확보해주는 돈줄 역할을 했다. 예컨대 2004년 미국 카길 그룹은 소다에 새로 세금을 매겼다는 이유로 멕시코 정부로부터 9,070만 달러(6,600만 유로)를 받아냈다. 2010년 탬파 일렉트릭은 전기세 상한제 도입을 제안하는 법안을 고발하며 과테말라로부터 2,500만 달러를 받아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2012년 도이체방크는 석유계약 변경건을 이유로 스리랑카를 상대로 6,000만 달러 승소 판결을 얻어 냈다.(2)

여전히 진행 중인 베올리아 소송의 근거는 프랑스와 이집트 사이에 체결된 투자협약의 내용이다. 이처럼 양자 간 협정 또는 FTA에 포함된 형태의 투자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3,000건이 넘는다. 이러한 협약은 투자 저해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가결정(법, 규정, 기준)으로부터 외국기업을 보호한다. 이렇듯 국가의 권력이 초국가적 법원으로 이양되면서 국가관제와 지방법원은 더 이상 권리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투자보호라는 명목으로 각국 정부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보장해야 한다. 우선 외국기업과 자국기업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예를 들어 일자리 보호에 기여하는 국내기업에 특혜를 줄 수 없다). 또한 투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며(즉, 공권력의 경영조건 변경이나 무보상 수용 및 ‘간접수용’ 불가), 기업의 자본이전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기업은 무기와 물자를 가지고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있으나 국가가 기업을 내보낼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소송은 대부분 ICSID에서 다루어지며, 그 밖에 유엔 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및 일부 상공회의소 산하 전문 재판소에서도 처리된다. 국가나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이들 전문 재판소의 결정에 항소할 수 없다. 사법재판소와는 다르게 중재재판소는 항소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가들 중 절대다수는 협약내용에 항소의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별도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GMT 협약이 ISDS 제도 인정 조항을 포함한다면 이들 재판정은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있는 24,000개의 유럽기업 계열사와 유럽 소재 50,800개의 미국기업 지부가 각자 자사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조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변호사의 지상낙원 도래

민간기업이 국가를 공격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이미 60년 전 일이지만, 그러한 절차는 지금껏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1950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집계된 기업-국가 간 분쟁은 550여 건에 달하나, 이중 80%는 2003년에서 2012년 사이에 제기된 소송이다.(3) ICSID에서 처리되는 소송의 75%는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북방 국가 기업이 제기하며, 과반에 해당하는 57%가 제3세계 국가를 겨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 정통 경제논리에 반하는 시도를 하는 국가들이 특히 소송 위협을 받고 있다.(지도 참조)

아르헨티나가 2001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가격규제, 자본유출 제한 등)은 시종일관 중재재판소에 제소되었다. 그러나 유혈 소요사태 이후 정권을 잡은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과 그를 뒤이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어떠한 개혁 의지도 없었다. 눈앞에 닥친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 정권을 매수했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독일 지멘스그룹은 새 정부가 이전 정권 때 체결한 계약을 인정하지 않자 새 정부를 등지며 2억 달러를 요구했다. 같은 맥락에서 부이그 계열사인 소어는 ‘투자가치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물 가격 동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1998~2002년) 동안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 건수는 40건이었다. 그 중 10건 정도가 기업의 승리로 끝났으며 아르헨티나 정부는 4억3천만 달러에 달하는 액수를 지불해야 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1년 2월 기준으로 아르헨티나가 직면한 소송 22건 중에서 15건이 경제위기와 연관이 있었다.(4) 3년 전부터는 이집트가 투자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 분야 전문지에 따르면, 이집트가 2013년 다국적기업의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하는 국가로 등극했다.(5)

이러한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하여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몇몇 국가는 협정을 취소했다. 이탈리아 기업인 피에로 포레스티, 라우라 데 카를리 등이 흑인우대정책에 반발하여 제기한 기나긴 소송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유사한 곤혹을 치렀다. 이탈리아 기업들은 광산이나 토지 소유에 있어서 흑인에게 특혜를 주도록 되어 있는 남아공의 흑인우대정책이 ‘외국기업과 국내기업 간의 평등대우’(6)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남아프리카의 흑인이 18%의 토지를 소유하고 45%가 빈곤한계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유럽 업체가 내세우는 ‘평등대우’는 어불성설이다. 투자법이란 이런 것이다. 이 소송은 끝까지 가지 않았다. 2010년 남아공은 이탈리아 측 제소자들의 뜻에 따라 토지소유권 개방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윈-루즈(Win-Lose) 게임은 빈번히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다국적기업은 거액의 보상을 받거나, 협상 타결이나 소송 취하를 위해 규제를 축소하도록 국가를 압박한다. 독일은 최근 쓴맛을 경험했다.

2009년 스웨덴 공기업 바텐팔은 독일 함부르크 시당국의 새로운 환경규제로 바텐팔의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이 채산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14억 유로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ICSID는 바텐팔의 이의제기가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수차례에 걸친 논쟁 끝에 2011년 ‘사법협정’이 체결되어 ‘규제 완화’가 결정되었다. 현재 바텐팔은 202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결정에 대해 소송 중이다. 공식적인 액수가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2012년 바텐팔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독일의 원전폐쇄 결정으로 인해 예상되는 바텐팔의 손실액은 11억8천만 유로에 달한다.

물론 다국적기업의 소송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2012년 말까지 판결이 확정된 소송 244건 중 42%는 국가의 승리로 돌아갔으며 31%는 투자자의 승리로, 27%는 사법협정으로 이어졌다.(7) 이 경우 다국적기업은 소송 과정에서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는다. 그러나 유럽기업감시 보고서의 제목에서 ‘불의의 수혜자’(8)라고 칭한 이들은 숨은 돈줄을 노리고 있다. 국제재판소의 중재재판관이나 로펌 입장에서 이러한 소송은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배를 불릴 수 있는 맞춤형 시스템인 셈이다.

소송이 있을 때마다 소송 당사자 양측은 시간당 사례비가 350~700유로에 육박하는 거대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해 중무장을 하게 된다. 이어 사건을 판결할 세 명의 ‘중재재판관’을 지정한다. 한 명은 소를 당한 정부, 다른 한 명은 제소하는 다국적기업, 주심을 맡을 마지막 한 명은 양측이 공동으로 지정한다. 사법재판소의 자격 검증, 권한 부여, 임명 등 절차 없이도 중재재판관이 될 수 있다. 일단 선임되기만 하면 중재재판관은 시간당 최소 275~510유로를 받으며, 그보다 훨씬 더 받는 경우도 있다. 500시간을 훌쩍 넘는 사건이 비일비재함을 감안하면 서로 중재재판관들이 되려고 한다.

중재재판관의 96%는 남성이며 대부분 유럽이나 북미의 대형 로펌에서 배출된다. 이들이 법에만 열정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담당소송 30건의 경력을 보유한 칠레의 프란시스코 오레고 비쿠냐는 인기가 가장 많은 중재재판관 15인 중 한 명이다. 상사중재에 몸담기 이전에 그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정권에서 정부 요직을 맡았다. 역시 상위 15인 중 하나인 캐나다의 전직 장관 겸 법률가 마크 라롱드는 캐나타 시티뱅크와 에어프랑스 이사회 출신이다. 같은 캐나다의 이브 포르티에는 유엔안보리 의장을 역임하고, 오길비 르노 중재로펌에서 활동하였으며 노바 케미컬, 알칸, 리오 틴토 이사회에 참여했다. 그는 “상장 기업 이사회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데, 이러한 경험이 국제 중재활동에 도움이 된다”면서 “단순히 변호사로만 활동했다면 얻을 수 없었을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9) 중재 판결의 독립성이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ISDS 사건 변호사 또는 중재재판관은 대부분 20여 개의 중재 로펌에서 배출되며, 이들 로펌 중 다수가 미국계이다. 이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건이 증가하기를 바라며,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만한 일을 찾느라 혈안이다. 일례로 리비아 내전 중 영국의 로펌 프레쉬필드 브룩하우스 데링거는 국가 불안정성이 투자를 저해할 수 있는 불안감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근거로 고객들에게 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것을 권했다.

소송 한 건당 전문가, 중재재판관, 변호사 등에게 오가는 돈은 평균 600만 유로에 달한다. 독일 공항운영사 프라포트와의 장기간 소송에 휘말린 필리핀은 변호사 비용으로 기록적 수치인 5천8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이는 교사 12,500명의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이다.(10) 자금 동원력이 여의치 않은 경우 자국의 사회적, 환경적 열망을 포기하면서까지 어떠한 방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으려는 국가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가장 부유한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협의에 의한 중재를 권하는 판례가 누적되면서 국제법 체계는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불공정 업계’가 지배하는 세계로 변화하고 있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 Bulard

경제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위마니테 디망스〉 전 편집장

 

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혜경 hyekyung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파니 레이, “베올리아가 이집트를 법원에 소환했다”, Jeune Afrique, 파리, 2012년 7월 11일

(2) “Table of foreign investor-state cases and claims under NAFTA and other US “trade” deals”, Public Citizen, 워싱텅 DC, 2014sus 2월. “Recent developments in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ISDS)”,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Cnuced), 뉴욕, 2013년 5월

(3) 숀 도난, “EU and US pressed to drop dispute-settlement rule from trade deal”, Financial Times, 런던, 2014년 3월 10일

(4) 루크 에릭 피터슨, “Argentina by the number : Where things stand with investment treaty claims arising out of the Argentine financial crisis”, Investment Arbitration Reporter, 뉴욕, 2011년 2월 1일

(5) 리차드 울리, “ICSID sees drop in cases in 2013”, Global Arbitration Review (GAR), 런던, 2014년 2월 4일

(6) 앤드류 프리드만, “Flexible Arbitration for the developing world: Piero Foresti and the future of bilateral investment treaties in the global South”, Brigham Young University International Law & Management Review, Provo (Utah), vol. 7, No. 37. 2011년 5월

(7) “Recent developments in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S)”, op. cit.

(8) “Profiting from injustice”, 유럽기업감시(CEO) – 초국적연구소(TNI), 브뤼셀-암스테르담, 2012년 11월. 이 보고서에서 제공되는 내용은 ICSID에서 판결된 건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9) Global Arbitration Review, 2010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