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냉소'를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
기술공학 같은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자부심을 갖거나 자신이 인류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컨설팅 회사나 금융계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런 긍지를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실망감을 부추기면 역설적으로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기업 내에 강압적인 구조가 밀려나고 ‘기업 문화’와 비공식적인 규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쉽게 속지 않는 직원들, 그중에서도 관리자들은 안도시키려는 관료적인 표현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냉소주의가 기업 조직 내의 강력한 동맹으로 나타나고 그 연대를 강하게 한다.
“스탠웰의 컨설턴트들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릴 지원자들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경영 컨설팅 회사인 스탠웰의 파리지사 채용광고에서 ‘폴 스탠웰’이라는 인사 담당 면접관의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는 인터뷰에서의 행동 지침을 훈련하고 있었다.(1) 앞에 지원자로 묘사된 선풍기는 강한 바람을 일으켜 정장과 넥타이, 심각한 표정의 간부 모습과 잘 정돈된 책상 위 집기들을 흩트린다. 가히 조롱이 담겨 있는 이 장면은 모든 노력과 업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다국적기업들의 관리 계층에 ‘전문 인력’을 영입해 하루에 수천 유로의 수입을 내는 컨설팅 회사의 채용 홍보 영상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조직의 형식적인 구조를 파괴하는 독특한 연출을 통해 스탠웰은 기업에 대한 ‘현대적’ 발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1999년 뤽 볼탄스키와 이브 치아펠로가 공동 저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수십 년 전부터 기업에 대한 현대적 발상은 주로 진실성과 자유의 가치에 토대를 두고 전개되었다.(2) 이러한 개념은 개인의 성숙과 독립성, 창의성을 높이 평가한다. 회사 조직은 강제적인 권력에서 탈피해 인간의 감정을 도구화하는, 규범적이지만 효율적인 권력으로 탈바꿈했다. 이른바 ‘기업 문화’는 회사에 순응하는 ‘가치’를 노동자들이 따르도록 이끌며 그 목표는 업무를 즐겁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신격화도 되는 것이다.
“일이 즐겁다.”, “그것은 일이 아니다. 예술이다.” 사회학자 기던 쿤다가 1980년대에 첨단기술 그룹에 대한 연구에서 기록했던 당시 컴퓨터 엔지니어들의 표현이다.(3) 쿤다는 설립자에 대한 숭배와 인류 진보 요인으로서의 기술 찬미, 반복적으로 방영되는 비디오 강연을 통해 기업에 거의 종교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등 일련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통해 이른바 ‘기업 이데올로기’를 세우기 위한 IT 대기업의 투자를 강조했다.
개성 등 상징 요소들로 기업 이데올로기 세워
스탠웰 그룹은 홍보 영상을 통해 기업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 않는 척한다. 광고는 감정적이고 자기애적인 개인을 위해 체제와 기업을 완전히 해체했다. “스탠웰은 당신들의 개성을 모집합니다”라는 멘트로 끝을 맺었다. 일반적인 홍보영상처럼 회사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대신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부재를 강조한다. 회사의 설립자나 ‘역사’, ‘가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을 제거하고 회사 업무가 모든 사회적인 배경과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주는 막연하고 공허한 개념인 ‘개성’을 내세웠다. 영상 속 어두침침한 배경과 시나리오의 난폭한 실험은 오늘날 경영 컨설팅과 금융계 기업의 특징인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신과 무의미함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조직은 과연 개인에 대한 자유를 담보해 줄 것인가. 평등한 노동자 관계를 보장해 주는가. 창의성을 일깨워 주는가. 이러한 직업 환경은 도리어 독단과 때로는 임금 관계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기업의 연대를 조성하는 냉소주의 문화가 형성된다.
여기서 ‘XYZ’로 지칭할 컨설팅 회사는 다국적기업, 특히 금융계 컨설팅 전문기업이다. 컨설팅 회사가 의뢰 업체에 대해 수행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입할 간부급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다. 경영진을 상대하는 ‘전략’ 컨설팅 회사들(맥킨지, 보스턴 컨설팅 그룹, 베인앤컴퍼니 등)과 달리 XYZ는 ‘운영’ 컨설팅 그룹이라 주요 의뢰인은 중간 관리층이다.
컨설턴트든 회사 내부 직원이든 상관없이 모두 기업 조직을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일부는 자신들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토로한다. 한 컨설턴트는 “소포 무게 재듯 저울질 당하는 것이 지겹다”고 말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단조로운 일상 업무에 흥미를 잃었다고 고백했다. “내 학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머리를 쓸 일도 없다. 누구는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데 우린 무엇을 하는가? 기껏 슬라이드(4)나 만들고 있다!” 모두가 어김없이 “상관이 ‘무능’하고 ‘교활’하다”는 비방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컨설팅 회사의 경제 모델이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 “그가 당신을 (의뢰 업체에) 채용시킨 대가로 수당과 함께 당신보다 10배나 높은 연봉을 받는다. 그가 한 건 아무것도 없고 실질적으로 당신을 취직시킨 건 그가 아닌데도 말이다”라고 항의한다. 하지만 상관들은 부하 직원들 앞에서 자신들의 업무를 과소평가하는 것을 즐긴다. 어떤 매니저는 “우리는 ‘탁월한 운영’(5) 유형에 속한다. 우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월마트용 제품이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조직은 직원들에게 직무나 조직과 거리를 두도록 하여 모든 항의를 무력화시킨다.
2011년 6월 업무 중에 친한 지인들끼리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XYZ의 디렉터(6) 라파엘이 의뢰인을 위한 역할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제시했다. 컨설팅 계약은 총괄적으로 기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관리자를 상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컨설턴트의 역할은 규제 개정에 이은 은행 업무를 유럽 차원에서 조직 개편하는 것이다. 라파엘은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규제 개정이 조직 개편의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의뢰인은 힘이 없다. 규제 개정이 이루어져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책으로 그는 상사에게 가서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겠다고 제안한다. ‘합리적으로’ 처리하겠다며 비용 감축과 직원 해고에 대해 과장해 말한다. 상사들은 만족스러워한다. 그리고 달성하면 그는 승진한다.” 라파엘은 의뢰인이 추진하려 했던 새로운 조직을 거부한 스페인 지사의 예를 들었다. “스페인 쪽이 옳았다. 당신은 왜 좋은 업무 조직을 그들이 무너뜨리길 원하느냐”고 물으면 의뢰인은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서 프랑스 릴에 일부 업무를 집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바로 릴에 있기 때문이다.
“말을 믿지 말고 다루는 법을 배우라”
뒤이어 라파엘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7)을 거론하며 “잘 판단되지 않는 것은 다른 이들(여기서는 컨설턴트들)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프로젝트에 대한 XYZ의 가담 정도를 설명했다. 업무 이외의 설명을 이어가다가 XYZ 조직 자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라파엘은 젊은 부하 직원들에게 “절대 말을 믿지 말고 ‘다루는 법’을 배우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개론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구체적인’ 것은 언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언제나 옳은 예술>을 잃어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컨설턴트들은 ‘가면을 쓴 채’ 고용주의 이익을 위한 업무에 참여해 전문 인력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여겨진다. 진지하게 몰두하면 순진하다고 여겨지고 멸시받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첨단기술 그룹에 대한 쿤다의 민족지학 연구는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데올로기를 ‘그것은 그저 네가 연기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며 역할 놀이라 믿고, 어떻게 개인적으로 이에 저항하는지 보여준다. XYZ에서는 명석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명석함을 겉으로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것이 단지 ‘역할’뿐이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도록 수행해야 한다.
역설적인 것을 암시하려고 컨설턴트 에두아르는 일부러 더 열성적으로 조직에 몰두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XYZ를 신뢰한다”라든지 “당신께 많이 배운다” 등등 상사에게 거침없이 과장된 표현을 섞어가며 말했다. 상사들은 속지 않았지만 그의 명석함과 규범을 무시하는 능력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몇몇 책임자들이 넌지시 알린 것처럼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직무와 거리를 두라는 말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을 좋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실뱅 틴은 컨설팅 세계에 대한 사회학 이론(8)에서 어떻게 컨설턴트가 자신의 관점도 아니고 상사의 관점도 아니면서 실질적인 실리가 없는 컨설팅의 판매 방법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XYZ에서 이러한 쾌거를 이룬 컨설턴트는 매우 우수하다고 인정받을 것이다.
XYZ의 컨설턴트들은 기업 문화에 동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회사의 이익-개인 수당- 외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식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볼탄스키와 치아펠로는 1968년 5월 혁명 당시 ‘예술적 비평’의 통합에 의해 소생된 자본주의의 능력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시장 경제의 ‘비본래성’은 개인의 성숙을 저해한다. 현재의 경영 시스템은 결국 그 위선에 대한 비판과 강조되었던 가치와의 모순에 대한 비판 등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비판이 합쳐진 듯 보인다. ‘현실 원칙’이라는 명목 하에 냉소주의를 받아들여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이데올로기가 피어나고 있다.
XYZ의 경쟁사에 근무하는 젊은 매니저는 “내 상사 중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성공하길 원한다면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말-예를 들어 프로젝트에 끼워준 파트너를 의미-을 타고 언덕을 오른 뒤 정상에 도착하면 그 말을 버리는 방법, 아니면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서 자네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 편안히 승진하는 방법이다”면서 “나의 경우에는 첫 번째 방법이 두 번째 방법보다 쉬웠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써봤다”고 고백했다.
기업 조직이 개인의 도덕 가치와 배치될수록 직원들은 회사 조직을 비현실적인 가상 경기장과 동일시하고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철저하게 행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를 신봉하는 라파엘은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고 사회 활동가 나오미 클라인이나 사회학자 엠마뉘엘 토드 같은 지식인들을 인용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내비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조직 개편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는 자신의 위치 때문인 것처럼 일부러 나서서 의뢰인을 설득하지 않는다. 오로지 의뢰인만을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해고 당할 수도 있는 변화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글· 클라리스 빅토르 Clarice Victor
경영 컨설팅 회사의 프랑스 지사 컨설턴트. 본 기사는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컨설팅 회사에서 실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www.stanwellrecrute.com
(2) 뤽 볼탄스키, 이브 치아펠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 갈리마르, 파리, 1999년
(3) 기던 쿤다, <Engineering Culture : Control and Commitment in a High-Tech Corporation>, Temple University Press, 필라델피아, 2006년[1re éd.: 1992]
(4) 파워 포인트로 작업한 사진이나 도표 등을 스크린에 영사하는 것으로 컨설턴트들이 프레젠테이션에 많이 활용한다.
(5) 마이클 트레이시와 프레드 위어즈마의 공동저서 <마켓 리더의 규율>(Addison-Wesley, 보스턴, 1995년)에서 분류된 유형론에 따르면 ‘탁월한 운영’이란 적당한 품질의 제품을 저가에 대량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6) 디렉터라는 직급은 이론적으로 컨설팅 회사에서 가장 상위 계급이다.
(7) 올리비에 피로네, ‘마키아벨리즘에 맞서는 마키아벨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호
(8) 실뱅 틴, <컨설턴트들과 정보 시스템. 새로운 기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컨설팅 공간의 변형(1990-2005)>, 박사논문, EHESS, 파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