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준 자유무역협정을 거부하는 법

2014-07-02     라울 마르크 제냐르

 

 

국회의원, 유럽의회 의원, 각국 정부는 범대서양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저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협정 체결을 저지할 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국민이 발 벗고 나서야 하는가.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TTIP)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무엇이 있는지 단계별로 알아본다.

협상 권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의권을 독점하고 있다. 집행위만이 일반 무역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범위를 정하는 권고안을 발의할 수 있다.(1) EU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이사회는 협상 권한이 명시된 집행위 권고안을 심의한 후 협상 개시를 승인한다.(이사회가 권고안을 수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2) 범대서양 동반자협정의 경우 2013년 6월 14일 집행위에 협상권한이 위임되었다.

협상

EU 집행위가 협상을 주도하고 28개 회원국 정부를 대표하는 특별위원회가 지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원국 정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카렐 드휴흐트 EU 통상부 집행위원이 유럽협상 대표를 맡고 있다. EU의 헌법격인 리스본조약은 집행위가 협상의 진전 상황을 유럽의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정하고 있는데(3) 집행위는 새로운 의무조항 이행에 매우 미온적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회 통상위원회가 협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TTIP 협상은 예상했던 대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1단계 : 회원국 정부 승인

비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이 일단 끝나면 이사회는 집행위가 제출한 협상안에 대해 가중다수결 방식(qualified majority voting, 회원국의 55%가 찬성하고 찬성국의 인구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이면 가결)(4)으로 가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공공서비스, 지적재산권, 외국인 직접투자와 관련된 협정일 경우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 시청각 서비스 분야에서 유럽연합의 문화와 언어 다양성이 침해를 받을 위험이 있을 경우, 공공서비스, 교육, 건강 분야에서 협정 체결로 회원국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거나 회원국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을 경우’에도 만장일치 통과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회원국 정부는 협상의 최종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운신의 폭이 넓고 협정 체결을 막기 위해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이사회는 최종 표결을 하기 전에 의회에 최종안을 제출해서 의회의 반대 가능성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5)

2단계 : 유럽의회 승인

2007년부터 비준 관련 권한이 더욱 커진 유럽의회는 집행위가 협상한 협정에 대해 ‘동의절차’라고 명명된 합의절차에 따라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유럽의회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0여 개 국가가 비밀스럽게 진행했던 위조 및 불법복제 방지협정(ACTA,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을 지난 2012년 7월 4일 부결시킨 바 있다. 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의회도 현재 협상하고 있는 협정이 여러 EU 협약과 충돌하지 않는지 EU 사법재판소에 의견을 구할 수 있다.(6) 이 절차는 이사회가 의회에 협상결과를 제출할 때 시작된다.

3단계 : 회원국 의회 비준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범대서양 동반자협정을 승인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협상 권한의 46개 조항이 모두 포함된 협정에 대해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드휴흐트 집행위원은 앞으로 있을 EU-캐나다 자유무역협정의 비준을 예로 들면서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가 표결하기 전에 28개 회원국의 대표로 구성된 집행위에서 최종안을 승인하기 때문에(7)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는 TTIP 협정 역시 이 절차에 적용받는 것을 의미한다.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은 유럽의회와 회원국 의회의 비준이 동시에 필요한 협정이 아니고, EU의 독자적 권한에 속하는 협정이다. 하지만 독일과 벨기에를 포함한 많은 이사국들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드휴흐트 집행위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8)

이미 과거에 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협정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2011년 독일, 아일랜드, 영국 의회는 EU와 콜롬비아, 페루 사이에 맺어진 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권한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회원국 의회의 비준을 요구했었다. 프랑스 의회는 2013년 12월 14일 집행위가 협상한 한국-EU FTA 협정을 비준한 바 있고 앞으로 EU-콜롬비아, EU-페루의 FTA 협정을 비준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문제는 범대서양 동반자협정이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을 넘어서는 것이고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협정이라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건강, 환경, 기술 분야가 관련되어 있고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사이에 분쟁이 있을 경우 민간 중재기관을 통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EU의 권한은 아직까지 일부분이라도 국가의 주권에 해당하는 분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64년 유럽공동체 사법재판소는 유럽공동체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매우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9)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헌법이 EU 협약에 우선하기 때문에 새로운 협약이 체결될 때마다 헌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헌법을 개정해왔다.

2008년에도 리스본조약 채택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10) 하지만 베르사이유 궁에 모인 상·하원 의원들은 헌법 53조는 손대지 않았다. 헌법 53조에는 “평화협정, 무역협정, 국제기구와 관련된 협정이나 협약, 국가 재정이 관련되거나, 법규를 개정해야 하거나, 국민의 신분을 변화시키거나, 국토의 할양, 교환, 합병에 관한 것이 포함된 협약은 오직 법에 근거해서 비준되거나 승인될 수 있다. 그리고 비준이나 승인 절차를 거친 후에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무역협정인 TTIP는 프랑스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협정이 헌법 53조에 위배되는지 검토하는 것은 외무부 소관이다. 그래서 통상업무를 산업부에서 외무부로 이관한 마뉘엘 발스 총리의 결정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범대서양주의자임을 부인하지 않는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이 아르노 몽트부르 경제산업부 장관보다 TTIP 협정에 더 우호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통상관광 국무장관에 플뢰르 펠르랭을 임명한 것에 프랑스 경제인 연합회(Medef)는 환영을 표시하기까지 했다.(11)

만약 프랑스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고 결정되면 프랑스 정부는 심의 없이 표결에 부치는 약식 검토절차를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12) 하지만 이 결정은 하원의장을 대표로 하는 의회 의장단과 의회 외무위원회에서 한다. 60명의 하원의원 또는 60명의 상원의원도 범대서양 동반자 협정의 위헌성을 헌법위원회에 물을 수 있다.

당연히 프랑스 국민은 2013년 6월 14일 유럽집행위의 권고안을 받아들인 정부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 봄 프랑스 정부는 TTIP 협상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범대서양 자유무역 시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정부가 의식했다는 뜻이다. 국민 여론은 범대서양 자유무역시장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는 데 없어서는 안될 든든한 지원군이다.

글·라울 마르크 제나르 Roul Marc Jennar

<Le Grand Marché transatlantique. La menace sur les peuples d'Europe>(유럽을 위협하는 범대서양 자유무역시장)의 저자. Cap Bear Editions, 페르피냥, 2014년

번역·임명주 myjooim@gmail.com

 

(1) 유럽연합 기능에 관한 조약(TFUE, 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207조는 집행위와 이사회와 관련해 공동통상정책에 속하는 협정에 대한 협상과 채택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2) 집행위의 권고안과 승인된 협상권한을 비교하면 회원국 정부가 집행위의 권고안을 수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TFUE 조약 207조, 3항

(4) 2014년 11월 1일부터 발효되는 새로운 가중다수결방식

(5) TFUE 조약 218조 6a항

(6) TFUE 조약 218조 11항. 모든 회원국이 유럽사법재판소에 의견을 구할 수 있다.

(7) <Liberation>, 파리, 2013년 10월 28일

(8) 드휴흐트 집행위원은 2014년 4월 1일 유럽의회 통상위원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9) 이탈리아 정부의 전력국유화 조치에 반대해 변호사 코스타가 전력국유화법이 유럽경제공동체 설립조약에 위반된다고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럽공동체 재판소는 유럽공동체법이 국내법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는 선행판결을 내렸다.(코스타에넬 판결, 6/64 사건, 1964년 7월 15일)

(10) 헌법 15장을 개정한 2008년 2월 4일 헌법 n° 2008-103. 174명의 사회당 의원과 3명의 녹색당 의원의 기권 덕분에 헌법이 개정되었고 2005년 국민투표로 부결된 유럽헌법과 유사한 리스본조약이 프랑스법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 펠르랭 통상관광 국무장관의 <정부에 묻는다> 인터뷰 보기. 2014년 4월 16일. http://videos.assemblee-nationale.fr

(12) 프랑스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2013년 12월 14일 총 3,8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한민국-EU 자유무역협정이 약식절차에 따라 논의 없이 몇 분 만에 비준되었다.